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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사라졌다
[GQ 2007년 11월호]
언젠가부터 20대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부터 완연히 멀어져 버렸다. 극장을 가도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20대의 주체적인 시각과 행동을 다룬 콘텐츠를 찾아보기 힘들다. 20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나?
모두가 20대를 증오한다. 의식 없고 예의 없고 소명감 없고 사회정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할 줄 아는 건 영어 밖에 없고 오로지 성공의 가치에 모든 걸 헌신하는 듯 보이는 '요즘 것들'에 대한 책망이 하늘을 덮었다. 심지어 20대마저 스스로를 증오한다. 전 세대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펼쳐진 세계의 풍경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며 동기와 기성세대와의 무한경쟁에 더욱 더 몰입한다. 여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지금의 20대만큼 이른바 '세대 의식'이 전무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금 한국의 20대는 '세대가 없는' 세대다. 그래서 '지금의 20대들'이라는 말 자체에 어폐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한 가지 단어나 분류로 구획지어질만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 모종의 악의나 연민을 담아 이야기하는 건 실체 없는 유령을 잡겠다며 굿판을 벌이는 선무당의 헛수고나 다를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까닭은, 그들 세대가 처해 있는 환경의 특수성 탓이다.
20대의 절반 가까이가 한자 문맹에 가깝다는 장탄식은 보수 언론이 자주 꺼내드는 주요 의제다. 누군가는 대학가 주변에 인문학 서점이 자취를 감춘 것과 연결지어 (거창하게도) 지성의 멸망을 한탄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의 20대는 대통령보다 더 만만하고 쉬운 존재다. 욕을 하려면 밤을 새 가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대의 벽화에 조차 "요즘 것들은 예의가 없다"고 적혀 있었다는 걸 보면, 젊은이의 역할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신은 확실히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또 다르다.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중문화는 사회의 욕망과 현상을 투영하기 마련이다. 그 대중문화에서 20대가 다 사라져 간다. 대중문화의 주요 아이콘으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야 마땅한 20대가 어느 사이엔가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20대의 배우와 작가와 가수를 가리키며 반문할 것 없다. 그들이 만든 문화상품이 과연 20대를 위한 20대의 이야기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아니다. 20대가 가지고 있는 몸뚱이의 매력을 팔아 치우는 것, 혹은 20대를 내세워 놓고 정작 기성세대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데 주력하는 트렌드 드라마들은 논외다. 정말 20대의 고민과 관심사를 담고 있는, 화자와 청자가 모두 20대인 콘텐츠가 없다. 20대는 시장 안에서 개별적인 소비군중으로서만 존재할 뿐, 대중문화 주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도 20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20대 스스로도 자기 세대의 이야기를 외면한다. 그들에게 본인들의 세계를 성찰한 여유나 자존감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오로지 끝없는 경쟁과 취업 전쟁만이 세계의 전부다. 그걸 그렇게 만든 건 20대 스스로가 아니다. 그런 세계가 주어졌을 뿐이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자 층이다. 단지 소비만 할 뿐 그 안에서 어떤 주체성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 당장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20대’라는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고 클릭해 보라. 첫 번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출력될 것이다. <대한민국 20대, 재테크에 미쳐라> <20대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20대여, 지금 당장 주식에 투자하라> <대한민국20대, 인테크에 미쳐라> <여자 20대, 몸값을 올려라> <20대에 시작해 평생 고수익 올리는 금융 재테크> <20대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돈 관리법> <대한민국 20대 여자의 재테크는 남다르다> <20대 직장인 부동산에 빠져라> <대한민국 20대, 내 집 마련에 바쳐라>. 경제 분야에 한정해서 검색한 게 아니다. 모두들 20대가 경제에 ‘미치길’ 권유하는 듯 보인다. 사실은 그게 아니다. 대다수 20대가 이미 돈에 미쳐 있다.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조갑제는 “(한나라당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으니)50대는 용돈으로 20대를 제어하라”고 했다. 웃기지만, 웃기는 말이 아니다. 이 땅의 20대는 아르바이트 정도를 제외하면 자력으로 돈을 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요는 이들이 첫 번째 포스트 IMF 세대라는 거다. IMF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건 비단 지금의 20대 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과 함께 IMF를 맞았고,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을 세계의 전부로 경험했으며, 급격한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서 무한 경쟁의 순환 고리 안으로 떠밀려진 세대는 지금의 20대가 처음이다.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에 앉아 기타를 치며 혁명과 역사와 민족과 독재를 논하면서 소위 의식이라는 걸 습득하고, 데모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면서도 괜찮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던 과거의 세대와는 경우가 다르다. 참혹한 경쟁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가더라도 미래는 조금도 보장되지 않는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이미 그 수치와 비율을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다. 올해 통계청 월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5~6월 대졸자들이 포함된 20대와 30대 취업자 수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대졸자 수도 갈수록 늘어난다. 올해 실시된 서울시 7~9급 공무원 시험에는 9만 1582명이 몰려 52.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미래는 더 어둡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중장기 인력수급 전망’ 보고서에서 2015년까지 노동시장에서 초과 공급될 전문대 이상 학력자 수를 54만 8000명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취업이 되어도 걱정이라는 사실이다.
네이버 지식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제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공공기관에 비정규직으로 있습니다. 연봉은 1500만원이 안되지만 4대 보험과 의료보험은 해당됩니다. 대출을 받아본 적도 없고 카드가 연체된 적도 없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이런 대답이 올라왔다. “조건이 안 되십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따로 쪽지 주세요.”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리라는 이야기다. 현재 20대 취업자 과반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들 대부분이 85만원에서 150만원 사이의 월급을 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없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책 <88만원 세대>의 공동 저자 우석훔 교수는 지금의 20대를 “최초로 승자독식체제를 받아들인 세대”로 규정하면서 “현재의 20대 중 95%는 월 88만원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렵게 살게 되고 5%만이 안정된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책의 제목인 ‘88만원 세대’란 전체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을 곱해서 뽑아낸 숫자가 88만원이라는 데서 기인한다.
놀랍도록 새롭고 절실한 문제의식으로 충만한 이 저서는 주로 진보 지식인들이 인문학적 언어를 동원해 지적하곤 했던 사안들을 철저한 겅제 논리와 개념들에 입각해 풀어내고 있다. 우석훈 교수는 현 상황을 세대 간 무한경쟁으로 인해 벌어진 일로 파악한다.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몰고 온 승자독식체제의 게임 법칙이 20대에게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거다.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40대 50대가 쉽게 자리를 내어줄 리 없는 상황에서, 20대는 비정규직의 굴레로 몰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의 법칙은 세대 간 경쟁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므로, 이들은 앞으로도 갈 곳이 없다. 30대가 되고 40대 돼도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가 없다. 저자들은 “20대들이 스스로 더 이상 승자독식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윗세대에 대항해 자기 권리를 찾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20대 스스로는 사실상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다.
모두가 20대를 증오한다. 정작 20대의 존재감은 생존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사라졌다. 서점을 방문하고 극장에 찾아가면 일본과 청춘소설과 영화들이 우리 20대의 이야기를 대신해 들어차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의의 문제의식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20대조차 무관심하다. 88만원 세대에게 문화나 오락 따위는 헛배 부른 사치에 불과하다. 사회 첫 발을 내딛는 20대는 가장 행복한 세대여야 마땅하다. 제도적으로 그 시작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게 건강하고 상식적인 사회다. 그런데 당연히 축복받아야 할 세대가 한국에선 가장 힘없고 갈 곳도 없으며 오로지 경쟁만을 강요당한다. 20대는 그런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저 자학하기에 바쁘다. 세상에, 이건 끔찍한 공멸의 징조다.
에디터/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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