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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20266
    작성자 : 손떨림방지
    추천 : 18
    조회수 : 2339
    IP : 61.255.***.94
    댓글 : 45개
    등록시간 : 2015/04/05 15:30:00
    http://todayhumor.com/?history_20266 모바일
    나는 차가운 조선 군주, 하지만 내 여동생에겐 따뜻하겠지.
    ※ 실제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쨌든 비전문가가 서술한 자료입니다. 재미로만 읽어 주세요.
     
     
     
    오랜 통치 기간 동안 두 번의 환국으로 조정을 까뒤집으며(?) 절대 왕권을 구축했던 철혈군주 숙종.
    하지만 그런 그를 살살 녹이던 마성의 여인(희빈 장씨 아님)이 있었으니,
    바로 왕의 막내 여동생이었던 명안공주(明安公主) 되시겠습니다.
     
     
     
    1. 명안공주는 어떻게 왕실의 귀요미가 되었나
     
    선대 왕 현종에게는 훗날 숙종이 되는 왕세자 이외에 3명의 공주가 더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명성왕후 김씨의 소생(현종은 후궁을 두지 않았음)으로, 차례로 명선공주(明善公主)와 명혜공주(明惠公主),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명안공주입니다.
    명선공주는 왕세자보다 1년 일찍 태어난 누나, 나머지 두 공주는 손아랫누이들이였죠.
     
    보시다시피 명안공주는 현종 패밀리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원래 막내딸이란 그냥 있기만 해도 집안의 귀여움을 다 독차지하는 포지션인데, 거기에 명안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다고 합니다.
     
    AKR20121231061300005_02_i_59_20121231105706.jpg
     
    관련 유물 중에는 명성왕후가 공주에게 쓴 신년 덕담 편지가 있는데요,
    '새해부터는 무병장수하고 재치기 한 번도 아니하고 푸르던 것도 없고 숨도 무궁히 평안하여 달음질하고 날래게 뛰어다니며 잘 지낸다 하니 헤아릴 수 없이 치하한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 아가 아프던 게 싹 나았다니 정말 기특하다'는 내용.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새해 덕담을 할 때는 소망하는 바를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하는 풍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편지에 쓴 글은 현실과는 사실 반대의 내용이고, 바꿔 말하자면 '우리 공주는 아직 아픔'...ㅠㅠ
     
    병약한 막내딸, 혹은 막냇동생에게 쏟아졌을 가족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대충 상상이 가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현종 패밀리에게는 이것보다 더욱 끔찍한 비극이 닥쳐오게 되는데요.
     
    조선 왕실의 공주들은 대체적으로 14살 전후에 부마를 정하고 혼례를 올립니다.
    이것은 현종의 공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현종 14년, 왕실에서는 명선공주와 명혜공주를 한꺼번에 시집 보내려 합니다.
    그래서 부마도 정하고 날도 잡고 육례 준비도 하고.... 하던 어느 날.
     
    4월에 명혜공주가 갑자기 사망하더니, 8월에는 명선공주까지 세상을 뜨게 됩니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명선공주가 죽기 며칠 전 실록에 '명선공주가 천연두를 앓아 상이 경덕궁으로 이어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마도 천연두가 공주의 목숨을 앗은 원흉이었겠지요.
     
    결혼을 앞둔 두 딸이 한꺼번에 절명한 참사는 현종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이 사건 이후로 현종은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더니 이듬해에 딸들 따라 세상을 뜨고 맙니다.
     
    예비신부 누이들이 갑자기 다 죽어버리고,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어린 나이에 갑자기 왕위를 떠안게 되었는데,
    올라와 보니 할배뻘인 신하들과 기싸움을 해야 할 판.
     
    이것이 모두 요즘으로 치면 초중딩 정도 나이였던 숙종이 2년 동안 겪은 일임;;;
    그리고 곁에 남은 동복이란 막내 명안공주 뿐.
     
    그렇게 운명이 숙종을 여동생바보로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2. 짐의 누이가 이리 사랑호울리가 없소
     
    그래도 오빠 숙종이 지극정성으로 돌본 덕인지, 명안공주는 언니들과 달리 장성하여 16세에 무사히 시집을 가게 됩니다.
     
    실록에 따르면 혼례는 숙종 6년, 2월 18일에 치루어졌습니다.
    물론 애지중지하던 동생 결혼식을 그냥 지나칠 오빠가 아닙니다.
    이날 기사에는 '명안공주의 혼례를 행하였다. 승지를 보내 술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보통 실록에서는 공주의 혼례 이야기를 '00공주의 가례를 검소하게 행하다'라는 식으로 간단하게 적어놓곤 하는데, 이쪽 기록은 좀 다르지요?
     
    참고로 당시 술은 결코 가벼운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청주 계열의 전통주 주조법이 양반가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맑은 술은 당시로선 고급품이었습니다.
    귀하디귀한 곡식을 아주 많이 들여 만드는 기호품이라 흉년이 들면 제일 먼저 금지되는 사치품이였죠.
     
    그런 물건을 승지를 시켜 식장에 퀵으로 배달까지 시켜주는 오빠의 배포bbbbb
    사실 세대를 거치며 공주나 왕자의 혼례를 계속 간소화해 나가던 당시 왕실 풍속과는 좀 어긋난 행동이긴 합니다.
    하지만 숙종의 통 큰 결혼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 검소 따윈 개나 줘;;
     
    공주가 결혼하여 하가를 하면 으레 왕실에서 공주궁이라 하여 신혼집을 따로 지어 줍니다.
    숙종도 여동생에게 집을 지어주려 땅을 마련했는데, 집터를 측량해보니 1826간.... 보통 공주궁이 1200간에서 1600간 정도인데 1826간;;;;;
    당연히 신하들이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당시 공주궁 공사 관련해서 오간 이야기를 대강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숙종 6년 6월 20일
    민유중(호조판서, 훗날 숙종의 장인) : 지금 다른 공사도 있는데 공주마마 댁 공사는 가을로 미루시지요?
    숙종 : 올해가 길년이래서 터만 닦을거요 터만ㅡㅡ
    민유중 : 이번 공주궁 공사가 제도에 벗어날 정도로 너무 크고 사치스럽사옵니다. 잘못하면 욕 먹습니다.
    숙종 : 아 내가 알아서 하겠소ㅡㅡ
     
    * 숙종 6년 7월 1일
    호조 : 즈어어어언하 저희가 공주궁 집터를 측량해보니 어마무시합니다 무려 1826간ㄷㄷㄷ
    선대에 정한 법도는 1600간이거늘, 마땅히 줄여야 하옵니다!
    숙종 : ...알겠소 줄이시오ㅡㅡ
     
    * 숙종 6년 7월 28일
    사헌부 : 즈어어어어언하 공주마마 집터를 더 줄이시고 비용을 간략하게 하시옵소서!
    숙종 : (무시)
     
    명안공주 신혼집을 사이에 둔 숙종과 신하들과의 줄다리기는 여러 번 계속됩니다.
    결국 대신들이 간한 대로 공주의 집터는 줄이는 걸로 결론이 났지만, 이 떡밥은 정말 오래오래 살아남아 숙종과 신하들을 괴롭히게 되지요.
    동생네 집 공사현장에 추가 공사비 대 주다가 걸리고, 군인들을 신혼집 공사에 동원하겠다고 고집부리다 승정원이랑 싸우고....
    대동법과 주전 확대 등 민생에 관한 많은 업적을 남긴 군주였지만, 여동생과 연관된 일에선 은근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경향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밖에도 실록에 기록된 건 중국에서 들어온 패물 이야기인데, 
    으레 사신단이 중국을 갔다 돌아올 때는 비단과 은 같은 귀중품을 받아와 왕에게 진상을 올리곤 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왕들은 은자는 따로 나라 살림에 보태 쓰고, 비단은 후궁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요.
    하지만 숙종이 누구입니까? 후궁의 환심 따위 먼저 구걸하지 않는 차가운 한양 남자ㅇㅅaㅇ
    그리고 이 비단은 당연한 듯 여동생 몫으로 갔습니다;;; (* 숙종 10년 3월 15일 : 청주가 보낸 은과 비단을 유사와 명안 공주에게 내리다)
     
    또 야사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명안공주 : 오라버니
    숙종 : ㅇㅇ?
    명안공주 : 저 땅 좀 주시면 안 되나여?
    숙종 : (마침 하늘을 빙빙 돌던 솔개를 가리키며) 그럼 쟤가 그리는 원 아래로 다 네 땅ㅋ
    명안공주 : (꺄르륵)
     
    역시 조선 최대 스케일의 여동생바보ㄷㄷㄷ 
     
     
     
    3. 결말
     
    그렇게 임금님과 공주님 오누이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결말은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명안공주는 오래 살지 못하고 결국 숙종 13년에 23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녀는 남편 오태주와의 사이에서 아이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부마의 재혼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훗날 오태주는 양자를 들여서 가문을 이어나갑니다.)
    그리고 여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숙종은 큰 슬픔에 빠집니다.
     
    실록에는 명안공주의 졸기 이후 숙종의 행보가 꽤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소식을 들은 날 숙종은 상복을 입고 공주의 장례를 시급히 지원할 것을 전교한 후, 바로 다음날 공주의 집으로 문상을 갑니다.
    이때 대신들은 아직 입관도 못하고 빈소도 차리지 않은 때에 가는 것은 마땅치 않다며 문상을 말리지만, 숙종은 이를 모두 뿌리치고 달려갑니다.
    그리고 공주의 집에서 '슬픔이 다 할 때까지 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10일 동안 소선(수랏상에 고기와 생선을 올리지 아니함)을 명했으나 약방에서 건강 상의 이유로 극구 말리는 바람에 4일로 줄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묘지에 쓸 석물을 급히 떠 오려다 승정원이랑 의견 충돌을 겪거나,
    동생 장지를 최대한 가까운 데 쓰려고 금표(조선식 그린벨트) 안에 잡다가 대신들과 싸운 건 덤. (결국 빡빡 우겨서 경기도 광주에 장사지냄)
     
    여튼 그렇게 숙종의 여동생 사랑은 새드앤딩으로 끝나고 맙니다.
    모친(숙종 9년 사망)에 이어 여동생까지 보내고, 혼자 남은 숙종의 행보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중전 환승과 환국 이러쿵저러쿵 복잡한 사정들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숙종은 부왕의 성묘를 다녀오던 길에 뜻밖의 냥줍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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