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퍼다놨길래, 농담으로 적은 글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기사로 걸렸슴.
황교수 지지자만을 구실로 탓하는 것같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국민 몽땅 모독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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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826.html 한겨레 세상읽기
애국편집증
2006년 새해는 월드컵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밝았다. 좋은 집을 사서 이사 간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경사라도 있는 것처럼 새해부터 은근히 들뜨는 게 나뿐은 아닌 것 같다.
2002년의 달콤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해에 나는 두 차례 경기장에 갔고 두 번씩이나 심야에 도심으로 자축 카퍼레이드를 했다. 2002년 이후의 축구붐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네축구 한번 해본 적 없는 주제에 축구팬이 되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애국축구’정신까지 있어서 프리미어리그에 나간 박지성이 잘 뛰는 게 자랑스럽고 맨유 경기 다음날은 박지성 평점이 7점인지 8점인지 궁금해 ‘토탈사커’ 사이트에 들어간다.
2002월드컵 이후 한국인들이 이전보다 밝고 씩씩해진 것 같다. 다이애나가 죽은 뒤 얼마간 영국에 우울증이 줄었다고 하는데, 말하자면 슬픔과 눈물의 카타르시스 효과다. 2002월드컵 역시 한국인들에게 집단 세러피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사람들 내면에 잠복해 있는 적대성, 공격성을 배출하는 출구로서 스포츠는 안전하고도 건전한 최상의 선택이다.
또한 계급이나 지역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그 모든 사람들이 드레스코드를 ‘레드’로 통일하고는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팀스피릿 훈련을 했다. 게다가 16강, 8강의 벽을 파죽지세로 격파하고 4강까지 갔으니 집단 카타르시스 효과는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나라를 하나의 인격체라고 볼 때, 2002년 이후 한국이 기가 세졌다는 느낌이다. 자신감도 생기고 자부심도 커졌다. 외환위기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대중은 국가도산 위기의 충격이 컸던 만큼 빠른 속도로 신흥 애국주의 모드로 전환했고, 2002월드컵은 여기에 촉진제를 놓았다.
황우석에 대해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최종결과를 발표했다. 그 뒤에도 건재하는, 오히려 점점 결연해지는 황우석 추종자 집단을 보면서 나는 2002년으로 생각이 거슬러 올라간다.
황우석 지지카페에 몰려들고 광화문에서 촛불시위 하는 사람들은 뭘까. 흔히 사이비교주나 다단계판매에 넘어가는 사람들처럼, 자아가 허약하고 자기존중감이 적으면 강력한 권위 아래 투항하고 우상숭배자가 되기 쉽다. 또는 현실에서의 불안감과 좌절감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판타지에 빠져든다.
어느 쪽이건 이들 황우석 지지자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스스로를 철천지 애국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카페에 들어가 보면 이들의 태도는 워낙 의기롭고 결연해서, 고려가 몽골 손아귀에 들어간 뒤 제주도에서 최후의 일전을 치른 삼별초의 결사를 연상케 한다.
“힘을 최대한 모아야 광화문 대로를 꽉 채울 수 있습니다. 양초와 종이컵은 개인별로 꼭 지참하시고 각자 친구 한두명씩 꼭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자녀분들과 함께 나오셔서 역사의 현장에 동참케 하십시오.” 이들은 이순신 동상 앞을 시위장소로 선포했는데, 이쯤 되면 이 애국은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편집증 내지 강박이다.
여기엔 논문뿐 아니라 대중심리의 조작에도 능한 황우석씨의 역할이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는 조국이 있다”거나, “항상 눌려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천운이 내려 너희도 기를 펴고 살아보라고…”운운하는 어법. 그리고 세계적 권위의 <사이언스>에 논문이 실렸다는 것, 유럽과 미국의 유수 언론들이 황우석을 알아준다는 것, 그런 후광효과 역시 애국지상주의자들 입맛에 딱이었다.
어쨌든 시즌은 돌아왔다. 여름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워밍업이 시작됐다. 주최국으로서 맞았던 월드컵과는 사회적 집중의 강도가 크게 다를 테지만, 좌우지간 즐거운 이벤트임엔 틀림없다. 오락은 그 자체로 선하다. 신나는 월드컵의 해인데, 애국편집증이 더 깊어질까 걱정하다니, 재미없다.
그런 걱정을 현실화 시키는 사회현상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황우석씨의 발언중에 "미국에 태극기를 꽂고 돌아왔다" 는 그런 애국편집증적 발언이 있었는데...이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한 한국선수들이 일본을 연이어 격파한 기념으로 야구의 본고장 미국의 야구경기장에 승리의 기념으로 태극기 깃발을 꽂는 퍼포먼스를 자행한 것이다.
야구 종주국 미국의 야구장에서 미국과 일본을 연달아 격파한 기념으로 이러한 태극기 꽂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스포츠를 스포츠라는 경기로 생각치 않고...애국주의라는 보자기를 씌워서 결국 전세계에 한국의 애국편집증과 파시즘적 성향을 대대적으로 알린 것이다. 이는 국치가 아닐수 없다.
자칭 진보주의자로서 나는 애국편집증이 더 깊어질까 걱정할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말 재미없다.
조순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