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영업 몰락의 진실 2008. 3. 5.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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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노무현 시대에 나타난 현상으로 인구에 자주 회자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영업의 몰락이다. 택시가 손님 없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자주 등장한다. 요컨대 경제가 파탄나고 그 결과 먹고 살기 힘들어 소비가 위축되니 식당이나 가게도 망하고 택시도 망한다는 논리다.
지난 주 기사 :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다 물론 자영업이나 택시가 이전보다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가 실제 망한 경우도 적잖이 있을 테니,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일단 양해의 말씀 구한다. 하지만 개별 업소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 망하는 것과 한 나라의 자영업이 아예 ‘몰락’하는 것은 국가적 재앙에 가까운 것으로 전혀 다른 관점에서 따져 볼 문제다.
그럼 과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가?
현재 필자가 사는 일산 집에서 2분만 걸어나가면 국제적으로도 흔하지 않을 특이한 지역이 있다. 강선마을 아래쪽 오피스텔들 사이의 먹자골목을 필두로 시작되는 이 길은 거대한 노상 쇼핑몰인 라페스타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또 다른 먹자골목으로, 그리고는 길 건너 미관 광장을 지나 특이한 반실내/반실외 쇼핑몰 웨스턴 돔으로 이어진다. 수천 개의 각종 가게와 업소들이 근 1킬로미터의 보도를 통해 직선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모두 ‘자영업자’ 들이다.
놀라운 것은, 이 지역은 필자가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인 6년여 전까지는 잡초만 무성한 공터로서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다는 점이다. 그 공허함의 여유에 익숙하던 필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이 놀라운 변화를 처음 보고는 그저 입이 쩍 벌어질 뿐이었다.
한편 반대편 중앙로로 나가면 대략 10층짜리 상가 건물들이 한 블록에 적게는 2,3개, 많게는 열 개까지도 눈에 띈다. 이것들은 전에도 있었지만 그 몇 년 새에 분명 더 늘어났다. 노무현 정권 5년간 자영업이 정말로 몰락했다면 저 건물들의 최소한 절반은 파리 날리고 있어야 마땅한 것 아닌가…?
물론 일산은 소위 신도시 중 하나인 만큼 몰락은커녕 부흥에 가까운 이런 모습은 다소 이례적인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산이나 대전, 서울 등 어디를 돌아봐도 분명 자영업의 몰락이라는 경제적 재앙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 마트의 확장으로 인해 동네 수퍼나 서점, 재래 시장이 문을 닫은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경기 침체로 인한 자영업의 몰락과는 다른 맥락의 문제다.
다만, 이런 과장이 초래하는 불필요한 공포감의 문제를 차치한다면, 2001년 28.1%이던 자영업자의 비율이 2006년 말에는 26.5%로 떨어졌으니 그만큼 장사가 안돼서 자영업자가 줄어 든 것은 사실이다. 1.6% 라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지만 매년 자영업소 50만개가 창업되는 점을 감안해 보면 그만큼 문을 닫은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이 예전보다 어려워진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간단하다. 그저 자영업자가 여전히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동네 상가 건물마다에는 크고 작은 식당과 술집들이 십여 개씩 들어차 있다. 심지어 같은 진료과목의 병원이 두 개 이상 한 건물 안에 문을 연 경우도 드물지 않다. 결국 서로 같은 업종의 비슷한 가게들이 반경 백여 미터 안에 많게는 수십 개씩 모여 생존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물론 용산전자상가처럼 타운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예외).
전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모습은, 88 올림픽 전후 시작된 소비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쇼핑과 외식, 음주 문화의 거품, 그리고 거기 편승해 많은 사람들이 유행을 좇아간 결과이다. 물론 전형적인 후진국 경제로서 자영업의 비율이 34%에 달하던 2,30년 전에 비한다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기간 퍼져나간 외식, 음주, 향락 등 각종 소비 문화의 영향으로 그 줄어듦의 곡선이 매우 완만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IMF로 구조조정 붐이 일어 갑작스레 직장을 잃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가세하며, 길거리는 온통 비슷비슷한 가게들로 말 그대로 넘쳐나게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런 포화상태의 경쟁 속에서는 시장 원리의 냉엄한 현실에 의해 많은 자영업자들이 도태의 운명에 놓일 수 밖에 없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실제적 구제책도 없다는 점이다.
뉴욕, 파리, LA, 런던 등 선진국 어느 도시를 가도 우리 나라처럼 길거리마다 오만 가지 가게가 넘쳐나는 곳은 없다. 북미에 비하면 비교적 작은 가게들이 많은 유럽도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결국 수많은 식당과 가게로 상징되는 그간 우리나라의 후진국형 역동성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지난 시간에 말했듯 이제는 선진국형 경제로 가는 과도기의 통과의례를 겪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인식하고 우리 모두가 여기에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변화는 더욱 큰 고통 속에서 진행될 것이고, 장기적으로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필자의 막연한 주장이 아니라 통계자료가 뒷받침한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2006년 말 기준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비율은 26.5%이다. 그렇다면 경제 규모 상위 25개국(한국은 그 중 12위권)의 평균은 어떨까? 우리의 절반 수준인 14.4%에 그치고 있다. 나라별로 따지면 미국 7%, 영국 약 11%, 프랑스 7, 독일 10, 일본 10… 한 눈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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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어느 정도 사는 나라들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나라들은 구미 선진국 중에서도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축인 그리스나 이태리, 포르투갈 등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후진국’들이다. 상위 25개국을 다시 예로 들면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하일 때 자영업 평균 26.9%로 지금 우리와 비슷했고, 1만 5천에서 2만 달러 시점의 평균은 16.8%였다. 이는 나라가 잘 살게 될수록 자영업자의 수가 줄어든다는 일반적인 법칙을 보여주고 있는데, 경쟁력 확보와 고급화 및 안정성을 위해 개인 자영업보다는 기업위주로 경제 구조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GDP가 2만 달러를 약간 상회하니 저 16.8% 시점을 방금 지났어야 하는데도 아직 1만 달러 이하 수준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다. 그 이유는 중소기업이 충분히 육성되지 못하고 대기업과 자영업으로 사업 주체가 양분화된 탓일 것이다. 구직자는 대부분 대기업 취직을 지향하고, 그렇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자영업을 꾀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왔음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이는 결국, 향후 선진국형 경제에 근접하면서 현재 자영업자의 절반 가까이가 더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한 두 해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다면 ‘몰락’이란 말이 맞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야 안되겠지만, 여하튼 비정상적인 숫자와 과당 경쟁으로 인해 자영업의 수는 결국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으며 정도 차이는 있을 망정 이는 분명히 다가올 앞으로의 현실이다.
이런 불가피한 상황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납득시키고, 갑작스러운 몰락이 아닌 가급적 느린 연착륙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 기존 자영업자들이 다른 생업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암튼 이 문제는 경제 파탄이나 노무현의 실정과는 별 관련이 없다.
말 나온 김에 택시도 한번 살펴보자. 2007년 10월 말 현재 서울의 등록 택시 대수는 총 7만 2천 대. 전국적으로는 25만대에 달하고 있다. 반면 런던의 택시는 약 2만대, 뉴욕은 1만 2천대, 도쿄는 5만 1천대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적다(뉴욕의 택시 대수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 결과 서울의 택시 1대당 인구수는 143명인데 반해 뉴욕은 658명, 런던은 345명, 도쿄는 231명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머리수당 택시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경쟁이 지나쳐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른 것도 물론 앞서 자영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그간의 소비 행태에 따른 거품의 결과다. 거기에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 체증과 유가 상승 등 다른 요인들이 합쳐져 어려움을 더 부채질한다.
따라서 이 문제도, 경쟁에 밀린 택시들이 스스로 조금씩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적당한 수로 조정되는 외에 다른 해결책은 없다.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종의 택시 부양책을 써서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 나간다면 결국 모래성만 더 크게 쌓는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정부를 욕하고 상황을 과장한다고 풀릴 일이 아닌 거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 문제의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부분을 직시하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정치건 경제건 일상생활에서건 다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싸움을 해서 두들겨 맞았다면 십중팔구는 그저 상대보다 약했기 때문이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 터이다.
이렇게 눈에 뻔히 보이는 답들이 있는데도 우리는 어떻게든 다른 이유와 구실을 찾으려고 애쓰곤 한다. 나의 단점을 직시하기가 두렵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책임지기 싫기 때문이다. 설사 다른 요인들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핵심적인 부분을 인정하고 나서 나머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선후가 바뀌곤 한다.
사람이라면 다들 조금씩은 이런 면이 있지만, 매사를 이런 자세로만 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의심이 많아 자신의 사소한 유불리에는 극히 민감하고 한편으로 남의 입장은 잘 헤아리려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나라 걱정도 많은데, 실은 그 구실로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정부나 타인들을 맘껏 욕하고 자연스럽게 자기 책임은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단적으로 모이면 바로 지난 시간에 말한 이지메의 열정으로 승화되어 버린다.
오해하지 말자. 벌이가 시원찮아 문닫은 자영업자 분들이나 택시 기사들을 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여건에서 나름의 생존의 방법을 찾아 갔던 것뿐이다. 문제는 이런저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제 구미에 맞게 함부로 평가하고 휩쓸리는, 그리고 쉽사리 분노와 증오로 터뜨려 버리는 우리들의 가벼움이다. 직시하기 껄끄러운 현실은 외면해버리고 문제를 특정인이나 특정 조건의 탓으로만 돌려 공허한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풍토… 언젠가부터 이런 것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경제 파탄’이니 ‘자영업의 몰락’ 같은 과장된 개념들과 거기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이야말로 바로 그 좋은 예다.
혹시 우리는 그런 잘못된 흐름에 편승하여, 수많은 도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명박네에게 너무 쉽게 권력을 쥐어준 것은 아닌가?
다음 시간에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