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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 5월, 거의 1년에 걸친 항해 끝에
포르투갈 함대를 이끈 선장 바스쿠 다 가마는
인도 서부의 항구, 캘리컷에 도착했습니다.
왜 포르투갈 사람인 바스쿠 다 가마가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에까지 배와 선원들을 이끌고 갔느냐 하면,
당시 유럽인들은 인도에서 나는 후추와 육두구 같은 향신료에 매료되어
향신료가 매우 인기리에 팔리는 고가의 상품이었기에
그런 향신료들을 인도에서 가져와 유럽에 팔아
큰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에 도착하여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무역을 해보려고 하자,
무역은 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인도의 다른 항구 도시인 고아에 갔을 때,
바스쿠 다 가마는 자신이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면직물(옷감)을 보여주었으나,
그것을 본 인도인들의 반응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옷감은 거지도 안 입어!"
실제로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면직물의 품질은
당시 인도에서 만들어지던 옷감보다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인도 서부의 항구들은
매우 덥고 습한 날씨라서
입으면 더운 면직물은 도저히 인기가 없었죠.
이렇게 인도 현지에서 포르투갈인들이 가져온 물건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자,
바스쿠 다 가마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무력이었습니다.
비록 포르투갈인들의 면직물 품질은 인도산 옷감보다 떨어졌지만,
먼 바다를 오는데 적합한 포르투갈의 군함과 대포는 인도의 무기보다
훨씬 강력했죠.
포르투갈의 군함인 갤리언은 청동으로 만든 대포를 80개나 실었고,
1534년 포르투갈 해군이 운영했던 전함 상주앙 호는 무려 366개의 대포를 실은 바다의 요새였습니다.
결국 이런 포르투갈의 압도적인 무력에
인도 서부의 도시들은 굴복하여 막대한 향신료를 바쳤고,
그렇게 해서 얻은 향신료를 유럽에 팔아 번 수익으로
포르투갈은 약 1세기 동안 인도양의 무역을 장악하는
해상 제국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출처 | 르네상스의 어둠/ 도현신 지음/ 생각비행/ 259~2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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