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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2022571
    작성자 : 하쿠오로
    추천 : 13
    조회수 : 2482
    IP : 218.50.***.145
    댓글 : 9개
    등록시간 : 2024/08/08 10:39:57
    http://todayhumor.com/?humordata_2022571 모바일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폭로한 환곡 운영의 충격적 실태
    조선 시대의 환곡은 국가가 백성들에게 식량을 빌려주고, 추수 후 이를 상환하게 한 제도입니다. 식량이 부족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농업 생산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도입된 일종의 복지 제도입니다. 원래는 무이자로 빌려주었는데요. 관청의 환곡 창고에 쌀을 보관하다 보면 아무래도 쥐가 파먹거나 썩어서 축나는 양이 있으니, 나중에는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10% 이자를 받았습니다. 축난 환곡을 보충하는 데 사용하고 남은 이자는 부족한 국가 재정에 보탰죠. 취지대로만 운영됐다면 백성들에게 제법 도움이 되는 제도였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곡 제도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변질되었습니다. 환곡 이자가 국가 재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모두 이자에 의존하는 정도가 점점 커졌습니다. 환곡 이자가 일종의 세금처럼 기능하게 된 것이죠. 부패한 관리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갖은 농간을 부리니 환곡은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기근을 구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백성들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며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환곡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지식인들조차 그 실태는 제대로 모른다고 정약용은 한탄합니다.

    “오늘날 환곡의 폐단을 논하는 사대부들은 현실을 모른다. 그저 백성들이 봄에 빌릴 때는 거친 양곡으로 조금 받고 가을에 갚을 때는 좋은 양곡으로 많이 내야 해서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전이 밤에 몰래 창고 문을 열고 양곡을 직접 짊어지고 자기 집에 가져가는 정도로 인식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미행한답시고 창고를 감시하는 수령들이 많다. 아! 이 얼마나 실상과 거리가 먼가. 본디 한 톨의 양곡도 백성들에게 나눠 준 적이 없는데 해마다 한 호戶당 10석씩을 거저 바치는 것이 현실이다. 슬프다! 백성들이 잠깐이나마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들 가능하겠는가.”

    앞서 말했듯이 환곡 이자가 국가 재정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중앙정부와 지방 정부 모두 이자에 재정을 의존하는 정도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 이자가 일종의 세금처럼 기능하게 된 것이죠. 부정부패에 능숙한 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습니다.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농간을 부리니 그 폐단은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습니다. 정약용은 지위가 높은 관찰사에서 수령, 아전까지 내려가며 그들이 환곡으로 저지르는 부정행위의 양상을 조목조목 짚어 내는데요.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관찰사의 이무移貿

    먼저 관찰사입니다. 관찰사는 이무移貿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데, 이무는 옮길 이移에 무역할 무貿 자를 합친 것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자, 관찰사가 고을 수령들에게 매달 물가를 보고하라고 지시합니다. 고을마다 물가가 정확히 같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고을은 쌀값이 쌀 수도 있겠고, 어떤 고을은 비쌀 수도 있겠죠. 이렇게 고을마다 쌀값이 다른 상황을 활용해 차익을 실현하는 행위를 ‘이무’라 합니다.

    가령 A 고을은 벼 1석이 100만 원인데 B 고을은 200만 원입니다. 관찰사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B 고을의 벼 100석을 시장에 내놓게 합니다. 1석에 200만 원이니 전부 내다 팔면 2억 원이 생기지요. 그런 다음 이 돈의 절반인 1억 원으로 A 고을에서 벼 100석을 구입해 B 고을 창고에 채워 넣습니다. 벼는 그대로인데 차액 1억 원이 생긴 셈이죠. 이것을 관찰사가 제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겁니다. 정약용은 말합니다.

    “관찰사의 녹봉이 본래 박하지 않은데도 장사꾼 노릇을 하여 백성의 기름을 짜내고 나라의 명맥을 상하게 만드니 다른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한 해에 100만 냥이나 1,000만 냥의 돈을 축재하면서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쌀을 파는 고을에서는 값을 올려 돈을 걷고, 쌀을 사는 고을에서는 값을 낮춰 돈을 푸니 백성의 피해가 어찌 이에 그치겠는가?”

    한편, 쌀값을 보고하는 수령은 관찰사의 비위를 맞추려 듭니다. 관찰사가 자신을 평가하는 위치에 있으니 알아서 기는 것이죠. 어떤 식이냐 하면, 관찰사가 곡식을 사고팔아 돈을 마련하려는 고을에서 수령이 눈치껏 가격을 조정해 보고하는 겁니다. 앞서 B 고을에서 벼 1석에 200만 원이라는 예를 들었는데, 눈치를 본 B 고을 수령이 1석에 220만 원이라고 보고하는 것이죠. 반면 A 고을은 벼 1석에 100만 원인데, 마찬가지로 눈치를 본 A 고을 수령이 1석에 80만 원이라고 보고합니다. 그리고 관찰사가 실제로 쌀을 사고팔 때 수령들이 자진해서 그 가격에 맞춰 주지요.

    재테크는 원래 그런 식으로 하는 것 아니냐고, 쌀만 제대로 채워 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관찰사는 개인이 아니라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입니다. 만약 대통령이나 장관이 국가 재정 일부를 사적으로 가져다가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한 후에 차액을 챙기고 나서 원금을 고스란히 채워 넣으면 문제가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죠. 사적으로 전용한 것 자체가 범죄입니다. 개인의 재산 축적을 위해 공적 기금을 마음대로 갖다 쓰는 것은 공직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이 맑을 리 없습니다. 관찰사가 크게 도둑질하니 수령들도 자신들의 체급에 맞는 도둑질에 나섭니다. 정약용은 수령의 농간질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데요. 그중 몇 가지를 간략하게 다뤄 보겠습니다.

    수령의 가분加分

    우선 ‘가분加分’부터 살펴보죠. 더할 가加, 나눌 분分인데요. 뭘 더 나눠 준다는 걸까요? 앞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받을 때 추가로 이자 10%를 받는다고 이야기했지요. 이때 농간을 부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받는 이자가 많아질수록 좋을 겁니다. 챙길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더 커지니까요. 그렇다면 질문. 이자를 더 많이 걷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곡식을 더 많이 빌려줘야겠지요. 1,000석을 빌려주면 이자가 100석이지만 2,000석을 빌려주면 이자가 200석이 되니까요. 요컨대 ‘가분’은 환곡을 더 많이 나눠 줌으로써 불어난 이자를 도둑질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본래 법에는 환곡 창고에 저장해 둔 쌀 중 절반 정도만 빌려주고 절반은 남겨 두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유사시에는 환곡이 군량미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령들은 장부에 쌀이 남아 있는 것처럼 꾸며 놓고서는 사실상 거의 다 빌려주기 일쑤였죠. 어차피 환곡은 나중에 반환될 테니, 그때 창고를 채워 두면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게 법이 정해 놓은 선을 무시하면서까지 추가로 얻은 이자를 착복해 이득을 취했습니다.

    수령의 번질反作

    두 번째는 ‘번질反作’입니다(反作 은 이두 표기이며 ‘번질’로 읽습니다). 환곡이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용도로 활용됨에 따라 백성들에게 환곡을 강제 할당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딱히 사정이 어렵지 않아 곡식을 빌릴 필요가 없는데도 관아에서 무조건 빌려야 한다고 떠미는 겁니다. 이자를 받아야 재정을 충당할 수 있으니까요. 상황이 이러하니 환곡 제도를 운영한답시고 봄에 쌀을 빌려주었다가 추수 후에 돌려받는 것 자체가 일종의 요식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곡식을 나눠 주거나 돌려받는 번거로운 절차를 행하느니 차라리 이자만 세금처럼 내는 게 편한 거죠. 어차피 환곡의 진짜 목적은 백성 구제가 아닌 이자 수입이 되어 버린 상황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수령은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받은 것처럼 장부에 허위로 기록하고서 실제로는 이자만 받아 챙깁니다. 한편 창고에 있는 쌀은 그대로 방치됩니다. 환곡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면 창고에서 묵은쌀이 나가고 햅쌀이 들어올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결국 창고에 있던 묵은쌀은 썩어 버리고 군량미로 비축하던 의미도 없어집니다.

    수령의 입본立本

    세 번째는 ‘입본立本’입니다. 세울 입立에 근본 본本을 썼는데요, 본전을 채워 넣는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공적 재물을 관찰사나 수령이 임의로 활용해서 차익을 실현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어기면 처벌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으면, 공적 재물을 운용하여 얻은 이익으로 빈민 구제나 산성 수리 등 공적 사업의 재원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쓴 액수만 다시 채워 넣으면, 다시 말해 ‘입본’하면 되는 거였죠. 하지만 부패한 수령들은 이런 규정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합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가령 올해 가을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농민이 관아에 갚아야 할 환곡이 벼(찧지 않은 쌀) 1석인데 마침 시장 가격이 2냥입니다. 수령이 환곡 1석에 2냥으로 쳐서, 쌀이 아닌 돈으로 걷겠다고 합니다. 농민도 번거롭게 멀리 있는 창고까지 쌀을 운송하느니 돈으로 내는 게 편해서 흔쾌히 응합니다. 이윽고 이듬해 봄이 되어 쌀이 떨어지고 백성들이 굶주립니다. 환곡이 필요한 시기죠. 이때 수령이 말합니다.

    “이번 가을에 풍년이 예상되지 않느냐. 그때가 되면 벼 1석에 1냥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냥 돈 1냥을 받아서 사용해라. 나중에 추수한 후 환곡을 갚을 땐 수확한 벼로 바치면 좋지 않겠느냐.”

    이 말에 백성들은 반기며 따릅니다. 환곡 창고에서 쌀을 운송해 오는 일도 불편하거니와 창고에 있는 쌀은 대체로 여러 해 묵어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아에서는 2냥을 받고 1냥을 내줬으니, 가만히 앉아 환곡 1석당 1냥씩 챙긴 겁니다. 1,000석이면 1,000냥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백성들은 2냥 손해를 보는 거라고 정약용은 말합니다. 흉년이 든 가을에 벼 1석이 2냥이라면, 이듬해 봄에는 쌀이 더욱 귀해져 1석에 3냥으로 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규정에 따라 봄에 품질 좋은 쌀 1석을 받는다면 3냥의 가치가 있는 것인데, 돈 1냥만 달랑 받으니 사실상 2냥을 잃은 셈이라는 얘기죠. 이러고도 또 가을이 되면 쌀 1석을 바치고서는 이듬해 봄이 되면 여러 해 묵어 모래알 같은 쌀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게 됩니다.

    수령의 증고增估

    ‘증고增估’라 불리는 꼼수도 있습니다. 더할 증增, 가격 고估 자를 썼으니 가격을 올린다는 뜻인데요. 관찰사가 수령에게 환곡을 곡식이 아닌 돈으로 걷으라고 지시합니다. 통상적으로 법에서 정한 가격은 쌀 1석에 3냥, 벼 1석에 1냥 2전입니다. 농민이 쌀 1석을 반납해야 한다면 대신 돈 3냥을 받고, 벼 1석을 반납해야 한다면 1냥 2전을 받으라는 얘기죠.

    그런데 어떤 고을의 시장 가격은 쌀 1석에 5냥이고 벼 1석에 2냥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수령은 백성들에게 법에서 정한 가격이 아니라 시장 가격으로 돈을 걷습니다. 쌀 1석은 5냥을 받고 벼 1석은 2냥을 받는 거죠. 그러고서 관찰사에게는 법에서 정한 대로 쌀 1석은 3냥, 벼 1석은 1냥 2전으로 계산해 바칩니다. 그러면 돈이 남겠지요? 그것을 수령이 챙기는 겁니다. 이를 가리켜 ‘증고’라 합니다. 만약 관찰사가 그런 사정을 알아채고 법에서 정한 가격이 아닌 시장 가격으로 걷어 자신에게 올리라고 한다면? 수령은 차액을 한 푼도 못 먹고 관찰사가 모두 꿀꺽하게 되는 거죠.

    수령의 가집加執

    마지막은 ‘가집加執’입니다. 더할 가加, 가질 집執. 뭘 더 가진다는 얘기일까요? 증고를 설명하면서 관찰사가 수령에게 환곡을 돈으로 거두라고 명령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지요. 이번에는 관찰사가 수령에게 2,000석을 돈으로 걷게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수령이 여기에 2,000석을 더해 총 4,000석을 쌀 대신 돈으로 징수합니다. 그러고는 관찰사에게 바치는 2,000석에서도, 추가로 거둔 2,000석에서도 차액을 취하는 겁니다.

    앞서 시장 가격은 1석에 5냥이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거둘 때는 5냥으로 쳤다가 이듬해 봄이 되어 환곡을 백성들에게 나눠 줄 때는 쌀 1석에 3냥으로 칩니다. 법에서 정한 가격이 그러하니까요. 그러면 1석마다 2냥이 남으니 그 이익이 8,000냥에 이릅니다. 다시 가을이 되어 추수 후에 환곡을 상환받아 창고에 채워 넣으면 상황 끝입니다.

    지금까지 환곡 과정에서 수령이 저지르는 농간 여섯 가지 중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수령도 마음먹으면 횡령하기 쉬운 자리지요? 이제 수령보다 더 아래로 내려와, 환곡 과정에서 아전들이 부리는 농간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정약용은 무려 열두 가지에 이르는 방법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하는데요. 여기서는 그중 환곡의 폐단을 명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사례만 소개하겠습니다.

    아전의 번질反作

    첫 번째는 ‘번질反作’입니다. 이미 본 단어지요? 앞에서 번질은 수령이 환곡을 강제로 할당하는 것을 뜻했죠. 하지만 수령의 번질과 아전의 번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전의 번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에 백성들로부터 환곡을 거둘 때, 담당 아전이 이를 횡령합니다. 환곡 창고가 아닌 아전 개인의 곳간으로 들어가는 거죠. 연말이 되면 환곡 거두는 일을 마무리하는데, 이때 아전 우두머리가 수령에게 말합니다.

    “아무개 아전이 환곡으로 거둔 500석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모양입니다. 당장 채워 넣으라고 했는데도 나올 구석이 없나 봅니다. 만약 이것을 공개적으로 잡아내면 우리 관아가 환곡 수납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드러나게 됩니다. 사또(수령)도 아시다시피 환곡 수납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저희뿐만 아니라 사또도 관찰사에게 끌려가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 문서에는 환곡 수납을 잘 마무리한 것으로 작성해 관찰사에게 보고하고 저희가 내부적으로 천천히 수습하면 별일이 없을 것입니다.”

    수령은 이 말을 충직한 조언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따르니, 바로 이것이 매해 번질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아전 우두머리가 정말로 충직한 인물이었다면 애초에 아전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감독했겠지요. 사실은 한통속인 겁니다. 사정이 드러나면 수령도 처벌받을 테니 번질을 저지른 아전을 공개적으로 잡아다 벌주기도 어렵지요. 이런 약점을 파고든 수법입니다.

    아전의 탄정呑停

    두 번째 농간은 ‘탄정呑停’이라 하는데, 정약용은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원통한 일이라 평할 정도입니다. 심한 흉년이 든 해에는 대개 연말이 되면 환곡 갚는 기한을 미루라는 중앙정부의 명령이 내려옵니다. 환곡 상환일을 미루라는 명령을 정퇴停退라 합니다. 멈출 정停, 물러날 퇴退이니 환곡 갚는 일을 멈추고 물러나라는 의미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시차입니다. 지방 관아에서 환곡을 환수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정부가 정퇴를 내리는 시기보다 많이 앞서는데요. 교활한 아전들은 이 시차를 이용해 이득을 챙깁니다.

    이런 식입니다. 심한 흉년이 들어 정퇴가 내려오겠다는 예측이 서면 아전들은 농민들에게서 환곡을 거둬들이는 일을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진행합니다. 흉년이 들었으니 그러잖아도 힘든 농민들을 닦달하고, 협박하고, 매질하면서 가혹하게 거둡니다. 그런 식으로 정퇴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 환곡을 다 거두고는 그중 일부를 아전들이 횡령합니다. 예상대로 중앙정부에서 정퇴가 내려오면, 아전은 조작된 장부를 수령에게 보여 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흉년이 들어 환곡 거두는 것이 쉽지 않아 아직 이만큼이나 못 거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정퇴령이 떨어져 우리 고을은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령은 벼슬살이 운이 좋다고 기뻐하며 아전이 하자는 대로 따릅니다. 사실 아전들은 환곡을 이미 다 거둔 상태지요. 그러고는 장부에 흉년 때문에 거두지 못했다고 기록한 곡식을 빼돌리는 겁니다. 중앙정부에서는 백성들을 위해 정퇴령을 내렸건만, 정작 어려운 백성들은 쌀 한 톨만큼의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이제 ‘탄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킬 탄呑에 정퇴의 정停 자를 붙이니, 정퇴를 삼킨다는 뜻이 되지요. 덧붙여 중앙정부에서 정퇴령을 내릴 때는 고을마다 등급을 매겨 상환을 미루는 환곡 양에 차등을 두었습니다. 1등급은 하나도 미뤄 주지 않고, 2등급은 4분의 1을, 3등급은 3분의 1을 미뤄 주고, 흉년 피해가 가장 심한 4등급은 절반을 미뤄 주었습니다. 물론, 아전들은 자기 고을이 몇 등급이 될지 알기 때문에 미뤄지리라 예상되는 양만큼 미리 빼돌리는 것이죠.

    만약 중앙정부의 정퇴령이 예상보다 일찍 내려온다? 그렇다 해도 아전에게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아전은 수령에게 은밀히 제안합니다.

    “농민들 상황을 보니 흉년인 것치고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퇴령이 내린 것이 알려지면 충분히 상환할 수 있는 농민들도 바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칫하다가는 내년 봄이 됐을 때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눠 줄 환곡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정퇴령이 내렸음을 알리지 말고 최대한 독촉해서 거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령이 이에 동의하면, 아전은 닦달하고 매질하여 환곡을 다 거둔 뒤에 그제야 정퇴령이 내렸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고는 중앙정부에서 상환을 미뤄 준 양만큼을 빼돌려 쌀값이 비쌀 때 시장에 내다 팝니다. 이듬해 봄이 되어 백성들에게 환곡을 나눠 주는 시기가 오면, 횡령한 돈 일부를 이용해 환곡 대신 돈으로 줍니다. 차액은 온전히 수령과 아전의 몫이지요.

    이렇게 상환이 미뤄진 환곡은 해를 넘기다 나라에 큰 경사가 생기면 중앙정부에서 탕감 명령을 내립니다. 어렵고 힘든 백성들을 위해 탕감하는 것인데, 결국 아전의 횡령이 탕감받는 결과가 됩니다. 기가 막힌 노릇이지요.

    아전의 분석分石

    ‘분석分石’이라는 농간도 있습니다. 나눌 분分에 쌀 한 석 두 석 할 때의 석石 자입니다. 쌀 1석을 나눈다는 의미죠. 분석을 설명하면서 정약용은 자신이 강진에 유배를 와 잠시 읍내 주막에 머물렀을 때의 일화를 이야기합니다. 마침 주모가 벼를 키질하고 있었는데, 겨와 쭉정이를 따로 모아 한데 쌓아 두더랍니다. 무엇에 쓸 것이냐 물었더니 주모가 대답합니다.

    “곡물 창고를 담당하는 아전이 민가에 미리 돈을 나눠 주고 겨와 쭉정이를 거두어 갑니다. 어디에 쓰는지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서는 낄낄 웃더라는 겁니다. 환곡을 거두어들이는 날에 아전은 이렇게 모은 겨와 쭉정이를 일단 환곡 창고에 넣어 둡니다. 밤이 되면 촛불을 들고 다시 창고로 갑니다. 그러고는 곡식을 꺼내 거기에 겨와 쭉정이를 섞습니다. 이렇게 1석을 2석으로 만들고, 심하면 3석이나 4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겨와 쭉정이를 섞은 것으로 원래 석 수를 채워 놓곤 멀쩡한 곡식으로 이루어진 석을 훔쳐 자기 집에 가져가는 거죠. 이것이 바로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런 짓은 좀도둑이나 하는 농간이고, 큰 도둑놈들은 온전한 알곡을 석째로 팔아 차액을 챙기는 입본을 한다고 정약용은 말합니다.

    아전의 반백半白

    다음은 ‘반백半白’입니다. 익숙한 글자지요? 절반 반半, 흰 백白인데 무슨 의미일까요? 봄에 환곡을 나눠 주는 시기가 되면 아전은 마을 유지를 불러 살살 꼬드깁니다.

    “너희 마을이 이번 봄에 받아야 할 환곡은 40석인데 창고에서 썩어나고 겨와 쭉정이가 섞여 있어 실제로 받아 키질하면 20석이 못 될 것이다. 게다가 그 곡식을 받으려고 왔다 갔다 하려면 이틀이나 일을 못 하지 않느냐. 환곡 나눠 주는 데 드는 이런저런 비용도 너희가 부담해야 하니, 도대체 너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나에게 좋은 방책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보겠느냐?”

    “뭡니까? 하라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내가 마침 춘궁기여서 사정이 어렵구나. 그러니 일단 너희들이 받기로 되어 있는 환곡 40석을 나한테 주면 내가 그것으로 어떻게든 춘궁기를 버텨 내고, 가을이 되어서 너희가 환곡 40석을 갚아야 할 때 내가 그 절반인 20석을 대신 부담하면 어떻겠느냐. 생각해 봐라. 만약 이번에 너희가 직접 와서 40석을 받아 가면 그게 실제로는 20석도 안 되는 데다 환곡 나눠 주는 데 드는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는 가을에 40석을 갚아야 하는데 그중 절반인 20석을 내가 대신 갚아 주면 결국 너에게도 이득이 아니냐. 이자도 내가 다 부담하겠다.”

    “좋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마을 열 곳과 계약을 하면 한 마을당 40석씩 총 400석의 환곡을 아전이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아전은 환곡 창고를 열어 알차고 상태 좋은 곡식만을 골라 200석을 가지고 나옵니다. 나머지 200석은 어차피 가을에 갚아야 할 분량이니 창고에 그대로 두고요. 미리 갚은 셈 치는 거죠.

    이윽고 환곡을 반납해야 하는 가을이 옵니다. 아전은 이미 200석을 갚은 상태이니 400석에 대한 이자 10%인 40석만 채워 넣는데, 이 40석도 실상은 곡식 10여 석에 겨와 쭉정이를 잔뜩 섞어 양을 불린 겁니다. 마을 열 곳의 백성들은 봄에 쌀 한 톨 받은 것이 없는데도 가을에 200석을 마련하여 창고에 바칩니다. 아전은 440석을 제대로 반납했다는 증서를 백성들에게 나눠 줍니다. 가엾은 백성들은 말합니다.

    “어르신의 신실함은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내년에도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반백’입니다. 정약용은 개탄합니다.

    “(한 고을에) 아전으로서 이런 일을 하는 자가 대여섯 명이고, 한 명이 400~500석, 많은 경우에는 600~700석을 가져간다. 이런 방법이 나온 것은 10여 년이 안 되었건만 처음에는 몇 고을에서만 행해지다가 지금은 한 도에 두루 퍼졌다. 아아! 폐단이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재상과 관찰사는 팔짱을 낀 채 뻔히 보면서도 바로잡지 않으니 장차 어찌할 것인가.”

    정약용은 강진에 귀양 와서 10년을 지내는 동안 환곡 창고로 드나드는 길을 살펴보았으나 곡식을 받아 지나가는 백성을 본 적이 없다고 술회합니다. 받는 건 없고 갖다 바치기만 하는 셈이죠. 정약용은 이것이 무슨 환곡이느냐고, ‘환還’이라는 건 되돌린다는 뜻이며 갚는다는 뜻인데 가져가지 않았으면 되돌릴 것도, 갚아야 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쓴 임승수라고 합니다. 긴 글인데 마지막까지 시간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서 읽으신 글은 이번에 제가 출간한 <목민심서 한번 읽어 보지 않겠는가>라는 책의 일부 내용입니다. 경제 불황으로 인해 워낙 출판 시장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저자라도 직접 나서서 알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목민심서 한번 읽어 보지 않겠는가_표1.jpg


    인터넷서점에서 '목민심서'로 검색하니 200개가 훌쩍 넘는 관련 도서 목록이 쏟아집니다. 이번 제 신작 <목민심서 한번 읽어 보지 않겠는가>가 200분의 1도 안 되는 좁은 문을 뚫고 독자에게 가 닿을 방법은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는데요. 결국 이 책의 독자적인 가치를 설명드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이르렀습니다.

    『목민심서』 원문 목차를 보면 12편(부임, 율기, 봉공, 애민,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 진황, 해관)에, 각 편은 다시 6조로 나뉘어서 총 72조에 달하는 방대한 구성입니다. 다른 목민심서 해설서들을 보면 대체로 12편을 전부 다루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목민심서 전체 내용을 개괄적으로 다루는 게 목표라면 자연스럽게 취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목민심서 한번 읽어 보지 않겠는가>는 전체 12편 중에서 과감하게 한 편만을 선택해 심층 해설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바로 ‘호전戶典’이지요. 그러면 왜 저는 ‘호전’만을 골라 해설서를 쓰게 되었을까요?

    목민심서 원문은 한자로 40만 자 분량인데 그중에서 호전이 무려 8만 자를 차지합니다. 구성만으로 보면 12편 중 1편일뿐이지만 분량에서는 무려 20%를 차지하는 것이죠. 게다가 목민심서 전체 12편 중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할 정도로 내용이 어렵습니다. 왜냐면 경제 문제와 세금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목민심서』 호전 부분을 어렵게 어렵게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머릿속에서 조선 시대 백성들의 경제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국사 시간에 달달 외우기만 하던 결부법, 환곡, 전분6등, 연분9등, 호적 같은 것들이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생명을 얻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더군요. 한 시대의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시대의 기초가 되는 토대(하부구조)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민심서 '호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하여, 목민심서 총 12편을 주마간산, 겉핥기식으로 다루는 것보다는 차라리 ‘호전’ 한 부분만 떼어내 그 내용을 꼼꼼히 제대로 해설하는 것이 독자에게 훨씬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목민심서 한번 읽어 보지 않겠는가>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목민심서 내용에서 핵심 중의 핵심, 요체 중의 요체인 ‘호전’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청소년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썼지만,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념의 바닥까지 내려가서 설명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인터넷서점 주소는 아래에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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