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런 글을 썼었는데요,
혹시나 해서 재미없는 내용(?) 하나 더 올리고 턴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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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기법 1. 말아싸기
무형문화재 선자장 엄주원 선생의 아들인 엄재수 당시 가업전수자가 2006년 한 점의 부채를 내놓음으로써 부채계는 발칵 뒤집힙니다. 바로 대모선(玳瑁扇)을 재현한 것입니다. 유물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 기법대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재료는 물론이거니와 부채에 대모를 어떻게 써야 하는 줄도 몰랐던 부채 장인들 사이에서 이 부채는 하나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대모선은 오래 전 출토된 유물인 대모홍접선(玳瑁紅摺扇)의 핵심 기법을 재현한 것입니다. 부채의 겉대에 대모의 등껍질 한 장을 얇게 말아붙였고, 속살은 옻칠을 하였습니다.
오래된 도록에 존재하는 대모홍접선. 참고로 제가 소장중인 도록의 사진입니다만 인터넷에 쉽게 검색되더군요. 그걸 가져다 썼습니다. 이 유물은 국립박물관이 소장중인데 전시는 해 놓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창고 어딘가에 있겠죠. 이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얼룩덜룩한 대모 껍질이 겉대 전체에 다 붙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부채는 크기가 그다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속살에 옻칠을 한 것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엄재수 선자장이 재현한 위의 대모선은 합죽 대모 칠선(合竹 玳瑁 漆扇) 이라 해서 합죽 속살 위에 옻칠을 한 것입니다. 유물 대모홍접선은 당시 기술로 보아 칠접선 종류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100% 재현한 것은 아니죠.
그래서 엄재수 선자장은 성에 차지 않았는 지,
10년 뒤 2016년에 기어코 대모홍접선을 원본 가까이 재현을 하고야 맙니다.
이 부채는 엄재수 선자장의 2016년 전시회 때 공개되었는데 전시회가 끝나기도 전에 어느 젊은 작가분이 데려갔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유물 대모홍접선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은 '말아싸기' '속살 옻칠'입니다. 말아싸기란, 얇은 재료를 겉대에 말아 붙이는 기법을 말합니다. 재료를 통째로 쓰지 않으면서도 화려한 기법을 낼 수 있어서 안성맞춤이죠. 옛 합죽선 장인들은 대모, 우각(소뿔), 반죽 껍질, 어피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이 중 어피는 아직 유물이 없습니다. 누군가 갖고는 있다고는 하는데 보질 못해서) 그런데 이 모든 유물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말아싸기할 재료 전체를 겉대에 붙였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유물을 살펴 볼까요?
조선시대 접선입니다. 후기~말기 유물로 추정됩니다. 겉대를 보시면, 대나무가 깔끔하게 쭉 뻗어 있고 뭔가 그려져 있는 게 보이시죠? 저게 사실은 대나무 껍질을 얇게 겉대에 말아싼 겁니다. 그리고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 낙죽이구요. 이 유물만 그렇지 않겠느냐 라구요? 다른 유물들도 함께 보시죠.
저 위의 붉은 종이를 쓴 홍접선 보이시죠? 쟤도 잘 보면 말아싸기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말아싸기의 기본은 겉대 전체를 덮는 것입니다. 대모나 우각처럼 혹여 길이가 짧아 전체를 덮지 못하면, 나머지 덮지 못한 부분을 다른 재료로 말아쌉니다. 이것을 이대선, 혹은 삼대선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러나 문헌에 그렇게 기록돼 있을 뿐이지 이게 바로 진짜 이대선이다, 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보이시죠? 겉대는 총 3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합죽한 겉대 + 말아싸기.
2. 내각 기법
내각선(內角扇)이라는 이름이 각종 기록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만 있을 뿐 그게 무슨 부채인 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한 점의 유물이 등장합니다.
선두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가운데에 유물에 주목해 주십시오. 겉대 안쪽에 뭔가 하얀 게 덧대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게 내각 기법입니다. 겉대의 모양을 지탱하는 침목 역할을 하며 동시에 멋스러움도 연출하는 고급 기법입니다. 선자장도 이 유물을 얻기 전까지는 대체 이게 뭔가 하고 생각만 했더랍니다. 그런데 유물을 받고 펼쳐보는 순간, 무릎을 딱 쳤습니다.
유물의 내각은 소뼈를 썼습니다. 소뼈를 저렇게 곡선형태로 얇게 깎아내린 겁니다.
무형문화재가 만든 이 부채에는 바로 내각 기법이 들어가 있습니다. 소갈비뼈를 써서 길쭉하게 만들 수 있었지요.
사실 내각이라고는 하지만 뼈, 뿔은 물론이고 다른 것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작품들을 보시죠.
이 작품에는 소뿔을 내각으로 덧댔습니다. 소뿔 특유의 검정 결이 보이실 겁니다.
이 작품에는 침향이라는 나무를 덧댔습니다. 덕분에 쥐면 향기가 나죠.
그러나 뿔이나 뼈로 내각 기법을 구현했을 시 무게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3. 맹종죽이 아닌 분죽대
일전의 글에서도 맹종죽은 물러서 모양이 잘 틀어진다, 라고 설명드렸습니다. 그럼 과연 옛날 합죽선들은 맹종죽을 쓰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이 있을 겁니다. 이 역시 유물을 살펴보도록 하죠. 유물이 진리입니다.
왼쪽부터 선자장이 재현한 합죽 반죽선, 칠접선, 합죽선, 칠접선 입니다.
다들 100년 이상 된 유물인데 그 모습이 단아하죠?
요즘같이 마디 많고 우락부락하고 엄청나게 화려해 보이는 합죽선의 모습이 아닙니다.
왼쪽은 제 소장품인데, 왼쪽에서 두번째 부채를 보시죠. 마디가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맹종죽이 아닙니다.
마디가 깔끔하고 깨끗합니다. 분죽대의 특성입니다. 맹종죽은 이렇게 곱지 않습니다. 100년 이상 된 유물인데도 이렇게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심지어 낙죽마저도 단아합니다. 옆의 합죽선은 제법 뚱뚱해 보입니다?
뚱뚱해 보이는 합죽선을 펼쳤을 때의 모습입니다. 마디가 얼마 없죠? 진짜 전통 합죽선의 특징입니다.
전주 한옥마을 바깥쪽의 엄재수 부채박물관에 가 보시면 이 유물들을 전부 보실 수 있습니다. 나중에 전주 놀러가실 때 보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4. 힘점
부채는 지렛대의 원리로 그 모양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 지 사진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고리를 기준으로 부채 아랫쪽의 살들이 겉대 안쪽을 밀어 올립니다. 그러면 겉대는 지렛대 작용에 의해 고리 반대쪽, 그러니까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힘점이 필요하게 됩니다. 즉, '꺾인 부분'이 있어야 꺾인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힘을 받게 되고 나머지 겉대를 꺾인 부분이 밀어줍니다. 만약 힘점이 없다면 겉대의 모든 부분이 힘을 골고루 받게 되고 따라서 겉대가 풀어져 버리기 쉽습니다. 꺾인 점이 있다면 겉대의 밸런스가 맞아지며 이 원리로 인해 합죽선의 모양을 오래 유지시켜 줍니다. 물론 칠접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사진은 꺾인 점이 어딘 지 볼까요?
여깁니다. 급격하게 꺾인 부분에서 힘을 받고, 이 곳이 힘을 받아 나머지 겉대들을 오므라들게 할 수 있는 겁니다.
무형문화재가 만든 좋은 부채는 이렇게 꺾인 점이 존재합니다. 여러분도 부채를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5. 얹음 기법 & 통대나무
합죽선들은 겉대를 합죽하는데, 칠접선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합죽 자체가 고급 기법이라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굳이 합죽할 필요가 없어서일수도 있습니다. 다음 유물을 보시죠. 이미 위에서 보셨을 겁니다.
잘 보십시오. 겉대가 통짜 대나무입니다. 보통 접선은 이 사진 오른쪽 위의 부채처럼 겉대를 하나의 재료로만 씁니다. 그런데 손잡이에 뼈 등을 올릴 경우, 이런 식으로 안쪽을 파고 재료를 얹습니다. 이 사진은 그 얹은 부분 일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만 오히려 그 때문에 얹음 기법을 알아낼 수 있었던 굉장히 귀중한 자료입니다. 즉, 겉대를 자세히 보면 내각-겉대-뼈 이렇게 구성되어 있지요?
무형문화재가 이 유물을 바탕으로 복원하였습니다. 내각-겉대-뼈 순으로 올라가 있는 게 보일 겁니다.
6. 칠(漆)
종이가 비쌌던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하면 종이의 내구성을 높일까 하고 다방면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종이에 옻칠을 올려 보기도 하고, 기름을 먹여 질기게 하거나 황칠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종이에 칠이 들어가게 되면 종이 안의 섬유질이 견고해집니다. 더 오래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습니다. 유물들의 종이를 보시면 전부 누렇게 되어 있을 겁니다. 유칠(油漆)을 먹여 종이의 수명을 늘렸습니다만 이 유칠의 기법은 현재 잃어버렸습니다.
현재 무형문화재의 몇몇 작품만이 황칠을 하여 그 내구성을 늘렸습니다. 황칠을 하게 되면 안식향이라는 향이 나고 공기가 습해도 종이가 쉽게 눅눅해지지 않습니다. 황칠 자체가 다만 더럽게 비싸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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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유물을 다 보셨으면 어느 정도 느낌이 오실 겁니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 깔끔 심플하면서도 예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디테일이 살아있는 것을 보실 수 있지요. 전통 부채는 이러한 미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원형 반점 덕분에 화려해 보이는 어피선도 이 미학을 적용하면 과하지 않고 깔끔해집니다.
그런데 요즘 무형문화재들의 작품을 보면 이 미학을 조금씩 비껴가려고 하는 느낌입니다. 과한 낙죽, 과한 겉대 마디, 과한 크기, 과한 색조합 등등... 물론 시대가 바뀌니까 부채에 담겨진 미학 또한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자 한다면 기천년 역사를 다진 접선의 기본 미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즘 무형문화재들이 '재현품' '복원품'이라며 무슨 재현과 복원을 했는지도 모르는 부채를 내놓습니다. 심지어 고려시대 합죽선이라는 명칭까지 씁니다. 재현과 복원 과정을 하려면 원본이 있어야 됩니다. 원본 없는 재현품은 창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현재 무형문화재들이 저 옛 기술을 구현하려고 점점 노력중인데, 이미 저걸 전부 구현할 수 있는 선자장이 있습니다.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다만 이 분도 다절선을 맹종죽으로 쓰신다는 거... 앞으로 차차 분죽대를 쓰시려고 생각중이신가 봅니다.
p.s 2015년 (작년) 전시회 때 보았던, 왕이 어느 한 재상에게 하사했다던 백접칠선의 사진입니다.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접었을 때 40cm 이상인 걸로 기억합니다.
살도 50개라서 무지무지 뚱뚱합니다. 이건 쓰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정조 시대의 부채로 추정됩니다.
낙관이 없습니다. 왕의 부채라서 궁정화가 주제에(?) 자기 낙관을 찍을 수 없습니다.
저 부채는 이 어마어마한 함에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