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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oda_2096
    작성자 : RF
    추천 : 33
    조회수 : 3744
    IP : 41.224.***.12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5/11/06 14:01:38
    http://todayhumor.com/?soda_2096 모바일
    살면서 마셨던 사이다 몇 캔 정도..
    1.

    제 인생에서 진짜 사이다라고 할 만한 것은 군생활에서 겪은 것들이 처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 중 하나입니다.
    군 복무 당시 행정직에 있었던 저는, 당연히 지휘부 간부들과 부딪힐 일이 잦았습니다.
    부대 특성상 규모가 작은 편이고, 간부들도 심적 여유가 좀 있어서 그랬는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얘기를 하면 듣는 축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 간부가 제 독단에 따라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었는데, 뭐 성격 안좋은 사람이 한 군데만 안좋겠습니까.
    하급자나 후배에게 비인격적인 태도를 자주 보이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입니다. 안하무인적 태도는 당연하구요.
    뭐 그래도 같은 공간을 쓰고 있지는 않았기에 자주 부딪히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죠. 워낙 부대가 소규모니까요.
    뭐 개같은 이등병 시절 지나자마자 밑에 후임이 6명이나 들어오는 개꿀군번이었기 때문에, 나름 무탈한 생활을 하던 도중
    잦은 연등신청으로 어떻게든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제가 좋게 보였던지, 상급 간부 한 분이 제게 정말 좋은 정보를 하나 던져주십니다.

    간부 : 오, 야. RF야. 너 XX 공부한다고 했던가? 

    RF : 예.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간부 : 아니 아니, 보니까 육본에 파병 공고 났길래. 너 지원해보면 좋겠다 싶어서 알려준다. 한 번 확인해봐.

    RF : 옙. 감사합니다!

    즉시 알아본 바, 지원 못할 것은 아니었지만 붙을 확률은 상당히 희박했습니다. 제가 지원한 보직은 통역병인데, 
    사실 이 통역이란 것은 아무리 야매행정으로 모든 게 이뤄지는 군대라도 굉장히 능수능란하게 해당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해당 언어 사용국가에서의 거주경험이 없는 저는 우수한 인적자원은 아니란 얘기죠.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후회할 거라면 지원은 해보고 후회하자' 라는 미친 생각으로 간부들을 설득하여 지원서를 냅니다.
    당연히 파병을 지원한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지고, 이내 안하무인 간부에게도 소식이 들어갔죠.

    안하무인 : 어 RF 이리온나

    RF : 예 부르셨습니까

    안하무인 : 니 파병 지원했다매? 

    RF : 예.

    안하무인 : 마 그거 치아라. 안된다. 그기 얼마나 어려운 건 줄은 알고 지원했나? 니 진짜로 니가 된다고 생각하나?

    RF : 뭐 그래도 지원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 싶어서 냈습니다.

    안하무인 : 하이고 웃기는 소리하네. 파병은 무신 파병이고. 우리 부대까지 오기도 전에 다 윗선에서 채간다. 니 절대 몬간다. 니 가모 내 장을 지진다.

    RF : 허허허허허 뭐 그래도 도전은 해봤으니 후회 없습니다.

    뭐 이런 기분나쁜 대화를 나눈 후, 서류 패스
    -> 전화면접
        *(제가 지원했던 부대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동일한 보직을 구하던 다른 파병부대에서도 연락이 오더군요. 
          물론 긴장을 너무 하는 바람에 다른 부대 면접에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지원한 부대 면접을 잘한 건 아닙니다.)
    -> 합격여부 발표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필 발표일이 유격훈련주간이었기에 개같이 흙밭에 구르고 유격 3일차, 지휘소에 있던 제 상관에게 부탁했습니다.

    상관 : 파병 합격때문에 왔지? 

    RF : 네 혹시 괜찮으시면 부ㅌ...

    안하무인 : 야 니 안된다니까 뭐 자꼬 기대를 하고 그라는데?

    RF : 허허 그래도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상관 : 어 잠깐만 기다려봐... (전화중).. 어, 어... 이름? RF. 찾아봐. 어.. 그래? 알았다.

    (통화 후)

    상관 : 야 축하한다. 니 부사수 구해야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나 제가 지원한 보직에 총 3명 지원했는데 그나마 해당 언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저 뿐이라 합격하게 된, 
    말도 안되는 기적이었습니다. 듣자마자 너무 기뻐서 훈련장 안에 사단장이 있다는 것도 잊고 됐다 X발!!을 외치다 
    다른 간부에게 죽도록 혼이 나긴 했지만,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보인 안하무인 간부의 표정은 제 기쁨을 배가시켜주는 정말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2. 
    파병을 가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분명 전화면접을 통해 제 능력이 여실히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상당히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병사였고, 덕분에 거품꺼진 주식시장마냥 파병지에서의 제 처지는 상당히 좋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영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통역병으로서의 최소한은 해냈지만, 영어가 아니 다른 언어 통역병으로 와서 영어만 하고 있는 모양새가 
    영 좋지는 않았겠죠. 더군다나 출퇴근 식으로 근무하던 양반들이 주둔지에 묶여서 6개월을 있으려니 정신에 이상이라도 생기는지, 
    간부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열댓 남짓한 병사들에게 전가되었죠. 여건만 좋을 뿐, 사람이 좋지는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제 능력의 부족과는 관계없이 그냥 존나 하면 안되는 짓을 하는 걸 목격합니다.

    노답간부 : 야 RF야, 너 다녀오는 길에 여기 애들 영수증좀 모아와라.

    RF : ??? 쓰레기가 필요하십니까?

    노답간부 : 아니 그건 아니고....(이하 설명)

    말인 즉슨, 한국에 있으면 복지카드를 사용하여 받을 수 있던 복지혜택을 파병지에서는 받을 수 없으니, 군 측에서 그간 사용한 영수증을 팩스로 보내거나 하여 자신이 돈을 썼단 사실을 입증하면 일정 금액을 환급해준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줄여서, 자기가 썼건 안썼건 지금 자기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을 받아먹겠다는 소리였죠.
    근데 해외에서 제가 고발을 해봐야 바뀔 건 없었으므로 전 훗날을 기약하며, 영수증을 갖다줍니다. 상당히 불쾌했지만 별달리 수가 떠오르질 않더군요.

    그리고 대망의 전역 후, 굴러다니던 저는 문득 저 기억이 떠올라 득달같이 PC 앞에 앉았고 즉시 국방부 홈페이지로 들어가 장문의 민원을 넣었죠.
    그 사람이 입에 달고 다니던 폭언/욕설에 대한 것도 덤으로.

    그 사람은 제가 전역 후에도 동일한 파병지에 있었기 때문에 조사가 늦어져서, 지금 기억상 약 1주일 후 연락이 왔습니다.
    영수증을 모은 건 사실이나 사용하지는 못했기에 미수에 그쳤고, 폭언/욕설은 사실로 밝혀졌기에 징계위원회에 회부, 징계 처분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속 시원하더군요.


    3.
    전역 후 한달 즈음 지났을까, 파병지에서 모진 취급 참아가며 모은 돈으로 산 제 오토바이로 중거리 여행 겸 경기도 북부를 가서 
    제 원소속 부대 간부분들에게 인사나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서울까지 20여 km를 남겨놓고 어느 삼거리에 섰습니다. 

    A-------B
          |
          C
     
    A위치의 A->B방향 차로에, 군용차량 번호판을 단 검은색 중형 세단이 한 대 보이더군요. 근데 행동이 이상합니다.
    B 방면으로 가려다가 중간에 멈춰버렸거든요. 신호가 적색등이었으니 정지하는 게 맞긴 하지만, 뭔가 길을 잘못 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있는 C방향 길로 들어왔어야 하는 듯 움찔대더군요. 짙게 선팅된 차유리 너머로 운전병의 당황해하는 모습이 보이고, 
    뒤에 앉은 간부가 손을 휙휙 돌리는 제스쳐를 취합니다. 이 차, 뭔가 움찔움찔 합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 클락션을 울렸습니다.
    나쁜 예감은 어찌나 틀린 적이 없는지. 이 군용 세단, 미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A방향으로 그냥 후진을 때리더니, 
    뒤에 차가 있어 C방향으로 정상적인 우회전 접근이 힘들자 C->A로 가기 위해 신호 대기중이던 제 오른편을 지나 역주행, 
    리고 중앙선 침범 후 C방향으로 주행합니다.

    혹시나 싶어 차종과 번호판을 유심히 봐뒀던 저는, 해당 차량이 지나가자마자 폰을 꺼내들어 번호판을 메모했죠.
    그리고 집가는 길보다 더 편한 쪽 길인 학교 앞으로 가서, 제 동기 자취방에 쳐들어가 컴퓨터를 쓰기 위해 제 동기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나긴 민원.. 아주 정성스럽게 그림판으로 당시 제 위치와 군 차량 주행방향, 순서까지 상세하게 적어 보내주었죠.
    네이버 지도와 거리 뷰를 동원하여 정확한 위치 지정은 물론, 당시 메모를 적었던 시간이 있기에 시간까지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당황해하는 운전병이 지시에 의해 불가피하게 범법행위를 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제지의 기색 하나 없던 선탑자는 물론, 그런 쓰레기같은 지시로
    자기 병사를 범법자로 만든 간부 둘은 제게 자필로 사죄를 해야 할 것이며, 이는 도저히 용납이 될 수 없는 사안임과 동시에 
    만일 이에 대한 조사를 차일피일 미뤄 작성일자 기준 3일 안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온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와 언론사는 이를 아주 상세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말로 마치면서요.
    그때 진짜 화났었거든요. 오토바이에 앉아있는데 중형 세단이 저런 말도 안되는 움직임을 바로 코앞에서 보여준다고
    생각해보세요. 이러다 저 차가 나 죽이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민원을 상당히 거세게 넣었던 탓인지 정확히 이틀 후에 차량 번호를 재확인하는 전화가 오더니, 다시 일주일 후 헌병 수사관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RF : 예. 누구십니까.

    헌병 : 아 예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헌병 수사관 XXX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십니까

    RF : 예 물론이죠. 무슨 일 때문이십니까

    헌병 : 아 다름이 아니고, 일전에 그 차량 불법주행 관련해서 민원 주셨었죠?

    RF : 아 예. 

    헌병 : 예 글에 써주셨던 것들 모두 사실로 확인이 되었고, 또한 당시 운전병 및 당시 차에 탑승하고 있던 간부들도 모두 파악이 된 상황입니다.

    RF : 아, 그런가요. 그래서 그 분들 처분은 어떻게 됩니까.

    헌병 : 곧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처분이 결정될 예정이구요. 
           처벌의 경중과는 관계없이 국민을 지켜드려야 할 국군으로써 선생님께 불편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 먼저 드리겠습니다.

    RF : 수사관님께서 사과하실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수사관님께 깔끔한 업무에 대해 감사드려야 합니다. 
         사과는 그 분들께 직접 받는게 맞지 싶습니다.

    헌병 : 아하하 예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당시 뒤에 타고 있던 XX이 직접 사죄의 뜻을 전하고 싶다며 옆에 있습니다. 전화 괜찮으실까요?

    RF : 물론입니다. 


    민원 제기시 상당히 흥분을 한 탓에 제 요구가 다소 과한 측면도 있었어서, 전화 상으로 직접 사과를 받는 걸로도
    충분히 저는 마음이 풀리더군요. 사과를 받은 직후에는 당시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병사는 절대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그 병사는 다만 지시에 따랐을 뿐이고 그 책임은 당시 병사에게 지시했던 간부나, 관리감독의 의무가 있는 선탑자가 져야 하는게 정당한 것이니 
    병사는 무탈하게 군생활 할 수 있도록 오히려 제 쪽에서 거듭 부탁을 했으니까요.

    글재주가 없어 다른 사람들이라면 훨씬 재미있게 각색했을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참 아쉽습니다.
    문과생임에도 이렇듯 글재주가 없어 참 슬프네요.
    그래도 자극적이지는 않게 쓰려고 노력해 봤습니다. 가끔 사이다글 보면 너무 자극적이라 속이 더부룩할 때도 있더라구요.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이 반영된 글이긴 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이만 글 마치겠습니다.

    *P.S. 이 글을 통해 제가 누군지 아실 수 있는 분도 있을 터이나, 내색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요즘 잦은 음주로 데미지가 누적된 기억중추
    RF의 꼬릿말입니다
    3번 글에 있던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참.. 군 복무중에는 그렇게 높아보이고 떠르르했던 사람들도 밖에 나오자마자 최소 열댓살은 어린 사람한테 선생님 존칭 써가면서 굽신거리는구나..

    였습니다.

    새삼 아버지께(군인은 아니십니다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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