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1571759> [공개 편지] 경찰청 자문위원을 사퇴하며
대한민국 경찰청장님, 국민 무서운 줄 알고 하늘처럼 섬기십시오
여러 말씀 드리지 않아도 제가 왜 이글을 드리는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지난 6월 29일 0시 30분경 태평로 부근 성공회 성당 옆 골목길에서 촛불시민들에 대한 경찰의 물리적 진압을 막아보려고 골목길에 드러누웠다가 당신의 부하들에게 방패와 곤봉과 군홧발과 온갖 욕설 세례를 받으며 짓밟혀야 했던 이학영이라는 사람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평생 YMCA라는 곳에서 일하며 매월 꼬박 꼬박 갑근세를 내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와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시민과 부딪치면서 나타나는 폭력과 피해를 줄여 보고자 'YMCA 비폭력 평화 행동단-눕자'를 만들어 어떻게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해볼까하고 거리에 나갔던 사람입니다.
지난 28일 저녁 태평로에서 일어났던 일을 청장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저와 함께 성공회 골목길에 누워있던 시민들이 처절하게 짓밟힌 뒤 실신하여 경련에 떨고 있는 동료를 구급차에 실어보내기 위해 태평로 거리에 나섰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비규환, 아마 그런 표현을 그럴 때 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냥꾼에 포위되어 쫓기는 짐승들 마냥 방패와 곤봉을 들고 쫓아가는 경찰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뛰어가는 시민들.
'아, 이게 무슨 영화나 환상 같은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참 훌륭한 작전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그 많은 시민들을 거리에서 쫓아내버렸으니까요.
제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면 청장님께서도 경찰 책임자로써 여러 할 말씀이 많으시겠지요.
그만두겠습니다.
그날의 일은. 그렇다고 하십시다.
각자의 입장이 다 있을 테니까요.
공원에 자라는 잔디도 밟지 말라고 하는데 눈 뻔히 뜨고 누워있는 시민들을 짓밟고 나서도 한 마디 변명도 미안하다는 말씀도 없는 청장님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습니까?
요즘 좋으시지요?
진즉부터 그리할 걸 후회하시지요?
경찰의 방패와 곤봉으로 쓸어버리면 단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진압 당해버리는 거리의 촛불들이 우습게 보이시지요?
그렇습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싸우려 나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의사표현을 촛불로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곤봉과 방패로만 위협을 하여도 무서워 밀려나가는 시민들입니다.
아마 일주일만 그렇게 무력으로 진압해버리면 거의 시위는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청장님.
제가 겪은 작은 일 하나를 말씀드림으로써 청장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36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 2학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군인이나 경찰, 아니면 공무원이 되고자 오로지 공부에만 정신을 쏟던 농촌출신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졸업하여 돈을 벌지 않으면 동생들과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위하던 대학생들이 도서관으로 쫓겨 들어왔습니다.
경찰들이 도서관을 에워쌌고 시위자들은 모두 항복하고 나오라는 방송이 들려왔습니다.
학생들이 나가지 않자 최루탄이 유리창을 뚫고 날아 들어왔습니다.
결국 가스를 견디다 못한 학생들은 모두 끌려 나가 개처럼 거꾸로 처박혀야 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로 끌려가 온 밤을 구타와 욕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날 새벽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풀려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상의 문제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공권력이라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나를 위협하고 나를 짓밟는 것이기도 하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하게 짓밟혀야만 했던 내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가 서러워서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습니다.
아마 그날의 경험이 없었으면 나도 아마 지금쯤 당신과 같은 자리에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날 국가권력의 무서움, 힘없는 사람들의 슬픔을 어슴프레 하나마 느꼈습니다.
그때 싹 튼 약한 자들에 대한 연민, 강한 권력이 갖는 무모함과 오만에 대한 거부감 등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평생을 시민운동을 하며 살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촛불을 든 시민들 속엔 그냥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막연한 불안 때문에 나온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주부들, 어린 학생들, 동네 아저씨들, 직장인들 모두 자기 일만 하기도 바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만 해소될 수 있다면 그날로 자기 자리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경찰이 무서운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면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옛날 경찰서 한번 끌려가서 수모를 당하고 온 뒤 평생 공권력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나처럼 그들 또한 그렇게 된다면 청장님은 국가권력, 경찰에 대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일런지요.
시민의 친근한 벗이 되어야할 경찰의 이미지를 얼마나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 될런지요.
저는 그동안 경찰청의 '집회시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서 활동해왔습니다.
청장님 부임하신 뒤로는 한 번도 회의가 없어서 나가지 못했지만 특별히 해촉되었다는 통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도 자문위원직은 유지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경찰청 집회시위자문위원 제의를 수락했던 것은 당시 경찰청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의도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권위적이고 부패하고 반인권적이었던 이전의 경찰의 이미지에서 시민들을 보호하고 친근한 벗으로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그 노력의 진심을 믿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많은 분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하여 어떻게 하면 군림하는 경찰이 아니라 시민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지키는 경찰이 될 것인가, 어떻게 시위문화가 평화적으로 이뤄지게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민의 친구라는 이미지, 시민을 지켜주는 친근한 경찰로 모습을 상당히 회복했다고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대한민국 경찰청 '집회시위 자문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말씀을 하시던 최근 경찰의 모습은 지난날 제가 참여하여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던 그런 경찰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알고서야 그렇게 할 수는 없었겠지만 명색이 경찰청 자문위원이라는 나까지도 무차별로 곤봉과 방패로 내려치는 경찰에 속수무책 짓밟혀야 할 지경이라면 보통 시민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을 조심스럽게 모셔야할 주인이 아니라 어떻게든 폭력적으로 진압해야 할 대상, 폭도로 몰고가려는 그러한 경찰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어떻게 그런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날 제가 참여했던 당시의 경찰과 오늘의 경찰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그 변신의 빠름에 그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뿐입니다.
아직도 경찰 내부에는 이전에 국민에게 친근한 경찰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많은 분들이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셨던 많은 분들에게 죄송합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좋은 뜻을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경찰이 일시적으로 한 정부에 충성하는 경찰이 아니라 내내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찰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비록 사퇴를 하지만 경찰이 친근한 시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청장님, 제 사퇴를 수리해주십시오.
저는 이제 대한민국 경찰청 자문위원이라는 신분의 굴레 때문에 시민들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 경찰을 걱정했던 불편했던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는 7월 5일 촛불집회에 전국에서 올라온 YMCA 회원 및 시민과 함께 또 다시 여러분 앞에서 이미 부러진 제 팔을 메고라도 드러누울 것입니다.
그날 YMCA 표시나 '눕자'라는 스티커를 몸에 붙인 사람들이 있으면 그 중에 제가 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십시오.
그날도 드러누운 사람들에게 곤봉과 방패와 군홧발로 짓밟으시겠습니까?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오직 여러분과 시민들이 부딪쳐서 수많은 희생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누운 것일 뿐이니까요.
누워서 다가오는 군홧발 소리와 방패로 길바닥을 두드려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그날 혹 경찰이 시민들을 쫓아갈 때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보이거든 지난번처럼 무자비하게 짓밟고 가지 마십시오.
팔이 부러지고 귀가 찢기고 머리통이 부서진 시민들도 여러분처럼 돌보아야 할 형제와 자식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리지 마십시오.
짓밟지 마십시오.
꼭 필요하다면 하나씩 끌어내어 닭장차에 태워 연행해 가십시오.
적어도 길바닥에 드러누운 것이 죄라면 그 죄값은 달게 받을테니까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처럼 사람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당신의 형제요 자녀요 친구인 시민들을 제발 하늘 아래 가장 소중한 생명으로 받들어주십시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누워서 두 눈 뜨고 쳐다보는 당신의 형제와 자녀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촛불 하나 들고 거리에 서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서있는 수많은 시민들, 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만약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국민들을 짓밟으셔야 하거든 그 자리를 사퇴하십시오.
한 정부의 경찰청장은 잠시지만 국민의 마음속에 살아남는 경찰청장은 영원할테니까요.
2008년 7월 3일
한국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이 학 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