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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06158
    작성자 : 솔미르
    추천 : 44
    조회수 : 2029
    IP : 122.252.***.72
    댓글 : 4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07/07 17:28:18
    원글작성시간 : 2008/07/07 12: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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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력·무책임·무감동…日 골칫덩이 ‘하류세대’


    무기력·무책임·무감동…日 골칫덩이 ‘하류세대’ 


    우리가 일본 사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 대개 얼마 후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사회병리적인 현상은 거의 예외 없이 우리 사회로 건너왔다. 우리가 ‘왕따’라고 부르는 이지메(집단 괴롭힘), 학급붕괴, 원조교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하류사회’라는 말이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류사회’ ‘하류지향’ ‘90%가 하류로 전락한다’ ‘총하류사회’ 같은 제목의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하류’라는 말을 유행시킨 주인공은 미우라 아쓰시라는 마케팅 애널리스트다. 그가 2005년에 내놓은 ‘하류사회’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하류’라는 말이 일종의 유행어가 됐다.

    필자는 ‘하류사회’가 발간되던 시점에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다. ‘하류사회’는 발간 초기부터 대형 서점들의 주요 매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출판사에서도,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발간된 ‘하류사회’는 문고판 판형을 세로로 2cm 늘인 변형 문고판이다. 통상 이런 판형은 전문적인 내용의 책을 3000부 정도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출간할 때 사용한다. 여백을 많이 주지 않고 빽빽하게 편집한다. 원고량은 보통 판형의 책에 못지않지만, 종이를 적게 사용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류사회’의 판매가는 780엔이었다. 통상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목표로 만드는 책은 보통의 판형을 쓰고 가격은 1400~1500엔으로 책정한다.

    역발상적인 마케팅이다. 통상적인 책 절반 가격의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이 ‘하류사회’라는 제목과 맞물려 강력한 임팩트를 줬다. 앞으로는 ‘하류사회’가 도래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책도 반값 정도가 아니면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자신이 ‘하류’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고도로 계산된 마케팅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하류사회’는 사회현상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뒤를 이어 ‘하류’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간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하류’ 관련 책은 국내에 세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하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 클 터다.

    ‘하류사회’에는 ‘새로운 계층집단의 출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일본 전체가 ‘하류사회’로 달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36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왜 그들이 문제가 되는지 깊숙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도 혹시 그런 것은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특히 386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자기 자식들이 ‘하류’라는 흐름에 휩쓸려가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중류층 붕괴와 하류 등장
     
    일본의 ‘하류’ 문화는 유행처럼 36세 이하 젊은이를 파고든다. 그들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조직에 속하는 것을 증오한다.  

    1980년대 이전의 일본 사회는 ‘결과평등사회’라고 불렸다. 학력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소득 수준이 결과적으로는 비슷하다는 말이다. 대학입시나 직장 내의 출세 경쟁이 격렬하기는 하지만, 좋은 학벌과 직책이라는 일종의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지 그것이 소득 수준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1990년대 초반에 시작된 장기 불황,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기 침체기를 겪으면서 일본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 경제가 ‘케인스 식’에서 ‘하이에크 식’으로 바뀌었다고 요약하기도 한다. 국민의 생활을 정부가 책임지고 ‘결과평등’을 지향하는 시대가 끝나고, 각 개인의 역량이 각자의 소득 수준을 결정하는 사회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소득 격차가 확산되면서 ‘중류층 붕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중산층’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중류층’이나 ‘미들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중류층’이 플로(flow·소득, 수입) 기준의 개념이라면 ‘중산층’은 스톡(stock·자산, 재산) 기준의 개념이다.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가 한창일 때 일본인의 중류의식은 90%에 달했다. 그래서 전 국민의 대부분이 중류층이라는 ‘1억 총 중류층’이라는 말도 나왔다.

    일본은 그 어느 사회보다 샐러리맨의 비중이 높다. 패전(敗戰) 직후에 태어나 이제 은퇴 시기를 맞은 50대 이상 세대조차 전체 취업자의 81%가 샐러리맨이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의 기업 사회에 종신고용과 연공서열형 임금구조가 정착됐다. 한번 취직하면 한 직장에서 평생을 일할 수 있고, 나이가 들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 속에서 경제활동을 해 왔다. ‘중산층’보다 ‘중류층’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어온 것은 이 때문이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형 임금으로 거의 평생을 보호받는 한, 근로소득이 얼마인지가 문제일 뿐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경제 구조가 ‘하이에크 식’으로 바뀌면서 구조조정이 일반화됐다. 절대로 도산할 리 없다던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도산하는 일도 발생했다. 연봉제도 도입되고, 파견사원이나 계약직 사원 등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샐러리맨이 나날이 늘고 있다. 소득원이 불안정해지면서 ‘중류층 붕괴론’이 등장했다.

    하지만 ‘하류사회’에서 말하는 ‘하류’는 소득 수준에 따른 통상의 상류, 중류, 하류의 분류와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 미우라 아쓰시가 말하는 ‘하류’는 단지 현재의 소득 수준이 낮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하류’란 커뮤니케이션 능력, 생활능력, 일할 의욕, 배우는 의욕, 소비의욕이 낮은 것, 즉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이 낮은 것을 말한다. ‘하류’는 평생 소득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며, 결혼도 못하고 미혼인 채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하루하루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단지 그것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미우라 아쓰시는 “‘하층’이란 아무리 일을 해도 풍요롭게 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하류’란 중류가 되겠다는 의욕이 없는 사람”이라는 독특한 논리를 펼쳤다. 현재의 직업이나 수입 정도 등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활을 향상시키겠다는 의지가 없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 ‘하류사회’는 ‘향상심’이 없는 것이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36세 이하의 세대가 의욕을 상실한 세대”라는 것. 이런 식의 문제의식은 그 뒤를 잇는 책 ‘하류’에서도 제기된다. ‘90%가 하류로 전락한다’는 말도 젊은 세대의 90%가 그렇다는 말이다. ‘하류지향’은 아예 젊은이들의 사고가 ‘하류로 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하류로 떨어뜨리는 사고방식을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 일본 젊은이의 특성을 지칭하는 말들은 그들이 얼마나 의욕도 의지도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프리터(free-albeiter의 줄임말)족’, 취업도 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Not Employed and Education Training)족’, 경제적으로 독립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패러사이트 싱글’ 같은 말들이다.

    일본 ‘한류’의 주인공들은 학생운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신인류세대’다. 한국으로 치면 ‘포스트 386’이다.  

    ‘하류사회’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하류’라는 말이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면과 성실이 민족성의 상징 같았던 일본에 왜 이런 괴물 같은 젊은 군상이 나타난 것일까. 모든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이상하다면 그 아이를 키운 부모가 잘못된 것이다. 아이들을 이런 괴물로 키운 부모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단카이, 흥 깨진 세대, 신인류

    “혹시 자녀가 외계인 같지 않습니까?”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많은 부모가 피식피식 웃는다. 그렇다는 긍정의 반응이다. 필자는 일본에서 강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청중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일본이 우리보다 자녀가 외계인으로 느껴지는 강도가 더 센 것 같다.

    일본이나 우리나 고도경제 성장기를 경험하며 압축적으로 성장해왔다. 부모가 자라난 환경과 자녀가 자라난 환경이 판이하다. 국적만 같을 뿐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생활 습관은 전혀 다른 인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필자는 ‘일본인은 이렇다, 저렇다’는 일본인론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건 사회가 좀처럼 변하지 않던 200년 전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전후 시대를 살아온 일본인은 연령에 따라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인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을 세대로 구분 지으면 ‘단카이 세대’ ‘흥이 깨진 세대’ ‘신인류 세대’ ‘단카이 주니어’로 나눌 수 있다.

    단카이 세대는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 붐 세대를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1947년에서 1949년 사이에 태어난 약 800만명의 일본인을 지칭한다. 조금 더 넓은 의미로는 1951년까지 태어난 1085만명의 일본인, 가장 넓은 의미이자 세대 문화의 확산 범위로 보면 쇼와(昭和) 20년대(1945~1954년) 에 태어난 약 2000만명의 일본인이다.

    단카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격렬하게 학생운동을 했다는 점이다. 베이비 붐 세대인 점도, 학생운동을 했다는 점도 우리의 386세대와 비슷하다. 그 외에도 닮은 구석이 많다. 한국의 386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났다. 단카이 세대와 15년 정도 차이가 난다.

    일본의 학생운동은 1973년 ‘아사마 산장’ 사건(학생운동의 상징이자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던 연합적군이 아사마 산장에서 관리인 가족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다 최후를 맞은 사건)을 계기로 급격하게 몰락한다. 당시의 젊은이들을 ‘흥이 깨진 세대’라고 부른다. 학생운동이 추구하던 사회변혁과 거대담론이 종말을 맞이했지만, 그 자리를 대신할 ‘개인’이 무엇인지 확립되지 않은 어정쩡한 시대였다.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과 번민을 잘 담은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한국에선 ‘상실의 시대’로 번역)이다.

    1980년대에는 학생운동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신인류 세대’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그들은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만끽하면서 성장한 세대로, 본격적인 소비문화를 만들어냈다. 1990년대 중반 화제가 된 우리의 ‘신세대’와 비슷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한류 드라마’에 열광하는 아줌마 부대는 신인류 세대에 속한다. 단카이 세대가 젊고 발랄하고 때로는 건방지고 가볍게 보여서 ‘신인류’라는 이름을 붙인 세대가 벌써 40대가 된 것이다. 신인류 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를 새로운 별종으로 본다. 그들은 외계인 같은 20대를 겨냥해 만든 일본 드라마에 빠져들지 못한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만든 드라마가 더 감성에 맞는 것이다.

    흔히 일본이 우리보다 10년 앞선다, 20년 앞선다는 말을 한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이 우리보다 15년에서 20년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감수성은 자신이 자라난 환경의 지배를 강하게 받기 마련이다. 일본 각 세대의 특성은 우리와 15년 정도 차이를 보인다.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는 인구 피라미드에서 불쑥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모양을 보고 경제 평론가인 사카이야 다이치가 ‘단카이 세대’, 즉 ‘덩어리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워낙 머리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여러 가지 붐이 일었고 현대 일본 사회가 만들어져왔다. 단카이 세대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에 걸쳐 있던 시절, 일본 대중문화의 상징인 만화잡지가 창간 러시를 이뤘다. ‘타이거 마스크’나 ‘도전자 허리케인’(일본 타이틀은 ‘내일의 조’) 같은 스포츠 근성 만화가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런 열혈 만화의 영향을 받았는지, 그들은 성인으로 자라나 ‘기업전사’라는 별명을 지닌 맹렬 사원이 됐다.



    단카이 꼭 닮은 386

    단카이 세대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는 ‘하이틴’ 붐이 불었다. 20대에 들어서자 ‘영(young)’이라고 불리며 패션 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이 자리를 잡는 밑거름이 됐다. 결혼 적령기가 되자 ‘뉴 패밀리’라고 불리며 가정용 승용차 시장이 급속히 확대됐다. 이들이 40대에 들어서자 주택 붐이 일었다. 자식들의 성장과 더불어 방이 3칸 정도는 되는 주택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는 새로운 젊은이 문화를 만들어낸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은 전국적인 현상이었지만, 공습으로 폐허가 된 대도시보다는 농어촌이나 지방도시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취직이나 대학 진학을 위해 대도시로 상경했다. 부모의 품을 떠나 혼자 사는 젊은이가 늘어나면서, 본격적인 젊은이 문화의 막이 올랐다. 청바지나 운동화가 새로운 젊은이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사용된다.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문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1964년의 안보투쟁이나 전학공투회의(전공투)의 헬멧은 저항문화의 최정점이었다.

    그들은 가정을 이루면서 ‘친구 같은 가족관계’를 이상으로 삼았다. 부모 세대가 물려준 전통적인 가치인 가부장제, 여필종부, 남존여비 같은 가치를 부정하고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가족관계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단카이 세대가 이룬 평균적인 가정의 모습은 이런 것이다. 남편이 경제적인 면에서 가장 노릇을 하며, 부인은 전업주부다. 자녀는 한 명에서 두 명. 소득은 느는데 아이가 줄자 아이 하나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 자녀를 일류 대학에 보내기 위해 ‘주쿠(塾)’라고 하는 학원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주말에는 아버지는 거래처 사람과 접대 반 취미 반인 골프를 치고, 부인과 아이는 유원지로 나들이한다.

    1990년대 중반 일본 사회에 ‘원조교제’가 엄청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10대 소녀가 돈을 받고 성을 매매하는 일이 여고생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졌다.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도 소녀들의 원조교제가 사회 문제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원조교제’라는 말 자체만 들어온 것일 뿐이다. 일본의 원조교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소녀들이 성을 매매하는 행위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주로 극빈층이 많은 후진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선진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출한 소녀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성을 매매하는 일은 암암리에 존재한다. 일본의 원조교제가 기이했던 것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동기 부분이었다. 도무지 기성세대가 납득할 수 있는 동기가 아니었다. 일부 소녀들은 “루이뷔통 가방을 사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지만 현대 사회의 물질욕 같은 것에 화살을 돌릴 수 있다. 그보다 더 납득할 수 없는 이유가 훨씬 많았다. “심심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친구의 권유로”….


    더욱 놀라운 것은 원조교제 소녀 대부분이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딸들이라는 점이었다. 가출소녀도 아니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원조교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된 것은 관심을 끌기 쉬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몰지각한 남자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지각 있는 사람에게는 지탄의 대상이 되는 소재였다. 더 중요한 점은 왜 평범한 가정의 소녀들이 성매매를 하는지에 대한 규명일 것이다. 하지만 근본 원인이 제대로 해석되지 못한 채 원조교제라는 유행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원조교제라는 충격적인 사회문제 때문에 매스컴의 관심은 온통 청소년기의 소녀들에게 쏠려 있었다. 같은 연령대의 소년들은 관심 밖이었다. 큰 사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더 큰 문제였을지 모른다. 그들의 특징은 ‘3무(無)’로 요약됐기 때문이다. ‘3무’는 무기력, 무책임, 무감동을 말한다. 아무 의욕 없이 무기력하고, 어떤 일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으며, 웬만한 일에는 감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조교제를 하던 소녀들도, 3무가 특징이라던 소년들도 이제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바로 그들이 ‘하류사회’에서 ‘하류’로 전락하는 세대로 지목되는 세대다. 그들 세대의 이름은 ‘단카이 주니어’다. 단카이 세대의 자식 세대라는 뜻이다.

    단카이 세대가 이상으로 생각했던 가정의 모델. 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어오고, 전업주부인 엄마는 자식교육에 몰두하고, 아이는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는 가정. 그런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성인이 되어서는 하루하루 무기력하게(본인들 표현으로는 ‘마음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류사회’의 저자인 미우라 아쓰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마케팅 애널리스트인 탓도 있다. 오히려 그는 ‘하류사회 마케팅’이라는 책을 쓰며, ‘하류’ 흐름을 자신의 비즈니스와 연관시키기에 바쁘다. ‘하류’ 흐름의 원인에 대해 일본 사회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자녀교육’이다. 현재 일본에서 자녀교육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과잉보호, 과잉간섭, 과소접촉, 대화부족, 과잉기대 등이다. 더 간단명료하게 정리하면 ‘아버지 부재, 엄마 밀착’이라고 할 수 있다.

    2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소설 ‘도쿄타워’의 부제는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다. 일이 바빠서 늘 집을 비우는 아버지는 아무리 친구처럼 다정하게 아이를 대해도 어디까지나 ‘때때로 아버지’일 뿐이다. 자녀와의 접촉이 적을 수밖에 없다. 자녀교육의 짐을 혼자 짊어지게 된 엄마는 일류대학에 합격시키기 위해 아이를 24시간 매니지먼트하면서 열성 엄마가 된다. 그런 열성은 과잉기대와 과잉간섭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이 엄마가 짜준 스케줄대로 진행돼야 한다. 과연 이런 가정의 모습이 일본만의 일인가.



    386세대의 아이들은?

    무기력, 무책임, 무감동의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무엇을 결정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무엇인가를 해본 일이 없으므로 무기력하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므로 어떤 일이든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자기 의지로 한 일이 아니므로 어떤 것에도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386세대의 자녀들은 이제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다. 평범한 가정의 소녀가 심심해서 원조교제를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3무’라는 특징은 고개를 들어올리는 것 같다. 중·고등학생 중에는 학원이나 과외 교사가 없으면 공부를 하지 못하는 ‘티처 보이’가 늘고 있다.

    요즘 ‘줄넘기 급수제’를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많다. 줄넘기 실력에 급수를 부여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높은 급수를 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 공원에서 아이들이 줄넘기 연습을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줄넘기 과외교사도 있다. 과외교사 없이 혼자서 줄넘기 연습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고, 해외연수 경험이 있고, 자격증을 수도 없이 갖고 있고, 명문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과연 혼자 힘으로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

    현대 일본 사회의 모습을 만든 단카이 세대. 그들은 역동적으로 살아가면서 일본 사회를 바꿔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 세대는 어느 미국 평론가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됐다. 단카이 세대와 여러 면에서 비슷한 한국의 386세대. 그들, 아니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어떤 젊은이들로 성장할 것인가.


    김지룡 문화평론가

    솔미르의 꼬릿말입니다
    봄과 수라의 서


    '나'라고 하는 현상은 
    가정(假定)된 유기(有機) 교류 전등의 
    하나의 파란 조명입니다. 
    (모든 투명한 유령의 복합체) 
    풍경 속 모든 것과 함께 
    끊임없이 깜박거리며 
    아주 또렷이 켜져 있을
    인과(因果) 교류 전등의 
    하나의 파란 조명입니다. 
    (빛은 영원하며 그 전등은 사라지고) 


    이 시들은 22개월의 
    과거라고 감지된 방향으로부터 
    종이와 광물질 잉크를 이어서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낀 것들) 
    지금까지 계속 보존되어 오던 
    그늘과 빛의 한 구절마다 
    말 그대로의 심상스케치입니다. 


    이 시들에 관해서 사람들과 은하와 수라와 성게는 
    우주먼지를 먹거나 공기와 소금물을 호흡하면서 
    각각 신선한 존재론(存在論)도 사색하겠지만 
    이 시들도 필경 하나의 마음의 풍물(風物)입니다. 
    다만 확실히 기록된 이들 풍경은 
    기록된 바 그대로의 경치이고 
    그것이 허무라고 한다면 허무 그 자체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모두에게 공통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어 전부인 것처럼 
    전부는 각각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므로) 


    그렇지만 이들 신생대 충적세(沖積世)의 
    거대하게 밝은 시간의 집적(集積) 속에서 
    당연히 바르게 전사(轉寫)되었을 이들 언어가 
    그 아주 작은 한 점에도 균등히 존재하는 명암(明暗) 속에 
    (또는 수라의 십억년) 
    이미 빠르게 그 구성과 성질을 바꾸어서 
    나도 인쇄인(印刷人)도 
    그것을 변화되지 않은 것이라고 느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의 감각기관과 
    풍경과 인물을 느끼는 것처럼 
    그래서 단지 공통적으로 느낄 뿐인 것처럼 
    기록이나 역사 또는 지구사(地球史)라 하는 것도
    그런 여러 자료들과 함께 
    (인과의 시공적 제약(制約)이 원인이 되어) 
    우리들이 감각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이천년이 흐른 뒤에는 
    그에 상응하는 다른 지질학이 유용(流用)되고 
    상응하는 증거 또한 차차 과거로부터 나와 
    모두들 이천년 전쯤에는 
    푸른 하늘 가득히 무색의 공작새가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신진(新進) 대학자들은 대기권의 최상층 
    눈부시게 빛나는 빙질소(氷窒素)가 있는 곳에서 
    멋진 화석을 발견하거나 
    아니면 백악기(白堊紀) 사암(砂岩)의 층면에서 
    투명한 인류의 거대한 발자국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모든 명제는 
    심상과 시간 그 자체의 성질로서 
    사차원 연속체(連續體)안에서 주장됩니다




    봄과 수라

                         미야자와 겐지

     
    심상의 회색 강철로부터 
    우름덩굴은 구름에 휘감기고
    찔레나무 덤불과 부식의 습지 
    한 면의 한 면의 첨곡 모양으로
    (정오의 관악보다도 무성하게 
    호박의 파편들 몰려들 때에)
    노여움의 괴로움 그리고 푸르름
    4월의 대기층의 빛의 바닥을
    침 뱉으며 이를 갈며 어슬렁거리는
    나는 한 마리 수라인 것이다
    (풍경은 눈물로 흔들리고)
    부서지는 구름은 눈길을 붙잡고
    영롱한 하늘의 바다에는 
    성스러운 수정의 바람이 엇갈린다
    ZYPRESSEN 봄의 일렬 
    새까맣게 빛의 입자를 흡입하고
    그 어두운 행렬로부터
    천산의 눈 덮힌 등선에까지 빛이 비치네
    (아지랭이 물결과 흰 편광)

    진실의 말은 사라지고 
    구름은 찢어발겨져 하늘을 난다
    아아, 빛으로 가득한 4월의 바닥을
    이를 갈며 타오르며 어슬렁거리는
    나는 한 마리 수라인 것이다
    (옥수의 구름 흐르고 
    어디선가 우는 저 봄날의 새)

    태양 푸른 아지랭이치며 피어오르면
    수라는 나무숲과 교향하니
    무너져내린 하늘의 그릇에서
    검은 나무의 군락이 이어져
    그 가지는 슬프도록 무성하네
    모든 이중의 풍경에
    신을 잃은 숲의 꼭대기 가지로부터 
    눈빛 번득이며 날아오르는 까마귀 
    (기층 마침내 맑게 개어서 
    노송나무도 묵묵히 하늘 향해 설 무렵) 
    풀밭의 황금을 지나서 오는 것 
    그럭저럭 사람처럼 생긴 것 
    도롱이를 걸치고 나를 보는 저 농부 
    진실로 내가 보이는 건가

    눈부신 대기권의 바다 그곳에 
    (슬픔은 가득 푸르고도 깊어서) 
    ZYPRESSEN 조용히 흔들리고 
    새는 또 푸른 하늘을 가른다 
    (진실의 말은 여기에 없고 
    수라의 눈물은 땅에 떨어지네) 
    새롭게 하늘을 향해 숨쉬면 
    희스름하니 폐는 수축되고 
    (이 몸 하늘의 먼지로 흩어지네) 
    은행나무 꼭대기 가지 다시 빛나 
    ZYPRESSEN 마침내 검게 
    구름의 불꽃은 쏟아져내린다. 



    (주. ZYPRESSEN, 지프레센은 검은 빛을 띄는 독일산 노송나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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