[박연미] 이계진 의원의 '혀 짧은 말'
[아이뉴스24 2006-03-24 14:49:04]
<아이뉴스24> "가지고 와! 이리로 와!"
지난 23일 오후 4시 39분.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를 증인석에 앉혀둔 채 한나라당 대변인 이계진 의원이 '짧은 말'로 불호령을 내린다. 순간, 찬 물을 끼얹은 듯 장내에 흐르는 정적. 청문회가 한창인데, 끝내 국립극장에서 나온 초로의 문화부 직원이 도살장 가는 소 모양 이 의원을 따라나선다.
그렇게 '의원과 직원'이 청문회장인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회의실 옆 사무실로 들어간 시각이 4시 40분.
이미경 문광위원장이 부랴부랴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의 보충질의로 '소음'을 덮어보려했으나, 장내를 쩌렁쩌렁 울리는 고성(高聲)을 숨기지는 못했다.
의원 하나, 직원 하나. 일행은 둘인데, 목소리는 하나 뿐이다.
"엉뚱한 것을 갖다주고, 그리고 날 훈계해!"
흥분이 깔린 속사포같은 쏴붙임. 그러나 역시 베테랑 방송인 출신 답게 이 의원의 발음은 그 와중에도 정확하다.
청문회장을 박차고 나가, 이 의원은 그렇게 5분을 고성으로 '훈계'했다. 말대꾸의 대가였다.
시간은 흘러 4시 45분.
안색이 변한 의원과 직원이 돌아왔다.
5분의 분풀이에도 겸연쩍은 태 없이 돌아온 이 의원, 돌아와서도 한 동안 옆자리 박형준 의원에게 자신의 '황당함'을 털어놓는지 부연이 길다.
같은 시각, 경을 친 문화부 직원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벌개진 얼굴엔 낭패감이 만면하다. 청문회장 밖, 대기실 모습이 궁금해 슬쩍 둘러보니 '쓴웃음'이 대세다.
"아, 있는 정관이니 있다고 하지..." 낮은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이날 열린 국회 문광위의 신임 문화부장관 내정자 청문회의 한 장면이다.
이 의원은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자.
이 날 청문회의 오전 질의는 TV로 '생방송'됐다. 주어진 시간을 넘겨가며, 오전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장관감 심사에 눈초리가 매서웠다.
그러나 12시에 청문회 오전 순서가 종료되고, 오후 2시부터 속개된 오후 회의에는 왠일인지 빈 자리가 대부분. 중계 카메라가 물러간 오후, 의원들은 자신의 질의 순서에 돌아가며 청문회장을 찾는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로테이션 청문회', 증인과 질의 차례 의원과의 '일대일 청문회'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평소 '모범생'으로 유명한 열린우리당 김재윤 의원을 제외하면, 자신의 질의 시간 외에 자리를 지킨 의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로테이션에 동참한 것은 이계진 의원도 마찬가지. 해서 국립극장 기금 운용 정관이 있느냐며 당일 즉시 제출을 요구한 이 의원은, 30페이지에 이르는 요청 자료를 자신의 질의 시작 직전에 받아볼 수 있었다. 오후 회의 시작 후 두 시간을 넘겨 4시 반이 되어서야 자신의 순서에 맞춰 청문회장에 들어온 탓이다.
순서에 맞춰 돌아온 이 의원, 문화부 직원과 소통 오류가 있었는지 "요구한 정관이 아니"라며 지적한다. 문화부 직원은 "맞다"고 설명한다. 문답이 오가면서 이 의원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이기 시작한다.
이 의원 지적이 수용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엔 "왜 이제 줍니까? 30페이지나 되는 걸 지금 내가 읽고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까? 나를 놀리는 겁니까?" 이 의원의 언성이 높아진다.
"자리에 안 계시길래..."
문화부 직원의 답변이 '예술'이다. 또한 '사실'이다. 뜨끔했는지, 옆 자리 박형준 의원이 "말이라고 해?"라며, 말을 차고 들어온다.
국회의원의 대단한 위세가 실감되는 순간이다. 국민의 대표들은 그렇게 반 토막난 어휘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새로 자료를 제출하며 친절하게 정관을 설명한 메모를 첨부한 것도 심사를 거스른 모양이었다.
"지금 나를 가르치는 겁니까? 엉뚱한 자료를 갖다주고 훈계하는 겁니까?"
문화부 직원이 정말 엉뚱한 정관을 갖다줬는지, '돈 굴리는 기준이 없다'고 비판하고 싶었던 이 의원이 정관을 곡해했는지 그들의 정확한 속사정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들이 눈꼬리를 치켜세울 때 가장 좋은 대답이 "죄송합니다"라는 걸 몰랐던, 그래서 정관을 설명하려던 '에프엠 문화부 직원'이 끝내 청문회 도중 불려나가 경을 쳤다는 점이다.
방송인 출신 의원들은 언론을 아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적시에 그렇게 필요한 모션을 취해주는지, 촬영 협조도 100%다. 뿐인가, 달변에 이미지 관리도 철저하다. 그러니 이계진 의원의 '변신'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감히'.
이 의원의 성남은 궁극적으로 이 두 글자에 뿌리박은 감정이다. 동료 의원인 장관들도, 심지어 대통령도 발 아래로 보기 주저앉는 '大 국회의원'에게 자초지종이야 어쨌든 말대꾸를 한 것. 문화부 직원의 패착은 이거였다. 얼마나 늦게 자료를 전했으며, 내용이 뭐였는지는 오히려 중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의원은, 그렇게 불벼락을 내린 후 한동안 화를 가라앉힌 다음 다시 한 번 '그림'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저들의 실수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과를 받은 다음 뒤끝없이 장내를 정리하는 엔딩을 연출하려는 심산인 듯 했다.
다시 부드럽고 정확한 발음으로 이 의원은 말했다.
"장관이며 참모들 정말, 이 따위로 나갑니까?"
'이.따.위'
그리고 이 의원은 곧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되지, 엉뚱한 자료를 늦게 갖다줘놓고 훈계하는 메모를 집어던지고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장관 내정자를 몰아세웠다.
이 의원은 나아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느냐? 그렇다면 사과받겠다"며 장관 내정자를 채근했다.
그러나, 정치인 출신이 아닌지라 역시 '뻣뻣한' 김명곤 장관 내정자.
시쳇말로 기름칠을 하지 못하고 그는 "자료 제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라는, 이계진 의원의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을 돌려주고 말았다.
결국 무조건 사과를 기대했던 이계진 의원은 '삐쳤다'. "조건부냐, 그럼 사과 안 받겠다"는 결정적 느낌표도 찍었다.
이 의원의 피날레 장식으로 그 날 청문회는 이렇게 서먹서먹하게 막을 내렸다.
어수선한 청문회가 마무리되고 청문회장을 빠져나오는 길.
높은 사람들, 답변 준비로 하루 종일 청문회장 밖에 대기했던 문화부 직원들이 조용히 웅성거린다.
"정관 있는데..."
"언제 메모를 집어던졌냐..."
정관, 안 봐서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의원이 자리에 없었으며, 메모는 곱게 첨부돼 전해졌고, 이들 역시 의원들이 늘 '존경한다'고 말하는 국민, 유권자라는 것.
권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염력을 발휘한다던가.
의원의 주장이 팩트를 압도하던 23일, 청문회 관람 소감 대략 '씁쓸'이다.
/박연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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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news.empas.com/show.tsp/20060324n04663/ 자신의 의견 : 이계진 의원님 참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