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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렸을때 돌아가셔서 증조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지만 너무 반가웠어요.
살아계셨다면 꼭 사과드리고 싶은 일이 있었거든요.
증조할머니는 울 아버지랑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울 아부지가
딱히 뭔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도 아버지를 끔찍하게 싫어하셨어요.
증조할머니가 첫 남편에게 팔아 넘겨져서 인신매매단으로부터 도망을 친
과거가 있으신데 그 첫 남편이 울 아버지랑 닮았다는게 이유였어요.
그 비틀린 증오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울 형한테도 이어져서 형이 애기였을때
증조할머니가 많이 때렸대요. 꼴비기 싫다고 아무도 안볼때 형을 들어서
던지고 그랬나봐요. 그래서 울 아버지 하고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신기하게도 둘째인 저는 엄청 이뻐하셨어요. 간식도 몰래 챙겨
주시고 많이 안아주시고 놀아도 주시고해서 전 증조할머니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아 있어요.
그런데 어느날 증조할머니랑 크게 싸우고 화가난 아버지가 저에게
'앞으로 증조할머니가 주는 음식은 먹지말라'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한 그 말 때문에
제가 증조할머니에게 사과하고 싶은 사건이 생겼어요. 증조할머니가 평소 처럼 저를
방으로 불러서 홍시를 주고 먹으라 하셨는데 제가 그만
"아빠가 증조할머니가 주는거 먹지 말라고 했어요" 하면서 그 홍시를 안먹은거에요..
'그러냐..?' 하면서 시무룩해 하시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네요.
멍청하고 공감력 제로였던 그 시절은 증조할머니가 왜 저렇게 시무룩해 하시지?
하고 이해를 못 했거든요. 시간이 좀 지나고 나이가 들고나서 생각하니까 그 때
증조할머니가 받았을 충격과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거에요.
그걸 깨달았을때 증조할머니는 이미 세상에 없으셨어요.
여기서 두번째로 사죄 드리고 싶은 사건이 생기는데 ㅠㅠ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 직접적인 원인이 저에게 있거든요..
제가 친척동생이랑 물놀이를 하면서 물을 온 사방에 뿌려놨는데
증조할머니가 그 물을 밟고 넘어져서 돌아가셨어요.
참 아이러니하죠..
가장 이뻐했던 저에게 큰 상처를 받으시고 심지어 저 때문에
돌아가시기까지 했으니까요. 꿈에 나타나셨을때 진짜 폭풍 오열 하면서
사과드렸어요. 정말 밝은 표정으로 나타나셔서 제가 사과드리니까 괜찮다고
하셨는데 뭔가 사과 받으러 오셨다기 보다는 걍 이뻐했던 증손자 한번 안아보자
싶은 느낌으로 오셨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까 늘 마음 한켠에 묵직하게 남아있던
체증? 후회 같은게 살짝 풀린듯한 느낌이었어요.
이 느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까 싶어 걍 일기장 처럼 끄적 거려봤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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