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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만 있는 글인데
너무 맘에 안들어서 폐기하고 새로 써야겠네요. 그냥 아까워서 올려봄.
-01-
아침 라디오는 좋다.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가는 자리가 있는 회색 라디오는 오늘도 고장 난 한쪽 스피커를 울리며 소리치고 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을 잡기 위해 안테나를 움직인다. 아침마다 늘 반복하는 행동에 별 다른 생각은 없다.
[ 치치치지지직간의 진보와 가능성을 내제하고치이이익것은 바로 죄악이고, 우리의 규범을 모두 버려가는 사람만이 스스로의 가능성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치지이이이익인간이라는 종족의 최상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되는 칙지치치이이익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규범을 없애자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하지만 인간의 가능성을 막아두는 규범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실험을 고안한다. 모든 죄악을 짊어지는 인간을 만들 실험 ]
라디오에서는 어려운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인기 있는 과학 서적이었던가. 잡음 때문에 이따금 알아듣기 힘든 문장이 나온다. 세상은 확실히 발전했다. 저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할 수 있을 정도이니까. 그런데 저런 것도 과학으로 가능한지 나는 문득 궁금했다.
나는 흰 병원으로 향한다. 겨울이지만 햇빛을 받는 병원은 왠지 따스해 보였다. 비행은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추락을 동반한다. 내 눈 앞의 의사는 그런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혀에서 있을 리 없는 쓴맛을 느낀다. 병원에서는 의사를 신뢰해야 한다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건만, 4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되지 않으면 대체 어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겠는가. 더불어, 이 병원은 정신병원이다. 정신병에 대한 의식이 많이 완화된 시대라지만, 정신병원 다닌다고 알려지면 좋을 게 없는 건 여전하다. 아직도 정신병이라고 하면 미친놈이라고 인식하는 게 세상이니까. 진정으로 환상을 보는 이 병을 고치고 싶은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나이다. 진짜 이대로 가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은 나이다. 누구도 아닌 내가 제일 이 증상을 고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의사는 내가 의지가 나약하다는 듯이 말한다. 나는 벌컥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참는다. 화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좀 더 환자분께서 의지를 가지시고..."
의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를 남발하던 의사는 치료 한 달 즈음부터 똑같이 반복하는 소리를 다시금 지껄인다. 누가 봐도 진심이 담기지 않은 대화에 나는 청각을 차단하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입은 여닫을 수 있으면서 왜 귀는 여닫을 수 없는 걸까.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듣기 싫은 소리를 흘려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던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기 시작한 건 4달 전의 이야기이다. 그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런 꿈은 꾼다. 문제는 꿈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간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높은 건물 옥상 너머에서 부유하는 사람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귀신인 줄 알았다. 처음에는 하나 둘 정도였지만, 날이 갈수록 수는 늘어나더니 결국 여럿이 떠다니고 있었다.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건물마다, 시간마다, 날짜마다 달랐다. 하지만 분명 그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위치에 한정되지 않고, 내가 보는 곳에 따라왔다. 그래, 여기까지는 다른 이유로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피곤할 수도 있고, 헛것이 보이는 현상일수도 있으니까. 문제는 잠시 눈을 감고 다른 생각에 잠기면 내가 '하늘에 떠 있는' 경험을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가 저 하늘 높은 곳에서 부유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 된 기분이었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어서 나도 당황스러웠다. 그게 좀 더 현실감 있는 시선이었다면 나는 그나마 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라고 여겼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높은 풍경은 지상 위에서 생각에 잠겨 있을 나의 본모습과의 괴리를 일으켰다. 진정 이것을 보는 내가, 내가 맞는지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정신과에 다시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일을 하면서 병원을 다니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세 번이지만, 퇴근하고 잠깐 들러서 경과를 확인하고 오늘은 몇 번이나 그것을 겪었는지 기록하는 게 다였다. 정신과에서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 많이 방문하기를 원해서 그런 듯하다.
나는 병원을 나선다. 지나치게 흰 건물이 시야를 뒤덮는다. 이 겨울철에는 하얀 건물이 적잖이 춥겠구나 싶었다. 나는 그렇게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며 회색의 거리를 걷는다. 찬란한 태양 아래서 그 빛마저도 흩뿌리는 회색의 도시로 향한다.
꿈을 꾸고 있다. 일이 끝나고 생긴 술자리에서 나는 잠자리까지 어떻게 왔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좁은 방 한 켠의 침대에 누워 창가를 본다. 달은 흰색임에도 창가로 들어오는 빛은 푸르다. 빛 사이로 차가운 향기가 들린다. 문득 푸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창가 너머로 새가 날아간다. 그것을 보는 나에겐 거리감이 없었다. 날아가는 방향은 분명 새가 멀어지는 방향이었지만, 나의 눈은 새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 부조화 사이에서 나는 잠깐 눈을 감는다. 그 직후, 나는 날고 있었다. 새의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늘 느끼던 빌딩에서 부유하는 나인가. 하늘을 나는 기분은 어지러워서, 나의 정신은 급작스레 아득해진다. 밤의 사이에서, 나는 정신을 차린다.
-02-
잠은 일종의 안식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은 수면을 취하고 그것은 개인에게는 하나의 불가침 공간이 된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인간은 홀로일수 없으나, 수면 중에는 철저히 혼자일 수 있다. 최근 과학에서는 수면의 세계를 알고자 하나,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다. 수면이란 무엇인가. 수면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가끔 이상한 생각을 떠올린다. 허무맹랑하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잠이라는 것은 결코 혼자일 수 없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혼자만의 시간이라고 나는 가끔 상상한다. 여기서는 더 재밌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다. 너의 수면은 온전히 너의 것인가. 늘 사람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빛의 시간 동안, 우리는 모든 기억을 뇌에 담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들의 필요성과는 무관하게 일단 너의 뇌는 그것들을 인식한다. 수면 동안의 상황을 우리는 인지하는가. 인지하던가. 인지하고자 노력조차 할 수 있던가. 수면이란 이렇게 오묘하고 특이한 행동이다. 온전히 혼자만이 가질 수 있으면서도, 정작 온전히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불완전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수면을 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가설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수면이 휴식이라는 가설이다. 휴식은 다른 방식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1/3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허비한다. 이런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을 생명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 어떤 기계 기관도 생물의 에너지 생성 효율은 뛰어넘지 못한다. 모든 면에서 생물의 효율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득을 얻어 환경에 적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효율적인 휴식 방식인 수면을 받아들인다.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면이란 무엇인가. 필수불가결한 휴식을 방해하는 우리의 무의식이 있는가. 온전히 홀로일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쉼터를 인간 스스로가 부정하려고 하기도 하던가. 나이가 늘어가면서 수면량이 줄어드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인간은 고독하지만 결코 혼자일수는 없다는 역설을 우리에게 알리는 것일까.
- 03 -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나는 이 비가 영원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도 언젠간 천천히 멸망하게 되지 않을까는 바보같은 생각도 함께 했다. 문득 스피노자의 말이 떠오른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면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스피노자는 몰라도 이 문구만을 아는 수많은 사람 덕분에, 지구는 멸망 직전에 사과나무로 넘쳐나지 않을까 싶다. 혹시 또 모른다. 이렇게 오랜 비가 지나고, 사람마저 모두 스러진 그 젖은 대지 위에 사과 나무 싹이 하나 틔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스피노자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꽃을 하나 피워야겠다. 스피노자가 세상의 희망을 위한 사과나무를 심는다면, 나는 당신을 위한 꽃 하나를 피워두겠다. 세상의 끝에서 당신만을 위한 한 가지는 남겨둬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비가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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