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은 조선 동아 등이 친일을 했다고합니다. 뭐 결론적으로 그런 발언을 한것까진 맞습니다. 근데 그들이 하고싶어서한 적극적 친일이아닙니다. 지금부터 일제시대때 언론사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언론사를 분석한 사람들은 두가지의견으로 나누어 시기를 구분합니다.
1. 1910-1919: 친일지(매일신보,경성신보)가 득세하던때
1920-1931:민간지의 재생과 항일기<'혁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저항이 드러남>
1931-1945: 일본의 강요기.
2. 1910-1920: 무단통치기
1920-1930:민족지시대
1930-1936:민간지시대
1936-1945: 친일어용지시대
첫번째는 한국외대 언론학부 한국언론사 정직선 명예교수의 주장이며
두번째는 1974년 동아일보 광고 해약사태가 있었을적 사퇴하고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청암 송건호의 주장입니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 정리해보자면 이렇게 정리가 가능합니다.
1910-1919 : 민족지 없던 시대
1919-1940 민족지의 출현-굴절시대
1940-1945: 민족지의 소멸시대
또한, 이때 당시 민영신문에 대한 평가는 3가지로 나뉠수가있습니다.
1. 일제하의 두 신문을 문자 그대로 민족운동의 표상으로(민족지로 인정하는 시각)
ex) 임근수,이해창,최준
2. 두 신문을 친일적 지주 또는 매판적 자본가가 발행한 친일 신문으로 규정하는 견해 ex) 최민지: 일제의 동맹세력이자 충견으로 표현 -> 특정내용만을 강조(예: 1932년 어느 신무의 1면 아 천황폐하!)
3. 언론이 처한상황 때문에 한편으로 타협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이었던 양면성을 고려하는 시각
ex) 김규환, 김현대, 배진한
1번은 보수 우파들이 주장하는 견해 2번은 사회주의적인 좌파들이 3번은 진보적인 우파들이 주장하는 평가이다.
좌파들이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단순히 일부만으로 전체를 매도하는것은 2번의 시각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이라고 할수있다. 그러나 언론역사를 전공한 교수들은 대부분 1번과 3번을 선택했음을 알수있다. 실제로 필자가 언론역사와 관련된 책을 찾아본결과 한겨레신문 기자들이 쓴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동아,조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어쩔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외대 출판부에서 발행한 언론이데올로기 들여다보기에 의하면 조선일보의 방응모와 동아일보는 애국계몽운동을 계승했다고 말하고 있다. 애국계몽운동은 일제에 대한 통치를 인정하는 한계가 있었기에 후반기에 친일을 할수 밖에없다고 말한다. 자진해서 친일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계초(방응모)는 고당(조만식)선생이 " 조선일보를 그대가 인수하여 반석 위에 올려주게" 라는 부탁으로 인수한사람으로써 오직 신문사업의 기틀을 다잡고 1등신문을 위해서 나아갔기에 저항하는 논조가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1924-1931년까지의 혁신조선일보 때와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중앙일보는 의병운동을 계승한 진보적 우파와 좌파들이기에 끝까지 저항했던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만약 이들 언론사가 적극적 친일이였다면 민족주의자였던 한용운이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할수있었던 상황은 이해가 불가능한 것이고 그런고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족지라고 볼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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