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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이런 우스개에 맘껏 웃을 수만은 없다. 현실은 더 놀랍고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꽃잎처럼 투명한 피부에 까만 눈망울을 반짝이며 "아이 좋아" 등 감탄사를 연발하는 아이, 귀여운 율동과 함께 부르는 동요,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와요?"라고 졸린 눈을 부비며 물어보는 천진함,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쓰는 일기, 곰인형을 가슴에 껴안고 잠든 평화로운 표정...
'초등학생'이라면 대개 이런 천진난만한 천사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말 요즘 초등학생들도 그럴까.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험악해도 천사처럼 살아갈까. 그런데 매스컴에는 왜 가슴이 철렁하는 초등학생들의 무서운 자화상들이 줄을 이을까.
성인들보다 더 잔혹한 폭력을 일삼거나, 음란물에 중독되었거나, 흡연까지 하는 일부 문제 초등학생들만이 아니다. 게임기와 휴대폰을 비롯해서 각종 상품의 주요 구매자, 사교육 열풍에 찌들어 아득하기만 한 대학입시를 위해 토익공부까지 해야 하는 학생들에다 어른들의 방치로 도시락조차 못 싸가는 결식아동, 유괴나 성폭행 등 각종 범죄의 대상, 학교길과 집 앞에서 수시로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는 것이 우리 초등학생들의 현주소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어리니까" "설마"하며 이들을 무시하거나 덮어두고만 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가슴과 영혼은 새까맣게 멍들어가는데도 말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 두 명의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가 앉아 있다. 겉으로 보기엔 만화책을 읽으며 키득거릴 평범한 아이다. 표정도 담담하다. 오히려 그 아이들을 취조하는 경찰 아저씨가 부르르 떨며 할 말을 잃는다.
음란사이트에는 나이가 없다
"세상에... 참... 나 원 참..."
지난해에 충청도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은 어른들의 생각과 아이들의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다. 평소 음란사이트를 보아 성적 호기심이 충만한 6학년 여학생 ㅇ양이 친구 ㄱ양에게 그림까지 그려가며 성행위를 설명해준 후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학생 6명과 함께 학교 교실에 설치된 컴퓨터로 음란 사이트를 보고는 게임으로 뽑힌 한 남학생과 ㅇ양이 교내 차고와 학교 앞 폐가에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행위를 시도했다. ㅇ양의 친구 ㄱ양은 ㄴ군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ㅇ양을 성추행하라고 강요도 했다. 사건 개요는 ㅇ양이 1주일간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가족들에 의해 밝혀졌다. ㅇ양은 할아버지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 가족들은 ㅇ양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공부를 하는 줄 알았단다. ㅇ양은 "음란메일이 와서 접속한 후 매일 3시간씩 음란물을 접촉했고 계속 보니 한번 해보고 싶어 그랬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학교측이 컴퓨터 관리를 엉망으로 해 아이들이 음란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결과 발생한 사건"이라고 주장하지만 충북교육청 관계자는 "인터넷 게임을 한 아이들이 호기심에서 완전한 성행위가 아닌 성적 접촉을 한 것일 뿐"이라며 사건의 의미를 축소했다.
음란물을 보다 중독된 학생 가운데는 아예 직접 사이트를 운영하며 제작자로 변신, 돈까지 버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인터넷 음란물 운영자의 20%가 중고생이며 초등학생 숫자도 만만치 않은 것. 이들은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일본 서양에서 만든 포르노 동영상은 물론 여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들을 채팅으로 설득(?)해 캡처한 누드나 벗은 사진까지 올려 수천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운영자 가운데는 여학생도 있다. 반면 화상채팅에 응했던 여학생이 엽기사이트에 내걸린 사진의 사진을 보고 자살을 한 사건도 있다.
음란화상채팅 등을 조심해야 할 이유는 이곳이 새로운 우범지대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서울가벙법원 소년자원보호자협의회가 전국 초등학교 5학년~고교3학년 학생 2072명과 재판 계류중이거나 교정시설에 수용돼 있는 비행청소년 2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화상채팅 경험자 957명 중 절반이 넘는 409명이 성관계를 요구하는 제의를 하거나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초등학교 가출소녀들이 화상채팅으로 만난 성인남자들의 꾐에 빠져 성폭행을 당하거나 성매매에 빠져들기도 한다. 최근에는 로리타 증후군으로 불리는, 어린 소녀에게 성욕을 느껴 유혹을 하는 중년 남성들이 많아 철없는 초등학생들이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고사리 같은 손에 아직 발육도 덜된 초등학생들. 그런데 이 초등학생들이 성인이나 중고생보다 폭력에 더 노출돼 있다. 국무총리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지난해 하반기 전국 초중고생 2만1067명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실태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의 9-5%가 폭력을, 5-6%가 집단따돌림을 당했다고 밝혔다. 폭력장소는 교실이 가장 많았다.
그저 얄밉다고, 숙제를 보여주지 않거나 학용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쥐어 박는 것은 약과. 몇명이 집단으로 구타를 하는데 각목 등 흉기까지 동원한다. 보송보송 솜털이 있는 얼굴에 사탄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담뱃불로 지지기도 하고 칼로 위협도 한다.
아직도 우리가 어린애로 보여요?
"6학년 여학생이 사귀자며 우리 아들에게 자꾸 전화를 걸고 메일을 보낸답니다. 요즘 연하에 꽃미남애인 두는 게 유행이라면서 선물을 갖고 교실로 찾아오기도 한대요. 커플링이라고 받아왔는데 글쎄 진짜 금반지예요. 남편은 자기를 닮아 인기라며 좋아하지만 전 그 여학생 부모를 찾아갈까 고민중이에요. 아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아이가 많다네요"
서울 강남에 사는 한미영씨는 조숙한 딸 때문에 고민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연예인이 꿈. 귀여운 얼굴과 나이에 비해 큰 키 덕분에 길거리에서 연예프로덕션 담당자로부터 "오디션을 받으러 오라"는 명함을 받았다. 그후 하루종일 거울 앞에서 표정연기와 춤추기 연습은 물론 엄마 옷장을 뒤져 명품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외출을 한다. 요즘은 눈이 좀 작은 것 같다며 성형수술을 해달라고 조른단다. 딸의 친구중에도 립글로스를 바르는 것은 예사고 화장을 하고 옷은 물론 헤어밴드까지 버버리, 에트로 등 명품으로 치장한데다 휴대폰, MP3, 디지털카메라 등 첨단제품은 최신형으로 갖고 다니는 아이가 많단다.
음반시장이나 패션계에서도 초등학생들은 큰손이다. 용돈을 따로 받고 교복을 입고 다니는 중고생들과 달리 수시로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초등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의 음반도 사고 부모를 졸라 값비싼 옷이나 액세서리를 산다. 고교생들이 조르면 야단이라도 치지만 칭얼대며 울어대는 초등학생 자녀의 요구에 대부분 부모들의 지갑은 열린다. 어린게 뭘 몰라서 그러려니 하면서. 자연 각 기업체들이 타깃으로 하는 층도 로우틴이다. 10~13세의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가장 큰 소비세력인 것이다.
영화나 방송도 마찬가지. 초등학생들이 봐줘야 시청률이나 관객동원에 성공한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과거 허준을 비롯, 최근의 대장금이나 파리의 연인 등 40% 이상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폭발적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들은 대부분 초등학생들이 부지런히 봐줘서 시청률을 올렸다. 초등학생들은 방송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열심히 드나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카페도 운영하는 등 매스컴을 장악한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여러분의 종이 되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소견 발표를 하면 그뿐이던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도 달라졌다. 광고전문대행사에 맡겨 포스터나 전단을 제작하고 연설문 전문업체가 써준 유머감각 넘치고 톡톡 튀는 인사말을 준비하며 도우미까지 동원한다. 30여개 초등학교 학생회장 선거를 맡아 1주일 만에 1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광고대행사 담당자는 "선거에 나오면 어른이나 어린애가 비슷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 초등학교의 김모 교사는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제일 모르는 것 같다"고 한다. 말썽을 일으켜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착하고 순진한 우리 애가 그럴 리가 없다"고 펄펄 뛰면서 "혹시 자주 학교에 가지 않아 우리 애를 미워하는 거 아니냐며 오히려 화를 내는 어머니도 있어 답답하다"고 한다. 김교사는 "요즘 애들은 유치원때부터 한글은 물론 영어, 중국어까지 다 배워 학교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또 4학년만 돼도 특목고 대비 학원에 다니는 등 스트레스가 많은데 어린이다운 놀이를 즐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에서 담배 피거나 음란물을 본 학생들을 나무라면 '우리 엄마는 너무 순진해서 쇼크받으니 절대 알리지 말라'고 한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세상에 부모로 산다는 것
반면 부모들의 욕심으로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초등학생은 더더욱 많다.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에 따르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특목고에 들어가야 한다" "경시대회에 나가라" 등 아이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 초조 강박 정신분열 등의 정신질환을 앓는 초등학생들이 부쩍 늘었단다.
음란물에 빠졌건 폭력에 시달리건 사치열병에 걸려 있건 초등학교 학생들의 책임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어른들이 쏟아내는 그 더럽고 추한 음란물들, 아무런 의식 없이 퍼부어대는 폭력들, 그리고 코묻은 돈도 안 가리고 아이들을 소비자로 삼아 각종 상품을 광고하는 방송과 기업들이 우리 천사들의 가슴을 멍들이고 그 날개를 꺾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전문가들의 조사에도 나타났듯 부모와 대화시간이 많은 학생들은 인터넷에 중독되거나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확률이 극히 적었다. 아이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말 제대로 아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
초등학생들에게 투명한 동심과 맑은 눈빛, 평화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의무다. 꿈나무들을 멍들고 찌들게 방치하면 우리의 미래도 암담하고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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