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글을 올리네요ㅋ
오늘은 여기까지 올리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도 많이 남겨주세요ㅎㅎ
편안한 하루되시고 언제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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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능력을 지녔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능력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것도 아
니고 투명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며 남의 생각을 읽거나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의 능력은
오늘을 하루 더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내일도 오늘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모레는
오늘과 같지 않다. 그러나 나에게는 모레가 되는 날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된다. 그리고 그 모레는
그 다음날 또 한 번 반복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나에게는 5일째가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레가 된
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매일 매일을 두 번씩 살고 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꼭 두 배
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육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
의 정신적인 나이는 30이지만 신체적, 사회적인 나이는 15살이다. 물론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8살인, 그러니까 4살 때의 일이다. 처음에
는 부모님들도 내가 단순이 빠르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이 돌이 지나서야 옹알이를 하는 것
에 비해 나는 6개월 만에 입을 열었고 구구단도 한글도 일찍 깨쳤다. 3살이 지나서는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내가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종종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특별하다는 것은 부모님 보다 내가 먼저 알게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숨겼다. 때문에 부모님은 그저 내가 남들보다 좀 더 똑똑한 아이로만 생각하시고 계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고(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자세히 밝히겠다). 그러나 나는 기는 것도 걷는 것
도 그리 빠르지 않았다. 물론 연습량은 남들의 두 배었지만. 그것은 반복되는 이틀의 규칙 때문이었다. 반
복되는 하루 중 첫 번째 하루는 모레, 그러니까 실제 이틀째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물론 나의 기억은 유효
하다. 때문에 나는 구구단이나 한글은 일찍 깨쳤지만 오늘 걷기 연습으로 단련된 근육양은 반복되는 다음날
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직 반복되는 두 번째 오늘에 운동만이 실제로 이틀이 되는 그 다음날에 유효
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물리적 현상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오늘 내가 컵
을 하나 깨뜨린다고 해도 반복되는 다음날 그 컵은 원래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두 번
째 날 깨뜨린 컵은 그 다음날, 그러니까 나에게는 모레가 되고 실제로는 이틀째 되는 날에도 깨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운동이라는 것은 단지 근육의 움직임에 의해서만 발달되는 것은 아니므로 어느 정도의 유
효한 영향은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것은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중심을 훨씬 더 빨리 잡았
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의 경우는 남들과 비슷하게 늘었다. 다리의 근육양이나 본능적인 운동신경의 발달
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반복되는 첫 번째 날은 나의 정신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처
가 나도 다음날이면 멀쩡했다. 아니, 나중에는 상처가 날 일이 거의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
가 났지만 그 끔찍한 사건은 오직 내 뇌 속에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건 첫 번째 날에 일어났고 반복되는
다음날 나는 그 시간에 그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첫 번째 날에 비해 두 번째 날에는 무
엇이든 훨씬 조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두 번째 날은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목숨은 정확히 두
개인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첫 번째 날에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건 무효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을 충분히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곤 했다. 시험 성적 같은 것은 가장 간단한 것에 속한
다. 전날 외워두었던 답을 반복되는 두 번째 날 그대로 적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올백을 노리진 않는
다. 나는 늘 중상위권 정도의 성정만 가져간다. 수능시험도 적당히 볼 생각이다. 대학도 서울대나 카이스트
까지 갈 생각은 없다. 인 서울에 적당한 곳에 갈 생각이다.
돈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돈이 없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몇 번인가 로
또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로또는 당첨된 적이 없다(4등에 1번 당첨된 것 말고는). 처음에는 이
상했지만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다. 그것은 주사위 던지기와 같은 것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주사위를 던져
도 주사위는 매번 다른 숫자가 나온다.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무수히 많
은 조건이 존재하고 그것을 모두 동일하게 충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손가락의 미묘한 움직임이나 힘
의 미묘한 차이.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과 공기 중의 미세한 먼지들의 위치. 그런 것들은 우리들이 통제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로또의 숫자는 내가 뽑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날과 두 번째 날을 정확
하게 반복할 수가 없다. 물론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메뉴의 밥을 먹고 같은 내용의 수업을 듣고 같은 시
간에 하교해서 같은 편의점에 들러 같은 숫자의 로또 번호를 종이에 마킹한다고 해도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나는 전날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내가 걸었던 걸음 수, 들이마시고 내뱉은 공기의 총량, 하루 종일 뛰
었던 심박 수의 숫자, 눈을 깜빡인 횟수는 정확하게 동일 할 수가 없다. 물론 그런 것은 너무나 사소한 것
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차이가 소위 말하는 나비효과가 되어 로또 번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로또번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것에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전철 사고
가 그 예다. 반복되는 첫날, 나는 늘 타고 오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귀가 했다. 그리고 그날도 평소와 다
름없는 하루였다. 그런데 반복되는 이틀째에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지하철이 아니라 버스를 타고 귀가
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 들를 곳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변심이었는지. 중요한 것은 기억
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귀가하고 나서 속보로 다뤄지고 있는 지하철 사
고 뉴스를 접했다. 그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엄청난 충격 이었지만 그것은 오직 나만이 이해
할 수 있는 공포였다 그 때는 왜 매번 똑같이 반복되던 하루가 그날만은 달랐을까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로
또를 하고 나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기억나지도 않는 나의 어떤 사소한 행동 때문에 그것이 지하철에 어
떤 영향을 주게 되었고 사고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그날(반복
되는 이틀째에) 전날(반복되는 첫 날)과는 여러 가지 다른 행동을 했다. 첫날에는 지각도 하고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하교하는 길에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먹었다. 다음날에는 지각도 하지 않았고 졸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대신에 커피를 사먹었다. 분명 수많은 사소한 다른 행동을 했다. 하지만 도대체 나의 무
슨 행동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은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
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사실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그 사건 하나가 전부였다.
대부분의 경우 반복되는 날은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이상 비슷하게(거의 동일하게)흘러갔다. 거시
적으로 보면 전날과 다음날은 동일했다. 때문에 반복되는 오늘과 반복되는 내일의 시험지가 다른 경우는 거
의 없었다. 이것이 내가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제법 공부를 하는 아이로 비춰지는 이유다. 뿐만 아니
라 나는 첫 날에 비해 두 번째 날에는 늘 조심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세상은 반복되는 두 번째 날의
나의 모습만 기억하기 때문에 다들 나를 성실하고 신중한 아이로 알 고 있다. 가식적이지만 나는 눈에 띄
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성실한 아이로 비춰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두 번째 날의
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첫 번째 날의 나는 지각뿐 아니라 학교를 나가지 않을 때 도 많다(매번 그렇지
는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고, 그것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나에게는 여간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대부분의 경우 매번 남들보다
두 배나 학교에 등교하곤 한다). 담배는 피우지 않는다. 가끔 생각이나 나서 피울 때가 있지만 두 번째 날
에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매번 처음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기침을 해댄다. 가끔 혼
자 술을 마실 때도 있지만 그것처럼 고독한 행위도 없다. 나는 벌써 30이 넘었지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해주
지 않는다. 때문에 나 혼자 먹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드도 해봤다. 뭐 약간의 환각이 있긴 했지만 깨
어나고 나서 그 끔찍한 두통 때문에 몇 번인가 해보고 관뒀다. 물론 중독 따윈 없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여러 가지 사소한 범죄도 저질렀다. 아니, 솔직히 말해 사소하지 않은 범죄도 저지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씁쓸한 뒷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전날 끔찍한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던 여자가 다음날 해맑게 웃으
며 인사를 할 때면 그렇게 자괴감이 들 수가 없었다. 절도에 대해선 나도 꽤 일가견이 있다. 도둑질은 실력
의 유무와 크게 상관없이 들키지 않는 것 보다 들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꼬
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겠지만 나의 꼬리는 언제나 시간의 틈새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몇 번인가 경찰서에도 가봤고 부모님의 실망한 얼굴도 봤다. 물론 나를 제외한 세상에서는 존
재하지 않는 과거이지만. 아무튼 나는 보통 사람의 두 배를 살았고 그보다 많은 경험을 해봤다. 시시하다.
그게 나의 조금은 특별한 능력과 인생에 대한 나의 조촐한 결론이다.
"전학생을 소개한다. 이름은 박혜린.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박혜린입니다."
전학생이 소개를 하는 동안에도 나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시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원
한다면 세상을 내손에 쥘 수도 있다. 하지만 그까짓 세상이라는 것이 내 손바닥에 들어올 정도로 시시한 것
이었다. 나는 우주가 숨기고 있던 부끄러운 비밀을 발견해 버린 기분이었다.
"음. 자리는... 그래. 저기 앉도록."
전학생은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로 가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무심코 쳐다보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렇게 생겼구나. 나는 반쯤 정지시킨 뇌로 그렇게 생각했다.
"전학생을 소개한다. 박혜린이라고 한다.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박혜린입니다."
두 번째 날. 나는 아이들처럼 적당히 박수도 치며 호응했다. 두 번째 날의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때문
에 적당히 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 자리는... 저기 앉도록."
전학생은 자리로 들어가며 내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멍청하게 그녀를 쳐다보는데 그녀는 나와 눈
이 마주치자 피식 웃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어이. 박현욱. 혜린이 그만 쳐다보고 교과서 펴."
일동 웃는다. 나도 멍청하게 웃으며 책을 폈다. 힐끔 전학생을 쳐다봤다. 전학생은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
지만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그 웃음이 나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했
다.
다음날에도 나는 그녀를 신중히 살폈다. 그녀에게는 전학 이틀째가 되지만 나는 그녀를 세 번째 보는 것이
다. 물론 그녀가 두 번째로 전학 온 날, 첫 번째 날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설명했듯이 나
비효과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정확하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 정도 웃음, 아무 생각 없이 웃
을 수도 있고 웃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녀는 반복되는 첫 번째 날에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고 있었
지만 두 번째 날에는 카프카의 성을 읽고 있었다. 그 정도의 차이 말이다. 그러나 내 본능이 그게 아니라
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나의 존재가 슈퍼파워의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싫든 좋든 육감이라는 것
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육감은 뭔가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특별한 점은 발
견 되지 않았다. 그녀는 전학생답게 아이들에게 둘러 싸여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침착하고 적당한
유머가 섞인 대화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세 번째 쉬는 시간 나는 그녀에게 접근했다.
"안녕."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 볼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름이 혜린이야?"
"응."
"그렇구나. 원래 고향이 어디야?"
"인천."
"인천... 인천 어디? 강화도 쪽에 사촌이 사는데..."
"..."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에서 압도적인 어떤 힘을 느꼈다. 더 이상 대화를 진행 할
수 없을 정도로. 때마침 종이 울리고 나는 가까스로 내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반복되는 다음날, 나는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고 그녀를 살폈다. 그녀는 반복되는 첫 날과 특별히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
런데 세 번째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 그녀는 정확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리
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순간에도 메두사의 눈을 쳐다본 것처럼 단단히 굳어 버렸다.
나는 확신했다. 그녀는 나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첫 번째 날의 나와 두 번째 날의 나를 모두 알
고 있다. 분명 첫 번 째날 세 번째 시간에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내가 두 번째 날에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
았기 때문에 나를 처다 본 것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말했듯이 대화
중에 특정한 표현이나 손동작, 시선처리 같은 사소한 부분에 있어서는 전날과 반복되는 다음날 동일하지 않
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화 자체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 변화는 여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첫날에
말을 걸었던 내가 두 번째 날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나를 쳐다본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는 반갑기도 하고 흥분되었지만 두렵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그 후 몇 일간 반복되는 두 날 모두 거의 비슷
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매번 사소한 부분을 다르게 행동했다. 어떤 날에는 짝꿍과 이야기 하고 반복되는 날
에는 매점에 갔다. 숙제를 해오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그런 행동들에 시큰둥할 뿐이었다. 나는 조급해 지기도 하고 내가 단순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
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그녀에게서 반응이 나타났다.
"박현욱."
"?"
점심시간이었다. 이를 닦고 자리로 돌아와 있는데 그녀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랑 잠깐 이야기 할레?"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뒷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 나왔다. 학교 뒤는 바로 낮은 산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녀는 익숙하게 산길을 헤치고 올라갔
다. 그리 험하지 않은 산이었고, 산 넘어 사는 아이들이 오가거나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이 가끔 오르락내리
락 하기 때문에 길도 나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라갔다. 정상에서는 시야가
탁 트여 학교 주변의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런 곳이 있구나. 4년간이나 다니고 있으면서 한번을 올라
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시험해 볼 필요 없다. 나는 너와 같은 사람이니까."
그녀는 거두절미하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어쩐지 그럴 거 같았어."
"어때? 지금 기분이?"
"묘한데."
묘하다는 한마디로 설명 할 수는 없었다.
"난 지금껏 나 같은 사람은 나 혼자 인줄 알았어. 전혀 즐겁지도 않았어. 물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며 살아 왔지만 고통스러웠어... 나의 외로움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어."
나는 왼 손목을 들어 바라봤다. 손목은 깨끗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내가 20살, 그러니까 10살 때 동
맥을 그었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하지만 진짜로 죽을 만큼의 용기는 없었지. 10살 때였어. 보통 사람들의 나이
로 말하자면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그저 지루한 삶을 남들보다 두 배나 살
고 있을 따름이야. 걸어 다니는 시체. 좀비. 그러나 너의 존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어. 때문에 너를
강렬하게 알고 싶었지만 그만큼 두려웠어."
그녀는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마치 준비 했던 것처럼 나는 마음속에 응어리 졌던 이야기를 거침없
이 내뱉었다.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이해받을 수 있는 상대에게서.
"너는 이틀 이구나"
그것이 그녀의 유일한 대답이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났다. 그녀는 다시 산을 내려갔다. 나는 멍하게 그녀
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담배가 생각났다. 나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대로 해가 질 때 까지 산에서 가
만히 도시의 정경을 쳐다봤다.
여기까지가 1편 끝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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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2편 시작입니다
물론 내가 이 저주받은 능력에 대해서 도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이 했던 도전은 잠을 자지 않
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두 번째 날에서 그 다음날, 그러니까 나에게는 삼 일째가 되지만 실제로는 이틀째
가 되는 날로 넘어가는 밤은 보통의 날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그날은 밤을 샌다고 해도 해가 뜨면 실제로
하루가 지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첫 날은 밤을 샐 수가 없다. 내가 의식적으로 그 '경계'를 깨
보기 위해 밤을 세었던 날, 나는 나의 하찮은 노력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깨달았
다. 그것은 마치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처럼 너무나 간단한 것이었다. 반복되는 첫날 11시 59번 59초
에서 아무런 조짐도 없이 시간은 다시 반복되는 두 번째 날 새벽 12시 정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거기에
는 어떤 드라마틱한 효과도 없었다. 단지 눈 깜짝할 순간에 시간은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기억은 그
대로인체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반복되는 첫날 오후 11시 59분 59초에 조깅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1초 후
에는 첫날 12시 정각에 누워 있었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다. 물론 잠들어 있는 체로. 다음날 일어나서는
꿈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반복되는 두 번째 날 에도 밤을 새고 그 다음 날에도 밤을 새었다. 그리
고 그 다음날에도 밤을 새었다. 그러나 나는 단지 깨어 있는 체 시간이 되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었
다. 11시 59분 59초에서 전날의 12시 정각으로. 순식간에. 아무런 조짐도 없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담백한 변화에 내가 손쓸 구석 따윈 없었다. 하루를 반복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
다.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서 남들
의 두 배로 쳇바퀴를 돌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특별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물론 급한 것은 나다. 내가 우물을 파
야 한다. 그녀는 나의 존재를 먼저 알아 차렸고, 나의 존재에 대해 놀라지도 않았다. 그 말인즉, 그녀는 나
와 같은 사람이 존재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 이외에 다른 능력자들과 접촉하고 있
을 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하다. 나는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떠올렸다. 그녀
가 열쇠일지도 모른다. 하교 할 때를 기다려 그녀에게 접근했다.
"집은 어느 쪽이야?"
"별로 멀지는 않아. 걸어가면 한 30분 정도?"
나는 그녀의 느긋한 걸음걸이를 보며 말했다."보통 걸음으론 20분 정도면 가겠구나."
나는 그녀와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는 알고 있지? 나 말고도 이런 저주받은 능력을 갖은 사람들을 말이야."
"부정하진 않아."
역시.
"좋아. 그들은 어디에 있지?"
"어디에 있다니?"
"그 사람들 끼리에 네트워크 말이야. 모임이나."
"그런 건 없어."
그녀와 나는 횡단보도에 같이 멈춰 섰다. 파란불이었지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는 건널 생각이 없었다.
"어째서? 나는 나의 존재가 이렇게 궁금한데 넌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왜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
는 거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잖아. 우리는 불치의 병에 걸린 것과 같아.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끼리 왜 접
촉하지 않는 거지?"
나는 조금 격앙된 말투로 말했다.
"넌 이틀이라고 말했지?"
"이틀?"
이틀이라니. 하루가 반복되는 것을 말하는 건가.
"그래. 맞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똑같지는 않아."
똑같지는 않다?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 때 까지 잠
자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어느새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도서관."
"도서관이라면 학교에도 있는데. 무슨 책을 찾는데?"
"거기라면 오래전에 다 살펴봤어."
그녀와 나는 시외에 있는 시립 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이용하는 사람처럼 익숙하게 책을 골
랐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인내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알 수 없는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너는 나보다 뭔가 더 알고 있어. 그건 분명해. 왜 나에게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거지?"
"이틀을 반복한다니, 괜찮은 조건 아니야?"
그녀는 책을 대충 훑어보더니 대출을 받아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도서관을 나왔다.
"괜찮은 조건이라니. 너 내말을 도대체..."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했다. 그녀는 나의 손을 눈높이 까지 들어
자세히 살폈다.
"봐. 이 손. 깨끗하지? 그 흔한 찰과상 흔적 하나 없어. 마지막 날에는 언제나 조심해서 행동했기 때문이겠
지? 첫 번째 날에는 시행착오를 겪고 두 번째 날에는 제대로 하는 거야.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고 하지만 너
는 매번 실전 연습을 하지. 때문에 너는 실패를 거의 하지 않아. 성공한 인생이지. 물론 앞으로도. 거의 보
장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 바보가 아니라면 앞으로도 원하는 것은 간단하게 얻으며 살아가겠지. 도대체 뭐
가 불만이지?"
나는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그들과 이야기를 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그들이라고 뭔가 대단히 다를 것 같아? 넌 정말로 네 자신이 남들
과 달리 특별하다고 생각해? 물론 15살짜리 중학생들에 비교한다면 넌 대단한 존재야. 그 나이게 인생에 대
해 너만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간은 별로 없을 태니까. 하지만 넌 분명히 30년을 살았어. 네가 30살짜리
사람들과 비교해서 하루를 더 사는 능력 이외에 뭔가 더 뛰어난 점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나보다 한 살이나 두 살, 다섯 살이나 10살이 어린 사람들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나의 지적 수준이나 인생
에 대한 통찰이 30대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30살이자 15살이었기 때문이
다. 나는... 도대체 몇 살인가.
"너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그들이 뭘 하고 살 고 있으며 어떤 것을
얻었고 어떤 것 을 알고 있는지. 정말로 그런 것이 궁금해? 아니면 너의 능력에 정체가 뭔지, 그 원리가 뭔
지, 그런 것이 궁금해? 네가 알고 싶은 것이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설명해 줄 수 있어. 물론 네가 이해한다
면..."
궁금하다. 정말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리고 내 능력의 정채가 무엇인
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말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질문을 했다.
"네가 전학 온 것이 우연이야?"
그녀는 걸음을 멈춰 서서 나를 쳐다봤다.
"우리가 만난 것이 우연이냐는 말이야, 아니면 나에게 접근하기 위해서...""우연은 아니야."
"그렇다면 너의 목적은 뭐지?"
그녀는 다시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너. 정말로 네 운명이 저주라고 생각해?"
저주.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대답을 주저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뭐?"
"하루를 반복하는 그 능력. 내가 없애 줄 수 있다고."
나는 그녀의 뜻밖의 제안에 놀랄 따름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그녀는 횡단보도를 걸어갔지만 나는 그 자리
에 못 박힌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횡단보도를 반쯤 걸어다가 뒤를 돌아서서 말했다.
"이번 주 주말까지. 시간은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 충분히 생각하고 말해줘."
시간은 충분했다. 토요일까진 이틀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사흘이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은 했다. 나
는 토요일 저녁에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는 (반복되는 두 번째)토요일 아침에 시내에 있는 커다란 서점에
서 보자고 말했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그녀는 역사 코너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내가 인기척을 냈지만 그녀는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볼 뿐 다시 눈이 빠져라 책을 보고 있었
다. 그녀는 결국 책을 다 읽을 때 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책 읽는 속도는 대단히 빨랐기 때
문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속독이라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녀의 눈동자 굴러가는 모습과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맛있는 음식
을 먹고 부른 배를 만지듯 눈꺼풀을 조금 비비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게실로 향해서 커피를 두
잔 사서 나에게 캔 하나를 건넸다.
"그래. 결정했어?"
"응."
"답은 뭐야?"
"네 말을 신중하게 생각해 봤어. 그래. 어쩌면 내가 갖은 운명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되는 능
력일 수도 있어. 하지만 역시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아니.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아. 나는
제대로 살고 싶어. 반칙은 그만두고 싶어."
"반칙이라..."
그녀는 피식 웃었다. 전학 오던 첫날 이후 처음 보는 웃음이다.
"그래. 그렇게 결정했구나. 나는 네 의견을 존중해. 좋아. 내가 널 그 굴레에서 건져줄게."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런데... 수술 같은걸 해야 되는 거야? 아니면 주술 같은 것?"
"무슨 말이야?"
"어떤 방법으로 내 능력을 없앤다는 거지?"
"걱정 마. 주문 한번만 외우면 끝이니까. 아브라 카다브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미간에 검지를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 자세로 우리 둘 다 잠시 멈춰 있었다. 나
는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느끼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와 미간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하하하..."
갑자기 그녀가 웃기 시작했다. 장난. 장난이었구나. 나도 갑자기 긴장이 풀려 피식 웃고 말았다.
"설마 이걸로 끝은 아니겠지?"
"내일 학교 뒷동산으로 올라와. 오늘과 같은 시간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역사 코너로 사라졌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 학교 뒷산을 올랐다. 길이 험하지는 않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가자 땀을 좀 흘렸다. 하
지만 금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시내의 정경을 지치지도 않고 바라봤다. 내 능력은 오늘로 끝이구
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속 시간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나는 거기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했
다. 조금 뒤에 밑에서 그녀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도 땀을 조금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곧 바람이
불었고 그녀도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산 아래를 쳐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루'를 잃어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거야?"
그녀가 물었다.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야지. 이제 기회는 한번 뿐이니까."
"그래.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 없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어."
"뭔데?"
"너랑 내가 처음으로 대화 하던 날 너는 나에게 '너는 이틀 이구나'라고 말했어. 너는 네 입으로 너와 내
가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다고 말했어. 나는 나 같은 능력이란 당연히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이라고만 생각
했어.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너는 정확하게 나처럼 하루를 두 번 반복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너의 정체
는 뭐지?"
그녀의 눈매가 조금 날카로워 진 것을 느꼈다.
"전학 온 첫날 네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 봤어. 구토는 나도 읽어 봤어. 꽤 긴 책이지. 속독을 한다고 쳐
도 말이야. 다음날 넌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있었어. 넌 매번 책이 바뀌었지. 책뿐만이 아니야. 넌 전학 온
지 몇 일도 지나지 않아서 학교 도서관은 이용하지 않았어. 그 다음은 시립 도서관. 도립 도서관, 동네 서
점, 시내의 서점.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는 것 같았어. 도대체 하루가 몇 번이나 반복되면 교보문고의 모
든 책을 읽을 수 있는 거지?"
나는 빌딩 전채가 책으로 가득 찬 대형 서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까마득한 책들을 끝도 없이 읽어대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단 하루의 일이고 나에게도 이틀에 불과한 사건
이다. 그녀는 굳어져 있던 근육을 스트레칭 하듯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어 보였다.
"내가 책을 '매일' 읽는다고? 책은 그냥 취미 생활일 뿐이야. 내키는 날에는 읽는 거지. 책을 읽는 날보다
그렇지 않는 날이 더 많으니까. 보통 사람들처럼 말이야."
나는 그녀의 담담한 대답 속에 담겨 있는 압도적인 시간을 생각하며 아찔함을 느꼈다.
"네가 말했지? 우리들은 불치의 병에 걸린 것과 같다고. 맞아. 이 저주는 암과 같아. 걸리는 사람의 명확
한 기준도 알 수 없고 증상도 천차만별이지. 대부분의 경우 데자뷰쯤으로 끝나. 1~2초나 그보다 조금 더 짧
은 시간이 반복 되는 거지.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잔상 때문
에 기시감을 느끼는 거야. 증상이 심각 해 지면 너처럼 하루가 반복되고 이틀, 나흘, 8일 16일... 끝도 없
이 반복 되는 거지. 하루가 아니라 한 달 단위로 반복되는 사람도 있고 인생을 통째로 몇 번이나 사는 사람
도 있어. 보통 사람의 정신이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나는 마른 침만 삼키고 있었다.
"어쨌거나 공통점은, 증상은 시간-그래. 그런 것도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지날수록 심각해진다
는 것이지. 넌 특별한 케이스야. 너처럼 반복이 이틀에서 정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거든. 그게 내가 너에
게 접근한 이유지."
"뭐 때문이지? 나는 뭐 때문에 반복되는 날이 증식하지 않은 거지?"
"물론 내 나름대로 연구한 결론은 있어. 어쨌거나 나는 너를 수도 없이 연구할 수 있었으니까..."
"..."
"하지만 그 결론을 말해 줄 수는 없어. 왜 말해줄 수 없는지도 말해줄 수 없고."
나는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하지만 걱정 마. 거짓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너를 그 병에서 구원해 주겠다고 한 것도 사실이고 말이야.
자. 이제 마음에 준비는 끝난 건가?"
"... 그래."
사실 궁금한 것이 한없이 많았지만 나는 이곳에 뭔가를 시작하러 온 것이 아니라 끝내러 온 것이다. 게다
가 그녀는 나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 이외에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좋아. 그러면 이 바위 위에 올라서."
그녀는 자신의 옆에 있는 조금만 돌을 가리켰다.
"그 위에 올라서서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아."
나는 시키는 대로 바위 위에 올라서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었다. 얼마간 부동자세로 그렇
게 있으려니 마치 내 몸의 경계가 사라지고 바람의 일부가 된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야?"
"잠시만... 거의 다 됐어. 눈은 절대 뜨지 마."
그녀는 내 뒤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나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잠시만... 잠시만.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라고?"
"굿바이."
"뭐..."
갑자기 나는 엉덩이에 강렬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위에서 꼬꾸라지며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다시 눈을 감았다. 내가 기절했다가 깨어난 곳은
응급실이 이었다. 나는 뒷산 정상에서 굴러 떨어져 그대로 학교 개구멍을 통과해 교사 뒤편의 주차장에 쓰
러져 있었고 마침 지나가던 수위 아저씨가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가 완전히 뒤로 꺾이고 발목
과 정강이뼈에 금이 가고 갈비 두 대가 나갔으며 한쪽 어깨는 탈골하고 두개골에 까지 금이 갔지만 기적적
으로 뇌와 장기에는 이상이 없었다. 나는 근 한 달간 병원에 머물러야만 했다. 아래턱이 빠져서 며칠간은
말은커녕 밥도 유동식을 먹어야 했다. 부모님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가벼운 찰과상 한번 입은
적 없이 자랐던 아들이 갑자기 이렇게 처참한 몰골로 병원에 누워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몇 명인가 반 친
구들이 문병을 왔다.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화는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
는 더 이상 하루가 두 번씩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그 끔찍한 수술을 두 번씩 하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는 고통은 한번이면 족하다). 방법은 지독했지만 그녀는 나의 병을
치료한 것이다. 약속은 지켰다. 치료 방법을 묻지 않은 내 잘못이다. 물론 알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
이다. 한 달 만에 온몸에 깁스를 하고 교실에 나타나자 아이들은 내 몸에 들러붙은 석고 조각들에 열심히
글을 새겨줬다. 몰랐는데 내가 없는 동안 나는 학교에선 전설이 되어 있었다. 하얀색 깁스는 하루 만에 만
신창이가 되었다. 있는 듯 없는듯했던 내가 그렇게 주목 받기는 처음이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물론
학교에 그녀는 없었다. 친구들 말로는 내가 입원한 사이 전학을 가버렸다고 한다. 묘한 아이였는데 바람처
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렸다고 한다. 너무 짧은 만남이라 아쉽다고들 했다. 짧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
게는 말이다.
출처
웃대 - fut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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