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 게시판 |
베스트 |
|
유머 |
|
이야기 |
|
이슈 |
|
생활 |
|
취미 |
|
학술 |
|
방송연예 |
|
방송프로그램 |
|
디지털 |
|
스포츠 |
|
야구팀 |
|
게임1 |
|
게임2 |
|
기타 |
|
운영 |
|
임시게시판 |
|
옵션 |
|
다윗에게 병적을 조사 할 마음을 품게 하여 화를 불러 일으킨 것이 사무엘하 24장 1절에는 야훼가 했다고 나오나, 역대기상 21장 1절에는 그것을 사탄이 시켰다고 나온다.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사무엘하 24:1)
사탄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였다. (역대기상 21:1)
기독교 인간이 죄를 저지르면 하나님이 베푸는 가호가 사라지고 악령이 그 틈을 탈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마치 욥기에서처럼 하느님이 사탄에게 명령하여 인구조사를 시켰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인류 유일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카인과 아벨 중에, 카인이 아벨을 살해하고 '다른 사람들'이 사는 '또 다른 마을'로 갔다는 기록이나 카인이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오늘 이 땅에서 저를 아주 쫓아내시니, 저는 이제 하느님을 뵙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창세기 4:14)
대개 카인과 아벨 이외의 많은,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에 대한 것이라 주장하는데, 이렇게 되면 성경 상의 시간대를 따라갈 때, 카인과 아벨이 장성해서 아벨이 죽는 시점까지, 아담과 이브는 '사람들'이 다 장성해서 '마을'을 이룰 정도로 자식들을 많이 낳았다고 나온다. 물론 근친이라고 해도 부부 한 쌍이 마을을 이룰 정도로 자식을 낳았다는 게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기도 하다. 물론 성경 기록을 따라가면 창세기 시절 사람들은 장수했으므로 설명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또한 카인의 아내가 갑자기 나오는데(...) 카인은 아내를 어떻게 만났으며 그 자손들은 어떻게 아내를 맞이하였을까?
한국의 주류 개신교 종파는 레위기에서 야훼가 근친상간을 금하는 법률을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근친에 의한 종족번식이 만연했기 때문에 카인의 아내를 아담과 하와의 딸로 해석한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미 존재하던 네피림들이 있었기 때문에 네피림들과 관계를 맺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것을 구분할 때, 하느님의 자손들과 사람들의 딸로 나뉜다는 해석도 한다. 하지만 네피림의 대한 언급은 카인과 아벨 시대보다 훨씬 뒤인 노아의 홍수 전후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릇된 성경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과 진보적 기독교 해석에서는 아담의 히브리어 뜻이 사람임에 주목하여 아담과 하와, 그리고 카인과 아벨을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사람들과 하느님의 관계를 우화적으로 설명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 때 아비멜렉이 군사령관 비골을 데리고 아브라함을 찾아와 제안하였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느님께서는 함께 해주십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증인으로 삼고 맹세해 주십시오. 나와 내 혈육 일족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이오. 내가 당신에게 신의를 지켰듯이 당신도 당신이 정착해 사는 이 곳 사람들과 나에게 신의를 지키겠다고 하여주십시오."
"예, 맹세하지요." 하고 승낙하고 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종들이 자기의 우물을 빼앗은 일을 따졌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나는 모르오. 당신도 말씀해 주신 적이 없었고, 오늘날까지 그런 말을 들어본 일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아브라함은 양과 소를 끌어다가 아비멜렉에게 주었고, 두 사람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어린 암양 7마리를 가려내자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물었다. "어린 암양 7마리를 무엇하러 따로 골라내시오?" 그는 "이 어린 암양 7마리를 받으시고, 이 우물은 내가 팠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거기에서 서로 맹세했다고 해서 그 곳을 브엘세바라고 하였다. (창세기 21:22-31, 공동번역성서)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주인공이며,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맹세로 인해 브엘세바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다음 기록을 보자.
그는 거기에 제단을 쌓아 야훼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고 그 곳에 천막을 쳤다. 그의 종들은 거기에서도 우물을 팠다. 어느 날, 아비멜렉이 친구 아후삿과 군사령관 비골을 데리고 그랄에서 이사악을 찾아왔다. 이사악이 그들에게 "내가 미워서 쫓아낼 때는 언제고, 왜 나를 찾아오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야훼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보고, 그대와 우리 사이에 조약을 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그대와 계약을 맺고 싶다. 우리는 그대에게 손 하나 대지 않고 잘 대접해 주었으며 떠날 때에도 편안히 보내주었다. 그러니 그대도 우리를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하여라. 그대야말로 정녕 야훼께 복을 받은 사람이다."
이사악은 잔치를 베풀고 함께 먹고 마셨다. 이튿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서로 서약하여 조약을 맺고, 이사악의 환송을 받으며 흐뭇한 마음으로 떠나갔다. 바로 그 날, 이사악의 종들이 저희가 파던 우물에서 샘 줄기가 터졌다고 와서 알렸다. 이사악은 그 우물을 세바라 불렀다. 그래서 그 도시를 오늘날까지 브엘세바라고 부르고 있다. (창세기 26:25-33, 공동번역성서)
여기서는 이사악이 주인공이며,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보이지 않고, 이사악이 이름을 지어 브엘세바라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전자의 기록과 모순이 생긴다.
이외에도 창세기에는 여러가지 상이하거나 차이가 있는 구절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데, 가톨릭의 성서비평학에 따르면, 창세기 성경 집필은 야훼계, 엘로힘계, 사제계라는 세 서술 그룹에 의하여 바빌론 유수 시기에 그간 전해지던 창세기의 전승을 모아 서술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하느님에 의한 천지창조가 두번 묘사되거나, 창세기 1장과 2절의 하느님의 이름이 다른 것,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나, 이사악이 자기 아내 레베카를 누이라고 속인 사건도 동일하게 반복되는 등의 모순과 의아한 점이 모두 설명된다. 즉 서로 다른 서술집단이 같은 전승을 가지고 서술한 것을 함께 한 권의 창세기 경전으로 수록했기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 공동번역성서)
하느님은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40일간 광야에서 악에게 유혹받은 예수는 어째서 시험을 받은 것인가? [1]
여기에 관해서는 교회의 삼위일체론에 입각해 성자는 신성과 인간성을 모두 가진 존재로서 취급되기때문에 인간 예수로서 유혹을 받았으며,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예수가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모습 뿐만 아니라 성자 하느님으로서의 모습을 가지고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수단으로서 성경 내에서 이용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해석이기때문에, 교파마다 달라지는 해석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악을 행하도록 유혹할 작자가 아니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항목내를 보면 악행을 권장하는 부분이 많다(....). 당장에 아브라함에게 자기 자식을 죽이라 명령을 내린다던가, 사탄이 욥의 자식과 가축들을 죽이고 피부병에 걸리게 하는걸 허락한다던가, 예리코의 전투에서 죄다 죽이고 처녀만을 취하라는 식으로 학살과 강간을 권장하는 등 악행을 명령한 구절이 많다. 그리고 파라오가 악한마음을 가지도록 조종한것도 야훼다(...)
야훼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똑똑히 알아두어라. 네 자손이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종이 되어 얹혀살며 400년 동안 압제를 받을 것이다." (창세기 15:13, 공동번역성서)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외국 땅에서 400년 동안 나그네로 있으면서 종살이를 하며 학대를 받으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6, 공동번역성서)
이 기록들에서는 공통적으로 400년간 이집트에 머물렀다고 되어 있는데,
탈출기에서는 430년이라 기록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 반올림 '400년'이라는 기록은 '400여 년'(…)으로 본다는 이야기.
다만 이는 적기 방법에 따른 귀차니즘으로 인해 생략된 것일 수도 있다(...). 근데 머무른것과 압제 당한다는게 같은 의미라고 봐야하는 건가??
모세는 미디안 사제인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더니 (탈출기 3:1, 공동번역성서)
모세의 장인 호밥은 켄 사람이었는데, 그는 유다 자손들과 함께 종려나무 도시로부터 올라와 아랏 남방에 있는 유다 사막에 이르러 아말렉족과 어울려 살았다. (판관기 1:16, 공동번역성서)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가운데 켄 사람 헤벨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문중에서 떨어져 나가 케데스 근처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판관기 4:11, 공동번역성서)
일단 미디안과 켄은 다른 지역이다. 또한 모세의 장인 이름이 탈출기에는 제사장 이드로라 되어 있고, 판관기에는 호밥이라 되어 있다.
모세가 자기 장인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청하였다. "우리는 이제 야훼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으로 떠납니다. 잘 대접해 드릴 터이니, 우리와 같이 갑시다.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잘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소." (민수기 10:29, 공동번역성서)
이런 구절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명백한 모순이다. 게다가 호밥이 르우엘의 아들로 되어 있으니 여기서도 모순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기독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아마도 켄 족속이 "미디안 족 내의 소 부족"(Gordon J. Wenham, TOTC, 4:105)이거나, "정치적 동맹 부족"(Robert G. Boling, AB, 6A: 57)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호밥을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민수기 10:29)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바로 그 호밥의 후손을 "켄 사람"(사무엘상 15:6)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이다. |
그러나 이 주장은 증거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사료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여기에 대해 '켄' 족속이 유목민족이라 미디안 족과 함께 살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몽골족은 유목민이라 떠돌아 다녔으니 제주도에 와서 살았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중근동의 지역이니 비유 자체는 안맞지만 결론은 근거가 없는 추측이라는 것.
또한 이드로와 르우엘이 동일인이라는 증거가 전무하며, 아브람과 아브라함, 야곱과 이스라엘, 요셉과 사브낫바네아, 기드온과 여룹바알, 솔로몬과 여디디아, 다니엘과 벨드사살, 사울과 바오로는 모두 이름이 바뀌게 된 유래가 나와 있거나, 같은 텍스트 안에서 두 이름이 같이 언급되어 동일인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는데 왜 이드로와 르우엘만 그 모양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이것을 두고 몇몇 기독교인들은 나중에 가면 모세가 첩(에티오피아 여인)도 들이는데 그냥 2번 결혼했다고 치자고 끼어맞추기를 시전하기도 한다(...).
그 때 전 이스라엘군에서 뽑힌 10,000명 정예 부대가 기브아 정면에 나타났다. 싸움은 치열하였다.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이 앞으로 얼마나 비참한 일을 당할지 까맣게 몰랐다. 야훼께서 이스라엘 눈앞에서 베냐민을 치셨다. 그 날 이스라엘군은 칼 쓰는 베냐민 군 25,100명을 죽였다. 베냐민 군은 자기네가 패하였음을 알았다. 이스라엘군이 베냐민 군이 보는 데서 뒤로 물러선 것은, 기브아 주변에 복병을 배치해 둔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복병은 재빨리 기브아에 밀려 들어가, 온 성 주민을 쳐죽였다. (판관기 20:34-37, 공동번역성서)
이렇게 해서 그 날 죽은 베냐민 전사자 총수는 25,000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쓰는 용사들이었다. 그러나 600명은 광야를 통과하여 림몬 바위까지 도망쳐서 4달을 그 바위 있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다시 베냐민의 민간인들에게로 돌아와서, 그 성 사람과 짐승을 만나는 대로 칼로 쳐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성읍들에도 닥치는 대로 모조리 불을 놓았다. (판관기 20:46-48, 공동번역성서)
두 기록은 같은 전쟁을 말하고 있는데도 전자는 25,100명, 후자는 25,000명으로, 100명의 차이가 발생한다. 귀찮아서 반올림 했겠지 이거 이 위에서도 본 거 같은데 신의 뜻에따라 쓰는 경전을 귀찮다고 저 지랄하면 9족몰살감이다.
성경에 기록된 사울 왕의 나이와 재위 기간이 말 그대로 엉망이다. 사무엘상 13장 1절은 히브리 사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마소라 본문 - 사울이 왕이 된 것은 1살 때였다. 그가 이스라엘을 2년 간 다스렸다. (사무엘상 13:1)
그리고 중요한 건 각 번역마다 수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1살이 중요한게 아니다
사울이 1 살때 왕이 된 뒤, 2년 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사무엘과 멀어지고 사무엘이 다윗을 왕으로 세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가 볼 수 있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공동번역 - …
현대인의 성경 - 사울은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2년째에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그 중에서 3,000명을 골라 2,000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산에 있게 하고, 나머지 1,000명은 그의 아들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 기브아에 있게 하였으며, 남은 백성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新共同譯 - サウルは王となって一年でイスラエル全體の王となり、二年たったとき、
NIV -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came king, and he reigned over Israel forty-two years.
KJV - Saul reigned one year; and when he had reigned two years over Israel,
NASB - Saul was thirty years old when he began to reign, and he reigned forty two years over Israel.
新改譯 - サウルは三十歲で王となり、十二年間イスラエルの王であった。
口語譯 - サウルは三十歲で王の位につき、二年イスラエルを治めた。
공동번역에서는 생략해 놓았고, 다른 판본들도 서로 다른 숫자를 집어넣어 놓았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한 말이다.
그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느님께서는 베냐민 지파 사람 키스의 아들 사울을 왕으로 세워 40년 동안 다스리게 하시다가, 그를 물리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 13:21~22, 공동번역성서)
사도 바오로의 말과, 구약의 각 판본마다 사울 왕의 나이와 재위 기간이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
골리앗을 죽인 사람에 대해서도 엘하난과 다윗으로 각각 나와 있어 상호모순이 일어난다.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 (사무엘상 17:50, 공동번역성서)
곱에서 불레셋 군과 또 한 차례 싸움이 붙었을 때 베들레헴 사람 야이르의 아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을 죽였는데, 골리앗의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다. (사무엘하 21:19, 공동번역성서)
그 후에 다윗의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나단이란 예언자가 나타났다. 번제물을 위하여 기름기를 따로 떼어놓듯이, 다윗도 온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뽑혔다. 그는 마치 염소를 데리고 놀듯이 사자를 다루었고, 어린 양을 데리고 놀듯이 곰을 다루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거인을 죽이고 자기 백성의 치욕을 씻었다. 팔매돌 하나로 골리앗의 콧대를 꺾었다. (집회서 47:1~4, 공동번역성서)
집회서는 개신교에서는 없는데?
또 다른 불레셋과의 싸움에서 야이르의 아들 엘하난이 갓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의 창대는 베틀의 용두머리만큼이나 굵었다. (역대기상 20:5, 공동번역성서)
엘하난의 공이 다윗에게 흡수되었다는 해석과 다윗의 본명이 엘하난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전부 가능성이 낮다. 다윗의 아버지는 이새의 반면, 엘하난의 아버지는 야이르라고 기술되어 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다. 사실 야이르와 이새도 동일인물 이하 자세한 사항은 엘하난을 참조할 것.
이 모순을 피하기 위해, 현재 사용되는 성서에는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 엘하난이 골리앗의 동생 라흐미를 죽였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한 기독교 측의 해석은 골리앗은 다윗에 의해 죽었고 엘 하난은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인 것이 분명하다고 한다. 해당 링크의 주장은 결국은 '필사 오류'라는 것.
우선 다음 두 기록을 보자.
사무엘은 기름 1병을 꺼내어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추며 이렇게 선언하였다. 야훼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수령으로 성별해 세우시는 것이오. 그대는 야훼의 백성을 지배하시오. 그대는 사방에 있는 적의 세력으로부터 이 백성을 구해 내어야 하오. 야훼께서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몫인 이 백성의 수령으로 성별해 세우신 표는 이것이오. |
그리고 사무엘상을 조금 더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사울은 다시 군졸들을 보내면서 "다윗을 침대째 들어 오너라. 내가 죽여버리겠다." 하였다. 군졸들이 와서 보니 침대에는 머리에 염소털로 짠 것을 씌워놓은 그 집의 수호신이 뉘어져 있었다. 사울이 미갈에게 "어쩌자고 이런 속임수를 써서 내 원수놈을 빠져 나가게 하였느냐?" 하고 야단치자 미갈이 아버지에게 "빠져 나가게 해주지 않으면 저를 죽이겠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하고 꾸며대었다. |
그런데 자세히 보면 희한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의 기록은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 나서 이런 속담이 생겼다 되어 있고, 후자의 기록은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사자들을 보낸 후에 이런 속담이 생겼다 되어 있다. 또 마지막 구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양쪽이 완전히 다르며, 이외에 세부사항들 또한 다 다르다.
(열왕기하 18:9, 공동번역성서) 히즈키야 왕 제4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7년에 아시리아 왕 샬마네셀이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열왕기하 18:10, 공동번역성서) 3년 만에 함락시켰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은 히즈키야 제6년, 곧 이스라엘 왕 호세아 제9년이었다.
불과 1절 차이인데도 모순이 생기고 있다. 히스기야 4년+3년=히스기야 7년이 되어야 하며, 호세아 7년+3년=호세아 10년이라야 맞다.
다만, 이 점도 햇수로 3년일 수 있다. 예수가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혀서 2일 뒤인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사흘 만에라고 하는 예시를 보더라도.
우선 다음을 보자.
(대상 6:16) 레위의 아들들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며
(대상 6:17) 게르손의 아들의 이름은 립니와 시므이요
(대상 6:18) 그핫의 아들들은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이요
(대상 6:19) 므라리의 아들들은 말리와 무시라 이 레위 사람의 집들이 그 종족을 따라 이러하니
(대상 6:20) 게르손에게서 난 자는 곧 그 아들 립니요 그 아들은 야핫이요 그 아들은 심마요
(대상 6:21) 그 아들은 요아요 그 아들은 잇도요 그 아들은 세라요 그 아들은 여아드래며
(대상 6:22) 그핫에게서 난 자는 곧 그 아들 암미나답이요 그 아들은 고라요 그 아들은 앗실이요
(대상 6:23) 그 아들은 엘가나요 그 아들은 에비아삽이요 그 아들은 앗실이요
(대상 6:24) 그 아들은 다핫이요 그 아들은 우리엘이요 그 아들은 웃시야요 그 아들은 사울이며
(대상 6:25) 엘가나의 아들들은 아마새와 아히못이라
(대상 6:26) 엘가나로 말하면 그 자손은 이러하니 그 아들은 소배요 그 아들은 나핫이요
(대상 6:27) 그 아들은 엘리압이요 그 아들은 여로함이요 그 아들은 엘가나며
(대상 6:28) 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요엘이요 다음은 아비야며
(대상 6:29) 므라리에게서 난 자는 말리요 그 아들은 립니요 그 아들은 시므이요 그 아들은 웃사요
대상 6:30) 그 아들은 시므아요 그 아들은 학기야요 그 아들은 아사야더라
아 잠이 온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에비아삽은 레위로부터 7대, 앗실은 8대, 다핫은 9대이다. 엘가나는 6대다.(그핫 자손) 또 야헛은 레위로부터 4대, 심마는 5대, 그리고 세라는 8대이다.(게르손 자손) 또한 여기서 말리는 레위로부터 3대다. 립니는 4대이다.(므라리 자손)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성경 구절들로 족보를 따져 보면 희한한 일이 생긴다.
(대상 6:31)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대상 6:32)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대상 6:33) 직무를 행하는 자와 그 아들들이 이러하니 그핫의 자손 중에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 저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사무엘의 아들이요
(대상 6:34) 사무엘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여로함은 엘리엘의 아들이요 엘리엘은 도아의 아들이요
(대상 6:35) 도아는 숩의 아들이요 숩은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마핫의 아들이요 마핫은 아마새의 아들이요
(대상 6:36) 아마새는 엘가나의 아들이요 엘가나는 요엘의 아들이요 요엘은 아사랴의 아들이요 아사랴는 스바냐의 아들이요
(대상 6:37) 스바냐는 다핫의 아들이요 다핫은 앗실의 아들이요 앗실은 에비아삽의 아들이요 에비아삽은 고라의 아들이요』
(대상 6:38) 『고라는 이스할의 아들이요 이스할은 그핫의 아들이요 그핫은 레위의 아들이요 레위는 이스라엘의 아들이며』
(대상 6:39) 『헤만의 형제 아삽은 헤만의 우편에서 직무를 행하였으니 저는 베레갸의 아들이요 베레갸는 시므아의 아들이요
(대상 6:40) 시므아는 미가엘의 아들이요 미가엘은 바아세야의 아들이요 바아세야는 말기야의 아들이요
(대상 6:41) 말기야는 에드니의 아들이요 에드니는 세라의 아들이요
(대상 6:42) 아다야는 에단의 아들이요 에단은 심마의 아들이요 심마는 시므이의 아들이요
(대상 6:43) 시므이는 야핫의 아들이요 야핫은 게르손의 아들이요 게르손은 레위의 아들이며
여기서는 에비아삽은 레위로부터 5대, 앗실은 6대, 다핫은 7대이다. 엘가냐는 11대다. (그핫 자손) 또 야핫은 레위로부터 3대, 심마는 5대이며 세라는 8대다. (게르손 자손) 마지막으로 말리는 레위로부터 4대다. (므라리 자손) 에비아삽, 앗실, 다핫,엘가나,애핫, 말리의 대수가 틀렸다. 헤만과 아삽은 몇 대수나 차이가 나는데도 형제라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족보 자체가 둘 중 하나는 잘못되었거나 혹은 둘 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순이 매우 많은 관계로(...) 일단 구절 내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 양측의 모순이 발견되는 구절은 모순, 아닌 부분은 o표시하였다.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의 자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스라야와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발과 비그왜와 르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 이 명이요 (o) 스바댜 자손이 삼백 칠십 이 명이요(o) 아라 자손이 칠백 칠십 오 명이요 (모순1)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팔백 십 이 명이요 (모순2)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 명이요 (o) 삿두 자손이 구백 사십 오 명이요 (모순3)삭개 자손이 칠백 육십 명이요 (o) 바니 자손이 육백 사십 이 명이요(모순4) 브배 자손이 육백 이십 삼 명이요(모순5) 아스갓 자손이 일천 이백 이십 이 명이요(모순6)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 육십 육 명이요 (모순7) 비그왜 자손이 이천 오십 육 명이요(모순8) 아딘 자손이 사백 오십 사 명이요 (모순9)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 명이요(o) 베새 자손이 삼백 이십 삼 명이요 (모순10) 요라 자손이 일백 십 이 명이요 (o) 하숨 자손이 이백 이십 삼 명이요(모순11) 깁발 자손이 구십 오 명이요 (o) 베들레헴 사람이 일백 이십 삼 명이요(모순16) 느도바 사람이 오십 육 명이요(모순16123+56=179) 아나돗 사람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 (o) 아스마웨??(아스마웹) 자손이 사십 이 명이요 (o) 기랴다림과 그비라와 브에롯자손이 칠백사십삼 명이요(o) 라마와 게바 자손이 육백 이십 일 명이요(o) 믹마스 사람이 일백 이십 이 명이요 (o)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이백 이십 삼 명이요 (모순12) 느보 자손이 오십 이 명이요 (o) 막비스 자손이 일백오십육명이요(모순13-느혜미야엔 없음) 다른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 명이요 (o) 하림 자손이 삼백 이십 명이요 (o) 로드와 하딧과오노 자손이 칠백 이십 오 명이요(모순14) 여리고 자손이 삼백 사십 오 명이요 (o) 스나아 자손이 삼천 육백 삼십 명이었더라 (모순15) (에스라 2장 1절-35절)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라 바로스 자손이 이천 일백 칠십 이 명이요(o) 스바댜 자손이삼백 칠십 이 명이요(o) 아라 자손이 육백 오십 이 명이요(모순1) 바핫모압 자손 곧 예수아와 요압 자손이 이천 팔백 십팔 명이요(모순2)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 명이요 (o) 삿두 자손이 팔백 사십 오 명이요 (모순3) 삭개 자손이 백 육십 명이요 (o) 빈누이 자손이 육백 사십 팔 명이요(모순4) 브배 자손이 육백 이십 팔 명이요 (모순5) 아스갓 자손이 이천 삼백 이십 이 명이요(모순6)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 육십 칠 명이요(모순7) 비그왜 자손이 이천 육십 칠 명이요(모순8) 아딘 자손이 육백 오십 오 명이요(모순9) 아델 자손 곧 히스기야 자손이 구십 팔 명이요 (o) 하숨 자손이 삼백 십 팔 명이요 (모순11) 베새 자손이 삼백 이십 사 명이요 (모순10) 하립 자손이 일백 십 이 명이요 (o) 기브온 사람이 구십오 명이요 (o) 베들레헴과 느도바 사람이 일백 팔십 팔 명이요 (모순16-188) 아나돗 사람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 (o) 아스마웨??(벧아스마웹) 사람이 사십 이 명이요 (o) 기럇여아림과 그비라와 브에롯 사람이 칠백 사십 삼 명이요(o) 라마와 게바 사람이 육백 이십 일 명이요 (o) 믹마스 사람이 일백 이십 이 명이요 (o) 벧엘과 아이 사람이 일백 이십 삼 명이요(모순12) 기타 느보 사람이 오십 이 명이요 (o) 기타 엘람 자손이 일천 이백 오십 사 명이요 (o) 하림 자손이 삼백 이십 명이요 (o) 여리고 자손이 삼백 사십 오 명이요 (o) 로드와 하딧과 오노 자손이 칠백 이십 일 명이요 (모순14) 스나아 자손이 삼천 구백 삼십 명이었느니라 (모순15) (느혜미야 7장 6절-38절)
그리고 다음,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십 삼 명이요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 명이요 (o)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 명이요 (o) 하림 자손이 일천 십 칠 명이었더라 (o) 레위 사람은 호다위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 사 명이요 (o)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이십 팔 명이요(모순17) 문지기의 자손들은 살룸과 아델과 달문과 악굽과 하디다와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구 명이었더라(모순18)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게로스 자손과 시아하 자손과 바돈 자손과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갑 자손과 사믈래 자손과 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아스나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부심 자손과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바슬룻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더라 (여기까지 일치)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하소베렛 자손과 브루다 자손과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스바댜 자손과 하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미 자손이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 명이었더라 (o)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 오십 이명이요 (모순19)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요 (에스라 2장 36절-64절)
제사장들은 예수아의 집 여다야 자손이 구백 칠십 삼 명이요 임멜 자손이 일천 오십 이 명이요 (o) 바스훌 자손이 일천 이백 사십 칠 명이요 (o) 하림 자손이 일천 십 칠 명이었느니라 (o) 레위 사람들은 호드야 자손 곧 예수아와 갓미엘 자손이 칠십 사 명이요 (o)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일백 사십 팔 명이요(모순17) 문지기들은 살룸 자손과 아델 자손과 달문 자손과 악굽 자손과 하디다 자손과 소배 자손이 모두 일백 삼십 팔 명이었느니라 (모순18) 느디님 사람들은 시하 자손과 하수바 자손과 답바옷 자손과 게로스 자손과 시아 자손과 바돈 자손과 르바나 자손과 하가바 자손과 살매 자손과 하난 자손과 깃델 자손과 가할 자손과 르아야 자손과 르신 자손과 느고다 자손과 갓삼 자손과 웃사 자손과 바세아 자손과 베새 자손과 므우님 자손과 느비스심 자손과 박북 자손과 하그바 자손과 할훌 자손과 바슬릿 자손과 므히다 자손과 하르사 자손과 바르고스 자손과 시스라 자손과 데마 자손과 느시야 자손과 하디바 자손이었느니라 (여기까지 일치)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은 소대 자손과 소베렛 자손과 브리다 자손과 야알라 자손과 다르곤 자손과 깃델 자손과 스바댜 자손과 핫딜 자손과 보게렛하스바임 자손과 아몬 자손이니 모든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 삼백 구십 이 명이었느니라 (o)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저희는 들라야 자손과 도비야 자손과 느고다 자손이라 도합이 육백 사십 이 명이요 (모순19) 제사장 중에는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요 (느혜미야 7장 39절-65절)
마지막으로,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 (모순20) 말이 칠백 삼십 육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 오요 (o)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이었더라 (o)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리니 금이 육만 일천 다릭이요 은이 오천 마네요 제사장의 옷이 일백 벌이었더라 (모순21)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그 본성들에 거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그 본성들에 거하였느니라 (에스라 2장 65절-70절)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사십 오 명이요 (모순20) 말이 칠백 삼십 육이요 노새가 이백 사십 오요 (o) 약대가 사백 삼십 오요 나귀가 육천 칠백 이십이었느니라 (o)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 방백은 금 일천 다릭과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 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 칠 벌을 드렸느니라 (모순21)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이 다 그 본성에 거하였느니라 (느혜미야 7장 67-73절)
아하지야는 22세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1년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 아달리야였다. (열왕기하 8:26)
아하지야는 4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년간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오므리의 손녀로서 이름은 아달리야라고 하였다. (역대기하 22:2)
열왕기하에는 22세로, 역대기하에서는 42세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다 왕 아하지야는 일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벳하깐 길로 도망쳤다. 예후는 그의 뒤를 추적하며 "저놈도 쳐죽여라." 하고 명령하였다. 아하지야는 병거를 타고 이블르암 근처의 고갯길을 달리다가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고 므기또로 도망하였으나 거기에서 죽었다. (열왕기하 9:27, 공동번역성서)
예후는 아합 가문의 죄를 다스리다가, 유다 군 장교들과 아하지야를 모시는 왕의 조카들을 만나 죽였다. 아하지야는 사마리아에 가서 숨어 있다가 끌려왔다. 예후가 그를 죽이자 사람들은 "그래도 한마음으로 야훼만 찾던 여호사밧의 아들인데." 하며 장례를 치러주었다. 마침내 아하지야 집안에는 왕노릇 할 만큼 강한 사람이 없게 되었다. (역대기하 22:8-9, 공동번역성서)
열왕기하의 기록에서는 예후가 직접 쫓아가서 죽였다 되어 있고, 역대기하에서는 예후의 군사들이 예후에게 끌고 와서 죽였다 되어 있으며, 죽임을 당한 지역도 서로 차이가 있다.
(열왕기하 10:30, 공동번역성서) 야훼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마음에 들도록 일을 잘하였다. 나의 뜻대로 아합 가문을 잘 처치하였다. 그러므로 네 후손이 4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왕위에 오르리라."
예후를 대수에 포함하면 예후의 3대손까지 이스라엘의 국왕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이후 내용에서 정말 예후의 3대손까지 왕이 되었는가 확인해보자.
(열왕기하 10:35, 공동번역성서) 예후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열왕기하 13:1, 공동번역성서)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아하지야의 아들 요아스 제23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17년 동안 다스렸다.
(열왕기하 13:9, 공동번역성서) 여호아하즈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아스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열왕기하 13:10, 공동번역성서) 여호아하즈의 아들 여호아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요아스 제37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16년 동안 다스렸다.
(열왕기하 13:13, 공동번역성서) 여호아스는 세상을 떠나 선조들에게로 돌아가 사마리아에 있는 왕실 묘지에 안장되었고, 그의 뒤를 이어 여로보암이 왕위에 올랐다.
우선 여기까지 나온 대수는 예후-여호아하즈-여호아스의 3대이다.
(열왕기하 14:23, 공동번역성서) 여호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지야 제15년의 일이었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41년간 다스렸다.
(열왕기하 14:29, 공동번역성서) 여로보암이 선조들과 함께 잠들어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곁에 안장되자, 그의 아들 즈가리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열왕기하 15:12, 공동번역성서) 야훼께서 예후에게 "네 자손이 4대까지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으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요아스 이후로 2대가 더 나온다. 즉, 예후-여호아하즈-요아스-여로보암-즈가리야로 예후를 포함하면 5대가 된다. 사실은 예후를 뺀 4대까지 왕이 된다는 구절이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긴 하다.
아사와 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전쟁을 하였다. (열왕기상 15:16, 공동번역성서)
나라가 평온하였기 때문에 그(아사)는 유다 성읍들을 요새로 만들 수 있었다. 야훼께서 평화를 주셔서 여러 해 동안 전쟁이 없었다. 그는 유다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우리 하느님 야훼를 찾았더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다. 우리가 당신을 찾았으므로 이 땅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이런 때를 놓치지 말고 성읍들을 다시 세우자. 성벽을 둘러쌓고 성문을 만들어 달고 빗장을 만들어 꽂자." 그들은 성 쌓는 일을 잘 마치게 되었다. (역대기하 14:5-6, 공동번역성서)
이후 아사 왕 제35년까지 전쟁이 없었다. (역대기하 15:19, 공동번역성서)
열왕기상과 역대기하의 기록이 서로 모순된다. 전쟁과 평화???
사무엘하에는 다윗의 아내 미칼에게 죽을 때까지 자녀가 없었다고 나오는데,
그 뒤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 (사무엘하 6:23, 공동번역성서)
역대기에는 미칼이 자녀를 두었다고 나와서 상호모순이 된다.
그러나 위의 구절은 다윗이 언약궤를 되찾으며 춤추는 모습을 본 미칼이 웃자 저주 나 너랑 안놀거임 쀼쀼 처럼 한 말이므로 그 이전에는 자녀를 가졌을 수 있다. 즉, 한 구절만을 가지고 해석을 확대한 셈.
마소라 본문 사무엘하 21장 8절에서는 미칼에게 다섯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아드리엘에게 낳아주었다"는 것은 사울의 큰딸 메랍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서기관의 필사 오류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마소라 본문에 집착하는 유대 전통에서는, 미칼이 메랍의 다섯 아이를 입양해서 양육했다고 한다(b. Sanh. 19b).
그리고 사무엘하 21:8에서 다른 판본에서는 사무엘의 다섯 아들이 전무 메랍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킹제임스판에서만 미갈의 자식이라고 되어있다. 성경 판본끼리도 내용이 통일되질 않는다.
공동번역 - 왕은 사울이 아야의 딸 리스바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 아르모니와 므비보셋, 사울의 딸 메랍이 므홀라 사람 바르질래의 아들 아드리엘에게 낳아준 아들 다섯을 잡아다
개역개정 -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NIV - But the king took Armoni and Mephibosheth, the two sons of Aiah's daughter Rizpah, whom she had borne to Saul, together with the five sons of Saul's daughter Merab, whom she had borne to Adriel son of Barzillai the Meholathite.
KJV - But the king took the two sons of Rizpah the daughter of Aiah, whom she bare unto Saul, Armoni and Mephibosheth; and the five sons of Michal the daughter of Saul, whom she brought up for Adriel the son of Barzillai the Meholathite:
NASB - So the king took the two sons of Rizpah the daughter of Aiah, Armoni and Mephibosheth whom she had borne to Saul, and the five sons of Merab the daughter of Saul, whom she had borne to Adriel the son of Barzillai the Meholathite.
(열왕기상 5:11, 공동번역성서) 그리고 솔로몬은 히람 왕실의 양식으로 밀 20,000섬과 찐기름 20섬을 공급하였다. 솔로몬은 해마다 이만큼씩 히람에게 보냈다.
(역대기하 2:9, 공동번역성서) 채벌 기술자들에게 본인은 양곡을 대어주겠습니다. 밀 20,000섬, 보리 20,000섬, 포도주 20,000말, 기름 20,000말을 당신의 일꾼들에게 대어주겠습니다."
동일한 이야기인데 보수가 밀 20,000석만 같고 나머지는 다 다르다. 다만 '이렇게 주겠다' 지 '이렇게 줬다'가 아니므로 협상을 통해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사무엘상 17:12, 공동번역성서) 그 때 유다 베들레헴에 이새라는 에브랏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다윗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 8형제를 둔 이새는, 사울이 왕노릇 할 무렵에 이미 나이가 많았다.
(역대기상 2:13, 공동번역성서) 이새가 낳은 아들들은 다음과 같다. 맏아들 엘리압, 둘째 아비나답, 셋째 시마,
(역대기상 2:14, 공동번역성서) 넷째 느다넬, 다섯째 라때,
(역대기상 2:15, 공동번역성서) 여섯째 오셈, 일곱째 다윗.
전자에서는 다윗이 8번째 아들이며 이새에게 아들이 8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후자에서는 다윗이 7번째였고 아들은 모두 7명이라고 한다.
(사무엘상 14:49, 공동번역성서) 사울에게는 세 아들, 요나단, 이스위, 말기수아와 큰딸 메랍과 작은딸 미갈이 있었다.
(사무엘상 14:50, 공동번역성서) 사울의 아내는 아히마스의 딸 아히노암이었다. 그의 사령관은 삼촌 넬의 아들 아브넬이었다.
(사무엘상 14:51, 공동번역성서) 사울의 아버지 키스와 아브넬의 아버지 넬은 아비엘의 아들이었다.
이제 다음을 보자.
(역대기상 9:39, 공동번역성서) 넬은 키스를 낳았고 키스는 사울을 낳았다. 사울은 요나단, 말기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을 낳았다.
사무엘상 14장에서는 사울의 아들이 3명이라 하고 역대기상 9장에서는 4명이라 한다. 또한 넬이 사울의 숙부인 동시에 사울의 할아버지로 나온다. 사울의 할아버지는 아비엘이라고 나온다. 사울과 아브넬은 사촌관계, 키스는 사울의 아버지, 넬은 아브넬의 아버지, 아비엘이 할아버지... 이거 전에 작성한 위키니트는 반성하자...
그는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유다 가문의 왕노릇을 했다. (사무엘 하 2:11, 공동번역성서)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사무엘 하 5:5, 공동번역성서)
여기서는 헤브론에서의 다윗의 통치가 7년하고도 6개월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40년이다.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을 다스렸다. (열왕기상 2:11, 공동번역성서)
여기에서는 7년으로, 전자의 기록과 비교할 때 6개월의 차이가 발생한다. 6개월 정도는 반올림??
다윗은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자리를 옮긴 뒤 후궁들을 더 얻어 아들딸을 많이 낳았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은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 이브할, 엘리수아,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엘리아다, 엘리벨렛이었다. (사무엘 하 5:13-16, 공동번역성서)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은 아래와 같다. 시마, 소밥, 나단, 솔로몬. 이 넷은 암미엘의 딸 바쎄바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이브할, 엘리사마, 엘리벨렛, 노가, 네벡, 야비아, 엘리사마, 엘리아다, 엘리벨렛 등 아홉을 더 낳았는데, 이들이 모두 다윗의 적자들이다. 그 밖에 후궁들이 낳은 서자들이 있었고, 다말이라는 공주도 있었다. (역대상 3:5-9, 공동번역성서)
사무엘 하에는 노가가 빠져 있다. 그리고 역대기상에선 엘리벨렛이 2명 나온다. 사무엘하와 역대기상을 비교하면 사무엘하의 족보가 역대기상의 것보다 2명이 모자라게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요압이 왕에게 보고한 총 민병대 수는 칼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에 80만, 유다에 50만이었다. (사무엘 하 24:9, 공동번역성서)
보다시피 칼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에는 80만, 유다에는 50만이라 한다.
병적 조사한 결과를 다윗에게 보고했다. 칼을 쓸 수 있는 군인이 이스라엘에는 110만이 있었고 유다에는 47만이 있었다. (역대기상 21:5, 공동번역성서)
여기서는 칼을 쓸 수 있는 군인이 이스라엘에는 110만, 유다에는 47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람 군은 진을 치고 다윗 군과 맞붙어 싸웠으나, 마침내 이스라엘군에게 쫓겨 달아나고 말았다. 다윗은 아람 병거대 700명과 기병대 40,000명을 무찌르고 적의 사령관 소박을 쳐죽였다. (사무엘하 10:17-18, 공동번역성서)
아람 군은 대진하고 있는 다윗을 맞아 공격하였으나, 마침내 이스라엘군에게 쫓겨 달아나고 말았다. 다윗은 아람 군 병거병 7,000과 보병 40,000을 죽이고 사령관 소박도 쳐죽였다. (역대기상 19:17-18, 공동번역성서)
전자의 기록은 700명을 죽였다고 하는데 후자는 7,000명을 죽였다고 되어 있다. 이건 반올림이라고 해명할 수도 없다.
(사무엘하 8:13, 공동번역성서)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소금 골짜기에 사는 에돔 사람 18,000명을 쳐죽여 이름을 떨치고,
(역대기상 18:12, 공동번역성서)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사해 골짜기에 사는 에돔 사람 18,000명을 쳐죽이고
동일한 사건에 대해 전자는 다윗이, 후자는 다윗의 신하인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하의 공적은 군주의 공적이다! 사실 다윗의 명령으로 아비새가 공격했다고 하면 문제는 없다
너희는 뇌물을 받지 마라. 뇌물은 멀쩡한 눈을 가려 올바른 사람들의 소송을 뒤엎는다. (탈출기 23:8, 공동번역성서)
'뇌물을 받고 죄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에게 저주를!' 하면, 온 백성은 '아멘!' 하여라. (신명기 27:25, 공동번역성서)
위선자의 무리는 그 씨가 마르고, 뇌물을 좋아하는 자의 천막은 타버린다네. (욥기 15:34, 공동번역성서)
임금이 정의로 다스리면 나라가 튼튼히 서지만, 마구 긁어들이면 나라가 망한다. (잠언 29:4, 공동번역성서)
아무리 지혜로워도 탐욕을 내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뇌물을 받았다가는 망신을 당한다. (코헬렛 7:7, 공동번역성서)
그런데, 잠언의 기록은 이와 상반된다.
다만 이 구절의 전체적인 문장은 '뇌물을 쓰는 사람의 눈에는 뇌물이 요술방망이처럼 보인다. 어디에 쓰든 안 되는 일이 없다. (잠언 17:8 RNKSV)' 이다.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 (잠언 21:14, 공동번역성서)
뇌물을 받지 말라 하면서 뇌물을 주는건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것이 뇌물을 주라는 권장은 아니라고 본다. 잠언의 전체적인 기조는 이 문서 첫 6절의 성경구절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에, 인간의 일반적인 사회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이 서술은 오히려 앞뒤도 안맞을 뿐더러 오히려 권장하는것처럼 충분히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대목임엔 분명하다.
(열왕기하 24:17, 공동번역성서) 바빌론 왕은 여호야긴의 삼촌인 마따니야를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시드키야로 바꾸도록 하였다.
(역대기상 3:16, 공동번역성서) 여호야킴의 아들은 여고니야요, 그 아들은 시드키야이다.
삼촌이면서 아들이다(…)무슨 족보가 이래 성경에 자주 보이는 근친상간 문제일수도 있다. 만약 여호야긴이 자기 할머니(...)와 해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은 자기 자식이면서도 어머니나 아버지의 동생인 삼촌일테니 가능은 하다.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배제하는거냐...
(열왕기상 22:52, 공동번역성서) 아합의 아들 아하지야는 유다 왕 여호사밧 제17년에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2년간 다스렸다.
(열왕기하 3:1, 공동번역성서) 유다 왕 여호사밧 제18년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위에 올라 12년을 다스렸다.
17년에서 2년이 경과하면 19년이지 18년이 아니다. 다만 햇수로 세면 모순이 해결된다.
네겝 쪽으로 에돔과 접경하고 있는 유다 후손 지파 남단 성읍들은 아래와 같다. 캅스엘, 에델, 야굴, 키나, 디모나, 아드아다, 케데스, 하솔, 잇난, 지브, 텔렘, 브알롯, 하솔하다따, 크리욧헤스론 곧 하솔, 아맘, 세마, 몰라다, 하살가따, 헤스몬, 벳벨렛, 하살수알, 브엘세바, 비즈요드야, 바알라, 이임, 에셈, 엘돌랏, 그실, 호르마, 시글락, 마드만나, 산산나, 르바옷, 실힘, 엔림몬. 이렇게 모두 29성과 그 변두리 천막촌들이다. (여호수아 15:21-32)
모두 35개의 성읍인데 이를 29개의 성읍이라 말하고 있다.천막촌들인가 보지
(열왕기상 5:29, 공동번역성서) 솔로몬은 또 짐 나르는 사람 70,000만과 돌깨는 사람 80,000을 산악 지대에 두었는데
(열왕기상 5:30, 공동번역성서) 그 외에도 일을 감독하는 솔로몬의 고급 관리 3,300명이 있었다.
(역대기하 2:17, 공동번역성서) 그 중에서 70,000명을 짐꾼으로 징용하고 80,000명은 산에서 돌 떠내는 일을 시켰다. 그리고 그 일꾼들을 부리는 감독으로 3,600명을 뽑았다.
성경의 기록대로라면 300명의 차이가 난다.
(열왕기상 7:26, 공동번역성서) 바다 모형의 두께는 한 뼘이며, 그 가장자리 테는 나리꽃 무늬로 잔의 테처럼 만들어졌다. 이 바다 모형에는 물 2,000말을 담을 수 있었다.
(역대기하 4:5, 공동번역성서) 바다 가장자리의 두께는 한 뼘 나비였다. 그 가장자리는 잔의 가장자리와 비슷하게 꽃무늬를 새겨놓았다. 그리고 그 바다 모형에는 물을 3,000말 담을 수 있었다.
동일한 이야기에 대해 하나는 2,000말, 하나는 3,000말이라 한다.
(열왕기상 15:1-2, 공동번역성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왕 18년에 아비얌이 유다 왕위에 올랐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기간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왕의 어머니는 압살롬의 딸인 마아가였다.
(역대기하 13:1-2, 공동번역성서)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된 것은 여로보암 왕 제18년이었다. 그는 3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로서, 이름은 미가야라고 하였다. 아비야와 여로보암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보다시피 부친의 이름이 다르다. 압살롬과 우리엘 중 한 명은 남자같은 이름의 모친이라거나?
엘리야의 이야기도 어설픈 부분이 상당하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아하시야가 왕이 병이 들어 엘리야를 찾는데, 50인 대장에게 엘리야를 불러 오도록 명한다. 50인 부장은 즉시 부하 병사 50명을 인솔하고 엘리야를 찾아간다.
50인 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들이 산으로 올라가 보니, 엘리야는 마침 산 위에 앉아 있었다. 대장이 "하느님의 사람이여, 당장 내려오시오. 어명이오." 하고 외치자, 엘리야는 그 50인 대장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다.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 대장과 함께 너희 50인 부대를 삼켜버릴 것이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대장과 함께 그 50인 부대를 삼켜버렸다. (열왕기하 1:9~10, 공동번역성서)
이런 짓이 2번 반복되어 순식간에 102명의 장병들이 불에 타죽는다. 2번씩이나 파견됐던 장병들이 모두 불에 타 죽었기 때문에,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단 1명도 없다고 성경에 쓰여 있다. 그런데 3번째 파견된 50인 대장의 말을 살펴보면
왕은 3번째로 50인 대장을 부하를 딸려 엘리야에게 보냈다. 그는 산에 올라가서 엘리야를 만나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이여, 소인과 이 군인 50명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미 2차례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50인 부대를 대장과 함께 삼켜버렸습니다. 이제 이 목숨만은 아껴주십시오." (열왕기하 1:13~14, 공동번역성서)
성경에 따르면 첫 번째와 2번째, 도합 102명이 모두 하느님의 불에 타 죽고,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따라서, 사건의 전말을 보고받은 바도 있을 수 없다. 그런데 3번째의 50인 대장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고 있다. 앞서 간 부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유추가 가능할 수 있으나,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타 죽은 것'은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일까?
누군가 제3의 목격자가 있었을까? 아니면 엘리야 자신의 증언일까? 혹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광경을 보았다는 추측도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산에 그을린 흔적이 있다거나 아주 우연의 일치로 3번째 병단이 도착했을 때 2번째 병단이 타고 있던 걸 수도 있으며 도착하자마자 주변에 널린 뼈들을 보고 눈치 깠을지도 모른다.
열왕기에 기록된 엘리야의 기적 부분도 논란의 여지가 되는 부분이 있다. 열왕기상 18장 부근을 보면, 엘리야 한 사람이 갈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여 명과 기적 대결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자기 앞으로 다가오라고 말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허물어진 야훼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엘리야는 일찍이 야훼께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신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서 나온 지파의 수대로 돌을 12개 모았다. 엘리야는 그 돌 12개로 야훼의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주위에는 곡식 2가마 정도 들어갈 만큼 큰 도랑을 팠다.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송아지를 잡아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서 물을 4동이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대로 하자 그는 그렇게 한 번 더 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그대로 하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3번을 붓자 물이 제단 주위로 넘쳐흘렀고 옆 도랑에 가득 괴었다. (열왕기상 18:30~35, 공동번역성서)
돌로 단을 쌓고, 단 둘레에 곡식 2가마가 들어갈 만큼의 도랑을 팠다고 한다. 그리고 물 12통을 길어다가 제물과 나무에 부었더니, 모두가 물에 푹 젖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을 열심히 부어댄 것은, 젖은 상태에서 불이 붙는 장면을 연출하여 더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기 위함인데, 지금 이 시기 중동 지방은 성경에 따르면 엘리야의 예언에 따라 야훼에 의하여 3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 동네는 우물의 깊이만도 자그마치 200~300m가 넘고, 가뭄이 아니더라도 와디(wadi=wady)라 하여 물 없는 강뿐인 살벌한 동네다. 이런 지방에서 3년의 가뭄 뒤에 12통씩이나 되는 물이 어디서 났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 왕국의 왕인 아합조차도 마시고 세수할 물이 없어서 찾아 헤맸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때문에 부은게 사실 물이 아니라 기름이었다는 개드립같은 주장도 있다(...) 다만 가르멜 산의 위치가 지중해 연안의 바닷가이니, 바닷물을 길어다 부었다고 하면 설명이 된다.
일부 기독교계의 해석은, 갈멜 산이 거대했고 거의 모든 지형이 나무와 숲으로 뒤덮여 있었기에 어디선가 물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이스라엘은 원래 부터 6개월 동안 건기였고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곳인데 그런 이스라엘 중에서도 갈멜 산은 특히나 물이 풍부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3년 동안 물이 없었어도 가축이나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였을 것이기 때문에. 무리를 하면 당연히 그 정도는 물을 얻어낼 순 있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강이 그리 크지 않아서 말라 붙어도 곳곳에서 웅덩이가 숲 안쪽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다만 엘리야 당시의 갈멜 산의 기후적 특징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그외에도 이상한 대목이 또 있는데,
그들은 준비한 황소를 받아 잡아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되기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오, 바알이여, 대답하소서." 그러나 대답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 예언자들은 자기네가 만든 제단을 돌면서 절뚝거리는 춤을 추었다.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말하였다. "바알은 신이니까, 더 크게 불러보아라. 깊은 사색에 빠져 계신지도 모르지. 외출 중인지, 아니면 여행 중인지,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보아라." 그들은 더 크게 소리쳤다. 자기네 의식을 따라 칼과 창으로 몸에 상처를 내어 피까지 흘렸다. 한낮이 지나 제사 시간이 될 때까지 그들은 신접한 모습으로 날뛰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은커녕 아무 소리도, 아무 기척도 없었다. (열왕기상 18:26~29, 공동번역성서)
시기상 엘리야의 차례가 되어 번제물에 물을 끼얹는 행동을 하기 전에, 바알의 예언자들이 먼저 나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사를 지내도 바알의 응답이 없다는 내용의 기록이다. 바알 예언자들이 제사 지낼 때,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에 엘리야가 백성들을 시켜 1. 단을 쌓고 2. 도랑을 파고 3. 나무를 준비하고 4.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고 5. 통 4개로 (없는) 물을 3번 길어다 붓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분명히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은 지났을 텐데, 다음을 보자.
제사 드리는 시간이 되어 예언자 엘리야가 앞으로 나와서 외쳤다. "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여, 이제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제가 한 모든 일이 당신의 말씀을 좇아 한 것임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여주십시오. 응답해 주십시오. 야훼여, 저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 백성으로 하여금 야훼께서 하느님이심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신 분이 당신이심을 알게 하여주십시오." (열왕기상 18:36~37, 공동번역성서)
저녁 제사를 드릴 시간은 벌써 지났건만, 아직도 그 제사 드리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타임 슬립 여기에 대해서는 어차피 상대방 하는 일이 뻘짓이라서 의도대로 안 될 걸 아니까, 미리 준비했다가 저녁 제사 시간 때 딱 내놓았을 수도 있다는 식의 해석도 나오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분명히 저녁 제사 드릴 시간에 이르러서야 1. 단을 쌓고 2. 도랑을 파고 3. 나무를 준비하고 4. 송아지를 잡아 각을 뜨고 5. 통 4개로 (없는) 물을 3번 길어다 붓는 작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서술에 있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일 뿐이다.
구약 시절 유다 왕국의 왕 므나쎄에 대한 기록이 다르다.
(열왕기하 21장 16절, 공동번역성서) "므나쎄는 나의 눈에 거슬리는 그 못할 짓을 하도록 이끌어 유다 백성을 죄에 빠뜨린데다가, 무죄한 사람의 피마저 흘려 온 예루살렘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므나쎄의 나머지 사적과 행적, 그리고 그가 저지른 죄는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므나쎄가 그 선조들과 같이 잠들자, 우짜 정원이라고도 하는 왕실 정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므나쎄가 마음을 고쳤다는 기록이 전혀 없이, 그냥 죽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역대기하의 기록은 다르다.
(역대기하 33장 11~16절, 공동번역성서) 야훼께서는 아시리아 왕의 군대를 끌어들이셨다. 아시리아 군 장교들은 므나쎄를 갈고리로 끌어내어 놋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데리고 갔다. 이렇게 곤경에 빠지자 므나쎄는 자기의 하느님 야훼께 빌었다. 선조들의 하느님 앞에 굴복하고 빌었다. 그러자 야훼께서는 마음이 움직이시어 그의 애원을 들어주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시 왕위에 앉게 해주셨다. 므나쎄는 그제야 야훼야말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그는 기혼 서쪽 골짜기에다가, 다윗 성 물고기문에 이르기까지 외곽성을 쌓아올렸다. 오벨 밖으로 돌아가며 성을 아주 높이 쌓아올렸고, 유다의 요새화된 성마다 군대와 장군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외국의 신상들을 치워 없애버렸다. 야훼의 성전에 있던 우상을 떼어내고 야훼의 성전 언덕과 그 밖에 예루살렘에 세웠던 제단들을 허물어 성 밖에 내다 버렸으며, 야훼의 제단을 세운 다음 그 위에다 친교제물과 감사제물을 바치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를 예배하라고 유다인들에게 일렀다.
므나쎄가 바빌론에 잡혀갔다 돌아온 뒤 회개하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데 앞장섰다는, 열왕기하의 내용과는 정반대되는 이야기이다. 사실은 므나쎄가 둘?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사야서 7장 14절을 인용하여 예수의 탄생이 구약에서부터 이미 예언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사야서의 해당 구절을 살펴보자.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서 7:14
그렇다면 마태오 복음서의 해당 구절을 살펴보자.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오 복음서 1:21-23
보다시피 마태오는 이사야에서 예언했던 일이 일어났다고 적고 있다. 그런데 구약에 나온 해당 구절만 글자 그대로 볼 때는 예수에 대한 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보통 기독교계에서는 예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언급할 때 이사야서 7장 14절만을 읽게 하는데,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해당 구절은 이어지는 내용을 읽어보자.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네[2]가 원수로 여겨 두려워하는 저 두 왕[3]의 땅은 황무지가 되리라. 야훼께서 아시리아 왕으로 하여금 너와 너의 겨레와 너의 왕실을 치게 하실 터인즉, 그 날은 에브라임이 유다와 갈라지던 날 이후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불행한 날이 되리라. 이사야서 7:16
보다시피, 이사야서 7장 14절에서 임마누엘이라 언급된 아기가 자라서 어른이 되기 전에 두 왕, 즉 아람 왕 르신과 에브라임왕(이스라엘)이 당시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앗수르에게 멸망 당한다고 유다왕 아하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뒤로도 임마누엘이라 이름 붙여진 아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야훼께서 나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큰 판을 가져다 거기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씨로 마헤르 샬랄 하스 바스라고 새겨라." 그래서 나는 믿을 만한 증인으로 사제 우리야와 여베레키야의 아들 즈가리야를 세웠다. 그리고 내가 여예언자를 가까이하였더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야훼께서 나에게 분부하셨다. "이 아기의 이름을 마헤르 샬랄 하스 바스라 하여라. 이 아기가 아빠 엄마라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사람들이 다마스쿠스의 보화와 사마리아에서 빼앗은 전리품을 아시리아 왕에게 가져다 바치리라." 이사야 8:1-4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은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인데, 이 '아들'은 예수가 아닌 제사장 이사야의 아들 '마헤르 샬랄 하스 바스'라는 아이다. 또한 이 아이가 크기 전에 다마스쿠스와 사마리아를 앗수르가 쳐서 없앤다는 이야기며, 동정녀가 아니고 자기 아내와 동침한 결과다.
다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이 서술은 개신교에서도, 가톨릭에서도 문자 그대로는 아하즈에게 주는 약속의 표지라고 본다. 다만 후술할 4중적 해석법 등의 성서해석과 주해를 도입해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가 이 구절에서 동정 마리아에 의한 예수 탄생의 '예표'를 해석하였다고 보는 것. 문제는 이 구절이 기독교계에서 너무나 유명해지다 보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예수의 탄생을 문자 그대로 예고한 것이라고 오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장과 기장, 순복음과 성결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류 개신교계에서 이사야 서의 예언을 예수 탄생의 예언이라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 주일 예배 때 목사의 설교에서 심심하면 튀어 나오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서과 루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가 서로 다르다. 두 사람은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장문의 족보를 나열한다. 약속된 메시아의 도래가 유대인의 믿음과 맞아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두 저자는 예수의 아버지를 요셉으로 본다. 여기까지만 일치한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요셉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야곱'이라고 하는데 루카 복음서는 '헬리'라고 말한다. 두 복음서에서 제시하는 족보라는 게 고작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갔을 뿐인데 벌써 할아버지부터가 다르다. 그 위로 다윗이 나올 때까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계보가 다른 족보라는 것은, 대부분 성서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성경 왜곡의 역사>의 저자 바트 어만이 저술한 <예수 왜곡의 역사> 63쪽을 보면, 루카 자신이 예수의 족보라고 밝히고 있다고 적고 있다. 바트 어만은 예수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3대를 빼버리는 등 무리하게 14대로 맞춘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를 가지고, 이런 방식이 유대인들의 정통 족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보였다. 더욱이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전근대였던 만큼, 그 시대에 살았던 저자가 여자의 족보를 적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예수의 갓난 아기 시절 이집트 피난과 관련해서도 이상한 점이 있다.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오 복음서 2:13~15)
보다시피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가 태어난 후 이집트로 도망을 쳐서 헤로데가 죽기까지 거기 있었다고 한다. 그럼 루카 복음서를 살펴보자.
여드레째 되는 날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다. 그 날이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루카 복음서 2:21~22)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태어난 후 8일만에 율법이 정한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기 위하여 예루살렘(헤로데 왕의 도성)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보다시피 내용이 불일치한다. 한편 일부 기독교 해석에서는 율법이 정한 정결 예식이 다 끝난 후에 동방박사들이 도착하고 예수 가족이 이집트로 피난 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 설명도 이상하다. 성경의 기록상 예수가 태어나고,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만난 것은 분명히 베들레헴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도들의 주장대로라면, 1.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태어난 예수가, 2. 8일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3. 도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동방박사들을 만났다는 것이 된다. 모순이 된다는 것.
4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이 불일치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루살렘 예수의 성전 정화 이야기가 앞부분(2장 13~25절)에 나오지만,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뒷부분(21장 12~13절)에 나오므로 상당한 시차가 발생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래아 지역에서만 가르쳤고, 유대 지방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유일하게 생애 막바지에 예루살렘에 갔을 뿐이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래아와 유대에서 비슷하게 가르침을 펼쳤다'고 나온다. 한편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주로 예루살렘'에서 설교했고, 갈릴래아에서의 설교는 드물었다고 나온다. 이는 전승 자료를 가지고 복음사가들이 서술한, 지향점과 방점을 두고자 하는 면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데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이 드물었다는 것은, 고향에서의 예수 멸시를 강조하는 해석인 식이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낸 사건은, 오히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공생애 기간이 3년이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로 쓰인다고도 한다. 또는 복음사가들이 수집한 자료를 일정한 '의도'에 따라 배열할 때, 그 의도 때문에 차이가 났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의 성전 정화를 공생애의 시작에 둔 것은 예수의 모든 행적을 집약적으로 표출하는 사건이 성전 정화라고 생각한 것이며,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의 성전 정화를 공생애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 둔 것은 이러한 행적 서술로 예수의 모든 공생애 행적을 마무리하고자 한 까닭이다. 더욱이 예수의 성전 정화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즉 공관복음에서,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에 광야로 나가고 악마에게 시험을 받는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고 '곧' 광야로 떠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가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에게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보았고(1:29~34), 이튿날 예수를 다시 보고는 예수가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언한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이런 선언이 분명 이틑날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예수는 제자들을 모으기 시작하고(1:35~52), 대외적 활동을 시작하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2:1~11).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카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 |
예수께서는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의 카나에 다시 가셨다. 거기에 고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가파르나움에서 앓아 누워 있었다. 그는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아와, 자기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가파르나움으로 내려가셔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사정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일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 고관은 "선생님, 제 자식이 죽기 전에 같이 좀 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
이상하지 않은가? 첫 번째 기적이 있은 뒤 많은 표적이 있다고 해 놓고서, 2번째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갈릴래아에서의 2번째 기적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본문에서는 '이것은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돌아오신 뒤에 보여주신 2번째 기적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의 문장을 놓고 볼 때, 저 구절의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돌아온 뒤"는 단순히 시점을 의미하는 것에 가깝다. 다만 서술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다를 떠나신 뒤 갈릴래아에서 보여주신 2번째 기적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야 정확하기 때문.
마르코 복음서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에게 찾아와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부탁한다.
예수께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다시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또 모여들었다. 예수께서 호숫가에 계셨을 때에 야이로라 하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제 어린 딸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살려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서시었다. (마르코 복음서 5장 21~23절) |
그러나 예수가 야이로의 집으로 따라가려는 찰나,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나타난다. 예수는 그녀부터 치료해준다.
군중 속에는 12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고생만 하고 가산마저 탕진했는데도,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여 따라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
그 후 야이로의 집에서 하인들이 달려와, 예수에게 너무 늦었다며,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을 타이르고 야이로의 집에 가서 그의 딸을 살려낸다.
예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저 선생님께 더 폐를 끼쳐드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은 체도 아니하시고 회당장에게 "걱정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시고, 회당장의 집으로 가셨다. |
마태오 복음서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여기에는 중대한 차이가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 그를 따라가셨다. |
마태오 복음서에서 야이로는 딸이 이미 죽은 후에 예수를 찾아간다. 여기서 야이로가 예수에게 바란 것은, 치료가 아니라 죽음에서 되살려주기를 바란 것이다. 넌 이미 죽어있다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로 씻은 여인의 일화는 성경에서 매우 유명한 일화로, 종종 목사들의 설교에 등장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를 포함한 공관복음서에서 그 내용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있다. 일단 각각 복음서에서 정황을 어찌 묘사하는지 살펴보자.
그 때 예수께서는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는데,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탁에 앉으신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이것을 본 제자들은 분개하여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이것을 팔면 많은 돈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텐데." 하고 말했다. 그 때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하자 그들은 은전 30닢을 내주었다. 그 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러자 거기 같이 있던 몇 사람이 매우 분개하여 "왜 향유를 이렇게 낭비하는가? 이것을 팔면 300 데나리온도 더 받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터인데!" 하고 투덜거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마침 그 동네에는 행실이 나쁜 여자가 하나 살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예수께서 그 바리사이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신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예수 뒤에 와서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었다. 그리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발에 입맞추며 향유를 부어드렸다. 예수를 초대한 바리사이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정말 예언자라면 자기 발에 손을 대는 저 여자가 어떤 여자며 얼마나 행실이 나쁜 여자인지 알았을 텐데!" 하고 중얼거렸다. |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 거기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는데,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여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1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
덧붙여,
앓고 있는 라자로는 마리아의 오빠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적이 있는 여자였다. (요한 복음서 11:2) |
보다시피 4복음서에서 말하는 내용에 차이가 있다. 정리해보면,
1. 향유를 부은 여인
마태오 복음서: 신원미상의 한 여자
마르코 복음서: 신원 미상의 한 여자
루카 복음서: 그 동네에 죄인인 신원미상의 한 여자
요한 복음서: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
2. 장소
마태오 복음서: 베다니아의 문둥이 시몬의 집
마르코 복음서: 베다니아의 문둥이 시몬의 집
루카 복음서: 한 바리사이의 집
요한 복음서: 베다니아의 라자로가 사는 곳
3. 행위
마태오 복음서: 귀한 향유 한 옥합을 예수의 머리에 부음
마르코 복음서: 매우 값진 향유 곧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 머리에 부음
루카 복음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에 부음
요한 복음서: 비싼 향유를 가져다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음
4. 다른 사람의 반응
마태오 복음서: 제자들이(복수임) 그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책망함
마르코 복음서: 어떤 사람들이 그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책망함
루카 복음서: 주인인 바리사이가 "그 여자는 죄인인데!!" 하고 중얼거림
요한 복음서: 이스카리옷 유다가 향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함
5. 예수의 답변 혹은 반응
마태오 복음서: 가난한 자들은 항상 있고 예수는 그러지 않으므로, 그 여자가 좋은 행동을 하였다는 식의 이야기
마르코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와 동일 내용
루카 복음서: 빚진 자의 빚 탕감 예화를 들려주고, 여자에게 죄 사함의 은사를 베품
요한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와 유사한 이야기
마태오 복음서에서 베드로가 용서에 관한 질문을 한다. 그러자 예수는 '완벽한 용서'라는 아름다운 가르침을 준다.
(마태오 복음서 18장 21~22절)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7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7번뿐 아니라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여라."
그런데 베드로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가 의문이다. 고작 한 문단 앞에서 예수가 이미 용서에 대해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 문단 앞에서, 예수는 무한의 용서를 가르치지 않았다.
(마태오 복음서 18장 15~18절)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여라.' 한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3번만' 용서받을 기회를 주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아니면 무한의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인가? 게다가 이 구절에서, 3번을 용서해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예수의 말은 예수가 평소 자비와 사랑을 설파하며 죄인들도 사랑하라고 했던 그의 언행과 모순된다.[4]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의문이 지나친 비약에 가깝다고 본다. 예수가 전한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회개를 통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듣지 않거든이란 뜻은 일반적으로 회개를 하지 않는 원수, 죄인들이나 불신자들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들에게도 회개를 바라며 사랑하라는 것이기 가르침의 핵심 때문에 뉘우치는 자는 몇번이든 용서해주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님의 단죄가 이어질 것이기에 관계를 끊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참고로, 가톨릭 교회에서 위의 해당 구절(15~18절)은 파문의 성서적 근거로 쓰인다.[5]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거든 10리를 같이 가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마태오 복음서 5장 38~42절)
그러나 예수는 대제사장의 부하들에게 잡혀갔을 때, 한 사람이 자신의 뺨을 치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버젓이 말해 왔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내가 숨어서 말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한 말은 그들이 잘 알고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곁에 서 있던 경비병 한 사람이 "대사제님께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며 예수의 뺨을 때렸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한 말에 잘못이 있다면 어디 대보아라. 그러나 잘못이 없다면 어찌하여 나를 때리느냐?" 하셨다. (요한 복음서 18장 20~23절)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제사장의 부하에게 하는 말의 경우는, 부당한 외부 압력에 맞서 굴종하지 않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애초에 예수의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도 돌려대라는 가르침은 '불합리한 것에 무조건적으로 굴종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되 일어설 필요가 있을 때는 분연히 일어서라는 것(예를 들어 예수의 성전 정화)이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것.
또한 오른뺨과 왼뺨의 비유는, 익히 알려진 것과 정 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오른손으로 오른뺨을 때리려면 손등으로 때려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에는 노예에게나 하는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한다. 즉, 오른뺨을 맞았다는 건 노예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며 왼뺨을 돌려대는 것은 그에 대한 반발로, 뺨을 때린 사람과 자신이 동등한 인간임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만 이럴 경우,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은 예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요구하는 뜻이 된다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11장 2~8절) "맞은편 마을로 가보아라. 거기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새끼 나귀 1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묻거든, 주님이 쓰신다 하고 곧 돌려보내실 것이라고 말하여라." 그들이 가보니 과연 어린 나귀가 길가로 난 문 앞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푸는데 거기 서 있던 사람들이 "왜 나귀를 풀어 가오?" 하고 물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말하자 그들은 막지 않았다. 제자들은 새끼 나귀를 끌고 예수께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놓았다.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 위에 펴놓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루카 복음서 19장 30~35절)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가보면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1마리가 매여 있을 터이니 그 나귀를 풀어오너라. 혹시 누가 왜 남의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그들이 가보니 과연 모든 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래서 나귀를 풀었더니 나귀 주인이 나타나서 "아니, 왜 나귀를 풀어가오?" 하고 물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귀를 끌고 와서, 나귀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고 예수를 그 위에 모셨다.
(요한 복음서 12장 12~14절) 명절을 지내러 와 있던 큰 군중은 그 이튿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를 맞으러 나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이스라엘의 왕, 찬미받으소서!"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보시고 거기에 올라앉으셨다.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 요한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가 1마리의 나귀를 탔다고 기술한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는 2마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 21장 2~8절) "맞은편 마을로 가보아라. 그러면 나귀 1마리가 매여 있을 터인데 그 새끼도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 혹시 누가 무어라고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곧 내어줄 것이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시온의 딸에게 알려라. 네 임금이 너에게 오신다. 그는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타시고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6]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제자들은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어놓았다. 예수께서 거기에 올라앉으시자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놓기도 하였다.
다만 이것은 새끼가 있다는 것만 언급했지 새끼를 탔다는 말은 없다고 하면 해결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황당무계한 헛소리일 뿐이다. 이 말대로 마태오 복음서에서 예수가 새끼가 아닌 그냥 나귀를 탔다고 해석하면, 예수가 새끼 나귀를 탔다고 기록되어 있는 요한 복음서의 기록과 또 다시 상충하여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 자루나 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러나 지금은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 자루도 가지고 가거라. 또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 가지고 가거라. 그래서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 하신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한 기록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주님, 여기에 칼 2자루가 있습니다." 하였더니 예수께서는 "그만 하면 되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루카 복음서 22장 35~38절)
'세상이 흉흉해지니 준비를 하라'고 한 말이라고 기독교 측에서는 해명을 하지만, 앞뒤 문맥으로 봤을 때도 달리 해석될 여지가 없다.
조금 후에 이스카리옷 유다와 로마 제국 군인들이 예수를 붙잡으려고 몰려왔다.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사라고 시킨 그 칼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친 베드로에게 그 유명한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라고 말한다.
그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의 귀를 쳐서 잘라버렸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12군단도 넘는 천사를 보내주실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한 성서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고는 무리를 둘러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전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서 가르치고 있을 때에는 나를 잡지 않다가 지금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잡으러 왔으니, 내가 강도란 말이냐?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언자들이 기록한 말씀을 이루려고 일어난 것이다." 그 때에 제자들은 예수를 버리고 모두 달아났다. (마태오 복음서 26장 51~56절)
이 때에 시몬 베드로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코스였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그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고난의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복음서 18장 10~11절)
기독교인들은 위의 언급에서 예수가 말한 '검'은 진짜 검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주장하는데, 예수가 말한 '검' 이 진짜 '검' 이라면 돈주머니와 식량자루도 진짜 돈주머니와 식량자루일텐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검' 과 식량자루와 돈주머니를 가지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예수에게 검만 보여주었는데도 예수가 말한 검이 진짜 검이었다면 베드로에게 "그만 하면 되었다."가 아닌 '잘봤다, 그런데 전대와 주머니는 어디 있느냐?' 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예수의 제자는 12명인데 베드로는 검 2개만 보여주었으므로. '족할' 리가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며, 만에 하나 예수가 말한 '검'이 진짜 '검' 이라 할지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있다. 예수는 칼로 '흥한'자는 칼로 망한다 고 했는데 '흥하다' 는 '번성하여 잘되어 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예수는 '칼을 사라'라고 했지 '칼로 번성하라' 나 '칼로 잘되라'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또 이 말을 십자가 처형 때 두 죄수와 함께 못 박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또 이에 대한 가톨릭의 해설은, 칼은 준비하라는 구절은 제자들(사도들)과 나아가 신자들에게 세속에 맞선 영적 투쟁을 일깨워주는 용도로 사용된 일화라고 본다.
또한 제자의 수가 12명이니 칼도 12자루가 되어야 하는데, 칼 2자루만 보고 족하다 할 리가 없다는 기독교인들의 주장도 있는데, 2자루로 족하든, 12자루로 족하든 그것은 사람마다의 개인 차에 불과하다. 애초에 제자들의 수가 12명이라고 해서 반드시 12자루의 검이 있어야 족하다고 느낀다는 보장도 없다. 또 예수가 말한 칼이 실제 칼이라면 어째서 함께 언급한 식량 자루와 돈 주머니는 찾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식량 자루와 돈주머니야 부피가 꽤 나가고 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니 굳이 묻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는 '칼을 사라'라고 했지 '칼로 번성하라' 나 '칼로 잘되라'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는 주장도 애초에 예수가 칼을 사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 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꾸짖고 훈계하고 기적을 부려 피해자의 떨어진 귀를 도로 붙여줄 필요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구절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성경 주석에 따르면 칼이 실제 물건이 아닌 영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며, "그만 하면 되었다."라는 예수의 대답은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해당 문맥 자체만 보면 거기에 대한 근거가 없다.[7]
4대 복음서에서는 심지어 구약 구절을 잘못 풀이하여 그리스어로 옮겨둔 부분까지 존재한다.
이를테면 예수가 바리사이인들의 주장을 반박하여 구약을 인용하는 대목이다. 예수가 인용한 구절은 구약을 그리스어로 잘못 번역한 구절이다. 그리스어 구절 자체는 예수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구절로 들리지만, 원래의 히브리어 구절은 예수가 주장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구절들이다.
예수가 정통 바리사이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려고 일부러 유대성서를 그리스어로 오역한 것을 일부러 인용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어만 쓰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하지 않고는 읽을 수가 없는 수많은 유대인 가운데 1명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구약을 인용하고, 그것을 예수가 인용한 것인양 꾸며 놓았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7장 6~7절에서 예수는 이사야서 29장 13절을 그리스어로 잘못 번역한 것을 인용한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도 잘못 번역된 구절을 인용한다. 또 사도행전 15장 13~18절에서 야고보가 인용한 구절은 아모스 9장 11~12절을 그리스어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7장 9절에서 마태오는 즈카르야가 한 말을 예레미야가 한 말이라고 잘못 말한다.
마찬가지로 마르코 복음서에서처럼 사도행전에서도 히브리어 구약을 잘못 인용한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에게 자기 말을 입증하려고 구약을 인용하지만, 그 인용문은 그리스어로 전혀 잘못 번역된 구절이다. 원래의 히브리어 구절은 뜻이 전혀 다르다.
사도행전 15장 13~41절에서, 마찬가지로 야고보는 히브리어 원전을 왜곡한 그리스어 구절을 인용하여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기원 직후 구약은 70인 역이라고 불린 그리스어 판본이 정경으로 취급 받았는데, 70인역은 번역이 문제가 있다. 그 번역을 그대로 갖고 오면서 생긴 문제점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도행전과 복음서를 보면 예수나 사도들이 왜곡된 히브리어 경전 구절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는 번역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다. 명백한 오류인 것. 번역 실수를 한 것이, '후기의 집필자'들이 아니라, 복음서와 서간에 의하면 예수와 사도들이다.
마태오 복음서 12장 40절에 따르면 예수는 이렇게 예언했다. '요나가 큰 바다 괴물의 뱃속에서 삼 주야를 지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땅 속에서 삼 주야를 보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계산을 잘못한 것인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금요일 정오에 죽었고, 일요일 이른 아침에 살아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땅 속'에서 예수는 단지 이틀 밤만을 보냈다는 것이 된다.[8][9]
유대인의 하루는 우리와 달리 저녁부터 밤을 포함한 점심까지를 하루로 본다. 그렇게 계산하면 금요일 정오가 매우 짧은 하루가 되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가 이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 저녁까지 사흘로 맞아 떨어진다. 위의 수요일설과 목요일설은 쉽사리 접해보지 못한 정보로 출처 확인이 필요하다.
(요한 복음서 13장 36~38절)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장담하자, 예수께서는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정말 잘 들어두어라. 새벽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3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셨다.
(요한 복음서 14장 5절) 그러자 토마스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럼 이제 몇 장 뒤 예수의 반응을 보자.
(요한 복음서 16장 5~6절)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너희는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한 말 때문에 모두 슬픔에 잠겨 있다.
몇 장 앞에서 분명 베드로와 토마스가 예수에게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는데 예수는 제자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는다고 이야기 한다.(...) [10]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사건도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마르코 복음서 14장 27~31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2번 울기 전에 너는 3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힘주어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다 같은 말을 하였다.
(마태오 복음서 26장 31~35절)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칼을 들어 목자를 치리니 양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대로, 오늘 밤 너희는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살아난 후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3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것인가? 닭이 1번 울기 전인가, 2번 울기 전인가? 이에 대해 <그리스도의 삶>의 저자인 존스턴 체니는 "베드로가 닭이 1번 울기 전에 3번, 또 닭이 2번 울기 전에 3번, 총 예수를 6번 부인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으며 성찬을 베풀고 다음 날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15:25)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다르다. 요한 복음서에는 성찬을 베푼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후 예수는 유다에게 배신 당해 출두하고, 감옥에서 밤을 보낸 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빌라도가 판결을 내린 때는 정확히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12시쯤이었다."(19:14)
많은 사람들이 이 모순을 해결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준비일'을 무슨 뜻으로 썼는지를 간과한 결과이다. 그 준비일은 '안식일'의 준비일이었지, 유월절의 준비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마르코 복음서에서 이 날은 유월절 음식을 먹기 전 날이 아니라, 안식일 전 날이었다는 말이다. 금요일 오후에는 안식일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그 날을 준비일이라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모순이 확인된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는 목요일 밤에 유월절 음식을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유월절 음식을 먹지 않았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전 날에 십자가에 못 박혔다. 게다가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는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요한 복음서에서는 정오에야 사형 판결을 받고 그 후에 끌려 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일부 교인들은 이런 차이가 발견되는 이유를 유대인마다 그 주의 다른 날에 유월절을 기념했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되지 않은 일부 종파가 성전 관리자들이 잘못된 달력을 따른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르코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는 그런 종파들과 어울리며 도성 밖에 있지 않았다. 예수는 분명 예루살렘에 있었고 또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은 단 하루밖에 없었다.
십자가 처형을 둘러싼 사건들에 대한 복음서들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오 복음서과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유대인 장로들의 심리를 받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산헤드린 공회의 심리를 받지만, 형을 선고받지는 않는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지 않고, 곧바로 로마의 법정으로 끌려간다. 그 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게다가 공관 복음(마태오,마르코,루가)에선 재판 과정에서 예수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에선 "하느님 나라"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관해 길게 말을 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가 했다고 전해지는 마지막 말이 복음서에 따라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시편 22장 1절의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구절을 예수가 마지막으로 외쳤다고 나온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에서는 시편 31장 5절의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외치고 운명한다고 나온다.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목마르다.'라고 말한 뒤, '이제 다 이루었다.' 하고 운명한다.
이것이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가상칠언(십자가상에서의 7가지 말)'이다. 복음서마다 말이 달라서 약간 의아함을 느낄 수 있는데, 주류 기독교계의 해석은 저 7가지 말을 예수가 모두 했다고 본다. 보편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2.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루카 복음서 23장 43절)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11] (마르코 복음서 27장 46절)
5. "목마르다." (요한 복음서 19장 28절)
6. "이제 다 이루었다." (요한 복음서 19장 30절)
한 사람이 한 사건에 임해 말하기에는 서로 모순되는 면모가 보임은 분명하다. 특히 마르코/마태오 복음서에서의 예수는 매우 괴로워하며 격정적으로 말하지만, 루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매우 평온하게 (말 그대로 '어린 양'처럼) 말한다. [12]
(마르코 복음서 15:37-38) 예수께서는 큰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셨다. 그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2폭으로 찢어졌다.
(루카 복음서 23:45~46) 태양마저 빛을 잃었던 것이다. 그 때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지며 2폭으로 갈라졌다.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성전의 휘장이 예수가 숨을 거둔 이후에 찢어졌다고 기술하는 반면,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죽기 전에 찢어졌다고 기술한다.
기독교의 해설은 이 부분이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 복음서의 유대교에 대한 시각차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예수가 살아있을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유대교에 대한 부분적 거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구약과 신약을 가리지 않고, 성경 속 대부분의 책들이 이러한 의도와 지향점을 두고 집필되었다. 또 신자들도 이렇게 초래된 성경 내용의 세부적인 차이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러한 시각 차이를 따로 기술하지 않고 사실 관계를 다르게 쓺으로서 나타낸다는 것이 영 껄쩍지근하다는 문제가 남는다. 집필 의도에 따라 사실이 다르게 기술되었다는 것 사실은 그 자체로서 해당 기록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원래 사실을 변개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기록들이 다르다. 마르코 복음서 16장 5절에서, 예수의 여성 제자들 몇은 빈 무덤을 발견하고 동굴 속에서 흰옷을 입은 청년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 24장 4절에는 동굴 속에서 '문든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섰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기에다 마태오 복음서 28장 2~3절에서는 두 여자들이 보는 앞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천사가 내려와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고 한다.
마르코 복음서 16장 9절과 마태오 복음서 28장 9절에서 부활한 예수는 갈릴래아에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지만, 루카 복음서 24장에서는 부활한 예수가 갈릴래아가 아닌 예루살렘 근처에서 제자들 앞에 나타난다. 게다가 사도행전 1장 4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가라는 신성한 명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한다.
예수는 당시 살아 있는 자들이 죽기 전에 재림의 계시를 목격할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그의 예언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다. (루카 복음서 9장 27절)
그 때가 되면 해와 달과 별에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지상에서는 사납게 날뛰는 바다 물결에 놀라 모든 민족이 불안에 떨 것이며,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무서운 일을 내다보며 공포에 떨다가 기절하고 말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루카 복음서 21장 25~32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누구에게도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여기저기에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아직 끝은 아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13]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진통의 시작일 따름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 속에 몰아넣고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 서로 팔아넘기고 서로 미워하며,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나타나 많은 이를 속일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4장 4-11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임금으로 오는 것을 볼 사람도 있다. (마태오 복음서 16장 28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4장 34절)
하지만 '그 세대'가 다 지나가고 모든 제자들이 죽어서 묻힌 지[14] 대략 2천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든 일 가운데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하스 페르쯔라도 있나보다 사실 공관 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시한부 종말론적 시각이 상당히 보인다.
사실 예수의 재림이 왜 이렇게 안오냐는 주장은 지금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신약성경 베드로2서 3장에선 재림이 언제 오냐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거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내용이 언급된다. 베드로2서의 집필 시기를 감안하면, 서기 70년대의 초대 교회 시기부터 이런 논란과 논박이 오간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대해서는 '기독교 교리에서 언젠가 일어날 세상 전체의 환난과 심판, 종말'과 '당시 이스라엘의 멸망'이 중첩되어 예언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현 기독교의 주류 시각 중 하나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위의 복음서에서의 언급은 이스라엘의 예언임과 동시에 요한묵시록의 프리퀄 버전이란 것. 대부분의 신학계의 정설이다. 위에서 언급된 마태오 복음서 24장의 내용대로 예루살렘은 기원후 70년 경에 로마 제국 군대에 의해 멸망했다.
한편 신학 견해 중 하나일 뿐이긴 하지만, 루카 복음서에 나온 대로 사도 요한은 죽기 전에 하느님 나라를 환시로 보았고 그 내용을 묵시록으로 남겼다.
이스카리옷 유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마태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따라 다르다. 전자는 목을 매서 숨졌다는 기록, 후자는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쏟아져나와 죽었다는 기록.
(마태오 복음서 27장 3~10절) 그 때에 배반자 유다는 예수께서 유죄 판결을 받으신 것을 보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뉘우쳤다. 그래서 은전 30닢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죄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의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그대가 알아서 처리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유다는 그 은전을 성소에 내동댕이치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대사제들은 그 은전을 주워 들고 "이것은 피 값이니 헌금궤에 넣어서는 안 되겠소." 하며,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의 밭"이라고 불린다.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정한 한 사람의 몸값, 은전 30닢을 받아서 주께서 나에게 명하신 대로 옹기장이의 밭 값을 치렀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사도행전 1장 16~18절) "교우 여러분, 예수를 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려 예언하신 말씀은 정녕 이루어져야만 했습니다. 그는 본래 우리 열두 사람 중 하나로서 우리와 함께 일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판 돈으로 밭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는 땅에 거꾸러져서 배가 갈라져 내장이 온통 터져 나왔습니다.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모두 이 사실을 전해 듣고 그 밭을 그들 말로 '아겔다마'라고 불렀습니다. '피의 밭'이란 뜻입니다."
보통 목을 매달았는데 줄이 끊어지면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설득력이 부족한데, 보통 목을 매면 줄이 끊어져서 떨어지더라도, 배가 터져서 창자가 쏟아져 나올 정도의 외상은 없는 것이 정상이다. 실질적으로 추락하여 사람의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져 나올 정도면 대략 15m 이상의 높이라는 이야긴데, 당시 예루살렘 성읍이나 지리적으로 높은 몇몇 곳을 제외하면 그 정도 구조물이 없었을 뿐더러, 목을 매달고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그 높이까지 기어 올라가서 목을 매단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는다. 차라리 걍 뛰어내리지 더군다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유다는 예수를 판 값으로 산 밭에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쏟아져 나왔다'라고 하는데, 당시 유대의 밭 근처에, 그 정도로 높은 위치에 목을 매달만한 구조물은 전무했다.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는 "유다가 은전 30냥에 예수를 팔지만, 막상 예수가 체포되자 죄책감에 못 이겨 그 은전들을 대제사장들에게 팽개치고 죽었고, 제사장들이 그 돈으로 밭을 샀다"고 나온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유다가 예수를 판 돈으로 밭을 샀고 그 밭에서 죽었다"고 되어 있다. 마태복음의 경우 유다의 죽음은 '자신의 행동에 극심한 가책을 느끼며 자살' 한 것이 되고, 후자의 경우 '사악한 탐욕에 대한 응보'가 되어, 이스카리옷 유다의 사망에 대한 정황이 서로 모순된다.
(사도행전 9장 3~8절) 사울(=바오로)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환히 비추었다. 그가 땅에 엎드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울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시내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다.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도 그 음성은 들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벙벙해서 서 있기만 하였다.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끌고 다마스쿠스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그 뒤에 바오로는 그 사건을 다시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 22장 6~9절) "길을 가다가 오정 때쯤에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나타나 내 주위에 두루 비쳤습니다. 내가 땅에 거꾸러지자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예수다.' 하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분의 음성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 적힌 바오로의 증언은, 갈라티아서에 적힌 그의 증언과 모순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앞에서 언급한 경험을 한 후, 눈이 멀게 된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제자를 만나 그의 기도로 눈을 뜨게 된다. [15]
그 직후 예루살렘으로 간 바오로는 바르나바의 소개로 여러 제자를 만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오로는 2번째로 예수를 보고, 이방인들에게 전교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바오로가 직접 썼다는 서간에서는 전혀 다르다.[16] 갈라티아서에서 바오로는 아나니아를 언급하지도 않으며, 개종 체험 후 3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이어서 그는 다시 열정적으로 기술한다.
(갈라디아서 1장 20절)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며느리도 몰라요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