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트렌드코리아 2025>에 실려 있는 '팜국어', '팜투리'에 대한 설명이다. 팜국어, 팜투리는 뉴진스 멤버 '하니(본명 하니 팜)'가 말하는 서툰 한국어에 팬들이 붙인 별명이다. 책에 실린 베트남계 호주인인 하니의 팜국어에는 '뜬겁새로(뜬금없이)', '후두다닥(후다다닥)' 등이 있다.
김난도 교수는 팜국어가 사랑받는 현상에 대해 "(팬들이) 마치 내 아이의 옹알이만큼은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모의 마음으로 그녀의 실수들을 '오히려 귀여운 실수'라며 환대하는 것"이라면서 "이처럼 서투르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무해력을, '순수대충 무해력'이라고 이름 붙이고자 한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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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하이브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얘기기했다. |
ⓒ 공동취재사진 |
하얗고 동그란 얼굴, 해맑게 웃으며 춤추고 노래하는 뉴진스 하니는 무해함의 상징이었다. 그가 쓰는 한국어는 '서투르지만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한층 더해줬다. 그런 그가 지난 15일 현직 아이돌 그룹 멤버로서는 최초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통역사 없이 혼자.
하니의 국감 출석, 그 시작에는 지난 4월 "개저씨들"이라는 말로 화제가 되었던 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오랜 케이팝 팬으로서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방시혁 vs. 민희진 분쟁'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아이돌이 사람이 아닌 대상처럼 취급된다는 것이었다. 기업가에게는 비슷한 콘셉트로 언제든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기획자에게는 자신의 피와 살을 갈아 넣어 만든 피조물로. 지리한 분쟁 속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뉴진스 다섯 멤버는 '어른들 싸움에 피해 입은 아이들'로 묘사되었다.
화제의 기자 회견 이후 공개된 뉴진스의 '버블검' 뮤직비디오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려 있다.
"아빠의 심정으로 지켜주고 싶네요. 어른들의 욕심에 상처받지 않기를."
아이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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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진스의 멤버 하니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김주영 어도어 대표의 답변을 듣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어른들이 미안해, 어른들이 지켜줄게'라는 말에는 '아이들'을 스스로의 의사나 의지를 갖지 못한 채 그저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 여기에 주체적인 존재로서의 아이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하니가 국정감사에 출석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이슈화될지 걱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다. 아이돌이 소속사로부터 통제받지 않은 공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어도어의 민희진 전 대표가 해임된 후인 지난 9월 뉴진스 멤버들이 진행한 긴급 라이브 방송은 방송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돌연 삭제되었다. 뉴진스는 이 방송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로 어도어의 모회사인 하이브와의 갈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킬 것을 요구했다. 하니가 하이브의 다른 연예인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다고 폭로한 것도 이 방송을 통해서였다.
아이돌들은 대부분 소속사의 관리를 받는 상황에서 발언하고 행동한다. 소속사의 리스크 관리 차원이다. 아마도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아이돌이 소속사의 승인 없이 라이브 방송을 하거나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도어가 '비정상화'된 상황에서야 뉴진스 멤버들은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됐다.
국회에 출석한 하니는 하이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증언하면서 "제가 여기에 나오지 않으면 조용히 넘어가고 묻힐 거라는 걸 아니까 나왔다"라면서 "앞으로 이 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 선배, 후배, 동기, 연습생들도 이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아티스트들과 연습생들의 계약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다르지 않은 점은 우리는 다 인간"이라면서 "서로 인간으로 존중하면 적어도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 문제는 없지 않을까 싶다"라고 강조했다.
하니의 국감 출석은 법의 테두리에서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필요성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등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850만 명에 육박한다"라면서 "오늘 증인 신문은 최근 발생한 사건을 통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루기 위한 것"이라고 하니에게 출석 요청한 배경을 설명했다.
인간으로서의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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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L 코리아'는 지난 19일 공개된 시즌6 8회에서 최근 화제가 된 하니의 국정감사 참고인 조사 장면을 다뤘다. |
ⓒ 쿠팡플레이 |
하지만 국정감사 내용을 놓고 보면 사실 아쉬운 측면이 많다. 김주영 어도어 현 대표는 하니의 문제제기에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고,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실체적인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의원들은 인증샷을 찍기에 바빴고, 하니가 의원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자 국감장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툰 한국말을 구사하는 외국인 여성 아이돌의 발언은 전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설적인 것은 하니는 국감에서 시종일관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말했다는 것이다.
언론 역시 가십을 다루기에 급급했다. 그날 국감에서 노동자성은 급여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거듭 나왔음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하니의 수입을 언급하면서 '52억 외노자'라는 혐오 표현을 기사 타이틀에 버젓이 썼다. 하니가 입은 옷의 가격이 얼마인지에 초점을 맞춘 기사도 있었다.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다.
촌극의 정점은 쿠팡 플레이 오리지널 'SNL 코리아'가 찍었다. 19일 공개된 SNL 코리아 시즌6 '김의성 편'에서 지예은은 하니가 일본 팬미팅에서 '푸른 산호초'를 부를 때 입었던 의상을 따라 입고 하니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희화화했다. 이에 뉴진스 팬덤은 "하니가 베트남계 호주인이라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서툰 한국어를 과장하여 묘사하는 것은 명백한 인종차별로 판단된다"라며 국민신문고를 통해 SNL 코리아를 고발했다.
'SNL 코리아'를 보면서 화가 났던 것은 한국어 발음 희화화만이 아니었다. SNL에서 묘사하는 '하니'는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어떤지도 전혀 모르는 무력하고 무지한 존재처럼 보인다. 그들의 패러디에는 하니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왜 국정감사라는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나 고민도 없다. 이는 실제로 국회 안팎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SNL 코리아'의 가장 큰 잘못은 현실을 너무나 게으르게 재현했다는 데 있다.
하니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무해하다'라는 말이 감추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외국인 아이돌의 서툰 한국말이 사랑스러운 것은 그가 순수한 존재로만 남았을 때뿐이다. 외국인 아이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주장했을 때는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어디 외노자가 감히'라는 손가락질이 따라온다. '우쭈쭈'하던 어린 여성이 귀여운 존재가 되기를 거부했을 때 우습게 여기거나 '되바라졌다'라고 욕을 먹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돌들도 비슷한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용기를 낸 하니의 진심이 왜 조롱을 당하고 희화화가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니는 1시간 가까이 이어진 증언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자신은 "한국에서 너무 사랑하고 가족같이 생각하는 멤버들과 직원들을 만났고" "한국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나라"라고. "만약에 다시 또 나와야 한다면 한국어 공부 더 열심히 해서 나오겠"다라고. 부끄러움은 왜 늘 다른 사람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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