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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후 평소처럼 활주로를 한바퀴 돌아보고 있다. 항상 제자리에 위치한 평화로운 일상 속, 내 눈에 들어오는 깊게 패인
V14번 게이트 옆 고라니 발자국! 난 애써 부정하며, 세달전에 들어왔던 거대한 송곳니를 지닌 늠름했던 수컷 어금니노루를
떠올린다. 활주로 잔디관리팀을 인솔하며 오전일과를 진행하던 중, 사이렌이 울린다. 등골이 오싹하다. 무전기를
통해 선명히 들려오는 어디어!(A DEER!) 나는 신속히 채비를 갖추고 베이스로 복귀했다. 이미 인원들은 무전기를 갖추고
차량앞에 모여서 고라니 추적의 브리핑을 받고있었다. 브리핑의 핵심 포인트는 살생은 금물! 동서남북 문을 개방하고
녀석을 몰아낸다. 그렇다! 녀석은 강력한 노란견장을 어깨에 장착하였다. 천진난만한 이등병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릴 수 없다. 입대하자마자 제대를 바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우리는 인도해야만 한다.
녀석에게 활주로란 세렝게티 초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활한 들판인가! 런웨이 구간을 제외하고는 지천이 잔디밭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했던가? 군부대출신 고라니는 확실히 은엄폐에 능숙하다. 도무지 보이지를 않아서
한참 수색정찰을 하던도중 녀석을 찾았다는 무전이 들려온다. 우리 활주로의 명물 달래밭에 꼭꼭 숨어있던 녀석! 우리는
녀석을 북쪽문으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포위망을 좁히며 녀석의 퇴로를 북쪽문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어림도없지! 어떻게
들어온 활주로인데 녀석은 쉽게 나가줄 생각이없다. 전력으로 방향을 틀며 남쪽으로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녀석을 스치는것인지, 녀석이 바람을 가르는것인지 쫓는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는 녀석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애초에 철책으로 둘러쌓인 이 만리장성과도 같은 활주로 안에 어떻게 들어온것인가? 녀석에게는 처음부터 철책안 초원은
진정한 자유를 의미하는 태고의 땅이었을까?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하여 자유를 갈망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었을까?
녀석의 기세는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과도 같았다. 활주로의 동서를 가르며, 마음껏 질주하는 녀석은
법위에 존재하는 권력자였다. 우리는 넘어가려면 교신후 허락을 받고 넘어가야한다고... 이 짜식아!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에
따라야 하지 않던가? 화가 난 책임자는 상황 종료 후, 뜬금없이 녀석이 은엄폐하고 있던 달래밭과 같은 장소를 모두 없애라고 지시한다.
아! 달래밭이란 나의 점심시간의 소소한 즐거움이 아니던가? 쉬는시간에 달래를 캐어서 만들어
먹던 달래장아찌여! 끓여놓은 간장에 푹 담궈두면 알리신 성분과 더불어 원기회복과 자양강장에 도움을 주던 나의 점심
시간의 오랜벗을 이렇게 잃게되는구나! 전우를 잃은 나는 분노에 몸을 맡기고 녀석을 쫓는다! 숨막히는 추격전이 이어진다
녀석의 발걸음은 깃털과도 같으며, 도사 전우치의 축지법을 익힌듯, 지형지물의 물리적 법칙을 벗어난 무빙을 보여준다.
흡사 페이커의 카시궁을 피하는 리븐의 무빙과 같은 녀석을 보고있노라면, 골드리거는 눈물이 나온다.
너를 쫓는다고 우리 업무가 줄어드는것이 아니다! 그 거대한 송곳니가 부끄럽지 않더냐 남자답게 승부를 보자!
나의 마음이 전달된것인가? 녀석은 지쳤는지 도주를 그만두고 순순히 좁혀드는 포위망에서 벗어나지 않고있다.
그러시고는 여유롭게 풀을 뜯기 시작한다. 존칭이 절로 나올수밖에없다. 이것은 무엇인가? 장판파를 지키던 장비를 마주한
조조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었다. 평안하게 풀을 뜯는 그의 여유로운 모습은 만인지적 맹장의 모습인가? 서성을 지키며
사마의를 상대로 거문고를 연주하던 제갈량의 모습인가? 나만 당황한것이 아니었다.
신참 미군이 놀라움을 금치못하고 차량으로 옆에있던 런웨이 엣지 라이트를 밟고 지나간다. 당황한 미군에게 나는 잇츠오케이라는
말을 전해주며 업무가 늘어났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나는 녀석을 보며 생각한다. "활주로의 고라니"
나는 살면서 녀석과 같은 조명을 받아본적이 있던가? 녀석은 활주로의 슈퍼스타이다. 비행계획을 강제로 취소시키며,
활주로를 지배하고있는 협곡의 지배자다. 어쩌면 활주로에 들어온다는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엄청난
확률의 벽을 극복한것과 같으며, 활주로는 우리들이 살다가는 여생동안의 무대이고, 때가되면 퇴장해야하는 곳이 아닐까?
이 짜식아! 지금이 퇴장시간이다! 우리는 고생고생끝에 3번째 시도만에 다시 북쪽문으로 녀석을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나가면서 나에게 속삭였다.
"나는 불교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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