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이 무죄로 풀려나는 모습을 보면서 참담한 마음을 느낍니다. 판사들의 권력은 정말 막강한 것이구나, 새삼스럽게 우리는 다시 깨닫습니다. 제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판사들의 절대 권력과 배심원 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2017년 1월부터 약 150군데 언론사를 상대로 불법, 허위 보도를 청구원인으로 하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소송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무척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소송 내내 가졌던 의구심은 저를 더 괴롭히고 있습니다.
복수의 언론사들 상대로 비슷비슷한 기사들을 바탕으로 싸우다 보니 (이하, A, B, C, D, E 언론사 등으로 칭하겠습니다.) 상대방의 주장들도 거의 대동소이하고 마찬가지로 우리 측의 주장도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의아한 것은 이런 것들입니다.
1. 보도 내용이 거의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A언론사에 대한 청구는 기각되고 B언론사에 대한 청구는 인용됩니다. 이 경우, A 언론사를 상대로는 제가 승소한 셈이고 B 언론사를 상대로는 제가 패소한 셈이지요. 다행히 제 경우에는 패소한 언론사를 상대로 항소하여 승소로 끝났지만 우리는 이러한 긴 소송의 진행 과정에 소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C 언론사와 D 언론사에 대한 배상액이 현저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C 언론사의 책임으로 400만 원을 인정하는 판결 대비 D 언론사에 대해서는 100만 원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기도 합니다. 완전, 판사 마음입니다. 제 사건의 경우 소액 사건이 많았던 터라 그 판결 이유를 적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것과는 별개로, 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손해배상 책임이 4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지, 일개 개인으로서는 그저 의아할 따름입니다.
3. 더 황당한 경우는 D 언론사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기각했던 ‘같은 판사’가 E 언론사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하는 경우입니다.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하는지 도무지 모를 일입니다.
4. 그리고, 가령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제 사건에 대해 전반적으로 높은 금액으로 손해배상액을 인정해주고 가령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제 사건에 대해 무척 인색한 편입니다. 이러다 보니 어떤 소송의 경우 오히려 소송 비용이 더 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차라리 잘 나온 판결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잘 못 나온 판결에 대해서는 조금 서운해 하고 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당연히 기나긴 소송 과정에서 모든 것을 다 그만 둘 생각을 수시로 했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사법 체계는 항소, 상고의 3심 제도를 두고 있어서 세 번 판단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세 번의 판단에서 모두 다 잘못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행 사법 체계입니다.
5. 그렇다면 차라리 ‘배심원 제도’를 두어서 공공의 상식에 부합하는, 판사 개인의 정의가 아닌 공공의 정의에 도달할 수 있는 제도를 취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판결 하나 나올 때마다 판사들의 신상이 오르내리는 상황은 사실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소송운(訴訟運)’이라는 말이 서초동 일대에서 공공연하게 떠도는 실정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말이 더 이상 나돌지 않는, 공명정대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서없이, 짧은 상식으로 말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