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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병자호란때 조선군 수만명이 청나라 기병수백에 쌍령산전투에서 전멸당하는등
나중에 여진족이랑싸울때의 조선군의 활약상을 볼때
당시 명나라도 힘들어하던 여진족 수만명을 기병500기를 동원해 무찔렀던건 확실히 능력은있었네요
임진왜란초기에 너무빨리 전사해서 아쉬운..
뭐 전쟁터에 도망가거나 항복하지 않은 장군으로서 3배의 병력을 가진 적군과 싸우다 죽은건
이기지못해 아쉬울수는 있어도
떳떳한거라는 생각 드네요..
거꾸로 적군보다 3배나 많은데도 졌다면 욕쳐먹는건 맞을테지만...
태어난 곳 | 조선 |
죽은 곳 | 조선 충청북도 충주시 인근 |
별명 |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충장(忠壯) |
복무 | 조선 육군 |
최종 계급 | 삼도 도순변사 |
지휘 |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삼도도순변사 |
주요 참전 | 임진왜란 |
기타 이력 | 사후에 의정부영의정으로 추증됨. |
http://ko.wikipedia.org/wiki/%EC%8B%A0%EB%A6%BD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1583년 은성부사(穩城府使)가 되었다. 이 무렵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쳐들어와서 여러 고을을 뒤흔들었으나 장군들은 모두 싸움에 지고 말았다. 니탕개는 선조 초년부터 6진(六鎭)에 자주 드나들며 공순(恭順)의 뜻을 보였으므로 정부에서 관록(官祿)을 주고 후대했으나, 진장(鎭將)의 대우가 좋지 않다는 명분을 내세워 부근의 여러 부족을 규합, 경원부에 침입하고 아산보(阿山堡)와 안원보(安原堡)를 점령했다. 이에 신립은 기병 500여기를 동원, 첨사 신상절(申尙節)과 함께 훈융진을 공격하던 여탕개의 1만명을 물리쳤고, 여진족이 함경도를 침략할 때 경유하는 안두리 부락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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