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odayhumor.com/?humorbest_1198880 (디아블로 3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설날 연휴 때 몸은 고향에 내려갔지만, 머릿속에는 거미 여왕에게 사랑과 공력을 가득 담은 세스코 반달차기를 날려야 하는데...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드디어 연휴 마지막 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와이프는 그동안 고향과 처가에서 악마사냥꾼의 날렵함과 야만전사의 박력을 가지고 태어난
삼삼이를 돌보느라 고생한 나의 노고를 위로하며 1일 PC방 자유이용권을 하사하셨다.
회사에 지각했을 때도 똥이 마려울 때도 달리지 않던 내가 디아블로를 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기다려라! 아라네애 곧 나의 에프킬라 반달차기 킥을 날려주마.." 하지만 PC방에 도착했을 때 PC방은 이미 롤을 하는 초딩과 청춘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내가 좌절한 표정으로 망연자실하게 서 있을 때 사장님이 내게 다가오며
"어! 수도사 아저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라며 다가왔다.
사장님은 나를 아는 척 하시면서 사장님 옆자리의 PC방 VVIP 손님들만 앉을 수 있다는 예약석을 친히 내주셨다.
"그런데 사장님 어떻게 저를 기억하세요?"
"아.. 생긴 건 부두술사처럼 생기신 분이 연약한 수도사를 하셔서.."
사장님은 내 눈치를 조금 보면서 말씀하셨다.
"그러는 사장님은 도살자처럼 생기셨네요. 거미 여왕 잡고 금방 갈 테니 좀 이따 뵙죠.." 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렵게 얻은 자리를 아니 PC방에서
쫓겨날 거 같아 참았다. 드디어 기나긴 로딩이 끝나고 내 분신 헐벗은 대머리 수도사가 등장했다. 며칠간 몹들에게 주은 템들을 뽀각해서 모은
재료로 제작한 갑옷을 입혀주는 데 뿌듯했다.
"이야.. 민첩이 8이나 붙었어..오오오.. 생명력 회복까지..이제 쉽게 죽지 않겠는데"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자리의 사장님이 내게
"아저씨 제가 버스 좀 태워드릴까요? 디아블로는 70렙 부터 진정한 시작인데.." 라며 말을 걸었다.
"아닙니다. 사장님 시간 뺏는 거 같고 제가 혼자 해 볼게요." 마음속으로는 디아블로까지만 잡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차마 사장님께
민폐를 끼칠 수 는 없었다.
"만렙까지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10분이면 되는데.. "
70렙이 10분이라니... 예전 내가 디아블로를 했을 때 60렙 만드는데 정확히 14일 하고도 7시간이 걸렸는데, 10분이라니..
"저 그러면 죄송하지만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사장님은 흔쾌히 나를 파티에 초대해주셨다. 현실에서는 도살자였지만 게임상에서 그는 연약한 외모이지만 강력한 마법주문을 날리는 여자
마법사였다. 내가 사장님의 캐릭터를 보고 "사장님 애니메이션 좋아하시나 봐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수도사
아저씨는 야동 좋아 하시나 봐요?"라고 되물었다. 나는 왜 술을 마시고 디아블로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하며 몇 년 전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를
후회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차원 균열 포털을 열더니 "포털 들어와서 입구에서 가만히 계세요.. 아니면 잠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실래요?" 라고 하셨다.
"아닙니다. 사장님 고생하시는데 옆에서 지켜봐야죠."
포털 앞에만 서 있을 뿐이었는데 나의 레벨이 거의 초 단위로 쭉쭉 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15레벨을 만들기 위해 거의 3시간 동안 고생했는데
그 1/10도 안되는 시간에 30레벨이 넘어서고 있었다. 이게 바로 버스의 위력을 실감하며 하나씩 새롭게 채워지는 기술창을 감상하다 문득 세상
구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 자리를 지나가는데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채 낙오된 몹이 하나 외롭게 있었다.
그리고 그 몹은 나를 자신의 동지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동료들을 배신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느꼈는지 내게 달려왔다.
"녀석의 피는 1/10 정도 남았다!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야."
나의 천둥주먹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녀석이 휘두른 둔기 한 방에 그대로 누웠다.
녀석은 나의 시체 위에서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사장님은 "가만히 계시지 왜..."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나의 쓸데없는 모험심과 호기심은 나의 수도사를 차가운 바닥에 눕히고 말았다.
"네. 앞에 가만히 있을게요."
"앞에 계시다가 제가 오라고 하면 그때 저 타고 와서 아이템 드세요."
타고 와서? 디아블로도 탈 것이 생겼나? 아니 유저를 탄다고? 나는 사장님께 다시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을 어떻게 타요?"
"아..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사장님은 손수 내 컴퓨터의 마우스로 캐릭터 창을 클릭하고 순간이동하는 매직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곳에는 몬스터들이 죽으면서 남긴 전리품인 금화들과 파란템, 노란템들 사이에 화려한 갈색 기둥이 하나 떡 하고 있었다. 허리띠다..
"나의 첫 전설.... 그래 너는 전설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봉인을 풀었다.
발음하기도 참 힘든 "귀 꿰미" 근접공격으로 받는 피해를 무려 25%나 감소시켜준다는 고마운 아이템이었다.
나의 수도사는 무척 강해진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 모험의 시작이다!
그런데... 몹한테 또 한 방에 죽었다. 이런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