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황우석의 원천기술 ‘언론플레이’ 화려한 언변·호기심 유도·애국심 자극… 국민을 현혹한 ‘특종 제조기’
“황(우석) 박사 쪽에도 개별적인 언론플레이를 자제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줄기세포 조작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박한철 3차장은 1월 17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황 박사의 언론플레이를 지적했다. “관련 당사자들이 상당히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고 일부 특정 언론사하고 연결이 돼서 제보도 하고 그러는 것 같다. 실체하고는 아무 관계없이 자기 측에 유리한 부분을 일방적으로 내보내는데 그게 과열취재가 되어 수사진행 상황하고 아무 관계 없이 부각되고 있다. (…) 일방의 언론플레이를 옹호하는 건 곤란하다.”
당시 SBS는 1월 13일 저녁 8시 뉴스에서 황 박사 측에서 제공한 박종혁 연구원과의 통화내역을 공개했다. 박 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황 박사와의 전화통화에서 2004년 1번 줄기세포가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맞다고 말했다는 것. 다음날 조선일보도 전화통화 녹취록을 근거로 같은 내용의 기사를 썼다. SBS와 조선일보는 ‘특종’을 한 셈이 됐다. 서울중앙지검 박 차장이 이날 지적한 황 박사의 ‘언론플레이’는 일부 특정 언론사와 연결, 제보를 했다는 것이다.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를 전후해 황 박사의 언론플레이가 펼쳐졌다. 경인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황 박사는 2004년 논문이 가짜임을 미리 시인했다. 12월초 황박사의 대변인 격이던 안규리 교수와 YTN기자가 미국을 방문, 김선종 연구원을 만나고 온 것도 황 박사 팀의 전형적인 언론플레이로 낙인찍혔다.
언론에 이름을 알린 초기에 황 박사는 언론의 협조를 구하고 취재활동에 도움을 주면서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도록 여론을 이끌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 활용의 모범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논문 조작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면서, 그의 언론 이용은 부정적인 단어인 ‘언론플레이’로 전락했다. 급기야 특정 언론사에 ‘구미에 맞는 정보’를 흘리는 상황에까지 이르러 검찰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에서 황 박사는 과연 어떻게 언론플레이를 펼쳤을까. 그의 언론플레이 ‘비법’을 종류별로 분류해 본다.
◆ 언론과 방송 보도를 위해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한다. 1999년 2월 국내 최초의 복제소인 영롱이탄생을 발표할 당시 기자진은 현장에 가지 못했다. 이들을 위해 황 박사 측이 비디오 테이프를 ‘자체 제작’한 상황. 과학기술부 기자실에서 기자들은 비디오 영상을 통해 복제소 영롱이를 처음 보았다. 영롱이가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난 뒤였다. ‘친절하게도’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비디오 테이프의 복사본도 미리 마련돼 있었다. 이때 이후 황 박사는 언론과 방송에 의해 생명공학의 선두 주자로 부각됐다.
◆ 엠바고를 사용한다. 일정 기간 보도 유예를 요청하는 엠바고를 황 박사는 적절하게 이용했다. 기자들에게 문득 사실을 흘려주는 형태를 취하면서 엠바고를 건다. 어느 시점까지 보도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하지만 황 박사는 강연회 등의 외부 행사에 참석해 약간씩 정보를 흘린다. 어느 정도 상황을 알고 있는 기자들 중 한 명이 급기야 엠바고를 깨고 기사를 쓴다. 이 과정에 다른 기자들의 불만이 쏟아지면 황 박사는 “그때 내가 사실을 다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전적으로 엠바고를 깬 기자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논문을 통해 과학계의 검증을 받지도 않은 내용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이다. ‘기자들이 알아서 취재한 것인데 어떻게 하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기자들이 그렇게 썼다’라는 것이 황 박사의 되풀이되는 변명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백두산 호랑이 복제’ 건. 1999년 2월 영롱이 보도 때부터 신문에 등장한 황 박사의 백두산 호랑이 복제 연구는 1999년과 2000년 잊혀질 만하면 기사로 등장했다.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과학 담당 기자들에게는 어느 시점에 복제가 성공할 것인지가 관심사였다. 1999년 말에는 ‘내년에 우리 기술로 복제되어 태어난다’, 2000년 4월에는 ‘7월에 태어난다’, 7월에는 ‘복제 눈앞’ ‘내달 탄생’, 9월 초에는 ‘이달 말 탄생’으로 관련 기사는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9월 말 백두산 호랑이 복제는 끝내 실패했다. 호랑이 복제에 대한 황 박사의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언론에는 수차례 발표됐지만 논문 하나 없이 마무리가 된 것이다. 쪾쪾쪾외부 강연회에서 보도될 만한 거리를 제공한다.
2005년 5월 30일 서울대 기숙사 강연회에서 황 박사는 무균돼지의 세포를 미국에서 들여오는 과정을 “마치 문익점이 붓두껍 속에 목화씨를 넣어오는 것과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 발언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제2의 문익점 같았다’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며칠 뒤인 6월 7일 관훈토론에서는 ‘문익점 일화’가 잘못된 표현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황박사는 표현이 그렇게 되었을 뿐 과정상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고 오해를 봉합했다.
이날 관훈토론에서는 기자들에게 또 하나의 보도거리를 줬다. 연구성과를 발표하기 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비밀리에 연구실을 방문했다는 숨겨진 이야기를 처음 공개한 것. 황 박사는 “그동안 한번도 이 얘기를 안 했지만 오늘에야 밝힌다”라고 말했다. 황 박사 관련 내용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는 과학 담당 기자들의 경우 황 박사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보도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부강연회에서 황 박사의 발언을 접한 다른 출입처 기자들은 화제성 기사로 신문에 보도한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 아니든 외부강연에서 황 박사의 발언이 기사화되는 소정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외부강연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기사거리가 나왔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도중이던 10월 5일 한 상가에서 황 박사는 조선일보 기자와 만났다. 이 기자 역시 과학담당기자는 아니었다. 이 자리에서 황 박사는 “민노당 때문에 연구를 못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기사는 10월 7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됐다. 당시 민노당 최순영 의원실이 서울대에 황 교수의 연구와 관련된 회의록 등의 자료를 요청했던 것. 조선일보 보도로 민주노동당에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황 박사가 조선일보와 민주노동당의 ‘좋지 않은 관계’를 이용해 이런 내용을 조선일보 기자에게 하소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기사 내용을 언뜻 제시한다. 2005년 5월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하기 2∼3주 전. 황 박사는 몇몇 언론사 간부들과 만났다. 여기에서 그는 “내가 상의할 것이 있다. 큰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작년 엠바고를 깨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넌지시 물었다. 언론사 간부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자에게 말하지 말고 가라”라고 답했지만 일부 간부는 자사의 담당 기자에게 언질을 주었다. 급기야 몇몇 언론을 통해 황 박사가 곧 중대 논문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일간지의 추측성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한 신문사는 사이언스가 아닌 네이처에 보도될 것이라고 오보했다. 다른 한 신문사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성공했다’고 잘못 추측했다. 5월 20일 발표를 앞두고 이미 언론사에서는 분위기를 띄워 놓은 셈이 됐다.
황 박사는 자신의 연구 내용을 은근슬쩍 ‘흘리는’ 방법으로 기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언제쯤 연구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연구 스케줄 관련 발언은 기자들에게 놓칠 수 없는 기사거리가 됐다. “내년(2006년) 가을이나 내후년쯤에는 국민이 기대하는 훌륭한 성과를 이끌어내겠습니다. 제 연구계획 2막 가운데 1막이 끝날 겁니다”라는 황 박사의 명언도 그의 어투를 잘 알 수 있는 발언이다. 어느 시점을 예시해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다.
2004년 4월 20일 황 박사는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이날 기자진과 점심을 함께 하며 ‘무균돼지를 잘 만들고 있다’고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언급했다. 기자들이 호기심이 발동, 취재 여부를 타진하자 황 박사는 ‘언제 와서 지켜보라’고 언급했다. 이날 기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실험실을 방문하는 스케줄이 마련됐다.
◆ 생생한 현장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지 2∼3주 후 기자단은 황 박사의 실험실을 방문했다. 그는 무균돼지 사육실에서 돼지가 태어나는 광경을 보여줬다. 현장을 직접 본 기자들로서는 각별한 느낌을 갖게 마련이다. 실험 현장을 보여주는 것이 황 박사의 언론 홍보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황 박사는 노무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등 유명인사를 실험실로 초대해 적극적인 후원자로 만들었다.
◆ 방송을 배려한다. 황 박사는 대중적인 매체인 방송을 잘 활용했다. 사이언스에 난치병 환자의 체세포 복제 기술을 발표한 황 박사는 2005년 5월 20일 오후 귀국,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후 황 박사가 밤늦게 서울대 수의대로 가기까지 그는 방송사를 순례했다. 저녁 뉴스를 위한 ‘배려’였다. 그의 전형적인 ‘언론플레이’를 잘 알 수 있는 대목. SBS 저녁 8시 뉴스에서는 직접 스튜디오를 방문, 인터뷰했다. KBS 9시 뉴스에는 사전녹화로 인터뷰가 방송됐다. MBC에도 그와의 대담이 9시 뉴스데스크로 나왔다.
7월 26일 KBS 열린음악회(녹화·7월 31일 방송)에 출연해 가수 강원래에 이어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강원래를 일으켜 세운다고 자신은 못하지만 그가 다음 열린음악회 출연 때는 일어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녹화가 끝난 후 분장실에서는 강원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비유로 설명을 쉽게 한다. 황 박사와 오랫동안 접해온 기자들은 기자 간담회나 강연회에서 그의 화법에 경탄한다. 아무리 어려운 과학적 설명이라도 황 박사의 입에서는 알기 쉽게 술술 나온다. 설명을 할 때 정작 중요하고 과학적인 부분은 모호하게 표현, 기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그의 화법 중 특징으로 꼽힌다.
그는 기자들에게 책임감 있고 양심적인 과학자로 비치게끔 확신에 찬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들의 전화 취재에도 전혀 싫은 투를 나타내지 않았고 기자들이 원하는 답변을 정확하게 해준다.
황 박사는 ‘어록’을 남길 정도로 현란한 언어를 구사했고 이 표현으로 매스컴의 조명을 받았다. ‘앞으로 3∼4개의 사립문만 남았다’ (2005년 5월 20일 귀국 기자회견)가 대표적인 비유. 그의 입을 통해 ‘문익점, 남대문, 쇠젓가락, 사립문, 2막중 1막’이라는 비유가 나와 그는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릴 정도였다.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화법도 여론의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생명공학의 고지에 태극기를 꽂고 온 기분’ (2004년 2월 18일 귀국회견) ‘한국인 말고 누가 쇠젓가락으로 콩을 집을 수 있나’ (2005년 2월 18일 LA타임스 회견)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 (2005년 6월 7일 관훈토론)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린다’(2005년 12월 23일 서울대 교수직 사퇴).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자주 썼다. 1월 12일 기자회견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8번 사용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날 그는 ‘이는 대한민국의 기술이기에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드린다’고 말했다.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박한철 3차장은 이날 황 박사의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말 참 잘하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의 한재각 정책연구원은 “과학자라면 과학적 검증시스템을 충분히 거치고 난뒤 언론을 통해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호우 기자
[email protected] 뉴스메이커 2006-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