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당황합니다. 한국에서 박트림이나 오그멘틴에 내성 없는 사람 거의 없거든요. 항생제에 내성이 있다는 건 항생제가 감염을 없애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니 그게.. 그거 내성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어쨌든 그거 먼저 쓰셔야합니다."
"아니 여태 아무말도 없다가 갑자기 왜요?"
"아, 그럼 선생님이 그 병원 와서 처방한 시프로바이는 소급해서 다 삭감하겠습니다."
의사는 미쳐버릴것 같습니다. 약은 약대로 쓰고 감염 못잡으면 감염은 계속되다가 환자 더 안좋아지는게 뻔하거든요. 어차피 항생제를 쓸 거면 빨리 줘야합니다. 환자가 감염때문에 입원한 것도 아니고, 원래 아픈 데가 있는데 더 안좋아진거거든요. 아니 그리고 하기 전에 말이나 해주든가.
어쨌건 박트림 줍니다. 효과를 볼리가 없죠. 다시 시프로바이 처방합니다. 괜찮아지네요. 아오.
몇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환자들은 감염 못잡아서 패혈증 와서 큰일날 뻔한 사람도 있고, 열도 안떨어지고 검사해도 수치 안좋아서 입원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근데 어떡합니까. 쓴 약값도 못받게 생겼는데.
근데 갑자기 시프로바이도 삭감을 쳐맞습니다! 이게 대체... 다시 전화해봅니다.
"선생님은 정형외과인데 왜 항생제 처방하셨어요?"
"예?? 아니 정형외과 환자는 감염 안옵니까?"
"아 됐고, 항생제 처방은 내과에서 내라고 하세요."
"그럼 환자가 협진료도 내야하는데요?"
"내야죠 그럼."
????? 결국 환자는 입원기간도 길어지고,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약값은 더 들고, 협진료도 내야합니다.
2.환자가 실려옵니다. 예비군이라는데 훈련때 누가 총기난사를 했답니다. 주는 것도 없는 나라에서 오지게도 부려먹습니다. 아참 나도 예비군 안끝났지... 수술은 끝났는데 상태가 심각하네요. 심장이 멈출 것 같습니다. 이때를 위해 병원에 사둔 에크모란 기계를 환자에 달고 중환자실로 내려보냅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기계입니다. 피를 빼서 이산화탄소를 빼고 산소를 넣어서 환자에게 돌려줍니다. 심장과 폐를 대신하다니. 기술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는 그날 밤을 못넘기고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심평원은 에크모를 사용하는데 들어간 돈을 주지 않습니다. 이거 달 때 쓰는 일회용품만 해도 수백만원이고, 달라붙어야 하는 의사와 간호사만 몇명인데.
심평원은 "인공심폐기 썼는데 왜 에크모를 또 답니까?"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인공심폐기 본 적이나 있을까요. 너무 크고 합병증도 생길 수 있어서 쓸 수가 없었는데, 인공심폐기와 에크모는 비슷한 기계이니 둘을 하루에 쓰면 안된답니다.
앞으로는 환자가 밤에 실려오기만을 기도해야겠습니다. 12시가 넘으면 같은 날 사용하는게 아니니 삭감은 안당하니까요. 아참 이렇게 써도 환자가 죽으면 삭감이지. 에크모를 써서 살았으면 돈 주고 죽으면 돈을 안줍니다. 아니 당장 내가 쓰는 컴퓨터도 고치다 고치다 안돼서 포맷하는데, 사람을 보자마자 죽을 환자인지 아닌지 의사가 알아야하나봅니다.
3.모 메이저과 김교수가 병원장에게 불려갑니다. 저번달에 쓴 혈소판이 삭감이 많이 됐네요. 다음달에는 심평원에서 현지조사를 나온다네요. 심평원 기준이 납득이 되지않아 소명자료를 보냈는데 그것때문에 심평원이 화가 많이 났나봅니다.
병원장이 말합니다.
"김교수. 나도 모르는게 아냐. 근데 이 병원에 자네만 있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김교수만 힘들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해."
김선생은 의대 나와서 인턴 레지던트 마치고 전문의 딸 때까지 환자 살리는 것만 배웠습니다. 문득 요즘 새로 바뀌었다던 국기에 대한 맹세가 생각납니다. "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정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인가요?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냥 환자를 살리고 싶었는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는 가치가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 오후에는 학회를 가야합니다. 일단 레지던트에게 맡기고 학회로 갑니다. 근데 저 레지던트 4년차 박선생, 어제 당직이었던 것 같은데..? 수면부족이 판단력에 미치는 영향을 곱씹어보며 학회 연수장소로 갑니다. 어디보자... 어? "삭감 안당하는 치료법"? "개원가에게 필요한 서바이벌 법률지식"? 이건 또 뭔가요. 어떤 영양제를 팔아야 돈을 버는지를 강의합니다. 이게 대체....라고 생각하다보니 의대 동기가 어깨를 툭 칩니다.
"형 어제 그거 봤어? 양심치과?"
"뭔데 그게?"
"뭐 과잉진료 안하는 치과의사라는데 사람들이 다 좋아하더라고."
"호오... 근데?"
"그게, 돈을 못받아서 직원도 못둔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게 문제가 있는거거든."
"무슨 문제? 돈 못버는거? 그래도 그런 치과의사가 있어야..."
"아 형은 수술방 혼자 들어가? 치과는 포핸드 덴티스트리, 그러니까 손 네개가 기본이잖아. 치과의사가 혼자 사랑니 쪼개고 신경 까고 하면 오염은 누가 처리할건데. 의사가 가네샤야아수라야. "양심"적으로 진료하면 그것도 못하는 거라고."
김교수는 한숨을 내쉽니다. 그러고보니 이 친구 저번에 술먹고 전화해서 "형 나 그냥 사표쓰고 나가려고. 내가 말했지? 내가 중학교 이학년때 아빠처럼 흉부외과 의사 하겠습니다 하니까 엄마가 나 아구창 돌린거. 둘 다 의사인데ㅋㅋㅋㅋㄱㄱ 근데 형. 나 오늘 환자 죽었다? 근데 그 순간에 환자 삭감됐으니까, 아니 환자 죽었으니까 에크모 삭감먹겠다, 나 내일 혼나겠다는 걱정부터 먼저 들더라고. 이래서 엄마아부지가 나 의사하지 말라고 했구나 한다니까... 엄마가 재작년에 애 받다가 산모가 죽었어. 작년에 재판 결과 나왔는데 엄마잘못이 없대. 근데 돈 물어내래. 그래서 우리엄마 이제 피부미용해. 알어 피부미용? 형이 피부미용을 알어? 알긴 뭘 알어 가슴보면 열 생각만 하는 형이 뭘 알어. 우리 엄마 잘나가. 알어? 알긴 뭘 알어 우리 엄마 개업식도 안온 양반이. 아빠는 남의 자식 수술하면서 365일에 360일을 병원에서 살고 엄마는 남의 자식 받느라 지 자식 고3때 감기걸린거 폐렴될때까지 냅둔 집 막내아들인 나보다 잘 알어?"
라고 울다가 제수씨한테 끌려갔지요. 왜 모르겠습니까. 내가 낸 적자 누가 메꿔주는지 왜 모르겠습니까. 알고 있습니다. 내가 눈치보지않고 환자 살려도 되는 나라가 아니라는거. 살려놓으면 병원비 많이 나왔다고 지랄, 죽으면 왜 죽을 환자에게 기계 썼냐고 지랄.
지랄맞은 세상입니다.
전화가 울립니다. 아씨 응급실 당직폰이네요.
"교수님 2년차 김재....."
"뭔데?"
"30세 남자 TA(교통사고)로 왔는데 상태가 많이 안좋아요! 호흡 맥박 다 안좋고 배도 불러오는거 보니까 출혈도 심하고 바로 수술방 올려야되는데....교수님 어디세요? 학회 가까운데면 와서 좀 봐주셔야..."
"일단 프로토콜대로 하고 박선생 퇴근 안했으면 있을거니까 불ㄹ..."
"환자가 박선생이에요! 아까 퇴근했는데 집 가다가 졸음운전으로....어레스트! 야 앰부 짜라고! 간호사 에피 슈팅! 야이새끼야 눌르라고! 나와 새끼야!'
전화가 끊어집니다. 아, 안됩니다. '너 이거 하면 굶어죽든가 눈칫밥먹다가 배터져죽어. 나도 방송 안탔으면 진작 짤렸다. 인턴 성적 보니까 쓰면 아무데나 다 가겠구만'하고 말리니 '아부지가예. 성형외과 원장입니더. 집에 돈 많지예. 뭐, 굶어죽겠습니꺼?'하고 씩 웃었던 친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