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30:54.26 0
주로 남편에게 한 복수. 폭력적인 내용이 있으니 싫어하시는 분은 패스 해주세요.
결혼 한지 23년.
딸은 사회인, 아들은 대학에서 자취 중. (학비, 생활비 무료)
남편과 나 둘 다 일을 하고 있었지만, 재해의 영향으로 회사가 어려워져서, 저는 조기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직하기 1개월전에 근거리별거였던 시부모님들이 차례로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입원. 시어머니는 반신마비, 시아버지는 정신에 문제는 없었지만 누워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두 분이 퇴원하신 뒤, 남편은 독단적으로 시부모와의 동거를 결심, 재취 직을 하려고 했던 나에게 병간호를 부탁해왔습니다.
시모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 였지만, 시아버지는 나를 친딸처럼 대해주시고 귀여워 해주 셨었기 때문에, 비록 남편이 자기 맘대로 동거나 병간호를 결정한 건 화가 났지만, 뭐 이렇게 회사를 퇴직하게 된 것도 이런 인과가 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승낙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던 일도, 현장하고는 거의 관계없지만 노약자의 병간호/개호에 관련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남편은 마침 잘됐다. 라고 생각한듯해서, 살짝 기분이 안 좋기는 했습니다.
710: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35:25.32 0
다행히, 시모의 마비는 재활훈련을 거쳐 굉장히 호전되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이나, 간단한 가사일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아버지는 계속 누워 계셔야 했지만, 언제나 저를 신경 써주시고, 작은 일에도 항상 감사해주셨습니다.
반년 정도 지나자, 시모는 가사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간단한 자신의 일마저 저에게 떠넘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마당에 물 뿌리는 것이나, 세탁기를 돌리는 것 정도의 가사는 하셨었습니다만, 지금까지의 일은 물론, 전화 받는 것조차 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는 자기 방에서 하루 종일 티브이만 보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가사일은 재활훈련 겸, 치매방지 겸 역시 필요한 일이라 하시도록 부탁 드렸지만, 아침산책도 하지 않게 되고, 성격 역시 점점 완고 해지고, 제가 시아버지의 간호를 하고 있으면 원망의 말이나 악의가 느껴지는 말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그럴 때 마다 [적당히 해둬! 감사하기만 해도 모자란대 뭐야 그 말투는!] 이라고 저를 보호 하시려 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시모의 피해망상에 박차를 가하게 된듯, 시모는 더 이상 시아버지의 방에 얼굴도 내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치매의 초기단계라고 판단해서, 남편과 몇 번이나 상담을 했지만, 남편도 재해의 영향으로 일이 급증하고 있어서 [알겠어, 내일 들을게] 같은 느낌으로 제대로 상담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아버지가, 시모의 상태를 자신의 간병인분이나 보건사분들과 상담하거나 하면서 도와주셨습니다.
몇 번 정도 시모를 병원에 대려 가고는 했지만, 누워서 움직일 수 없으신 시아버지를 장시간 집에 홀로 둘 수는 없어서, 남편에게 평일 유급휴가를 받게 하곤 했습니다. 남편은 말로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어머니 일이면서 저를 탓하는 듯 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가면서 시모의 치매는 점점 진행되고, 제가 밥을 주지 않는다, 시모의 결혼반지를 훔쳐갔다, 돈을 훔쳐갔다, 옷을 버렸다 등등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사실무근이다. 네 어머니는 슬슬 전문 병원 시설에 맡기는 게 좋겠다. 나도 같이 시설에 들어가마] 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남편은 나중에 얘기합시다 하고 계속 모른 척만 하고 있었습니다.
712: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39:44.91 0
그 시기쯤, 저는 남편에 대한 애정은 거의 없어져서,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걱정 없고, 나는 저금도 퇴직금도 자격증도 있으니까.
하지만 역시 시아버지가 걱정되고 마음에 남을 것 같아, 당장 이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아버지는 [너는 이제 이 집안에서 나가는걸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 아들(남편)은 너에게 모든걸 맡기곤 아무것도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구나. 아들이 그런 어른이 된 게 너에게 너무 미안하구나. 그리고 정말 미안하지만, 네가 나와 시모의 병수발을 계속한다면, 아들은 계속 골치 아픈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너에게만 던져놓을 거야]라고 말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제 명의로 되어있는 통장을 넘겨주셨습니다. 약 22년전에 만들어진 통장이었습니다. 제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시기, 제가 시모의 이지매와 남편의 무신경함에 고민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나중에 딸이 태어나고 나서, 어쨌든 귀여운 첫 손녀에 시모의 이지매는 제법 줄었었고, 남편도 아버지가 된다는 자각이 든 것일까, 그때 당시 시부모와 동거 중이었으나, 근거리 별거를 하게 되는 등 상태는 호전되었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뱃속의 아이와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시아버지께서는 그때에도 제가 좋아하는 먹을 거리를 사다 주시거나, 남편이나 시모를 혼내주시거나, 밤에 아이가 울 때에도 [산후에는 무리하면 절대로 안돼. 내가 손녀랑 놀 테니까 쉬고 있으렴. 손녀랑 보내는 시간이 늘어서 오히려 기쁘니까 신경 쓰지 말고]라고 해주시며 밤중에도 아이를 안고 산책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육아/산후 휴가 같은 게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직장에 복귀 했을 때에도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주셨었습니다.
[내 아들이긴 하지만, 저 녀석에게는 언젠가 너도 애정이 다하고 말 거라 생각했다. 그 때에는 최소한, 생활비 면에서 너와 손주들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싶어서, 좀 모아두었단다.] 남편과 시모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말 것, 통장과 인감은 개인 금고에 넣어놓을 것등 주의를 주셨습니다.
시아버지와 저는, 부부를 동시에 받아 줄 수 있는 요양시설을 찾아보았지만, 고령화의 탓인지 자리가 없거나, 입원조건이 [입거시 거동에 불편이 없어야 함 – 입거후 발병은 괜찮지만-] 같은 곳 밖에 없어서 찾는데 굉장한 난항이었습니다.
713: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43:45.04 0
저번 달. 회식에서 돌아 온 남편에게 시설을 찾는 것에 대해서 상담을 하니까, [시끄러워! 나는 지금 일하고 돌아와서 피곤하다고! 누구 덕분에 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야! 조금은 일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서 부담을 끼치지 않게 신경 써야 된다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거냐! 거기다 너 우리 부모님도 간호는 똑바로 하지도 못하고, 가사일은 엄마한테 거의 다 시키는 주제에! 거동이 불편한 엄마한테 세탁이나 청소를 시키는 주제에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 하지마! 아무것도 힘든 것도 없으면서! 맘 편한 전업주부 주제에 일하는 나의 어려움을 알기나 해! ] 라고 노성을 질렀습니다.
그곳에 시모가 등장, 남편의 팔에 매달려 울면서, [미안해,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되어서 우리 아들을 고생시키는 구나. 며느리 눈치 보면서 사느니 그냥 죽고 싶다, 날 죽여다오] 라고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노한 남편에게 뺨을 맞았습니다.
남편은 손바닥으로 뺨을 쳤지만,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주먹으로 쳤습니다.
혼신의 일격에 벽에 날아가 부딪혀 쓰러진 남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고 몇 번 정도 더 때렸습니다.
[아무것도 힘든 일이 없어? 치매가 시작돼서 거짓말을 반복하는 시모랑,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시는 시아버지 수발을 들고, 가사도 도와주지 않고 상담도 무시하는 남편 집안일도 해주고 있는데, 힘들 일이 없다고! 좋아.
니가 해봐 그럼, 하나도 힘들일 없으니까 충분히 할 수 있겠지? 나는 나갈 테니까 오늘부터 너 혼자 하는 거야!]
얼마 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가방 두개분의 생필품과 귀중품을 챙기고, 핸드폰으로 호텔을 예약, 택시를 부르고 나서, 일단 시아버지의 방으로 갔습니다.
남편과의 대화가 들렸었는지, 시아버지는 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괜히 내가 불쌍해서 돌아오면 절대 안 된다. 나가서 네 인생을 살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사를 한 뒤, 24시간 간호해주는 간병인의 전화번호를 시아버지 배게 밑에 넣어놓고, 집을 나갔습니다.
716: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49:11.55 0
약 일주일간 호텔에 있으면서, 다시금 요양시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법 비싸지만 시설이 좋은 사설요양시설을 몇 개 발견하고, 가장 좋은 시설을 고르기 위해 직접 견학하고, 면담하고 했습니다.
시아버지와 계산한 예산과 근접한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정원이 찼는지 물어보자, 가장 좋은-비싼 방은 아마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아버지의 위임장을 받아 계약했습니다.
남편에게서는 하루에도 몇 십 통씩 전화나 메일이 왔습니다만, 전화는 받지 않고 메일은 읽지 않고 지워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사정을 설명하고, 이혼할지도 모르겠어, 라고 하자 다들 이해해 주었습니다.
슬슬 집으로 돌아갈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자, 세탁물과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주방에는 인스턴트 식품의 잔해와 배달음식의 용기 등등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아이처럼 울면서 사죄했지만
[근데? 그래서? 지금 당신이 반성하고 있으니까 어쩌라는 건데? 또 나한테만 전부 던져 놓고 자기는 모르는 척 하면서 지낼 테니까 잘 부탁한다는 뜻? 싫은데? 돌아는 왔지만 언제든 다시 나가도 좋고, 언제든 이혼해도 상관 없어 나는. 나 내일은 미용실에 갈거거든, 일년 반만의 미용실]
그러자 더 이상 일을 쉬면 안 된다며 울었기 때문에 [그럼 조기 퇴직하면? 어차피 이제부터 24시간 계속 병수발을 들어야 되니까 일 못하게 되잖아? 괜찮아, 별일 아니니까. 세탁이나 청소 같은 건 어머니가 전부 해주시니까 힘든 일 하나도 없잖아.]
남편은 내가 호텔에 있었던 일주일간,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겨우 이해한 모양으로, 당황해 하며 다시 사과 했습니다만, 저는 무시하고 시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 시아버지와 요양시설에 대해서 말을 나누었습니다. 시아버지는 좋아하시면서, 또 요양시설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칭찬해 주셨습니다. 시설에는 긴급통화용으로 저의 전화번호와, 딸의 전화번호만 알려 두었습니다.
다음날, 저는 정말 미용실에 갔습니다. 남편은 제가 나가는 것을 보면서 울었지만, 역시 무시해주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돌아와서 반달 정도, 매일 매일 외출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부모님의 병수발을 위해서, 라며 회사에 단기 휴직을 받은 듯 합니다. 아내는 병수발로 피로해서 쓰러져 입원했다. 라고 회사에 변명하고 있었나 봅니다. 우연히 외출 중에 만난 남편의 상사가 몸은 좀 어떠냐고 물어보아서 알게 되었습니다.
719: 名無しさん@HOME 2012/07/17(火) 21:53:22.40 0
요양시설은 예산보다 제법 비싸져서, 시아버지에게 받은 돈으로 그 부족분을 채우기로 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시부모님이 시설에 들어가면 팔 수 있도록 시아버지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시아버지의 개호/간호를 그만두고 집을 나건 건, 시아버지와 상담 끝에 한 복수이긴 하지만.
딸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호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저의 부모님을 모욕한 것, 임신 중에 당한 유산을 노린 위험한 이지매 같은 것들, 잊으려고 했었지만, 초기치매와 함께 찾아온 허언과 음해 때문에 다시금 분노. 남편에게는 점점 애정이 없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아버지의 병간호 마저 방폐한 일.
지금 필사적으로 요양시설을 찾고 있는 남편에게, 사실은 요양시설은 진작에 계약이 끝난 것을 말해주지 않은 일.
분풀이로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 당하게끔 몰아넣은 일. (저는 재 취직했지만요. )
모두 다 나쁜 일이고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한 것, 알고는 있지만, 후회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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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면 고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응원의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평일에는 하나 이상은 올리기 힘들것 같아, 미리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