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시간강사로 교양강좌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오늘 종강하는 날이어서 종합토론 하는 날이었는데 주제를 대선으로 잡았습니다.
저는 수업을 시종 토론식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의견 진술하는 거에 익숙해 있습니다.
대선과 관련해서도 여러 의견들을 개진해 줬습니다.
그중엔 이명박 지지하는 학생, 이회창 지지하는 학생, 문국현 지지하는 학생, 권영길 지지하는 학생 등이 다양하게 있었습니다.
저는 우선 그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름대로의 의의를 인정해 줬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그 의견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반론들을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서 보여줬습니다.
예컨대, 도덕성보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한 학생에게 탁신과 베를루스코니의 예를 들어서 반론을 제기했고 이명박에게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생에게 이명박의 서울시장 재임시의 경제성적표를 반론으로 제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명박 지지하는 학생들이 멈칫하더군요.
저는 일단 공정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논의를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이명박 지지 학생들에게 반론의 기회를 줬습니다. 충분히 반론이 가능하다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서울시의 운영과 나라의 운영은 조금 다르지 않느냐, 서울시는 좀 문제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라는 잘 이끌고 말 것이다 라구요.
허나 이건 자기 전제를 부정하는 잘못된 논리입니다. 나라를 잘 이끌 거라는 근거를 서울시장 재임시의 치적에서 찾는데 이제 서울시 경영과 국가경영엔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논리다 라고 지적해 줬죠.
그랬더니 이번엔 유동인구론을 들고 나오더군요. 서울은 다른 시도에 비해 유입되는 인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로 인해 변수가 많고 따라서 경제지표가 안정적이지 않다구료.
그래서 제가 다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후보 이전의 서울시장들이 안정적으로 서울을 경영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 과거에는 서울로 유입해 온 사람들이 없었느냐 라구요.
저 말고도 반 이명박 입장을 가진 학생들이 저마다 반론을 제기하더군요.
결국 논쟁은 일단 결론이 맺어졌습니다. 이명박의 완패!!!
제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이끈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로 하여금 충분히 자료를 찾고 그를 토대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게 했는데 결국 이명박 지지 학생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1시간 반 정도의 열띤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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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후보를 지지하든 그건 자유다. 아무런 편견 없이 여러분의 주체적 판단을 통해 지지 후보를 정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롭게 선택을 한다 해도 최소한의 원칙에는 우리가 합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부도덕한 지도자는 절대 뽑혀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어느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가 누구를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다. 바로 이명박 후보다.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후보가 부도덕이라는 말과 자연스럽게 엮이는 이런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러분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에 별다른 분노를 느끼지 않는가?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피 끓는 젊음으로 참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가 나라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런 비상식적인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려고만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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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묻더군요. 세상은 이미 다 더러운 거 아니냐, 정도의 차이일 뿐 이명박 뿐만 아니라 다른 후보들도 썩은 건 다 마찬가지고 무능한 건 다 마찬가지 아니냐. 이명박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객관적 사실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카리스마와 강력한 추진력이다 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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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갖는가? 왜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썩었다고 믿고 있는가? 왜 여러분들은 주위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그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만 있는가?
조금만 노력해 보라. 조금만 더 숨겨진 인재를 찾아보려고 노력해 보라. 우리에게는 썩지 않고 도덕적으로 숭고한 영혼을 지닌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다. 경제인과 정치인들 가운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인물들이 너무나 많이 숨겨져 있다.
아무런 흠결 없이 사회적 성공을 거둔 많은 실례가 있는데 왜 그런 경우는 애써 눈감고 세상을 온통 타락한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가?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그렇게 타락했다고 믿는가? 여러분은 지난 한 학기동안 함께 공부한 내가 타락한 사람이라 보는가?
왜 메이저 언론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인가?
우리는 그런 숨겨진 인물들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젊다. 젊은이들이 벌써부터 부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그런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부패세력에게 세뇌 당했다는 증거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보라. 여러분들의 눈이 번쩍 뜨일 훌륭한 사람이 반드시 있다.
이번 대선 후보 가운데도 나는 분명 그런 후보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대선이란 바로 이런 거다. 민주주가 아니면 발굴할 수 없었을 그런 훌륭한 인물들을 발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이다.
왜 지지율 1,2위 달리는 기득권 후보들에게만 관심을 갖나? 왜 젊은이들이 그리 도전정신이 없나?
숨어 있는 진주를 발견하는 희열을 왜 애써 느끼지 않으려고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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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학생들에게 누구 누구를 지지해야 한다거나, 누구를 반대한다거나 하는 발언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후보들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을 던지고 학생들이 그에 대해 어떤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런 합리적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선입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생각이 얼마나 비주체적이고 얼마나 반성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것인지 스스로 깨닫게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업이 다 끝나고 나가려니 몇몇 학생들이 다가와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고 꾸벅 절하더군요. 내년에도 다시 수강하고 싶다고도 하고 많은 걸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도 말해주더군요.
이 맛에 선생질 하는가 봅니다.
이런 상식적인 과정을 거치면 과연 어떤 사람에게 주목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부각이 될텐데 왜 우리에겐 이런 상식의 과정이 낯설게만 느껴질지 참으로 안타까운 요즈음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가 노력하면 진실은 반드시 통하게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어제도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는데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군요. 며칠 전부터 가슴이 계속 흐느끼는 상태입니다. 이 절망을 과연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요?
<출처 :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
www.miclu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