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소유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여러 장비들이 눈 앞에서 화려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지급받은 전투복을 검은 옷 사내의 것으로 갈아입은 지환은 이런 장비들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의아했고, 무엇보다 이 모든 장비를 거리낌 없이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검은 옷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저 힐끔 할 뿐이었다.
“이런건 도대체 다 어디서 구한거야? 최신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도라면 가격이 상당할텐데… 아니 그것보다 이런 걸 구할수 있긴 방법이 있긴 있는건가? 놀라운데… 아마 그 디스플레이를 봐선 섀도우 포스트(Shadow Post)쪽 모델인가? 내가 기억하기론 아마 나온지 얼마 되지않아 국가의 제제로 단종된 걸로 알고있는데?”
“섀도우 포스트를 알고있다니, 하는 행동과는 전혀 매치되지 않지만 꽤나 보는눈이 있군.”
약간은 의외였다는 투의-하지만 여전히 낮은톤을 유지하고 있는-검은 옷 사내의 말에 지환은 잠시나마 어깨가 으쓱였다. 그런 기세를 몰아 손끝을 코에 가져다 대며 이정도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통일한국 팔라딘(Paladin)을 무시하지 말라고!”
“눈속에서 뒈질뻔한 걸 살려놨더니, 그놈의 팔라딘 타령은 그만 좀 할 수 없나? 몬스터 따위한테 당해서 꼴사납게 눈발에 쳐박히는 팔라딘 따위가 도대체 뭐라고.”
검은 옷 사내의 퉁명스러운 대꾸를 들은 지환은 순간 자신을 살리기 위해 괴 몬스터들의 습격에도 자신들의 몸을 바쳐가며 자신을 대피시킨 대원들이 생각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잠시 서있던 지환은 갑자기 주저앉아 주먹으로 바닥을치며 소리쳤다.
“그건 우리들 능력 밖의 일이었어. 불가능해, 애초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고! 어째서… 어째서 ‘그 곳’에 관해서는 일말의 지형정보도 들어있지 않던거지? 지령서에는 단지 그 부분의 정밀 탐사만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그 곳이 정말 어떤 곳인지 모르나?”
갑자기 검은 옷 사내가 지환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그의 손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의 눈 위에는 스크린으로부터 쏟아져나오는 불빛들이 맺혀 어떻게 보면 약간 인텔리전트한 분위기를 뿜고 있었다. 지환은 거친 눈속에서 볼 수 없었던 검은 옷 사내의 다른 면을 보자 약간 놀라는 눈치였으나, 결국은 다시 대화로 돌아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되물었다.
“그게 무슨말이야? 그곳이 어떤 곳이라니… 단지 이상기후 현상에 의해 평균온도가 노멀급 템플 대원들이 처리하기 힘들정도의 난이도 판정이 나와 상부의 명령을 받고 우리 통일한국 팔라딘군이…”
“단지 기후조사 때문에 팔라딘 대원들을 궁지에 내몰았다고?”
“…!”
검은 옷 사내의 말을 들은 지환은 뭔가 한 대 크게 얻어맞은 듯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를 포함한 열명의-지환만이 살아남고 전부 작전수행중 전사해버렸지만-대원들은 상부에서 내린 첫 지시에 따라 이곳에 도착했고, 작전 수행중 급격한 눈보라에 의해 통신이 마비된 후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았었다. 그땐 정말 정신이 없던 터라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무언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우웅-
뭔가 외부에서 커다란 공명음 같은게 들려왔다. 두터운 눈보라 속을 뚫고 들려오는듯한 저 소리에 지환은 고민하던것도 모두 잊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검은 옷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이 지환이 이 지하의 홀-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대했다-에 도착했을 때부터 의자에 걸쳐놓았던 코트를 메인슈트-검은 옷 사내의 메인슈트의 벨트부분은 신기하게 두줄로 ‘X’자를 이루고 있었다.-위에 걸쳐입으며 코트 안주머니에서 꺼낸 안경을 고쳐썼다.
“뭐지 이 울림소리는? 뭔가 경보장치라도 해 놓은거야?”
“내가 너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될 의무가 있나?”
“그런 건 아니지만…”
검은 옷 사내는 지환을 지나쳐 거대한 홀의 앞부분을 향해 걸어나갔다. 검은 옷 사내의 뒤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지환은 다시 한번 이 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홀의 천장부분은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지환이 홀 전체를 둘러볼 때만 해도 천장이 보이지 않아 정도로 꽤나 높게 느껴졌다-확실한 것은 이렇게 넓은 홀 전체에 별다른 기구라던지 하는것도 없이 단지 앞쪽과 뒤쪽에 문 하나씩이 존재하고, 지금 지환이 서있는 홀의 가장 가운데에 ITM(Intelligent machine)한 대만이 자리를 차지할 뿐이었다.
지환이 그렇게 홀의 전체를 어안이 벙벙한채로 둘러보고 있을 즈음 벗어놓은 전투복을 모두 처리한 검은 옷 사내가 말을 걸었다. 아마도 지환은 이번이 검은 옷 사내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걸은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한 것 같았다.-그동안은 지환 스스로가 대화의 주제를 만들어냈으니.
“그 사항에 대해서는 조사해 볼 만 하군. 근데 네녀석은 도대체 언제 떠날참이냐? 이번의 이동으로써 추출하여 저장해놓았던 에이블러(Abler)를 모두 소진해버렸다. 통일한국의 팔라딘이라고 했던가? 지금이 천지(天池)부근이니 지금쯤 떠나는게 좋겠군. 물론 더 이상 너를 보호해 줄 마음도, 의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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