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중국에 2개의 섬을 반환했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의 섬 녹둔도에 관한 기사를 찾던 중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고, 어느것이 진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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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성산 백두산의 위치와 두만강 하구 녹둔도의 위치도 일제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눈길을 끌었다. 아래는‘간도되찾기운동본부’(www.gando.or.kr)의 자료실에 게시되어 있는 내용에서 일부 발췌했다.
(1)“잃어버린 북방영토 한반도 3배 크기… 백두산 위치도 조작됐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나라 역사왜곡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백두산(白頭山)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닌 핑딩산(平頂山 1,429m)이며 우리 선조가 잃어버린 북방영토의 넓이가 69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방영토란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이며 항일독립운동의 본거지였으나, 과거 청나라와 일제가 체결한 간도협약에 의해 빼앗긴 연해주와 간도지역으로서 현재는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진짜 백두산은 핑딩산
현재의 백두산은 평안도 묘향산으로 추정되며, 실제 백두산은 중국 하얼빈 동북쪽 만주평야에 있는 핑딩산 일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기록의 근거로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서문과 만주원류고 지리지, 성종실록 등의 백두산 관련 기록을 들었다.
▲ 압록강은 현 요하, 두만강은 현 아무르강, 백두산은 현 핑딩산, 녹둔도는 현 사할린이다
대동여지도 서문에서 백두산은 “큰 거친들 가운데 산이 있고 정상에 위치한 큰 못의 둘레가 80리, 높이는 200리, 가로 길이가 1,000리로 앞쪽이 무너졌다”고 기록돼 있다.
또 청나라 한림원에서 발간한 만주원류고 지리지 장백산편에는“거친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라는 설명이 있고, 성종실록에는“우리나라는 요수의 동쪽 장백산의 남쪽에 있어서…지역의 넓이가 만리나 된다”고 서술되어 있다.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분석한 결과 핑딩산은 만주벌판 한 가운데 위치해 있고 산 앞쪽 부분에 무너진 흔적이 있는데다 정상에는 둘레 80리 정도의 커다란 못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백두산은 들녘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지역을 찾을 수 없다. 천지 둘레가 20리에도 못 미쳐 고서의 백두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백두산 왜 바뀌었나
일제 식민지시대 일제가 반도사관을 조작하기 위해 우리 고대사를 왜곡했고 대륙의 조선을 한반도로 옮겨 놨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일제에 의해 1910년 1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고문서와 고지도 등 50여종 20만권이 서울 남산에서 소각됐고, 대동여지도 역시 1930년 조선총독부의 검열도장을 찍어 공개된 점으로 미뤄볼 때 조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용끝)
▲ 위성으로 본 현 백두산. 황선은 국경선으로 백두산이 중국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앞으로는 북한 직항로로도 갈 수 없다(?) 전 세계(특히 미국)은 이미 중국의 동북공정대로 교과서를 만들었고, 이런 위성사진에서도 중국 편을 들고 있다.
위의 내용대로라면 압록강은 옛 사서 기록에 요하가 압록수로 불리었으니 요하를 의미하는 것이며, 두만강은 현 송화강과 연결되는 아무르강을 이르는 것이며,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는 현 사할린 섬을 이르는 것이다.
(2) 두만강은 아무르강, 녹둔도는 사할린?
연해주는 1860년 러시아와 청나라 사이에 북경조약으로 인해 러시아로 넘어간 우리 땅이다. 당시 조선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항의하나 묵살 당한다. 역설적인 증거로는 연해주가 당시 조선의 땅이 아니었다면 조선 정부가 나중에 항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백두산이 위와 같이 조작된 것이라면 분명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되는 강이니 아무르강(흑룡강)이 필경 두만강일 것이며 연해주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 인터넷상에 게시되어 있는 출처 미상의 아래 글은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으로 여겨진다.
두만강 = 아무르강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었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요하)이 흐르고,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흘러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 바로 두만강(아무르강)을 말하는 것이다. 두만강은 만주강을 말하며 만주 일대를 가득 채우는 강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흑룡강이라는 별칭이 붙는 것은 동이족의 상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인 것이다.
이순신이 여진족과 싸운 두만강 하류의 녹둔도는 어디인가!
녹둔도는‘불멸의 이순신’드라마에서 이순신이 여진족의 습격을 막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녹둔도를 사수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유명해진 지명이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1587년(선조 20) 여진족의 습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해, 당시 책임자였던 조산만호(造山萬戶) 이순신(李舜臣)이 그 책임을 지고 해임된 바 있다.
두만강이 현 두만강이 아니고 아무르강이라면 두만강 하류에 있는 녹둔도도 아무르 강 하류로 가야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보면 “여기에 공주를 거쳐 동류해 25리에 이르면 사차마도에 도달하고, 여기서 강물이 나누어져 5리쯤에서 바다로 들어간다 라고 되어 있다. 세조 원년(1455년) 8월에는 이전까지 사차침도, 사차마도라 하던 것이 녹둔도 또는 녹도로 명명된다.”
현 두만강 하류에 삼각주로 된 지명이 녹둔도라고 한다. 두만강 하구에 있는 둘레가 8키로인 타원형의 자그마한 땅이다. 직사각형으로 환산하면 가로 세로 2km에 해당한다. 과연 그곳이 녹둔도인가! 얼마가 그곳이 중요하기에 여진족이 목숨을 걸고 침범하였으며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 안에 성을 쌓고 목책을 설치했으며, 그 작은 섬 때문에 조산만호라는 벼슬을 파직했단 말인가!
▲ 위성으로 본 두만강 하류. 황선은 현 국경선으로 북한쪽으로 붙어있는 섬도 러시아의 영토로 되어 있다. 현재 녹둔도는 육지와 붙어 더이상 섬이 아니다. 이런 곳이 녹둔도이었을까? 여진족이 여기까지 뭐하러 왔을까?
아무르강을 현 두만강으로 옮기다 보니 아무르 강 하구에 있는 사할린 섬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이런 코미디를 연출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로 우기는 식민사학이나 그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일반인이나 다 마찬가지다. 녹둔도는 현 두만강 하류의 작은 섬이 아니라 아무르 강 하류의 사할린 섬이다.
현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는 역사적 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절대 녹둔도가 될 수 없다.
여진족은 후에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며 나중에 청나라로 발전하는 강력한 유목집단이다. 그런 민족이 아주 작은 척박한 한반도 함경도를 가지려고 두만강을 노리겠는가! 만주일대는 넓은 평야로 한반도 보다 몇 배 넓은 농경지와 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주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지 절대로 한반도로 넘지 않으며 넘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드넓은 화북평야와 송화강과 아무르강 그리고 흑룡강의 농경지와 목축지를 놔두고 한반도로 가서 그것도 아주 작은 섬 녹둔도를 노린단 말인가!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여기서 녹둔도가 두만강 내에 섬이라면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하고 그리고 농사를 지을 땅 면적이 나오는가! 그것도 직경 2키로 안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사할린 섬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녹둔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역대 왕들은 자주 언급을 한다.
“세조는 함길도 도절제사인 양정과 도사 강효문에게 조산구자(造山口子) 녹둔도 농민이 들에서 일할 때 야인들이 배를 타고 침입하여 약탈할 것이 우려되므로 진장(鎭將)과 만호들에게 엄중히 방비하라는 밀유(密諭)를 내리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중종 9년(1514년)에는 봄철 농사를 지을 때면 조산보의 군민이 녹둔도로 들어감으로 본보가 빌 정도라고 하고 있다.”라고 되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할린이 왜 녹둔도(鹿屯島)인가!
녹둔도는 한글로 풀어보면 <사슴 + 언덕 + 섬>이다. 과연 사할린이 사슴언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사할린 남서안의 홀름스크라는 항구도시는 인구가 약 5만 2,000명이다. 러시아어로 홀름이 언덕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홀름시 뒤에는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홀름->할림->할린 이니 같은 음운 계열이다.
그리고 스크는 섬을 의미하니 홀름(할림->할린-언덕)+스크(섴->섬-도)이니 언덕섬(둔도-屯島)가 된다. 그러므로 사할린의 할린은 언덕인 것이다. 그렇다면 샤(사슴)+할린(언덕)이 된다면 샤가 사슴이라는 말인가!
샤할린은 영어로 Sakhalin(Sak+hill+lin)으로 표현되며 사슴이나 양 소고기를 뜻하는 영문은 다음과 같다.sheep(숫양) Stag(숫사슴)Caribou(순록)Steak(쇠고기)로 발음된다. 일본어로 보면 鹿しか(시카)로 발음된다. 즉 한글은 사슴이며 일본은 시카이며 영어는 샤가 공통으로 발음된다. 그러므로 샤는 사슴을 말한다. 샤할린은 사슴언덕이 되며 완벽한 녹둔이 된다.
그리고 사할린은 목축으로 소와 사슴을 기르고 있기 때문에 사슴섬으로 부른 것이다. 녹둔도라는 이름을 지을 때에는 지역의 특성을 보고 지은 것인데 현 두만강 녹둔도는 전혀 사슴과 언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순신 장군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녹둔도는 사할린 섬이다. 이순신의 젊은 시절 숨결이 묻어 있으며 우리 조상이 개척한 땅이다. 지금 사할린은 유전지대로 탈바꿈되어 황금의 땅이 되었다. 특히 사할린의 북쪽은 천연가스가 풍부하며, 1999년 7월부터는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러시아의 보고로 통하는 지역이다.
사할린은 육지와 8키로 정도로 떨어져 있으며 겨울철에는 바다가 얼어 걸어서 사할린까지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여진족이 겨울철에는 말을 타고 섬에 침공이 가능하며 평상시에는 배로 침공이 가능하다. 사할린과 연결된 콤소모몰스크와 하바로프스키가 6진 중에 하나인 경흥인 것이다. 그 곳에 조산만호 이순신 장군의 근무지가 존재한다. (인용 끝)
▲ 위성으로 본 잃어버린 북방영토. 왼쪽은 산해관 이동으로 부터 오른쪽은 사할린까지로 현 요하와 아무르강 이남이다.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한 사문난적(斯文亂賊)과 일제시대의 반도사관으로 왜곡되어진 우리 역사는 대륙에서 전부 한반도로 이사오게 된다.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는 자취를 감추게 되며, 대륙의 동부를 지배했던 백제/신라/고려의 영역은 한반도의 가두리 양식장으로 이전하게 되며, 고구려/발해의 영역 역시 훨씬 동쪽으로 물러나 많이 축소되어 진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고려/조선의 국경선이 한반도 안으로만 있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발해를 이어 고려는 대륙과 만주를, 조선은 만주를 통치하고 경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조선의 만주(간도)를 중국에 넘기고 일제는 반대급부로 경제적인 이득을 챙기기 위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은 것인데,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제3자가 맺은 간도협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이기 때문에 간도 땅은 원래 주인인 한국에게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한다.
새로운 정부는 간도 되찾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시효 만기 전에 추인부터 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지금 당장은 간도 되찾기가 힘들다 하더라도 나중에 후손들이라도 나서서 되찾을 것이 아니겠는가? 당장 중국과 외교적인 마찰과 그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 때문에 추인을 포기하려는 것은 후손들에게 엄청난 큰 죄를 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plu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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