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무슨 책쓰니?]는 여러 이유는 몇가지의 이유를 걸러내어 글을 적고자 합니당.
아, 그런데 이것은 어어엄청나게 비전문적인 '공상가'의 머릿속을 끄집어 내어놓은 것이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 우유부단함을 들수있다.
짬뽕과 짜장면이라는 중국집 불가사의에서부터
호감과 사랑, 좋아하는 사람에게 문자라는 폭탄같은 통신수단을 이용할지의 여부,
편입과 재수,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비슷비슷하다는 현실을 직시,
저축과 재테크,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하나 현실의 부를 중시하는 생각..
등등 이분법적인 경우가 많지만,
실제의 생활들에서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들이 많은지 독자[뭐래..]분들은 숙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당.
쉬운 첫번째의 예를 설명해보자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다면 분명 답장을 받길 나는 원할테지만,
실제로 자신이 답장을 보낼만한 문자를 보내지 않았을수도 있으며,
나와 상대방의 사고구조가 다를테니 물음형 질문을 던져야할테지..
그런데 내 문자를 처묵처묵하는 경우가 생길수도 있는데,
이것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못봤다고 확정을 지어야할지,
귀찮아서 문자를 안하는 걸지,
내가 싫어서 문자를 안하는 건지,
혹시..밀당을 하고 있는건가!?
어엇! 문자가 왔는데, 이건 냉소적인 단답형 문자로 봐야하는건가,
짧고 의미있는 담백한 말을 미덕으로보는 성격으로 나에게 그저 그런 생각을 가지있는걸까?
아니면 부끄러워서 문자를 제대로 못적는..후훗....
뭐 이런 말도 안되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거죠. 그렇다고 이게 제 경험담이란건 아니구요 ^^;;
이건 우유부단함과 거리가 멀수도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유부단 : ①어물어물하기만 하고 딱 잘라 결단을 하지 못함 ②결단력이 부족한 것
으로 보아 사전적 의미로는 충분히 상통한 의미입니다. 물론 저쪽에서는 나를 좋아한다고 결론으ㄹ.....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보도록 하죠.[ㅇ? 첫번째 시각은 뭐였는데?]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 순수하고 순진하다는 것을 느끼며, 귀엽고도 이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즉 꾸밈이 없다라고 할 수 있는데, 세상에 치이고, 생활에 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나약한 영장류는 어린이의 이런 모습에 과거를 그리며 그때 그시절이 좋았지..
라고 회상을 하죠.
물론 엄청나게 나쁜 경우가 아닌 이상 어린애들을 돌보아주는 사회상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모습과 호불호를 제대로 가리며,
당당해보기도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자체로 아름다움을 지님에 우리는 동경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호불호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나?
일단 물리적 권(拳)력이, 사회적 권(權)력, 그리고 경제적 권(權)력, 정치적 권(權)력 등등과
여러가지 도덕적 개념과 현실에서의 괴리,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맛보니,
적절하게 융통성과 고지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현실의 복잡함과 세상에 만들어진 유희를 적절하게 즐기며, 나름대로의 삶에 행복을 누리려하지요.
이때 머릿속에 생성된 여러가지 지식들과 경험들은,
소위 말하는 '진심'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을 해보도록 할까요?[아니 하지마.]
저희는 중학교까지의 교과과정만 제대로 배웠다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모범답안이 나와있다는 걸 압니다. 물론 인간의 엄청난 망각의 천재라는걸 모르는건 아니지만,
되새길수는 있다는거~~그러니 이런 말들도 할 수 있는거겠죠.
이때 생긴 초자아적 개념은 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수있습니다.
물리적 권(拳)력이, 사회적 권(權)력, 그리고 경제적 권(權)력, 정치적 권(權)력과 같은
'타인'의 압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상과 사회적 도덕상은 괴리를 일으킵니다.
이런 위화감은 자아라는 소중한 작품이 탄생하는 사춘기에 자아상의 개념에다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겠죠.
이에 심한 열등감과 자책감, 그리고 왜소해지는 자신을 보며 상당한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성인군자상을,또는 성공적인 CEO를,또는 헌신적이며 누가봐도 착한 사람을,
자신과 비교시키며,
자학하고 비난하며 비하하고 심지어 쓸데없는 녀석으로 치부하기 쉽상이겠죠?
물론 이것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비교라는 녀석 덕분에 짐을 덜어내지기도 합니다만..
전혀 색다른 이유인 사고 방식의 느림이라는 것도 있을수 있습니다.
상황적 판단과 자신의 기호에 대한 최선의 선택에서 느린 사고방식으로 주위사람들을 애먹일 수도 있죠.
또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를 처음 접하게 되면,
그만큼의 충격이나 당황한 정도에 의해 우유부단해지기도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니 제외.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진심을 생각과 느낌의 상호 작용으로 애매모호해지며
어릴때는 그냥 행동하면 되는 것이,
커서는 깊은 사색을 통해서야만 알아낼 수 있는 고난도 수학 문제처럼 변한다고 생각되네여.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런 상황에서 헤쳐나올 수 있을까요?
물론 제가 쓴글의 근거들을 반대로 이용해보다는 간단한 방법도 있지만,
실제 저것은 실존하는 이유들로 훨씬 복잡하게 얽히어 있고,
우리가 본능적인 호불호로만 사회적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호불호들이 교류되며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더 나은 가치관과 자아상을
그리고 사회를 세계를 만들수 있기 때문에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원본인가 카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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