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서 비타500 한병 까고 들어옴.
3편 좌표
전편에 이어...
그녀와 난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주말의 어느날 밤 단둘이 율동 공원을 산책하게 되는데...
겨울밤의 율동공원은 참 운치와 낭만이 있긴 개뿔...추웠음...오라지게...
근데 또 옆을보니 이분 무슨생각으로 오늘 나오신건지...추리닝 바람임...-_-
여기선 냉정해져야 한다...나라도 살아야 한다...하며 입고나갔던2-30대 인텔리여성에게 어필할수 있는
케시미어 코트의 옷깃을한껏 여미고 걸었음.
날이 추워서 그런가...아님 의식적으로 그런건가 그녀는자꾸 내 쪽으로 달라붙음...나는점점 길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고...
사실 이때 힘을 줘서 버틸 여력도 없었을 뿐더러 그녀는참 운동을 열심히 한 여자임.
그상황이 좀 지속되는동안 스텝이꼬여서 내가한번자빠짐...-_-...뭐이건 그냥 웃고 넘기면 될 일이고...
그래도 나름 무드를 느끼셨는지 그녀가 살아온 썰을 풀기 시작함.
대화의 시작은 이 망할 소개팅을 주선한 전직 부하여직원의 언니와의 관계에서 시작되었음.
소개팅녀 "XX랑은 중학교 때 2년 동안 같은 반이었구요...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제가 캐나다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한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작년에 다시 만나게 됐어요."
나 "네...거의 십몇년만 이실텐데 용케 연락이 닿았네요"
소개팅녀 "네...XX중학교 밴드라는게 있더라구요"
나 "아...밴드부 활동 하셨나봐요...보컬??"
소개팅녀 "........"
세상 신식문물을 받아들이는게 좀 더딘 나이인지라...밴드가 진짜 밴드부인줄 알았던건 짠내나는 억지유머...ㅠ_ㅠ
뭐 이런저런 얘기 하다보니 나름 많은 얘기 듣게 됐음. 어릴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바쁘셔서 고모가 있는 캐나다에
가게 됐고 어찌어찌 대학까지 나온 다음에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함. 한국에서는 자기가 캐나다에 있는 사이 아버지가 재혼을 하셔서 좀 적응이
힘들었다함. 그런 와중에 캐나다랑 한국 왔다갔다 하고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한 상태였는데 제작년에 고모집이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야 되는
상황이라 그냥 같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라 함.
나 "그럼 지금은 무슨 일 하세요??"
소개팅녀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있어요..아까 말씀 드렸는데..."(카폐에서 말했다는데 몽롱한 상태라 기억이 안남)
나 "아...학원강사시구나..영어는 잘하시겠군요...아까 차안에서도 잠시 들었는데 발음 좋으ㅅ.."
소개팅녀 "어머니가 하시는 영어유치원이요...-_-...이것도 아까 말씀 드렸는데..."
나 "...-_-...죄송합니다...사실 제가 오늘 몸상태가 좀 안좋아서요...아 근데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ㅅ.."
소개팅녀 "새엄마요..-_-"
나 "...네...ㅠ_ㅠ"
뭔가 이상하게 내가 잘못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함. 잠시 어색해졌고 살짝 짠내 나기도 하는 가족사를 들은터라
좀 센티해졌음. 감정은 없더라도 분위기에 취했는지 상황을 좀 만회해 보려고 객기를 부렸음...
나 "아,,오늘 운동갔다 오신다고 옷을 좀 얇게 입고 오셨네요 추우시죠 이거 입으세요..-_-"
소개팅녀 "감사합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때부터 사슴같은 눈망을로 날 처다보기 시작하고 난 군시절로 돌아가 혹한기 훈련을 다시 뛰기 시작했음..-_-..
홀로 센티해지신 그녀의 걸음걸이는 더욱 느려졌고 난 더욱 추위에 떨었음...옷 다시 주시면 안될까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참았음. 난 쿨하니까.
나 "추운데 그만 들어가시죠"
소개팅녀 "잠시만 더요"
그렇게 30분이 더 지난 잠시 뒤...우린 율동공원을 한바퀴 다 돌았고 난 혹한기 훈련을 복귀하고 동태가 되었음.
정말 몸 상태가 한계까지 다다랐다 생각하고 말없이 차로 향하는데 따라오던 그녀는 다른곳으로 발걸음을 항하고 뒤돌아보며 나에게 한마디 던짐.
소개팅녀 "술한잔 같이 하실래요?"
이시점에서 진심 입밖으로 욕튀어 나올 뻔...
정말 불굴의 의지로 튀어나오는 욕을 자제하고 40평생 세상 가장 단호한 말투로
나 "안됩니다. 그럴순 없습니다. 전 차를 가져왔습니다!!!!!!!"
소개팅녀 "(아쉬운 듯) 그럼 할수없죠..."
이시점까지 너무 냉정한가 싶기도 했지만 역시 남자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을 ㅎ...
소개팅녀 "그럼 저 혼자 마실테니 앉아만 계세요"
나 "........"
하필 때마침 그 앞에 있는 무슨 거지같은 민속주점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본 게 율동공원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음.
정신을차렸을 땐 낯선곳에서 낯선사람들이 시선에 들어오는데...
드디어 대단원의 끝이 보임...ㅠ_ㅠ...아마 다음이 이 저주받은 하루의 마지막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