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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97417
    작성자 : 가넬
    추천 : 0
    조회수 : 799
    IP : 115.93.***.69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1/08/24 16:01:54
    http://todayhumor.com/?gomin_197417 모바일
    음식보다는,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다더니...
      반년 전부터 친구로 지내온 사람이 있어요.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우연히 만났고, 같이 팀 활동을 하면서 친해졌어요. 

    요즘 여자애들 답지 않게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에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 

    밋밋하기 그지없는 학생 식당에서 둘이서 밥을 먹을 때였어요. 

    맛없지, 머쓱하게 묻자 그 사람은 까르르 웃으며 음식의 맛보단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대답했어요. 

    이 사람이랑은 피곤한 일상에서도 같이 행복을 꿈꿀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 와중에 그 사람이 우리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덕분에 시시콜콜한 이유로 자주 만나게 되었죠.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과제를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으면서...



      그 사람은 저에게 제일 편한 친구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저는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좋아한단 말을 다시 숨겨야 했죠. 

    농담처럼, 이번 하반기엔 꼭 취업에 성공해서 12월에 너에게 프로포즈를 하겠다고 말했어요. 몇 번이나.

    그 사람한테 고백을 했다던 어린 친구와 삼자대면을 하기도 했고, 

    덩치가 작은 저를 놀리며, 자기는 곰같은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자주 만나면서 조금씩 제 진심을 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 x대 경제학과 남자 얘기를 하더군요. 

    오빠 친구인데 전부터 그 분이 소개해달라고 오빠한테 조르길래 결국 소개팅을 했다고. 

    집안이 짱짱하니, 금융권에 있는 사람이니, 자기를 정말 좋아한다느니 어쩌니...

    그 사람 얘기를 자세히도 하더라구요. 굳이 그럴 필요 없었는데.



      그래도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어제는 급기야 그 사람이 커플링을 맞춰준다는 얘기를 꺼냈어요.

    마마보이네, 보수적이네, 그 사람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으면서 자꾸 제 생각을 묻네요. 

    저는 너무 화가나서 못 하는 술을 자꾸만 마셨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참지 못하고 진지하게 고백을 했죠. 

    아아, 홧김에 고백이라니, 참 우스꽝스럽죠?

    꼭 지금 대답해야 하냐면서, 그 아이는 자꾸 피하더라구요. 







      오늘 아침, 그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전화를 걸어 머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더군요.

    그러면서 또 아침에 그 사람이 집 앞으로 오기로 했다는 말을 했어요. 

    저는 가지 말라고, 나랑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극구 말렸죠. 

    그래도 이미 오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 그 아이는 자꾸 변명을 하더라구요. 



      홧김에 전화를 끊고서, 쓰린 속에 뭐라도 채워넣으려고 집 앞 분식집에 갔어요. 

    허겁지겁 짜파게티를 먹어치우고 막 돌아서려는데, 

    그 사람이 왠 남자랑 같이 있는 장면을 봤어요. 

    안경을 쓰고 기름기가 번들번들한 얼굴에, 살까지 뒤룩뒤룩 찐 볼품 없는 사람이었어요. 

    차라리 잘생기고 키 크고 멋진 사람이었으면 깨끗이 포기했을텐데...

    그냥 못본 척,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지나쳐 왔어요. 



      씨발, 그 까짓 사장 집안이 뭐가 대수라고, 어차피 같은 월급쟁이인데 금융권은 또 뭐고...

    너무 기분이 처참해서 아무 것도 못하겠네요.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다던 사람이...참...

    결국은 돈이 얼마나 많은 '누구냐'가 중요했던 걸까요?



    정말 이젠 화낼 의욕마저 바닥난 것 같아요.


    -----------------------------------------------------------------------------------------------------


    전화번호를 삭제하고, 일부러 가까운 길 냅두고 빙빙 돌아다녔어요. 

    일하고 싶던 회사에 들어갔는데, 무척 회의를 느껴서 세 달 만에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왔죠. 

    대학다니며 잘 못했던 전공도 다시 공부하고, 
    유유자적하게 시원한 도서관에서 맘껏 책을 읽으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아는 분이 일 자리를 마련해주셨어요. 

    이전에 제가 들어갔던 연봉의 세 배는 되고, 전문직으로 경력 개발이 가능한 괜찮은 자리죠. 



    근데 어찌된 일인지, 그 아이한테 또 연락이 오네요. 
    이전의 그 아이 번호는 스팸등록해놨는데, 전화번호를 바꿨나봐요. 

    절 버리고 만났던 그 사람이랑도 잘 안됐고, 그 아이도 직장생활을 시작했대요. 

    자기는 너무 힘들고 외롭다며 자기 좀 데려가라고, 
    넌 한 번도 술 안먹었을 때 진지하게 고백하지도 않았잖냐며

    애교를 부리고, 오히려 저를 탓하네요. 



    맘이 싱숭생숭한 건, 제가 호갱님이라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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