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이어 하나둘 씩 까치머리를 한 채 나온 친구녀석들은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날 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놈들은 내 팔다리를 붙잡고 인덕션앞에서 강제로 분리시킨 뒤 짜파게티와 너구리가 강제로 섞이는 것을 눈앞에서 보여주었다.
"하하 이녀석,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구나. 어떠냐? 니가 사랑한 이녀석들이 엉망진창이 되는걸 눈으로 직접 보는 소감이?"
(실제로는 '야 저새끼 운다 ㅋㅋㅋ' 였음)
"야 이 똥믈리에 새끼들아!! 오폐수 한바가지 퍼다가 디켄딩할 놈들아!!!"
결국 음식은 완성되었고 모두가 맛있게 젓가락을 뜨는데 단 한명, 나는 한숨을 쉬며 적갈색의 면을 바라보고 있기만 할 뿐이였다. 그러나 음식은 음식. 적어도 다들 저렇게 먹는다면 잘못된건 세상이 아니라 나 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생각으로 한젓가락 집어든 나는 입속에서 동서화합의 장이 열리고 짜파게티가 제안한 대연정을 너구리가 흔쾌히 받아들이며 정치통합이 실현되는 듯 한 맛을 느꼈다.
우린 그 날 다섯명이서 짜파구리 10봉지를 박살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종종 짜파구리를 즐겨먹는다. 그러나...
나는 어제 술에 취해 집으로 향하던 중 집에가서 짜파구리를 해먹자는 생각으로 평소처럼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집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짜파게티는 기본적으로 짜장면의 인스턴트 버전인데, 그럼 짬뽕의 인스턴트 버전인 오징어짬뽕이 섞여야 맞는 것 아닌가? 아니, 그렇잖아. 짜장에 짬뽕을 섞어야 맞지. 근본도 없는 너구리는 어디서 튀어나온거야? 후레이크에 해물이라곤 미역이 다잖아? 그에 반해... 오징어짬뽕에는 오징어 후레이크가 들어갔잖아. 그럼 이쪽이 좀 더...'
네이밍 과정에서의 문제였을까? 짜파구리는 뭔가 착착 감기는데 오빠게티는 좀 뭔가 아재같은 이름이라 둘의 조합은 없는거였나? 짜파오짬같은 근본없는 이름이라 그랬나? 하지만 이름이 중요할까?
나는 문득 '가지 않은 길' 이라는 SF소설 제목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집에 와서 짜파게티와 오징어짬뽕을 조합하는 시도를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였다. 짜파구리는 이것에 비하면 짜디짠 라면볶음에 불과했으나 이것은 볶음짬뽕 그 자체였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천장을 올려다본 뒤 식사를 계속했다.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짜파구리는 이제 없다. 늬들은 앞으로 오징어짬뽕에 짜파게티를 섞어 끓여라. 너구리는 너구리대로 두어라. 내 말을 들어라. 그리고 내 삼만원 언제줄거냐. 어제 니덕분에 양꼬치 잘먹었다. 근데 대빡이는 왜 이혼한대냐. 아무튼 짜파게티랑 오징어짬뽕이다. 꼭 실현해라.
내 전화를 받은 친구들은 아침부터 지ㄹ병 도졌냐고 욕하거나 삼만원은 곧 줄테니까 재촉마라. 그리고 대빡이 바람핀거 걸려서 이혼하는거니까 그새끼 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