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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19464
    작성자 : StarDream
    추천 : 5
    조회수 : 2630
    IP : 121.182.***.18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1/09/10 10:36:37
    http://todayhumor.com/?panic_19464 모바일
    [펌][장편,브금,재탕] 오타 ( I )


    미영은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

    헤어진지 꼬박 10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헤어지자고 말 한 사람은 자신이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다.

    미안하다는 말,

    용서해 달라는 말,

    단지 그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헤어진 후로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오히려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자존심이 강한 미영이었지만,

    이대로 가다가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굳은 맘을 먹고 컴퓨터 앞에 앉은 것이다.

    이메일 주소 창에 남자친구의 주소를 입력한 후,

    그녀는 어떤 내용을 써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사과를 하는 게 좋을까? 아냐, 내가 왜 사과를 해. 용서해 준다고 하는 게 좋겠지? 아냐, 이건 너
    무 호소력이 없어. 음. 음....’



    고민에 빠진 미영은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생머리의 일부를 연신 손으로 꼬고 있었다.

    무작정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만이었으나,

    이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이건 아냐.......이것도 아냐.....아 이것도....”



    계속해서 썼다가 지웠다를 반복하던 미영에게 순간,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거지? 따지고 보면 다 그 자식이 잘못한 거잖아. 지금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모자를 판에 감히 다른 여자를 만나?’



    그 순간,



    [죽어]



    미영은 무의식적으로 ‘죽어’라는 글자를 치고 있었다.



    “어? 이러면 안 되지. 깜짝이야...”



    의도하지 않게 손이 움직인 터라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백스페이스를 연타한다.

    그리고 또 다시 한참동안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러던 중,

    미영이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자신의 양 손으로 양 뺨을 한 번 철썩 때린다.



    “그래! 유미영! 오늘 딱 한 번만 자존심 버리자. 정말 내 생애 마지막이다. 알았지 미영아!”



    미영은 무조건 굽히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자 미영은 거침 없이 타자를 쳐 내려갔다.

    보기 민망한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아.직.도.널.사.랑.....그런데 이 나쁜 새끼가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망할 새끼...”



    한창 글을 쓰다가 또 다시 나쁜 생각이 떠오른다.

    깜짝 놀라 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미영.

    미영은 그렇게 울컥하는 마음을 여러 번 가라앉히며,

    다양한 애정표현으로 범벅 된 이메일을 가까스로 완성해간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안 돌아오면 진짜 나쁜 새끼다.’



    A4용지로 5장은 거뜬할 길이의 장문이었다.

    문장의 끝마다 갖가지 이모티콘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하트가 가장 많았다.

    그녀는 마우스 휠로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며 자신의 글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음... 보고 싶은 형석이에게. 아 아냐. 투 형석. 아 이것도 아냐. 음음...”



    마지막으로 제목만 적으면 메일은 완성이었다.

    이것도 미영에게는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고민이었다.

    여러 문구를 놓고 걱정하던 미영은 결국,

    ‘사랑하는 형석에게’로 타협을 보고 제목을 입력했다.

    문장 양 옆으로 하트를 두 개씩 박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영은 한 번 더 글을 확인해볼까 했지만,

    왠지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두려워,

    눈 딱 감고 ‘메일 보내기’를 클릭했다.



    [발송 중.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남자친구가 읽는 일만 남았다.

    미영은 어쩌면 남자친구가 벌써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메일이 오면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게끔 설정할 정도로,

    꼼꼼하게 메일을 체크하는 남자친구의 버릇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영은 초조한 마음으로 ‘보낸메일함’을 클릭하고 방금 보낸 메일을 열었다.

    다시 봐도 정성이 느껴지는 이메일이라고 생각하며 첫 줄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용서해줘 제발(づ_T) 난 너 없이는 못 사는 거 알잖니(づ_T)]


    [너와 헤어지고 나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ㅠ.ㅠ)]


    [사랑한다구~♡ 너도 사랑한다고 말해 줄 거지?(~.^)]



    “아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지. 미치겠네...”



    쓸 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 온통 낯 뜨거운 말 뿐이었다.

    미영은 후회하지 말자고 되뇌이며 꾹 참고 읽어 내려간다.

    그런데 미영이 갑자기 한 문장에서 멈칫한다.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해♡ 죽어. 너도 아직 날 사랑하잖아 그렇지?(*^^)/]



    “어? 이거 뭐야 언제 이런 말이 들어간 거야!”



    미영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죽어’라는 말을 문장에 섞어 버린 것이다.



    ‘메일을 취소해야 돼... 제발 읽지 않았기를... 제발...’



    부랴부랴 수신 확인을 클릭하는 미영.



    [ 받은날짜 : 2008. 8. 18 (20:47) ]




    한 발 늦었다.

    이미 남자친구는 미영의 메일을 연 것이다.

    이젠 돌이킬 수 없었다.



    ‘내가 대체 그 말을 왜 쓴 걸까. 혹시 아까 조금 나쁜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때 무의식적으로 쓴 건가?
    미치겠네 정말!’



    단어 하나 때문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영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가 다른 문장들을 보면서,

    이런 오타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미영은 애꿎은 입술만 계속 이빨로 깨물며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이 마우스 왼 쪽 버튼을 연신 두드리고 있다.

    남자친구의 답장을 바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받은메일함’을 계속 해서 클릭하는 것이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지치지 않고 클릭하던 미영의 손가락이 멈췄다.

    드디어 남자친구의 답장이 온 것이다.



    [ RE: ♥♡사랑하는 형석에게♡♥ (21:10:43) 2.1k ]



    보낸 제목 그대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터무니없이 적은 용량.

    대체 몇 마디나 적혀 있는 걸까.

    미영은 긴장 되는 마음에 쉽사리 답장을 클릭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분명히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쓰여 있을 거야.’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마우스를 클릭한다.



    -딸칵



    [보낸이: “김형석” (hyungsuk80)







    죽어






    전달│x삭제│수정│인쇄 ]



    짧고 간결했다.



    ‘죽어’.



    그는 미영이 실수로 쓴 그 단어 하나만 사용해서 답장을 보낸 것이다.

    미영은 슬픔과 충격에 휩싸여 한 동안 그 간결한 메일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고작 이런 답장을 받으려고 난, 이렇게 고생해서 메일을 썼단 말인가.
    나쁜 새끼. 정말 나쁜 새끼.’



    한 편으로는,

    꼼꼼한 남자친구의 성격상 그런 실수를 간과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는데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메일을 보낸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답장 덕분에,

    더 이상 남자친구에게 미련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 미영이었다.



    ‘그래 이제 나 혼자 가슴앓이 하지 말고 깨끗이 포기하자. 형석이는 더 이상 나한테 마음이 없는 게 분명
    해.’



    열 받지만 한 편으로는 고마운 메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 동안,

    ‘죽어’라는 한 단어가 전부인 메일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미영은 밤새도록 뒤척이며 뒤늦게 잠이든 탓에 늦잠을 자고 말았다.

    적어도 7시에 일어나야 준비를 하고 9시까지 출근을 할 수 있었는데,

    무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난 것이다.

    그녀는 밤 새 울기라도 했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정신없이 화장실을 향해 달려간다.

    가벼운 세수와 가글로 초고속 세면을 마치고,

    부스스한 머리를 빗질만으로 진정시킨 채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잊은 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던 미영은 문득 켜져 있는 컴퓨터를 발견한다.



    “어? 내가 어제 컴퓨터를 켜 놓고 잤던가?”



    슬쩍 마우스를 움직여보니,

    까만 대기화면이 원래대로 전환된다.

    ‘죽어’라고 적혀있는 남자친구의 답장도 그대로 열어 놓은 상태였다.



    “어 이상하네. 어제 분명히 컴퓨터를 끈 기억이 나는데.”



    미영은 늦었지만,

    이왕 컴퓨터가 켜진 김에 받은 메일이 혹시 있나 들어가 보았다.



    “어? 형석이?”



    남자친구에게서 두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 RE: ♥♡사랑하는 형석에게♡♥ (04:29:27) 2.1k ]

    [ RE: ♥♡사랑하는 형석에게♡♥ (06:11:52) 2.1k ]




    제목은 어제와 똑같았다.

    그리고 내용은,



    -딸칵



    [죽어]



    -딸칵



    [죽어]




    똑같았다.





    출처 : 웃긴대학 공포게시판 '건방진똥덩어리'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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