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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양주를 선물받았다.
소주 두 병 마시는 대신 하루에 한 잔.
언더락잔에 얼음 없이 담아 치즈 두 장과 함께 먹고
잠이든다. 이럴때는 내가 꽤 괜찮은 어른이 된 것 같다.
이제 회장님 쇼파와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만 들여오면 된다.
그럼 매일 밤 뒷골목의 악당대장처럼 양주를 왼손에 든 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영화 대부 코스프레를 할 수 있다.
꽤 괜찮은 어른이 된 것 같다는 말 취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나아간다.
십 몇년 전 이인간 사는걸 생각해보면 일취월장했다.
그동안 참 많은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개쓸데없는
일들의 연속이였을 뿐 톱니바퀴가 한번도 돌아간 적은 없다.
그래서 생산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남들이 톱니바퀴를 굴려
뭔가를 생산해내고 모으는 동안 나는 그 수많은 날들을 그저 앞을
향해 걸었던 것 같긴 하다. 여전히 쓸모없는 황무지 듬성듬성 풀난
벌판 뿐이지만, 누군가 머물러 톱니바퀴를 굴리는 동안 적어도,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건 같으니까.
예전에는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에 사로잡혔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의심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 황무지를
걸어오는 동안 매번 달라지는 풍경에 감탄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날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같은곳을 맴돌지 않는다.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그 끝이 찬란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일지 지옥일지는 몰라도.
되도록 평온한 벌판이였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나도 머무른 채 톱니바퀴만 굴릴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마차를 부숴 톱니바퀴를
굴리면, 그러면 여기는 또 나의 다른 메마른자의 도시가 될테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톱니바퀴가 어쩌니 길이 어쩌니 해도 결국 나는 톱니바퀴를 굴리는 방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 역시 할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방법만 안다. 거기에는 나의 감정만 있고 타인의 감정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사랑이란 주고받고 애타는 마음 손만잡아도 떨리는 가슴 뭐 그런 굉장한 일들이어야
하는데, 뭐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라는 인간은 그거 다 일순간의 성욕으로 퉁쳐지는
그런-
그러니까 나같은 인간이 사랑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내가 조금 더 웃을 수 있으면 그때에 가서는, 진심으로 내가 사랑할 다른 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런지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과거에도 당분간 앞으로도
그럴 일은 죽어도 없다. 나는 여전히 타인의 고통과 감정보다 내가 때려잡지 못하는
게임의 몹을 잡는 방법에 골몰하고,
일터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 일을 온전히 돌려놓는 것에만 능할 뿐이다.
대체적으로 쉬운 것들이다. 하나는 시간을 투자해 잉여스럽게 앉아 키보드만 두드리면
끝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성실하기만 하면 일정부분 해결되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은 내가 성실하다고, 키보드 두드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섹슈얼한 남녀간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 대한 관계도
단절을 했다. 그건 반사회적인 일이다. 우리나라는 킹오브유교네이션이고
"야임마 다 부모님이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거야"
혹은
"부모님이 늙고 힘없어지면 그래도 장남이 있어야 한다"
혹은
"이새끼 완전 걔섀끼네?"
하겠지만 어쩌라고, 나 사는 것도 바쁘고 거기에 기름붓고 불지르는 분들한테
내가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웃어. 나는 나 하나 살기도 엄청 바쁜놈인데.
그래서 끊었어. 미안한 일이지만 못된 일이라고는 생각 안해.
아주 어렸을 때, 아빠가 나를 새벽에 깨운 적이 있다.
나는 비몽사몽해서 아빠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빠는 내가 다니던 학교 앞 문방구까지 날 데려가더니, 자고있던 문방구 주인을
깨워 기어코 내가 갖고싶었던 장난감을 사준 적이 있었다.
매번 수틀리면 날 때리거나, 문앞에 쫓아내고 몇시간이고 세워뒀던 사람인데
가끔 그럴때면 아빠라는 말이 곰스러운 말이 아니게 되었던 그런 기억이 있다.
술취해 집에 올때면 사왔던 치킨같은 이야기야 너무 식상해서 말도 안하겠다만,
나이가 들수록 음.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결말이야 뭐 대충 그저 그렇게 끝났지만 나는 그 세월 내내를 참고 다녔다.
용기를 내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 사내놈이 맞고다니기나 하고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까지는 뭐 그냥저냥.
그런데 그 일에 관련해서 부모님 두 분이 학교에 왔을 때 나는 주먹한번 휘둘러보지
못한 채 찐따같이 맞기나 한 놈 취급을 받았고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해결되는 일은 내가 나서서 해도 해결 될 것이고, 안되는건 도와줄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실체없는 것이다. 좋을땐 사랑, 나쁠땐 사랑이란 이름의 방관.
뭐 그래도 잘 살았다! 잘 살아왔고, 나는 지금 이렇게 대충 잘 살고 있다!
'대충' 이라는 말을 좀 빼면 좋겠는데 아 그거야 뭐 현실이 대충 잘 살고 있는건데
그 말을 어떻게 빼. 그리고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았지만 나는 잘 해결해왔다.
그...
봉제인형으로 비유하면 그런거다.
남들이 예쁜 봉제인형을 만들어 걷게 만드는데까지 성공한 그런 삶이라면,
내 봉제인형은 무슨 프랑켄슈타인마냥 얼기설기 만들어졌지만 기본적으로
걸을 줄도 알고 때론 뛸줄도 안다. 좀 자주 찢어지고 자주 기워야 해서 문제지.
얼기설기 만들어졌고 거의 중환자실 입실수준의 상처도 가지고 있다만.
어쨌든 괜찮잖아? 잘 해결했으니까.
아무튼 뭐, 사랑은 못한다. 다른 봉제인형처럼 탄탄하질 못해서 그 기능
넣을 자리가 없거든.
써놓고나니 벌써 아침이네.
일단 좀 씻고, 출근준비하고, 디아블로 한판 더 하고.
그럼 오늘 하루도 눈뜬 채 사랑 빼고 대충 열심히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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