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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freeboard_2034744
    작성자 : 택시운전수
    추천 : 16
    조회수 : 1001
    IP : 220.73.***.60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24/11/03 12:17:04
    http://todayhumor.com/?freeboard_2034744 모바일
    초보 택시기사의 경험담 ep 18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손을 흔들어 택시를 세운 소위 길빵손님이 있었습니다.


    그 손님 앞에 택시를 세우니 젊은 남자 손님들 세 명이 택시 앞자리와 뒷자리에 나눠 타더군요.


    앞자리에 앉은 손님이 말했습니다.


    "기사님, 근처 아무 나이트로 가주세요."


    제가 아는 나이트가 없어서 손님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나이트가 없는데 어쩌죠?"


    그러자 손님이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쥴리XX"나이트가 근처에 있네요 거기로 가주세요."라고 말하길래


    내비에 입력을 하고 그 곳으로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손님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앞자리에 앉은 손님이 최근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가


    퇴원한 기념으로 친구들이 모여 축하파티를 해 준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손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얼마나 큰 사고였어요?"


    그러자 손님이 휴대폰에 저장된 당시 사고 차량을 보여주더군요.


    차의 반이 뭉게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중환자실에 있었던 경험을 말해주는데 너무 처참하더군요.


    "처음 얼마동안은 의식이 없어서 몰랐는데, 중환자실이 엄청 무서운 곳이더라고요.

    환자들이 다들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니까 막 고함을 지르고, 간호사들에게 욕을 하고,

    그래도 간호사들은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그저 그 욕을 받아주는 수밖에 없고.

    그 때 느꼈죠. 간호사들도 엄청 힘든 직업이라는 걸요."


    손님이 가자는 곳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는 나이트가 없었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이 다시 검색을 해보더니


    "여기 마지막 리뷰가 2016년이다. 망해서 없어졌나본데?"라고 말하더군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해 하던 손님들에게 상봉역 근처에 나이트가 있던 것이 생각나서


    제가 말했습니다.


    "상봉역 근처에 나이트가 있는데 거기로 모실까요?"


    그러자 손님들이 그 곳으로 가자고 말해서 내비에 나이트 이름을 입력하니


    5km정도 거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곳으로 다시 택시를 운행했습니다.


    그 곳으로 가는 동안 다른 친구에게서 영상통화도 오고


    지금 가는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내용의 전화도 여러 통 오더군요.


    친구들이 진심으로 그 손님의 퇴원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에는 북한산 입구에서 신촌으로 가는 콜이 들어와 갔더니,


    등산을 마치고 막걸리 한 잔 걸친 듯한 남자손님들이 택시에 타시더군요.


    손님 중 한 명이 택시에 타자마자 저에게 만원권 한 장을 건네며 말씀하셨습니다.


    "기사님, 지금부터 저희들이 좀 떠들건데 양해 좀 해주세요."


    저는 딱히 만원때문이 아니라 손님들의 대화를 귀동냥하는 것이 좋아서 대답해드렸습니다.


    "얼마든지 대화 나누세요."


    그리고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은 앞자리에 앉으신 손님이 저에게 상황을 설명해주시기도 하고요.


    그 손님들은 고등학교 동창사이였습니다.


    연배는 저보다 한 참 위인 제 막내 작은 아버지 뻘이었고요.


    1977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친구사이랍니다.


    제가 1977년 생이니, 제 나이만큼의 우정을 쌓아가고 계시네요.


    그 분들이 하시는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들이었습니다.


    6 25전쟁을 겪지 않았을 뿐


    4 19와 5 16 즈음에 태어나서,


    10 26때는 고등학교 졸업반이었으며,


    5 18때는 20살의 피끓는 청춘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창 중에는 5 18때 순국하신 분도 계셨답니다.


    친구가 별로 없는 저로서는


    오랜 세월동안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하고 계신 손님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얼마 전에 본 게시글에 나이가 들 수록 친구가 적어진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적어도 이 손님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어 보였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임에도 옛날 추억들을 얘기할 때는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듯


    생생한 기억들로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셨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손님들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었죠? 죄송합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오히려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손님들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변함없는 우정을 나눠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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