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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이 지배하는 세상.
“여보. 그거 들었어? 옆집 사는 은정이 아빠가 이번에 마약값을 못 내서 공안에 끌려갔어.”
“그놈의 마약이 대체 뭐가 좋다고 다들 하는지 모르겠는데..”
“어머어머!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안 하는 사람이 더 이상해. 이것 봐. 얼마나 기분 좋은데?”
아내는 팔에 주사를 꽂으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빌어먹을 세상.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세상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배하고 전국에 풀린 수많은 약은 사람들을 기쁘게, 때로는 미치게도 했다.
옆집 사는 은정이 아빠도, 아랫집 사는 민준이 엄마도 나와 같이 약이 주는 쾌락에 저항하다 결국 그것에 잠식되어 점점 피폐해져 갔다.
물론, 아내 또한 약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저 아픈 사람일 뿐이다. 하나뿐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10년 전 불쌍하게 떠나보낸 뒤부터 아내는 약을 시작했고 우리는 매달 약값으로 월급의 많은 부분을 지급해야만 했다.
거리에 나뒹구는 사람들은 하루 식사 대신에 하나의 주사기를 택했고 몇몇은 흰색 가루를 달궈 연기를 마시곤 했다. 모두가 미쳐버린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그 사람들처럼 거리에 나앉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내가 약의 성분을 배합하고 혼합하는 연구원으로서 꽤 괜찮게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약 기운에 달아오른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내게 안겨든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요즘 자주 보고 있다. 아이의 죽음은 벌써 까마득히 잊은 듯 아내는 해맑게 웃으며 내게 약을 권했다.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 내게 약을 권할 때면 나는 조용히 서재로 들어가 위스키를 꺼내 든다.
약 중독보다 알코올 중독이 낫지 않겠는가? 뭐, 그게 그건가?
“어. 나야. 부탁했던 건?”
약이 떨어질 때가 되었다. 아내에게 약을 주지 않으면 아내는 때때로 자해하곤 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는 손톱을 세워 제 어깨와 허벅지를 벅벅 긁어대었다.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아내의 손톱을 아주 짧게 잘라주면 악을 쓰면서 커터칼을 들어 제 팔을 베었다. 약을 달라는 일종의 귀여운 투정이다. 그러나 집에 있는 모든 날붙이는 다 버렸다. 아내가 아파하는 건 정말이지 보기가 힘들다.
민간 마약 회사 사장인 친구에게 전화해서 약을 구했다. 정부가 제공해서 시중에 풀리는 약 보다 훨씬 순도가 높은 괜찮은 사제 약이다. 친구 놈은 내 덕에 매달 수천의 용돈을 벌게 되지만 아내를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다.
다음 주 토요일 친구의 회사 앞 카페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술기운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서재를 나와 아내가 잠들어 있는 안방에 들어가는 순간,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약쟁이 아내가 약 기운 탓에 침대 위에서 실례를 한 모양이었다. 이런 나날이 점점 잦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이 깨고 맨정신으로 돌아온 아내가 부끄러워하며 미안하다고 입맞춤을 해왔는데 요즘엔 언제 그랬냐는 듯 생사람 잡지 말라고 화를 낸다. 그럴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이 종종 생겨나지만 어쩌겠나. 내가 참아야지.
게다가 최근 한 달 사이 아내가 약을 찾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아직은 괜찮으나 언젠간 큰 부담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요즘 안 좋은 생각 또한 종종 든다. 아내를 정말 사랑하고 귀여워하지만 이제 나도 지쳐가는 건가? 아내만 없었다면 이보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아내는 아내다. 사랑하는 나의 하나뿐인 반려자다. 아마 술기운에 헛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어떻게 지냈어?”
전쟁 같은 일주일이 지나 친구와 약속한 토요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멋들어지게 빠진 슈퍼카를 타고 온 그는 내게 잘 지냈냐는 인사를 건넸고 나는 씁쓸한 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메리카노에 약 가루 두 스푼을 추가해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제수씨는 요즘 어때?”
“늘 똑같지. 약하고 자고 약하고 자고. 반복이지.”
“인마. 그게 신선이지 뭐야. 이참에 너도 해보는 게 어때? 언제까지 그런 고지식한 생각으로 살 거야?”
“안 해. 나까지 약 해버리면 뭐, 우리 집 거덜 나게?”
친구는 내 말에 박장대소하며 주위 눈치를 살피다 내게 몸을 더 기울였다. 이어지는 친구의 말에 두 눈을 키웠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더 이야기하고 친구에게 약을 전달받고서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도착하니 어쩐 일로 아내가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아마 내가 오늘 약을 얻으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마치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나를 따라와 두 손을 내밀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고 안주머니에서 하얀 가루약이 담긴 봉지를 그녀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덧붙여 이 약은 굉장히 독하고 강하니까 한 번에 많이 투약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내는 신나서는 가루를 몽땅 숟가락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그것을 녹였다. 다 녹인 약을 주사기에 옮겨 담고 팔뚝을 걷었다. 나는 그 이후의 광경을 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보지 못했다. 서재에 들어가 문을 꽉 닫고 레코드판을 올려 클래식을 들으며 위스키를 따랐다. 친구가 한 말을 떠올렸다. 두 가지의 약 중 하나는 정신을 완전히 미쳐버리게 하는 약인데. 이 약을 제수씨에게 먹이고 입원시켜라. 그리고 하나는 이번에 개발한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약인데 네가 약을 해보고 영 마음에 안 들면 이 약을 먹고 완전히 잊어버려라.
주머니에 들어있는 다른 약봉지를 꺼냈다. 다른 약들과는 달리 보랏빛이 도는 천일염 같은 가루였다. 지난 10년. 중독자인 아내를 돌보느라 충분히 지쳤다. 서재의 문을 단단히 잠갔고 열쇠도 없으니 정신이 맑아진 아내가 나를 발견할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이제 나는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들과 같이 미쳐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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