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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도 아라타, 애도하는 사람
젊은 남자였습니다. 약간 갸름한 얼굴에 앞머리는 눈을 가릴 만큼 길었고, 부드러운 눈빛은 뭔가 묻고 싶은 듯 보였습니다. 여러 번 빨아 바랜 티셔츠, 무릎에 구멍난 청바지 차림에 닳아바진 스니커즈를 신었고, 발치에는 커다란 배낭이 있었습니다.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떤 분이 돌아가셔서 그분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녀를 아십니까?"
"그렇다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주지 않겠습니까?"
"그녀는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지금 하신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고 애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왼무릎을 꿇고, 오른손을 허공에 올리고, 왼손을 땅바닥에 닿을락 말락 하게 내려 여러 곳을 지나가는 바람을 가슴께로 나르는 시늉을 한 뒤 눈을 감았습니다.
1. 마키노 고타로
"이 얼룩을 앞에 두고 배경으로 집 전체가 들어오게 찍어봐."
"뭐야, 지금 따지는 건가? 난 여기서 여섯 살짜리 아이가 죽었다는 기사를 쓸 뿐이야. 얼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상상력에 달린 문제지. 자, 어서 찍기나 해."
경찰과 폭력집단 관계자와의 연줄로 뒷정보를 캐내고, 인간의 추한 면과 허례허식을 까발리고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로 독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는 발군의 실력을 보여, 이 세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적어도 말이야, 부부 사이가 나빠 이혼 직전이라는 증언은 따와야지. 장남은 그런 부모를 화해시키려고 동생을 일부러 치었다는 인상을 주고 말이지. 좀더 큰 기사로 다뤄질 수 있게 하라는 거야, 내 말은."
사고, 살인, 자살로 사람이 죽는다.
보통 사람들은 눈썹을 찌푸릴 만한 내용을 담은 메일이 모니터를 채워나갔다. 그러나 마키노는 이런 글을 읽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 악감정을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악의와 굴욕으로 뒤범벅된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비웃어주고 싶다.
[왜 안오는 거니? 너희 아버지는 입원해 계시고....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더라.]
지금 와서 뭘 어쩌라고! 여러 가지 사정이 문제가 아니다. 그 인간이 얼마나 자기와 어머니에게 얼마나 심한 짓을 했던가!
죽을 거면 그냥 죽어버리라지. 향을 피워줄 필요조차 없다.
아버지를 탓할 처지는 못 되었다.
사 년 전 바람피우다 들켜 이혼당한 후로 아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봐요. 사카쓰키 씨, 사카쓰키 시즈토 씨."
"애도할 상대를 찾는다...? 애도한다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줄 수 없나?
"자네는 늘 이런 식으로 이웃들에게 죽은 사람에 대해 묻고 다니나?"
'뭐냐, 이녀석은, 뭐냐, 이놈은?'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세는 위선이라고 해도, 청렴한 인상의 외모 때문에 바탕은 선량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이 남자는 아기의 죽음도 똘마니의 죽음도 사고사도 자사롣 살인으로 인한 죽음도.. 똑같이 애도한다.
누군가의 죽음에 경중의 차이를 두는 것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일일 터이다.
그런데 영웅과 성인의 죽음을 악당의 죽음과 똑같이 취급하다니 용서가 안 된다.
놈의 행위는 분명 사람들은 당혹스럼게 하고 초조하게 만든다.
2. 사카쓰키 준코
새빨간 장미 프린트의 검정 원피스, 핑크색 스타킹, 굽 높은 은색 샌들. 보브 커트의 금발 가발 끝을 가볍에 올리며 매만진다.
"쉰여덟. 그리고 쉰 여덟에서 더는 나이를 먹지 않게 됐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항암제를 써봐도 효과가 없어서 앞으로는 재택 치료를 하기로 했답니다."
-지금 홋카이도에 있다면.. 간토에는 새해나 돼야 오겠네. 집에 들러주려나. 그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거미야, 시즈토에게 알려주지 않을래? 너희 엄마, 곧 세상을 떠날 거라고. 남들 죽음만 쫓아다니느라 너희 엄마는 내버려둬도 좋냐고.-
[그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아이를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조금식 자라 이제 곧 날갯짓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런건 아무도 모르게 되는 거야?]
'그러게... 시즈토가 잘 기억해주렴.'
시즈토는 무덤으로 시선을 돌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하면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을까?]
3. 나기 유키요
환생한 부처라고 불리던 사람을 죽였다.
남편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을 살해한 죄였다.
[유키요를 죽이겠다, 그 여자를 살려둘 수 없다]
"그때, 당신 손에 죽었으면 좋았을걸."
"저기요, 나를 죽여주지 않겠어요?"
남자는 이쪽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발치에 내려둔 큰 배낭 옆에 왼쪽 무릎을 꿇었다.
남편, 사쿠야의 명복을 빌고 있는 걸까?
[어떤 분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무슨 목적으로 죽은 사람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하세요?"
[목적은 딱히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는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확인해도 되나요? 정말 말한 대로 하는지?"
[예? 예, 상관없습니다.]
남자가 돌아보고는 이름을 말했다.
[조용한 사람(靜人) 이라고 씁니다.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죠. 이름보다 못한 사람입니다.]
수줍게 대답하는 그는 전혀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하지 그지없는 청년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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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사랑해준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깊이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사람입니다.
며칠전, 학교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오길래 대출한 책이었습니다.
독특한 인물하며 어찌보면 뻔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플래그를 너무 멋지게 써내려간 것 같아요. 술술 읽어나갔습니다
보통 책을 집으면 습관적으로 뒷표지를 확인하고 줄거리나 감상평을 읽는데, 나오키 상 심사평의
"삶과 죽음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삼대 난문을 정면에서 도전했다. 도스토옙스키 뺨치는 이 배짱 있는 문학적 모험에 경의를 표한다."
를 보고 처음엔 '?' ...이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6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함에 가볍게 읽기엔 살짝 거리감이 있었는데, 다 읽은 지금 전혀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
편독이 심해서 기분 전환 겸, 애초에 살짝 우울해질 기분으로 골라서 더 좋았습니다.
웬만해서는 감정이입하며 읽는편이 아닌데 마키노 고타로 편에서는 종장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ㅠㅠ 이런 입체적인 인물같으니라고
앞에 간략하게(!) 써놓은 글은, 오직 책에서만 뽑아냈으며 중심내용을 살짝 추려내어 제가 언제든지 보아도 이런 책이 이었구나.. 하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끔 하는 목적으로 앞부분을 뒤적거린 결과입니다.
어디엔가 써놔도 쉽게 잊어버려서...ㅎ 인터넷이라면 잊어버릴 염려가 없겠져
이 글은 다른 분들게 드리는 추천이기도 하며 제 자신에게 주는 추천이기도 합니다.
이제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학교에 가서 반납한 다음 주문해야겠어요 꼭 소장해서 두고두고 읽고싶네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