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끝나자마자 섣불리 넘겨짚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멘붕의 쓰나미인 시게에서 저도 느끼는 바를 옮겨적어볼까 합니다... 제가 오유에서 써본 글 중 가장 재미없는 글이 될 것 같네요;;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정치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유인 대부분이 이번 선거를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으로 생각하고 계셨을 걸로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제 지인 중 몇몇도 이번 개표결과에 대해 많이 분개하고 황당해합니다. 바로 전번 지방선거 때는 야당의 축제분위기였던 것과 완전히 반대상황이니까요. 시시비비를 떠나서, 이번 총선과 직전인 10.26 재보선의 분위기 간 괴리감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확실한 건 저도 20대로서 느끼는 바, 모든 20대가 야당을 지지할 거란 건 절대 오산입니다. 느낀 바로는 TK 친구들은 20대던 30대던 거의 앞뒤 안가리고 1번입니다. 과거보다 퍼센티지는 줄었더라도 예측가능한 부분이었습니다. 전라남북도가 연고지인 제 친구들 중에는 무소속과 야당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제 연고지인 전라남북도 지역은 몇몇 지역구를 제외하면 새누리당에서도 당원들의 유배지정도로 여기는지, 공보지를 둘러봐도 새누리당에선 마땅한 후보조차 나오질 않더군요. (아마 전주 완산갑은 광우병사태로 유명한 전 농림부장관 정운천씨가 나온 걸로 압니다.)
광주의 서구을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정말 레파토리 바꾸고 싶어도 맞춰줄 장단이 없다고 합디다. 아마 TK 쪽도 그럴런지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이 와중에 야당이 현재 여당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승리한다? 정권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언론의 자유도 거덜나고 선거법위반과 흑색선전이 판치는 이번 선거에서? 그건 진짜 대한민국 선거민주주의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고 봐도 무방할 대형사건일 겁니다. 물론 이번 결과는 정말 기분나쁠 정도로 그 기대를 저버리긴 했습니다.
머리로 예상은 했어도, 대부분 오유인들이 느끼는 분노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꼼수에 관해, 저는 사실 나꼼수를 즐겨듣는 편이 아닙니다. 초반에 나경원문제로 한참 뜰 때 두세편 정도 듣긴 했지만 그 뒤론 오유에서 요약본으로만 접했습니다. 김용민씨가 진 건 어떻게보면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오유인 우리는 김용민씨를 알지만 노원을 지역주민들은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아마 이번 개표결과50:44로 낙선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나꼼수를 제대로 알고, 김용민씨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새누리당 후보는 찍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소속도 안찍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 겹쳐 전통적인 야당지지자들까지 결집해 실질적으로 투표에 이어진 결과가 44%인 겁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모든 전통적 지지층의 투표역량이 결집된 매스게임인 총선에서는 인터넷의 야당 지지율과 나꼼수라는 사회현상이, 상대당의 네거티브와 자칭 보수층의 선거방해, 그리고 상대당의 공약에 대항해 아직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분통이 터지지만 우리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혼란스럽더라도 잠깐 초심으로 돌아가보셨으면 합니다. 오유인 여러분은 투표를 왜 하셨나요? '현정권의 실정과 비리의혹들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어서', '투표를 하면 지금보단 나아질 것 같아서'...
나쁜 뜻으로 투표하신 분은 절대 없으시리라 믿습니다.
개표결과를 보고 실망하시는 오유인분들 많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투표에 참여하신 여러분은 소망하던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비록 여당의 좌석수가 여전히 더 많지만, 개표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러분의 바램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실 겁니다. 지금 분명히 총선분위기는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이미지마케팅과 과거정권의 후광효과, 그리고 오로지 지역이기주의에 따라 움직이던 과거의 유권자들이 아닌 현실에 눈 뜬 유권자들이 조금씩 수면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역이기주의가 아니라 국정 전체를 생각하는 투표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립니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냐고요? 전두환정권 때 100만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았지만 KAL858기 사고의 여파로 노태우가 당선된 건 잘 아실 겁니다. DJ는 대한민국 역사상 야당의 첫승리였지만 총풍을 비롯한 온갖 의혹과 사태에도 이회창과 격차를 1.6%밖에 벌리지 못했습니다. 이인제가 충청도를 중심으로 20%의 득표를 올렸던 걸 상기할 때, 충청권까지 한나라당 단일화가 이루어졌더라면 야당의 대통령 선출은 꿈도 못꿨을 것입니다. 괜히 16대 대선에 이회창이 다시 나타난 게 아닙니다. 어떻게보면 지역이기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선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 숙명이 처음으로 (우연히) 깨진 게 16대 대선이었고, 그 두번째가 최근의 서울시 재보궐선거입니다(사실, 10.26 재보선도 서울시를 제외하면 모두 한나라당의 완승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미루어보았을 때, 이번 총선은 이제 겨우 변화의 첫 발걸음을 뗀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개표결과는 야권의 패배지만 총선 자체가 이 정도로 젊은 세대에게 반향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리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도 이승만정권에서 광주항쟁까지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민정당은 40% ~ 50%를 놓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국회의 역사는 거의 민정~한나라당이 주류였습니다. 제5공화국 이후 최대 정치암흑기인 현정권에서 그나마 야권연대가 126석정도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을 타고 흘러든 젊은 유권자들의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절대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할 이유가 없습니다. 19대 총선은 진보보수프레임을 떠나서 젊은 유권자들이 처음으로 국정전반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에 정치를 처음 맛본 20대에게는 군사쿠데타와 386의 유혈항쟁은 겪어보지 못한 신화일 뿐입니다. 이들이 정치참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생긴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겨우 이정도 결과로 막 움튼 20대의 정치적 열망이 비누거품처럼 사그라든다면 그건 이번 총선결과보다 더욱 심각한 위기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각성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해야 합니다. 지금은 특전공수부대가 한 도시를 에워싸고 총질하거나 5~60년대 민주화항쟁처럼 대학에서 교수와 선배들이 투쟁을 종용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시대상은 변화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지역주의와 반공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웠던 선거는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주효합니다. 잘 알다시피 대한민국은 21세기 도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대 정치암흑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실천이 무위에 그쳤다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분명히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걸 상대방도 절대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인터넷조차 그 어느 때보다 공방이 가열찼습니다. 곳곳에서 조작의 정황이 포착되었고, 매스미디어는 본연의 임무를 포기한 채 이 모든 것들을 묵인합니다.
다만 우리가 이런 상황을 알고, 투표로써 바꾸려고 시도한 자체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모두 아셨으면 합니다.. 이번 선거가 한 때의 치기나 거품이 아닌 병을 고치기 위한 쓴 약이 되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습니다.
좋은 밤 되시고, 우리가 투표로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귀와 눈을 열고 있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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