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프씨는 실수로 보스의 패턴을 맞아버렸다. 적 보스의 체력도, 그의 체력도 바닥났고 물약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여기서 한 번 더 죽으면 강철비석을 세우게 되고 헤딩팟만 돌던 그에게 이번 도전은 클리어를 손에 잡힐 듯이 한 도전이라 반드시 죽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초조해졌지만 프리스트가 그에게 힐하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힐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엔티키를 누르고 빠르게 채팅을 쳤다.
"힐."
그러나 프리스트는 묵묵부답이었다. 오로지 보스몹을 공격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점점 더 초조해졌다. 적을 공격하는건 꿈에도 못꾸고 보스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하고 있었다.
"프리스트님, 제발 힐 좀..."
그러자 프리스트가 시프 옆으로 갔다. 하지만 힐은 들어오지 않았다. 프리스트의 모습은 자못 차가웠다. 몇 초만 더 버티면 보스몹을 잡아낼 것 같지만 하필이면 도트대미지가 들어오는 공격을 맞아버렸다. 그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과도 같았다. 그는 프리스트 옆으로 가서 채팅을 쳤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채팅을 치는 사이에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비명횡사했다. 강철비석이 떨어지고 곧이어 보스의 머리도 떨어졌다. 힘겹게 딜을 넣었지만 아무런 보상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에 시프의 두 손은 부르르 떨렸다. 클리어가 물건너가고 수십 번의 헤딩을 다시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자 숨이 턱턱 막혀왔다. 고작 힐 한 번을 주지 않은 프리스트가 야속했다.
그는 프리스트에게 왜 힐을 주지 않냐고 따져 물었다. 고작 힐 한 번이 힘드냐고 물었다. 딜링이 힐링보다 중요하냐고 물었다. 물론 신체상태와 부모님 안부도 물었다. 그런데 프리스트의 대답은 걸작이었다.
"죽은 놈이 바보지. 그럼 죽지 말던가. 꼭 지 실수로 죽어놓고 저래. 파티장님, 저보다 딜량 낮은 딜러들 다 짤라버리죠."
그는 어떠한 대답도 못하고 짤려버렸다. 뭐라고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그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억울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맺혔다.
그의 심정과는 별개로 그 파티는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사람을 구해 한 번 더 도전을 하려던 참이었다. 프리스트는 던전에 들어가기 전 제자리서 우두커니 서있는 시프에게 한마디를 했다.
"데보라크 때 힐 달라고 해서 딜량 깎아 먹으면서까지 힐줬더니 프리스트 딜량 낮다고 짜르라고 말했던 거 기억 안나냐?"
달걀은 깨어나 바위를 넘는다
눈멀고 귀먹어 민둥하니
낯바닥 봉창이 된 달걀껍데기 한 겹,
그까짓 것 어느 귀퉁이 모서리에 톡 때리면
그만 좌르르 속이 쏟아져 버리는 알 하나.
그것이 바위를 부수겠다 온몸을 던져 치면
세상이 웃을 것이다. 하지만,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것이요
달걀은 아무리 약해도 산 것이니,
바위는 부서져 모래가 되지만
달걀은 깨어나 바위를 넘는다.
- 최명희의 <혼불>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