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로 본 서울 남대문 일대
삼성본관 명당…때되면 地氣 상승
숭례문이 불에 타고 인근에 사옥을 둔 삼성이 특검 수사를 받는 등 숭례문과 인근 지역에 악재가 잇따르자 이곳 지기(地氣)가 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시중에 유포되고 있다.
그러나 풍수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심재열 인천대 겸임교수는 "관악산에서 솟아오르는 불의 기운(화기)이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고 있어 항상 화재를 조심해야 한다"며 "사람이 대비를 소홀히 해 불이 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제희 대동풍수지리학회장은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조선왕조가 마련한 안전장치 3개 중 2개가 없어졌기 때문에 숭례문에 불이 났다고 풀이한다.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조선왕조는 서울역과 남산 사이에 만든 연못 '南池'와 광화문 옆의 해태상, 숭례문 등 세 가지 안전장치를 만들었다"는 게 고 회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남지가 메워지고 해태상이 광화문 복원공사를 위해 이전하면서 숭례문이 홀로 관악산의 화기와 맞서야 했다는 것.
고 회장은 "숭례문이 혼자서 화기를 떠맡으려니 이길 수 없었다"며 "화기를 막을 안전장치가 모두 없어져 도성 안쪽에 재앙이 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 태평로1가 삼성 본관 건물은 지기가 다하기는커녕 천하 명당이라는 게 풍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설명. 고 회장은 "태평로는 중국 청나라 때 사신들이 묵었던 숙소가 있던 곳이며 삼성 본관 건물은 과거에 돈을 찍어내던 자리로 돈이 쌓이는 터"라며 "명당인 이곳을 특검 수사와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심 교수도 "삼성 사옥과 롯데호텔, 한국은행 본점은 모두 명당 중 명당"이라며 "명당도 한때 굴곡을 겪게 마련이고 이때가 지나면 기운이 다시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삼성이 명당을 버리고 서초동으로 옮기려는 게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심 교수는 "삼성타운을 만들려면 태평로에 해야 한다"며 "좋은 터를 놔두고 왜 강남으로 가려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풍수 전문가들이 손을 내젓고 있지만 삼성 사옥 주변 상권은 예전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소문 인근에서 담배와 문구 등을 취급하는 상인 이 모씨는 "5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500만원씩 팔았는데 지금은 1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점심시간 서소문 뒷골목 식당에는 들어설 틈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사람이 많지만 옛날만 못하다.
삼성의 서초동 이전 소식에 관련 업체가 함께 이전하는 점도 상권 침체에 한몫하고 있다는 게 상가 주민들의 지적이다.
남대문시장 쪽에서 맞춤양복집을 운영하는 사장도 "이 일대에서 잘 되는 집은 일부 식당과 테이크아웃 커피점 정도일 것"이라며 "직영점이라 인건비며 기타 경비가 거의 안 드는 데도 남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풍수만으로는 상권의 흥망을 설명하지 못하는 셈이다.
[김인수 기자 / 이유진 기자
※관악산은 생긴 형상이 마치 관(冠)처럼 뾰족한 아름다운 바위산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자태로 인해, 예로부터 쳐다보기도 꺼려지는 산으로 간주되어 왔다. 풍수로 보아,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王都南方之火山(왕도남방지화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삼막사가 자리잡은 바로 옆의 삼성산 또한 같은 취급을 당하였다.
조선 초기 도읍터를 정하는 과정에 있었던 무학(無學)대사와 정도전(鄭道傳)의 의견 대립은 대개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관악산을 정남향으로 바라보고 궁궐을 세우면, 관악산의 살기가 궁성(宮城)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치 않다는 무학대사의 주장이다. 화기는 화재와 병란을 암시한다.
그러나 정도전은 남쪽에 둘리어진 큰 강물인 한강이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아내니, 관악산을 바라보며 정남향으로 궁궐을 세워도 무방하다고 했다.
결국 궁궐은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관악산을 바라보며 정남향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그 뒤 이방원에 의한 1차 왕자의 난, 박포(朴苞)의 선동에 의한 2차 왕자의 난 등과 같은 왕실 반란이 있었고, 순탄치 못한 일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사람들은 백악(북악산의 옛이름) 밑의 궁 자리를 반대했던 무학의 예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왕자의 난 이후로도 사육신 처형으로 마감한 세조 반정, 왜인의 침략에 의한 임진왜란, 오랑캐의 남침에 의한 병자호란, 경복궁 화재 등 관악산의 화기설(火氣說)을 뒷받침해 주는 사건들이 꼬리를 불고 이어졌다.
그러나 이태조 자신도 관악산 화기설을 전혀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관악산이 火山이란 점을 의식했던 이태조는 화환(火患)을 막기 위해 무학의 말을 따라 이 산에 연주(戀主), 원각(圓覺) 두 사찰을 세웠다. 경복궁 정문에서 이 산이 덜 보이도록 그 일직선상에 남대문을 세운 것도 풍수적인 배려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액(懸額)의 글씨는 가로로 쓰는 것이 관례다. 숭례문이란 현액을 세로로 쓴 것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화기가 도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에서였다.
숭(崇)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다.
그리고 예(禮)란 글자는 오행(五行)으로 화(火)에 속한다. 화를 오방(五方)으로 따지면 남(南)에 해당한다. 따라서 남쪽에 불을 지른다는 뜻이 되니, 이는 맞불 작전인 셈이다.
그리고 모양으로 보아, 숭례(崇禮)라는 글자를 세로로 써야 불이 더 잘 타오를 수 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숭례문의 화기로 불산에서 옮겨오는 불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세로로 쓴 숭례문의 현판이 정도전의 솜씨라는 점이다. 결국은 정도전이 무학대사에게 지고만 꼴이 되었다.
대원군(大院君)이 집정해서 경복궁을 재건할 때의 일이다. 화재와 병란으로 계속되는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아내기 위해, 대원군은 물짐승인 해태 조각상을 궁궐의 대문이나 건물의 좌우에 안치하도록 하였다. 또 관악산 꼭대기에다 우물을 판 다음, 구리로 만든 용(龍)을 우물에다 넣어서 화기를 진압토록 하였다. 관악의 주봉(主峰)인 연주봉(戀主峰)에 아홉 개의 방화부(防火符)를 넣은 물 단지를 묻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도 안심할 수 없어 남대문 인근, 지금의 서울역 광장과 대우빌딩 부근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만들었다. 이 역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다. ‘남지’는 남대문이 관악산의 화기를 막다가 자신이 화를 당했을 때에 대비한 의미도 있다. 남대문의 용마루 끝머리를 치미(망새)로 장식한 것도 남대문을 화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관악산의 화기는 민간의 풍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실례로, 서울의 양반들이 모여 사는 가회동 일대 북촌(北村)에서는, 관악산을 마주하고 있는 집에서 자라난 규수와는 혼인을 거절하기도 하였다. 주민들 역시 관악산을 마주 보는 택지를 피한다든지, 부득이한 경우에는 친정으로 가 아이를 낳는 풍습까지 있었다.
관악산을 마주 보고 자란 여자들은 불같은 성미를 지녔다고 여긴 때문이었다. 이는 불이 열정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관악산의 화기를 쏘인 여인은 요망스럽고 음탕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를 할 수 없으리라고 여긴 까닭이다.
하지만 조정을 화마의 위협으로 지켜내던 ‘남지’가 개발로 사라졌다. 게다가 관악산 화기를 막는 역할을 하던 광화문 해태상도 복원공사 때문에 치운 상태다. 결국 풍수적으로 관악산 화기를 막던 남지, 광화문 해태상이 모두 없어진 상태에서 숭례문 혼자 불기운과 맞서다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한 풍수가는 “공교롭게 이날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10명 중 5명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인사가 발표되는 등 관악산(서울대) 화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마침내 숭례문이 굴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해석은 실제 화재와 상관없는 역사적, 혹은 풍수상 해석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숭례문의 건립은 불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임무를 다하며 600년간 꿋꿋히 자리를 지켜온 숭례문이 화마를 맞게돤 것은 너무나 妙하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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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전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풍수지리가들이 설치한 3대 장치!!
[남지 연못, 해태동상, 세로로 세워진 숭례문 현판(판액]
1. 현 대우빌딩 근처 남지 연못 --> 개발로 인하여 10년전 사라짐
2. 광화문 앞 해태동상 --> 광화문 재건으로 2주전 이전
3. 세로로 세워놓은 숭례문 현판 --> 숭례문 화재 초기진압시 긴급 철거.
그야말로 관악산 화기를 막기 위한 3대 장치가 해체되어버린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