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당시 친했던 친구 두명이 있었다.
한 놈(A라고 하겠음)은 집분위기가 좀 프리한 애였고 다른 한 놈(B라고 하겠음)은 부모님이 무서우셔서 노는데 제약이 많이 있었다.
어느때와 같이 학교가 끝나고 이놈들과 놀다가 B가 학원에 갈 시간이 되었다. 나와 A는 학원가지말고 더 놀자고 B를 꼬셨다. B도 놀고싶은 맘이 있었지만, 학원을 안가면 학원에서 부모님한테 전화를 날릴걸 알기에 어쩔수없이 가야한다고 하였다. 그 때, A놈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야 XXX(나)! 니가 우리중에 목소리 제일 굵고 어른같으니까 B 아빠인척해서 학원에 전화해."
이런 말도 안되는 제안을 듣고, B는 그거 괜찮다며 동조하였다.
지금생각해보면 솔직히 고딩이 목소리가 굵으면 얼마나 굵겠는가.....
학생들말투랑 어른들말투랑 얼마나 다른데........
나는 워낙 거짓말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절대 안된다며 안한다고 했지만, 두명이 던지는 말빨에는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머릿속으로 레파토리를 대충짠 뒤, 전화를 걸었다.
보조선생: OOO영어학원입니다~.
나 : 네 여보세요. B 아빤데요.(최대한 굵게 아빠말투를 흉내내었다)
보조선생: (푸흡ㅎ무ㅏ프흡) 아~네 그러세요?ㅋㅋㅋㅋㅋ근데 왠일이시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눈치챘구나.....시밬ㅋㅋㅋㅋㅋㅋㅋ그럼그렇치 이걸눈치못챌리가 없지....그래도 여기서 주춤하면 안될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 다름이 아니라요(안돼~~나도 모르게 '요'를 붙이고 말았다.) B가 오늘 아파서 학원을 못갈거같네요....
보조선생 : 아~ 그러세요?푸밍푸미ㅏ;ㅇ푸푸서퍼크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옆사람 웃는소리까지 들린다)
그럼 어쩔수 없네요~ B 푹쉬고 담주에 봐야겠네요~ㅋㅋㅋㅋ칾ㅇ;ㅏ렁미렄ㅋㅋㅋㅋㅋㅋㅋ
나: 네. 수고하세요~(얼른끊어야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보조선생: 근데요 아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 B 친구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아...아닌데요.....(아 시밝ㄱㄱㄱㅁㄹ아ㅣㅓㅇㅁㄴ;ㅣ럼키ㅓ;ㅣㅇㄹ멍;ㅣㄹ믄링ㄴ러미;ㅠㅠ)
보조선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부모님한테는 말안할테니까 B랑 재밌게 놀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네.........
전화를 끊은뒤 나는 쪽팔림에 말을 잇지 못하였고, 이미 A와 B는 웃다가 쓰러져있었다....
다음주 B가 학원을 갔는데 전화받은 보조선생이 자기를 보고 미친듯이 웃었다는 후일담을 전해듣고 나는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ㅜㅜ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자동으로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빨개진다.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갑자기 생각나면 나도모르게 발버둥치게 된다.......
정말 잊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