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컬럼] ‘황우석-노성일 사건’의 전모를 밝혀라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6-01-03 11:57]
현대사회에서 언론은 권력이다. 이것은 언론이 ‘의제설정’ 능력과 ‘정의(定意)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의제설정’이란 어떤 특정한 주제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그 주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 찬성이든 반대든 - 촉발시키는 동시에 다른 주제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약화시킨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언론이 정의권력을 가진다는 말은, 언론이 최초로 어떤 사안에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언론이 사안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에는, 사람들은 이 사안을 언론이 제시해준 정의와 연상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제한되어 버린다.
MBC가 황우석 교수 연구에 의혹을 제기한 후, 이 사건은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나는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이란 명칭이 통용된다는 사실이 언론의 정의권력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구랍 15, 16일 양일 노성일 폭로, 황우석 기자회견, 다시 노성일 기자회견을 통해 양자는 상충되는 주장을 제기하였으며, 각자의 주장은 아직 그 진위가 명증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론은 한 편의 주장만을 수용하여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럼 ‘황우석 논문조작’이 아니냐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럴 경우라 하더라도 사건의 전모를 충분히 분석하고 규명해내기에는 미흡하거나 편협한 표현일 수도 있다. 필자는 마지막 경우에 무게를 둔다.
노성일-황우석 분업으로 진행된 황우석 연구
대립하고 있는 두 당사자가 있다. 이 둘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념비적인 논문의 제1저자와 제2저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제2저자인 노성일(이하 존칭 생략)이 제1저자인 황우석을 사회적으로 고발한 상태이며, 법적으로는 황우석이 원고이며 노성일은 황우석의 수사요청서에 등장하는 성명불상인 피고일 수도 있다.
사건들과 고발들과 후속의혹들이 뒤엉켜 있다. 나는 사건의 ‘전체’를 파악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둘이 뒤엉킨 사건 전모를 파악한 토대에서, 비로소 사건당사자들을 적절하게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논문의 책임은 전적으로 황우석이 져야 한다. 당연하다. 그리고 그는 책임을 피하려 하고 있지 않다. 논문철회를 에 요청했으며 이미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했다. 그러니 여기서 일단 멈추자. 잠깐 멈추고 정황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들어보자.
(보통사람들인 우리는 누구나 순식간에 속아버리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한 번 거짓말을 했다고 낙인된 사람은 항상 거짓말을 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러나 신용카드 채무를 청산하기 위해 타인의 지갑을 절취하는 도둑도, 그가 채무청산에 애쓴다는 점에서는 사회의 관습에 순응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두자.)
황우석 연구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부분이 바로 노성일 책임 하의 작업부분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리 많지 않다. 표1에 제시된 황우석 연구의 분업구조를 보자.
전체연구는 두 가지 전문기술이 분업으로 조직되어 있다. 핵치환 이후 배반포 생성단계까지는 황우석 팀이, 그 후 줄기세포로 배양시키는 작업은 미즈메디 소속의 김선종이 담당했다. 여기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황우석이 자신의 전공 외의 분야에서 전문가들과 맞상대할 정도의 전문지식을 갖추지는 못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황우석을 장시간 인터뷰했던 PD수첩 기자들도 황우석이 자신의 전공분야 외에는 너무 몰랐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하고 있다.
노성일 미즈메디 측의 의혹들
줄기세포배양 책임자 김선종은 노성일의 미즈메디 병원 소속이며, 배양업무를 위해 거의 매일 1시간 정도 황우석 연구실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전체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선종에 대해서는, 그에게서 유래하는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언론도 종합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이것이 혹시 ‘황우석만 다치게 하겠다’는 PD수첩 기자들의 약속의 효과인가?)
그는 최근 언론에 의해 밝혀진 것처럼, 줄기세포배양보다는 포토샵에 힘입은 연구 성과를 꾸준히 발표해왔다.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한 여러 개의 논문에 포토샵으로 가공한 동일한 사진을 활용한 바 있다. 문제논문의 ‘2→11 줄기세포 조작’도 그가 몸소 행했다. 사이언스 논문 사진 조작이 황우석의 지시에 의했던 것인지는 조사할 필요가 있다.
김선종의 자살시도설도 여러 의혹들 중 중요한 의혹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황우석이 검찰에 제출한 수사요청서의 수사요청 상대방이다. 수사요청서에는 황우석의 ‘바꿔치기’ 주장이 공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수사요청서는 김선종의 ‘바꿔치기’를 추정할 상당한 정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황우석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용기에 놀랍게도 수정란 줄기세포가 있었다는 것이며, 확인 결과 그 수정란 줄기세포는 미즈메디 병원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샘플이었다고 한다. 황우석 팀은 미즈메디 병원에서 밀반입된 수정란 줄기세포의 번호까지 일일이 적시하고 있다. 황우석은 김선종 개입 외, 어떤 다른 단계나 계기를 통해 미즈메디의 수정란 줄기세포가 황우석 연구실에 반입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며칠 전 미즈메디 측 윤현수가 주장했던 ‘황우석 자작극’은, 서울대생들의 미즈메디 병원 파견근무가 2004년에 있었던 일이므로 근거가 희박하다. 지목된 서울대생들은 4학년생들로서 미즈메디 병원에서 다른 교육(수정란 줄기세포 배양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발된 ‘바꿔치기’에는 올해 수립된 줄기세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나는 독자로서 이런 정도의 정보 분석을 언론으로부터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성일에 대해서는 이미 숱한 의혹들이 제기되어 있다. 노성일은 배아복제 줄기세포와 관련하여 수많은 이익을 확보해 두고 있다. 그는 관련 특허권 소유는 물론, 미즈메디 병원을 통해 배아복제 줄기세포와 관련하여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세포 활용방안을 근거로 미국 국립보건원으로부터 5년간 130억달러의 지원을 승인받았다.
무엇보다도 배아복제 줄기세포(빼돌린 것인가?)를 가지고 지난 3년간 연구와 임상실험을 했던 사람이(2005. 9. 28. 민노당 정책위 주장 참조), 무슨 마음으로 ‘줄기세포 없다 카더라’를 외칠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사건의 전체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확인∙조사되어야 한다. 나는 언론이 황우석에게는 무수한 의혹을 제기하면서도, 노성일과 김선종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거의 조사∙보도하지 않는 태도가 대단히 우려스럽다. 논쟁에 연루된 양 당사자 중 한 쪽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언론이라면 조만간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노성일(미즈메디)의 줄기세포 배양기술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의혹’을 제시할 수밖에 없어 송구스럽다. 그럼에도, 단순하지만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을 정보를 하나만 더 언급하고자 한다. 이 힌트는 전적으로 황우석-노성일의 관계 파탄 이후에 드러나게 되었다. 우선 표2를 참조하자.
2004년 논문의 핵심은 난자 242개를 사용하여 30개의 복제배아를 만들어내고 여기서 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Science 논문’의 핵심은 난자 185개에서 복제배아(배반포기 상태) 31개를 만들어낸 후, 여기서 11개의 줄기세포를 최종적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 있다.
제1저자와 제2저자가 대립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들이 이루어내었던 성과도 분리시켜 다루어보자. 황우석 팀은 약간 상승한 성공률(12.4% → 16.8%)을 보이고 있다. 노성일 팀은 3%의 성공률에서 무려 열배가 넘는 35.4%의 성공률을 거두었다. 미즈메디 병원은 이런 비약적인 기술발전에 고무되어, 실제 적지 않은 관련 논문을 제출하였다. 앞서 말한 ‘포토샵’ 시비가 일자 취소해버렸지만.
여기서는 황우석 팀의 연구성과는 안정적이며, 노성일 팀의 연구성과는 블안정적이라는 중간결론을 내리는 정도로 만족하자. (나는 ‘조선일보처럼’ ‘-라면’에 기초한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2004년 논문도 허위라는 발표 또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발표가 사건의 일단락이 아니라 또다른 추문을 파헤치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임을 기억해 두자.
멍청한 황우석
앞서 제기한 노성일과 김선종에 대한 의혹들이 문제논문에 대한 황우석의 책임을 결코 경감시켜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논문제출 즈음에 황우석이 취했던 행동을 재구성해보자.
황우석은 1월에 오염된 세포를 대신할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었다. 그는 이 줄기세포의 수립을 논문 제출일 며칠 전과 후에 완수하였다. 그리고는 연구진척 상황을 가지고 미국의 섀튼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섀튼의 독려에 힘입어 논문을 제출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소심함’을 읽을 수 있다. 보통 연구하는 사람들은 간이 작다. 그것은 내가 나를 보아도 잘 안다. 나 역시 - 100% 정직하진 않지만 - ‘큰 탈’이 날 위험이 있는 거짓말은 생각도 못한다. 학자들은 보통 큰 거짓말을 못한다. 더구나 세계를 상대로 하는 희대의 사기극은 꿈도 못 꾼다.
‘황우석 사기꾼론’은 이론적 가능성은 있지만, 발생할 개연성은 상당히 희박하다는 말이다. 나는 황우석이 다른 사람, 그것도 노회한 사업가를 너무 쉽게 믿었기 때문에 실수하게 되었다고 본다.
어쨌든 미즈메디 줄기세포가 황우석 팀의 연구실에서 발견된 경위는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것이 황우석의 주장대로 밝혀진다고 전제한다면, ‘황우석 논문조작사건’이라는 명칭보다 ‘미즈메디 줄기세포 도난 사건’이라는 명칭이 적합할 것이다. 황우석에게는 사기꾼이라는 비난 대신 멍청이라는 놀림이 어울릴 것이다.
어쨌든 황우석은 원천기술에 대한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황우석의 원천기술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 외국의 과학자들이 마(魔)의 8세포기의 벽을 넘지 못하였거나 섀튼 같은 이가 영장류 세포는 복제불가능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던 시점에, 황우석은 배반포 단계를 넘어섰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우리의 지적 자산’이다. 그리고 황우석은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 확립단계까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참고로 줄기세포 배양기술은 미즈메디 병원만의 독점기술이 아니다. 기술력을 가진 두 기관 이상이 더 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를 끊임없이 ‘우리 기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어떤 기술도 자신의 명의로 특허를 신청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시점에 나는 황우석에게 ‘논문조작 전과’를 빌미로, 그가 원천기술을 재현할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일 것인가 묻고 싶다.
국민을 위한 언론의 의제설정
언론은 ‘황우석-노성일 대결’을 대단히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황우석을 겨냥하여 제기되는 거의 모든 의혹은 보도되는 반면, 반대세력인 노성일은 보도의 무풍지대에 있다. 사안의 핵심을 파악하고 추적하려면, 이 둘이 제기하고 있는 주장에 관한 보도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언론이 지금까지 ‘황우석 의제’만을 부각시켰다면, 이제는 ‘노성일 의혹’에 대해 집중보도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사건 전모에 관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
(나는 언론에 대해 이와 같은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언론들끼리의 카르텔’이 형성되었다는 류의 비난에까지 동참하지는 않는다. 충분한 정보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 언론과 신생 인터넷 언론이 표면적으로 동일한 행태를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각각 다른 원인에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국민을 일단 여러번 속였던 적이 있는 언론기업에 대해서는 이번 사건에서도 무관심할 뿐이다. 아래에서 ‘언론’이란 그런 적이 없었다고 적어도 내가 판단하는 언론이다.)
언론이 반쪽 진실만 가지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속죄양 황우석’을 발판 삼아 사태를 유야무야하려 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도덕적 배임행위다. 그리고 IT강국인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이것을 모르고 넘어갈 수가 없다. 현재 MBC도 먼저 국민을 실망시킨 결과, 국민들의 불신을 스스로 ‘벌어들인’ 것 아닌가?
나는 진실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과학을 검증하려 했던 MBC를 일정부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MBC는 그 후 반쪽의 진실을 추구하며 반쪽의 진실을 은폐하려 하였기에, 나는 MBC에 실망하였다. 회사도 어렵다고 들린다. 언론사가 살아나는 방법은 사실 단순하다.
그것은 MBC 스스로도 알고 있듯, 진실을 제일 원칙으로 삼는 것이다. 사건전모에 관한 실체적 진실에 관해 국민들에게 보고하라. 이 때 MBC마저도 객체화해라. MBC가 혹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했다고 보도하면 된다. MBC도 실수할 수 있음을 국민들이 알게 되는 것은, 결코 후퇴가 아니다. MBC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체의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MBC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맡겨진 의제설정 권력을 진정 공동체와 국민을 위해 선하게 활용하려 노력하라. 그러면 국민들이 MBC를 살려줄 것이다.
--------------------------------------------------------------------------------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철 동양대학교 행정경찰복지학부 교수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