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Kei의 중학교는 인천시청 옆에 위치한 작은 학교였다.
혹 아는지 모르겠다.
구월중학교라고.
학교가 어찌나 작던지 운동장이 좁아 대각선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학교였다.
정문 앞의 횡단보도만 건너면 시청이 있었더랬다.
토익시험을 치기 위해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시험을 치르고 나오면서
예전의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이제 그 비밀스러운 추억을 꺼내보려고 한다.
나의 중2때 영어선생님은 근육질에
키가 180 가량 되는 특공대 출신이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 근육을 한 번 보면 믿으리라.
그리고 그 당혹스런 표정을 한 번 보게 되면 믿으리라.
정말 거짓말 아니고,WWE에 나오는 레슬러스럽게 생겼더랬다.-_-;;
그 우락부락한 근육들을 무기로 우리에게 매 시간마다
영어해석깜지라는 정말 싫은 과제를 내주곤 했다.
여기서 잠깐!
깜지란 아는 사람은 아는 악명높은 강제외우기 숙제로서
종이에 정해진 과제를 빼곡히 써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고 한다.
아직도 존재하는 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우린 매시간마다 그 근육에서 뿜어져나오는 헤드락이 무서웠기에
차마 선생님에게 대항하는 사람 없이 고분고분 깜지를 써서 바쳤더랬다.
그럼 아침마다 영어담당 친구가 깜지해 놓은 것을 걷어가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덧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5월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 시절 한창 HOT라는 그룹이 나와서 캔디라는 곡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기억하리라.
그 멤버였던 문희준은 지금은 락한다고 욕 꽤나 먹고 있지만...-_-;;
아무튼 동생이 생일 선물로 사 준 음반으로 나는 HOT라는 그룹의 음악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랩이란 걸 알게 되고,
그에 심취했었는데 그 노래 이름이 바로 '전사의 후예'라는 곡이었다.
HOT의 데뷔곡으로 그리 유명세를 탄 곡은 아니었지만
나는 밤마다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가사를 흥얼흥얼대곤 했다.
그리고 한창 두뇌회전이 빠른 나이라 금방 가사가 외워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난 언제나처럼 영어깜지를 쓰기 위해서 과제였던 영어교과서의 본문을 적기 시작했다.
나중에 해석만 따로 하기 위해 영어문장을 쓰고,한 줄 비우고,또 영어문장 쓰고.
그렇게 영어문장만 써내려갔고 종이 한 장의 반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문득...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어차피 깜지라 확인도 안 할텐데 여기다 그동안 외운 '전사의 후예'가사를 써볼까나?'
안다.
제정신으로는 그런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을.
더군다나 그 레슬러 선생님한테 대항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위험스런 행동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당시의 나는...
사춘기 아니었던가!
무언가에 홀렸던지 뭣도 모르고 무작정 가사를 써내려갔다.
아마 깜지 때문에 억압된 스트레스가 이상하게 발현되었나보다.
그리고 난 이윽고 깜지해석부분에 가사를 다 채워놓고 말았으니...
-아~니가니가 몬데~도대체 날 때려~왜 니가니가 몬데~
이런 가사를 써댔다.
정말 미친 짓이었다.-_-;;
그리고 사람이 한 번 미친 것도 무서운데 난 한 번 더 미치고 말았나보다.
이 놈의 사춘기란!
무슨 생각에서였던지 겁을 상실해버린 나는
그 문제있는 깜지를 복사기에 넣고 돌려버렸다.-_-
이왕 할 거 제대로 된 깜지를 복사했으면 그래도 이해가 갔으련만!
정말 사춘기란 무서운 시기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라 하지 않는가.-_-;;
마치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여하튼 당시의 나는 깜지를 복사하고나서 감쪽같다고 생각하며
혼자 흐뭇해 있었다.
'이렇게 감쪽같다니!역시 난 천재인가봐!!'
그리고는 이거갖고 계속 내야겠다는 잔머릴 굴리기에 이른다.-_-;;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문제의 복사된 깜지를 가지고 등교길에 올랐다.
그 때 당시 나에게는 같은 반에 굉장히 절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교실에 도착해서 보니 이 놈이 숙제를 안 해서
아침에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남은 시간동안 다 채우기는 무리일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난 그 녀석을 진정(?)으로 구제하고자
어제 만들어 낸 그 문제 있는 깜지 복사본을 주고 말았다.-_-;;
물론 그 녀석이 냉큼 이걸 받을 리 없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라면 누군가가 세종대왕님이 그려진 천원짜리를 준다고 해서
그걸 냉큼 받아 쓰겠는가 말이다.
나 같아도 안 쓰지.-_-
그런데 당시의 나는 말빨이 상당했었나보다.
열나게 깜지 숙제를 하는 친구에게
그렇게 써봐야 제 시간에 내지 못 한다는 둥,
이거 같이 내면 그 고생 안 해도 되지 않느냐는 둥,
절대 걸릴 염려 없을거라고,감쪽같다고 그렇게 꼬드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녀석은 나의 말솜씨에 넘어오고 만 것이다.
그래서 결국 우린 공범이 되었고,
(범죄자들이 두려운 마음을 덜기 위해 공범을 만드는 것처럼...-_-;;)
우리는 그래서 사이좋게 복사된 문제 있는 깜지를 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반친구들은
진성아 너 미친 거 아니냐,
나중에 걸리면 죽는다,
이렇게 겁을 줬지만
나와 친구는 오히려 태연스럽게 괜찮아,별 문제 없을거야라며
지극히도 편안해 보였으리라.
'에이,설마 걸린다고 죽이기야 하겠냐?'
누가 말했던가.
지나친 자신감은 화를 부른다고.
하지만 이 순간 우리에게는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어느덧 시간은 가서 영어시간은 찾아왔고.
매번 그랬듯이 위풍당당하게 교실로 들어서는 영어선생님.
그리고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우리.
그리고 반아이들...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차렷!선생님께 경롓!"
반장이 외친 뒤에
우리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인사는 됐다고 하시며 무언가를 펄럭이는 것이 아닌가.
'헉!'
그렇다.
그것은 비록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와 친구가 낸 그 문제있는 깜지과제물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영어선생님은 나와 친구의 이름을 호명하더라.
아니,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름이 아니었다.
"아 니가니가 뭔데 나와라..."
-_-;;;;;;;;;;;;;;;;;;;;;;;;;;;;;
떨고 있는 우리.
그리고 이상한 상황에 궁금해하는 아이들.
그순간만큼 긴 침묵의 시간이 지금껏 다시 한 번 있었을까?
우리 둘은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서는 선생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 때 선생님이 갑자기 확!!
양 손으로 귀를 잡더니 마구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야 이 XX들아!니들이 학생이냐...어쩌구...가사를 써와...저쩌구...
복사까지 해...어쩌구...니들이 더이상 살기가 싫은 게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이 어린 나와 친구는 맞아가면서도 부모님 불러오랄까봐
끽 소리 못하고 울먹이고만 있었다.
아니 울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누가 건드렸으면 아마 울어버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어선생님의 근력은 약하디 약한 사춘기 두 소년에게는 너무도 큰 고통이었다.
물론 인과응보이니 뭐.-_-;;
영어선생님은 한 10여분을 그러시더니 우리에게 나머지공부를 시키는 것이었다.
(당연 귀의 모습은 참담했다.귀 뒤로 시퍼런 멍이 든 모습이란...ㅠㅠ)
그 후로 기약이 정해지지 않은 나머지 공부로의 한 시간씩 자율학습이 시작되었다.
우린 그래도 담임선생님 귀에 안 들어간 것이 어디냐며
이왕지사 나머지 공부하는 거 열심히 해서 성적이나 올리자고 다짐했다.
참 당시의 우리는 너무 순진하지 않은가.-_-*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는 반 내에서 유명한 어이없는 녀석들이 되었고,
영어시간에는 항상 선생님의 눈치를 잘 살펴야만 했다.
틈만 보이면 불러서 해석 시키고 이랬으니까 말이다.
혹 시범케이스라는 말 아는가 모르겠다.
우리의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우리 반에서는 숙제를 안 해 가는 아이들이 없었다.
아마도 그 후로 숙제 안 해간 사람이 전무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내 사춘기 시절은 흘러가고...
...
......
훗...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내 친구놈과 있었던 엽기일화가 있다.
그렇게 마지막 공부를 하던 어느날이었다.
친구가 문득 공부하다말고 속이 안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럼 화장실 가 임마" 이랬더니
이 녀석이 화장실이 멀어서 싫다고 그러는 게 아닌가.
'어쩌라는거야..이 녀석..나랑 같이 가자는 겐가...-_-;;'
그 때 갑자기 친구가 실실 웃으며 충격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던가.
"화장실 가기도 귀찮은데 옆교실에 일보고 오면 안 될까?"
헉!
이 놈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제 정신인가?
이 옆교실은 영어선생님반인데...-_-;;
만약 걸리면 우린 죽음인데.
그런데 난 왜 그랬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말 어린 맘에...
사춘기니까...
사실 이럼 안 되는건 알았지만...
......부추기고 말았다.ㅡㅠㅡ
그렇다.
난 내면 속에 엄청난 사악함을 내재한 악랄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마침 우리가 나머지 공부를 하던 시간에는
학교에는 수위 아저씨 빼고는 아무도 없었고.
물론 선생님들조차 퇴근했던 시간.
친구는 알았다며 쏜살같이 배를 움켜쥐고 나갔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5분여 뒤.
친구가 교실로 돌아오는데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오더라.
그래서 일은 잘 봤냐고 물었다.
녀석은 잘 봤다고,게다가 의자에 일을 봤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추장에 치즈 찍어먹는 듯 엽기적인 녀석!
도대체 어떻게 일을 봤길래 의자에...-_-;;;
물론 모두들 친구의 자세를 대략 상상하고 계시겠지만.-_-*
아무튼 그 날은 차마 그 녀석이 일을 봤다는 옆 교실을 보지 못 하고,
(행여 실수로라도 그걸 보면 며칠간 식사를 못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에 들떠 공부를 마치고 집에 갔다.
도대체가 집에 가는 길은 왜 이리 신이 나던지..
왜 그랬을까요...?
우린 그 때 사춘기였으니까요~^^
헤헷!
어쨌든 고대하던 다음 날은 오고.
평소같으면 등교시간 커트라인에 걸치던 내가 간만에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가니까 이미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이 옆 반에 웅성웅성거리더라.
아이들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 무슨 일인가 모르는 척 보니...
그 반 반장이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자기 몸에서 최대한으로 떨어뜨린 신문지 덮인 의자를 들고 말이다.-_-;;
(대략 말고삐잡고 있는 승마자세를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어찌나 웃기던지...
배꼽을 잡고 죽어라 웃어대었다.
영어선생님이 우리에게 차마 우리가 그 일을 저질렀냐는 못 물어보시고,
누가 그랬는지 못 봤냐고 했는데
우린 당연히 못 봤어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그 날 저와 친구는 손 꼭 붙잡고
죽을 때까지 이 얘긴 비밀이다라고 약속했었는데...
그만 강산이 변하기도 전에 발설하고 마네요.
중 3때인가 무슨 일이 계기가 되어서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되었고,
고등학교가 갈라지면서 그 후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 했는데...
친구녀석...
지금은 어찌 지내나 참 궁금하네요.
만약 잘 지낸다면 군대에 가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동주야!
잘 지내지?
나 진성이다.
언제 한 번 만나게 되면 시원한 소주라도 먹자.^^;
얘긴 발설해서 미안하다~
내가 술 살게!
이 글 혹시라도 보면 꼭 연락해라!!
보고싶다 친구야..
↓뽀너스~봄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