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 된 아기 모유수유중인 어머닙니다.
좋은 먹성에 비해 아직 작은 위장을 가진 아가라 1시간반~2시간 간격으로 젖먹이는중이예요
밤 낮이 뭔지도 모르겠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응애 하고 찡얼거리면 맘마먹이면 30분이 훌쩍 지나가고 트림시켜주느라 안고있으면 20분.. 그럼 남은 40분~한시간동안 미친듯이 쌓이는 아기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하거나 제 밥을 챙겨먹어요. 그럼 또 수유시간. 그다음텀엔 돌려놓은 빨래를 널고 말려뒀던 빨래를 개요. 아기가 있으니 청소도 건너뛸수가 없어서 그 다음 텀엔 쓸고 닦고 하구요.
사실 아기가 맘마먹고 트림하고 잘 누워있어줬을때에나 집안일도 할 수 있어요
찡얼거리고 울면 또 꼼짝없이 안아줘야해요
방 한켠에 쌓이는 기저귀들
싱크대엔 밥그릇이랑 숟가락 젓가락만 담겨져있어요
설거지감 많이나오면 힘드니까 밥만 퍼서 얼른 마시거든요
어떨땐 밥에 물말아먹고있는데 아기가 웁니다
그럼 달래주거나 맘마먹여요. 어떨 때 보면 응가해서 우는거구요. 애기 달래놓고, 응가 씻겨놓고 거실에 나오면 물에 팅팅 불고 식어빠진 밥.. 을 또 마셔야 해요
모유수유중이라 안먹을수도 없고 모유수유 안한다고 해도 안먹으면 체력적으로 버티지도 못해요
아기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아기띠도 불편해하고 덥기도해서 외출도 힘들어요
열평 남짓한 방안에서 뚫려있는 창문밖을 보면 전선이 딱 5개 보여요
맨날 그것만 쳐다보고 있어요
전쟁같은 아침,점심,저녁이 지나면 남편이 퇴근해요
요즘 일이 너무 바쁘다고 주말도 반납하고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늦게 들어옵니다
남편이 씻고 정리하고 나오면 드디어 바톤터치해요
저는 8시가 넘어서 늦은 저녁을 먹어요
그 와중에도 애기가 맘마찾으면 전 먹여야하니깐 저한테 천천히 느긋하게 밥을 먹을 시간은 없어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드디어 씻을 시간이 주어져요
샤워하고 머리 말리는 시간 딱 20분.
출산하면 머리감고 말리는시간이 엄청 아깝다는 주위 조언에 만삭때 허리까지 길렀던 머리를 귀밑 단발로 잘랐어요
그 머리도 제대로 말릴 시간이 없어서 이 더운 여름에 뜨거운 바람으로 대충 말리고 머리를 질끈 묶어요
요즘들어 손에 뭔가 닿으면 잡아당기는 버릇이 생긴 아기때문에 옷은 다 늘어나고 그마저도 수유때문에 맨날 똑같은옷만 입어요
그 옷에도 어깨엔 아기 토, 가슴부분엔 아기 침.
제가 집안일을 얼추 다 정리했을때쯤 남편이 아기를 씻겨요
씻기는동안 아기 수건, 옷, 기저귀, 입고있던 옷이랑 찼던 기저귀 정리하고 로션, 우리 부부가 잘 이불, 베개를 깔아요.
남편이 애기를 씻겨주면 남편이 욕실 정리하는동안 또 애기 닦이고 로션발라주고 옷입히고...
하루종일 말도 안통하는 아기랑 씨름하고 혼자서만 이야기하고.. 맨날 똑같은 일상생활에 특별할거라곤 애기가 성장하면서 있는일들. 오늘 배냇웃음을 지었다. 응가를 세번했다. 낮잠을 세시간이나 잤다 뭐 이런거..
그마저도 그런거라도 말하고싶어 애기 젖먹이면서 남편한테 조잘조잘 얘기하고있으면 남편도 피곤한지 제 얘기를 듣다가 잠들어요
그럼 또 혼자 침묵속에 애기 재워두고 저도 잘 준비를 해요. 어쩌다 애기가 잠을 안자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안아줍니다. 새벽에나 겨우 잠드는 날도 있고 애기랑 수유쇼파에서 같이 조는 날도 있어요
아기가 밉거나 그렇진 않아요. 지금도 한번씩 짓는 배냇웃음에 온 마음이 다 녹아요
근데 지금 상황이 그냥 힘드네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매일 마음먹어도 끝이 안보이는 터널을 아기안고 걷는 기분이 들어요
어제는 남편이 직장동료들이랑 반주 하고 들어온다고 하더라구요. 저희집은 생수를 사먹는데 그 전 날 남편한테 집에 물 다먹어간다고 말했는데 자기가 깜빡하고 안사왔어요.
애기 안고 물을 사러가기도 힘드니까 당연히 어제같은 날은 일찍 들어올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9시가 넘어도 올 생각을 안하길래 일단 혼자서 애기를 씻겼어요. 젖먹이고 애기 재울동안 연락한통도 없더라구요
안오냐고 물어보니 그제서야 차가 없어서 못온대요
어차피 담날 일찍 출근해야하니 그 근처에서 자고 바로 출근한대요
웃음이 나왔어요
전 원래 밥을 엄청 천천히 먹는 사람인데 요즘엔 5분만에 밥 한공기를 마셔요
저도 이 더운 여름에 치킨시켜놓고 맥주한잔 하고싶어요
밖에 나가서 돈벌면서 직장동료들이랑 천천히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고싶어요
남편이 원래 술을 좋아하는데 애기 태어나고는 거의 못마시는것 같아 가끔 배달음식 시킬 때 집에서 기분이라도 내라고 맥주 한두잔씩 시켜줘요
근데 그걸로 부족했나봐요ㅎㅎ
집에서 점점 아줌마가 되어가고있는 20대 후반의 내 나이가 참 처량하게 느껴지는 하루였어요
넋두리가 길어졌네요. 이 시기가 지나가면 언젠가 또 이런 날들이 그리워지겠죠? 그래도 한 번만 8시간동안 쭉 자고싶고 한 번만 마음편하게 밥한끼 먹고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