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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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겨울이었다.
너는 교통사고로 일찍 부모님과 동생을 일고 혼자 되었던, 고등학교만 나온 별 볼일 없는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너를 사랑했다. 하지만 네 부모님의 반대가 두려웠다. 부모 없이 큰 아이라는 어른들의 눈이 너무 무서웠다.
대학을 나온 딸을 고등학교만 나온, 부모님도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놈에게 줄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의 응원에, 나는 살면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너의 부모님을 만나뵈었고... 두 분은 너무도 쉽게 나를 허락해주셨다.
오히려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도 된다고 하셨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 자리에서 많이 울었다.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그렇게 내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다른 많은 커플들처럼 결혼 준비에 투닥 거리다, 다음날 웨딩 드레스를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너를 집에다 바래다 주던 그 밤.
신호를 무시하고 과속으로 달려온 음주운전 차가 교차로에서 네가 앉아 있던 조수석을 들이 받았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순간적인 번쩍임이었는데, 의식을 찾고 나니 일주일이 지나 있었고,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너는 하얗고 조그만 보자기에 쌓여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현실인줄 모르다가 아버지라고 부르라 하시던 장인어른의 원망 섞인 욕지거리와 따귀를 맞고 네가 이제 세상에 없다는 걸 알았다.
반년 만에 기적처럼 다리를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일에 미쳐서 살았다. 휴가도 없이, 주말에도 일을 했다.
돈을 모아서 전세지만 너와 살려고 했던 그 집도 샀다.
너가 나중에 아기도 생각해서 바꾸자던 그 차도 샀다.
네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사달라던 가방도 샀다.
네 말대로 다른 여자에게 한눈 팔지도 않았다.
그저 기뻐해줄 너만 없었다.
그러던 지난 달, 일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이제 본격적으로 40대로 접어들어서 그러는 건지 허리랑 다리가 저려서 동네 정형 외과를 갔더니, 큰 병원으로 보냈다.
피도 뽑고, 이상한 기계에 집어 넣다가 빼더니, 암이 있다고 한다. 췌장암인데. 이미 많이 전이가 되었고, 그것 때문에 허리와 다리가 아픈 것이라고 했다.
난 사고 후유증이라고 생각해서 지금까지 물리 치료만 받았는데 말이야.
의사 선생님은 길어야 반년이라고 한다. 반년이라... 반년 후는 초겨울, 네가 떠나던 그 때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슬프기 보다 기뻤다.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 사표를 내었다.
암에 걸렸다고 했더니 말 없이 퇴사 처리가 되었다.
오늘은 환송(?)식을 했다.
그리고 모레, 너가 갈 수 있으면 좋지... 하지만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 때 가자던 몰디브에 가려고 한다.
비록 11월, 네가 가고 싶어하던 때는 아니지만.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에서 나왔다는 이태리의 두오모 성당에도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도 가려고 한다.
꼭 네가 떠나가던 그 날에 너를 다시 만나면 좋겠다.
나는 그 사이에 아저씨가 되었지만, 너는 그대로일테니 못 입어본 웨딩 드레스 꼭 가져갈께.
기억이 안 나서 네가 예쁘다던 그 웨딩 드레스랑은 다를 지도 몰라.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