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9세남아를 가장한 비글군을 키우는 마블리 닮은 애엄마입니다.
비글군은 너무나도 많은 감각 정보를 받아들여서 밖으로 표현하는게 조금 어려운 자폐스펙트럼입니다. 요즘은 표현도 말도 꽤나 잘하고 있습니다.
어제 점심먹고나서 커휘를 한잔할까~ 하는 찰나에 돌봄 선생님께 전화가 옵니다.
어머니~ 비글군이 우는데 지금 오셔야 할것 같아요~
네.. 제가 연봉 빠방하고 노후가 보장된 신의 직장을 포기하고 학교로 이직한 이유가 이겁니다. 시간이 좀더 자유롭거든요. 언제든 비글군의 케어가 가능하니까요. 수업이나 논문지도만 걸리지 않으면 어제처럼 케어할수가 있죠.
비글군은 평소엔 잘 지내다가 극심한 스트레스가 생길경우엔 거의 화난 비글 수준이 됩니다. 어제도 그 생각을 하고 허겁지겁 달려갔죠.
갔더니 비글군 아니나 다를까 구석에서 울고 있더군요. 근데 소리도 안지르고 물건도 안던지고 그냥 울기만 하더라구요.
평소랑 좀 달라서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비글군~ 엄마야. 엄마 왔으니까 안심해요~
비글군 고개를 들더니 나라잃은 표정으로 저한테 안겨서 웁니다. 꺼이꺼이..
친구들이 쪼로록 달려와서 한마디씩 일러주네요.
비글이가요. ㅇㅇ이한테요. ㅇㅇ이가 마이쮸를 가져왔는데요. 비글이가 울었는데요. 아냐! 울기전에 ㅇㅇ이가 마이쮸 안줬어. 아냐 한개줬다고. ㅇㅇ이는 비글군이 좋대요. 비글군이 도와줬어요.
?? 어? 누가 정리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말하면 아줌마는 못알아들어버렷!
ㅇㅇ이라는 여자애가 오더니 명쾌하게 설명을 합니다.
금요일에 제가 로봇키트 못하고 있었는데 비글군이 도와줘서 다 만들었어요.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비글군 좋아를 해줬어요. 오늘 마이쮸를 가지고 왔는데. 원래는 가져오면 안되는데 가져왔어요. 친구들하고 나눠먹을려고 한개씩 줬는데 비글군하고 저는 못 먹었는데 한개만 남았어요. 그래서 반만 깨물어 먹고 비글군한테 나머지 반개를 줬어요. 근데 비글군이 울었어요.
음.. 대충 알아듣겠군..
쉬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선생님도 잘 몰라서 어쩔줄 몰라하고 사랑반 애들이라 말도 알아듣기 힘들고 대략 총체적 난국!
일단 비글군 데리고 조용한곳에 가서 찬찬히 물어봤습니다.
비글군 마이쮸가 반개라서 실망한거야?
아니..
그럼 슬펐어? 어떤게 슬펐을까?
ㅇㅇ이가 나 보고 좋다고 했는데 오늘은 ㅁㅁ이한테 좋다고 했어 근데 마이쮸는 반개줬어. 나는 배고픈데..
음..어... 그게 슬펐구나.
아니..
?? 뭐지? 이녀석?
ㅇㅇ이는 어제 (과거를 어제로 종종 표현함)나 좋다고 하고 오늘은 ㅁㅁ이가 좋대. 그럼 ㅇㅇ이는 이제 나 안좋아하는거야?
어.. 그런게 아니라 음.. 비글군 엄마가 좋지?
응. 많이 많이.
그럼 아빠는?
아빠도 많이 좋아.
비글군 그럼 엄마는 안 좋아하는거야?
아니.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 그럼 ㅇㅇ이도 나도 좋고 ㅁㅁ이도 좋은걸까?
아마도 그럴것 같은데?
아~ 나는 시련당한줄 알고 슬퍼서 울었어.
비글군 실연이야. 그리고 실연은 서로 사랑하다가 이제 너 싫어! 하는게 실연이라는거야. ㅇㅇ이는 비글군도 좋고 ㅁㅁ이도 좋다는 거잖아? 아무도 실연당하지 않은거야.OK?
응 이제 안슬퍼.
다시 돌봄으로 가서 씩씩하게 놀았어요. 하..참.. 쬐그만게 무슨 실연을 알아버린거냐..
엄마도 못겪어본 실연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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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스펙트럼 특성상 비글군은 말을 표면적인 뜻으로만 해석해요. 즉 ㅇㅇ이가 한 말은
비글군이 (이걸 도와줘서 고마운 마음이고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에서 비글군은 참)좋아. 라는 말을 비글군이 좋아! 라고 인식하는거죠.
앞으로 나갈길이 참 멀게만 느껴지는 하루였지만 하나씩 극복하다보면 언젠가는 비글군도 좋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