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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사람들이 나의 직업을 물었을 때 의사라고 하면 “아, 그럼 무슨 과 하세요?” 라는 질문이 따라 나오기 마련이고 응급의학과라 답하고 나면 이전에는 대부분 “응급의학과? 그건 무슨 과에요?” 라며 처음 들어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응급의학과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응급실에서 일하시는 거에요? 힘드시겠다…” 라며 슬의생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근데 난 그 드라마를 안봐서 응급의학과가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모른다…)
내가 본과 3학년 학생이던 시절 응급실 실습을 돌 때 까지만 해도 응급의학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본과 4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오고 여러 과들을 따져보며 생각해보니 응급의학과야 말로 내가 가야할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곤 인턴을 시작하자 마자 응급실 선생님들을 찾아가 “저 응급의학과 지원하겠습니다!” 라는 패기를 보여주었다.
응급의학과는 항상 겨우 정원을 채우거나 정원 미달로 후기 지원자를 받던 ‘기피 과’이기 때문에 내가 수련 받았던 병원은 지원만 하면 무조건 받아주고 있었고 정말정말 혹시라도 경쟁이 될 경우 선착순으로 지원한 순으로 뽑아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턴 시작하는 3월부터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선배들에게 ‘우리 귀하신 응급의학과 차기 1년차님’ 이었고 선배들은 다른 과 윗년차들에게 얘는 우리과 지원자니깐 꼬실 생각 하지 마라며 얘기를 하고 다녔다.
병원에서 인턴이 하는 일은 대부분 각 과의 잡일 (아침 컨퍼런스 전 노트북과 프로젝터 세팅 및 의자 정리 같은) 이거나 의사가 해야하지만 전공의가 하기에는 번거롭거나 귀찮은 일들 (CT 촬영 동의서 받기, 비위관이나 도뇨관 넣기 등등) 이라 인턴 생활은 내가 의사라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그런데 응급실 인턴은 환자를 직접 보고 전공의에게 보고를 하고 (병원에서는 노티한다고 표현한다. Notify에서 나온 말이다.) 초진 기록지를 쓰는 등 뭔가 의사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난 어차피 응급의학과 할 건데 응급실 인턴이나 많이 돌면서 일이나 배우자는 생각으로 인턴 동기들과 일정을 바꿔서 응급실 인턴만 5개월 돌았다. (응급실은 인턴들이 다들 기피하는 곳이라 다들 흔쾌히 바꿔주었다.) 그리고 그 5개월 동안 나는 응급의학과 선택에 대한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힘들다. 교대 근무와 밤샘 근무, 응급실로 몰려오는 환자들과 소리치는 보호자들, 119 구급대원이나 경찰관과의 갈등, 다른 과 의사와의 싸움 등등 힘들 때면 다 때려치우고 나가버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나면 병원 일을 잊고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점이 응급의학과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퇴근하면 다 쉬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과 의사들은 퇴근해도 자기 담당환자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내가 대학병원에서 4년간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으면서 겪었던 기억에 남는 일화들을 적어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응급실이 어떤 곳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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