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사건을 황우석 교수 한명의 실수나 사기로 보는 시각은 그리 합당한 것 같지 않습니다.
X파일 이상호 기자가 7월말 검찰소환을 앞두고 '이것은 권-경-언 유착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x파일은 자본과의 전쟁'이라고 외쳤었지만..
황우석 신화 만들기와 정권 재창출 및 삼성 일가와의 연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네요.
폴리뉴스에서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는 황우석 기사가 마음에 와닿아 올립니다.
긴 글이니 알아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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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1]
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1]
스너피로 돈벼락 맞은 메디포스트, "과학은 시장에 진실했나?"
황우석 스캔들, 진실게임 그 뒤에 감춰진 진실은....(ⓒ 폴리뉴스)
-시리즈 기사 들어가기에 앞서--
2005년 4월24일 서울대학교(Seoul National University)의 머리글자 'SNU'와 강아지를 뜻하는 퍼피(puppy)의 뒷글자 'ppy'를 딴 황우석의 복제개 '스너피' 탄생으로 우리나라 축구팀이 월드컵 4강에 진입하던 때만큼 전 국민이 흥분하던 지난 8월(언론발표는 8월4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은 모 일간지주최 좌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황우석 교수가 복제 강아지 ‘스너피’를 세상에 소개하던 날,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한 업체가 개를 복제해보려고 7년간 1900만 달러를 쏟아 붓고도 아직 성공하지 못했는데 한국인들은 3년 만에 해냈다고 보도했다.
이 괴력의 비밀은 무엇인가? 황우석은 마술사? 2년 전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을 때 황 교수가 한국인의 ‘젓가락 문화’를 비결로 내세웠던 일은 이제 은근히 유명한 일화가 되어 있다. (중략) ... 지난 60년간 한국인의 삶을 바꿔놓은 주요 변화들은 민주주의와 빈곤 탈출이라는 두 개의 축에 연결되어 있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빈곤극복은 한국인 누구에게도 공짜로 온 선물이 아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60년 동안 수없이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엄청난 희생과 비용을 치르고서야 이뤄낸 성취이고 발전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큰 비용이 필요했는가?'"
백낙청 교수와 강만길 위원장은 그러면서 경제적 가치, 즉 자본이 한국적 문화와 민주주의 등 우리사회의 근본적인 가치들은 납치하는 '광적인 가치전도 현상'이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음을 경고했다.
그렇다. 지금 한국에선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한 자본(시장경제논리)이 정치와 언론 등 공적 영역들을 위협하고 있으며 정치가와 과학자가 시장근본주의의 시녀가 되기 위해 급급하다. 과거 군사정권이 민주주의를 담보로 부르짖은 성장주의가 이젠 '시장 논리'로 그 얼굴을 바꾸어 또 다른 독재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올 한해 전국을 요동치게 했던 구 안기부 X파일의 대화내용을 통해 자본과 정권의 검은 물밑 거래를 목격했지만 또 다른 빅 이슈에 덮혀 곧 그러한 기억을 잊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세계 과학사상 전무후무한 '스캔들' 앞에 서있다. '황우석 쓰나미'란 혼돈 앞에 서 있다. 아마도 거함 '황우석 號'는 침몰할지도 모른다. '윤리냐? 과학이냐?'를 따지던 논쟁은 이제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유무를 넘어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라는 진실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황교수는 '파멸'이냐 '회생'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이 속에서 당사자들과 언론은 갖가지 담론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진실'은 담론이 많아질 수록 더 더욱 멀어지는 느낌이고, 이젠 과연 이번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거짓말 논쟁으로 치장된 '황우석 스캔들' 뒤에는 '삼성'이란 거대자본의 힘과 '노무현 정권'이란 권력의 힘이 감춰져있다는 무서운 의혹의 눈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커져만가고 있다.
<폴리뉴스>는 이 시점에서 우리사회의 새로운 독재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자본과 시장근본주의란 시각에서 이 문제를 다시 보고자 한다. 현상은 보는 관점, 즉 '퍼스펙티브'(perspective)에 따라 새롭게 조명될 수도 있기에 <폴리뉴스>는 우리의 관점을 일반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자본독재의 가능성과 그 속에서 과연 시장은 진실한가?라는 문제, 즉 '과학과 정치', '과학과 자본'은 시장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추하게 변해가는 가를 추적하고자 한다. <폴리 뉴스>는 앞으로 5차례에 걸쳐 실을 연재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황우석 쓰나미에 대한 국민의 시각의 폭을 넓혀보고자하는 소박한 소망을 담았다.
<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글을 싣는 차례>
1편.
스너피로 돈벼락 맞은 메디포스트, "과학은 시장에 진실했나?"
-황우석에서 노성일로, 양윤선으로, 메디포스트로 보광창투로, 다음은?-
2편.
"과학은 권력의 시녀인가? 과학은 자본의 시종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황우석과 청와대 對 황우석과 삼성-
3편.
"언론에게 성역은 없나? 아니면 , 자본에겐 견제가 필요 없나?"
MBC와 삼성, PD수첩과 황우석
4편.
"신화는 짧고 자본은 길다, 공은 자본가에게로 과는 과학으로"
-황우석 공황이 제2의 벤처붕괴로 이어져선 안된다.-
5편.
그래도 꿈은 계속되야 한다. BT코리아 여기서 주저앉을 순 없다.
-죄 없는 자만이 이 남자에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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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스너피로 돈벼락 맞은 메디포스트, "과학은 시장에 진실했나?"
-황우석에서 노성일로, 양윤선으로, 메디포스트로 보광창투로, 다음은?-
인맥의 달인 황우석 곁을 하나 둘 씩 떠나는 '황의 사람들', 그 원인은?
“한국은 동물 복제와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우주의 중심입니다.”
황우석 교수와 결별을 선언했던 미국 피츠버그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가 지난 8월 3일 서울대 수의대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복제개 스너피 탄생’ 기자회견에서 황 교수의 손을 잡고 밝힌 소감이었다.
그러나 새튼 교수는 이로부터 불과 100여일만에 황 교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황 교수 팀의 김선종 연구원은 등을 돌렸고, 황 교수의 협력자였던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은 '줄기세포에 오염사고가 발생했었다'는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정면 반박하며 아예 황 교수의 등에 칼을 꽂고 있다. 또 노성일 이사장만이 아니라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도 떠났다. 황 교수와 도원결의팀은 해체되었다.
이와 함께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 등 황 교수를 거물로 키우는데 일조한 사람들은 정치권과 언론으로부터 사퇴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황교수를 지지했던 '황금박쥐'팀도 이미 황우석과는 결별하는 모양새다.
황 교수에 대한 지지층도 아직은 적지 않지만 사회 곳곳에 포진해 황 교수를 지켜 주던 그의 '실제 인맥'은 시간이 갈수록 줄면서 '혹시 황 교수와 인연이 거론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실정이라, 황 교수가 줄기세포를 재검증 받는다 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전폭적 지지는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황우석연구팀을 조사하는 서울대는 '피의자 신분'과 같은 고강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황우석을 보호해왔던 서울대에서도 이미 그 보호막을 거두고 '황우석 최후의 시나리오'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있다.
보통, 사람이 좋으면 망해도 주변에서 도와준다는 것이 정설이라면 황 교수 사람들의 태도는 너무나 비상식적이다.
특히 황 교수 사람들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최근 노 이사장과 함께 성체세포 공동연구를 선언한 메디포스트 양윤선 대표가 불과 4개월전에 모 경제지에 실었던 '황 교수의 사람됨에 대한 극찬'이란 에세이만 보더라도 황우석 사람들이 돌변한 태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대학원 의학과 출신인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는 이 신문 에세이에서 의사직을 그만두고 비지니스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집단과의 교류와 경험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한 후 '실력은 기본이지만, 실력이 있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성공요소 중 인맥관리의 중요성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라면서 '사실 성공한 인맥관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배려로부터 시작되며 이 사람을 '인맥의 달인(Networking connector)'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양 대표는 이어 이러한 인맥의 달인으로 황우석 박사를 거론하면서 "첫 만남부터 환한 미소와 따뜻한 격려의 말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그 이후에도 잊지 않고 챙겨주는 관심과 배려는 그분과의 진심어린 교류를 원하게 했다. 게다가 연구활동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능력과 성실함은 상대방에게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얼마전 과학자에 대한 개인 후원회로는 처음으로 '황우석 후원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각계의 저명인사들을 보면서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발이 넓다'는 세속적인 의미가 아닌 진정한 인맥의 달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까"라며 극찬했다.
양 대표의 표현대로 황 교수가 인맥의 진정한 달인이라면 최근 벌어지는 '황의 사람들'의 행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황 교수가 여러차례 주장한 '음모론'의 실체를 전혀 부정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줄기세포와 논문 조작 의혹, 급기야 스너피, 2004년 논문으로까지 확대되고...
- 황우석 연구는 사상누각이었나?
황우석은 진실한가... 과학의 진실인가? 자본의 힘인가?(ⓒ 폴리뉴스)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의혹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허물어지는 그의 인맥의 헛점외에도 황교수가 그동안 거둔 눈부신 연구 성과가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이공계 연구자 커뮤니티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와 한국과학기술인연합 등은 19일 2005년도 사이언스 논문 조작여부에 대한 서울대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같은 저널의 2004년 논문과 복제개 스너피 등 황 교수의 이전 연구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2004년 논문은 2005년 연구와 마찬가지로 일정상 줄기세포를 너무 빠른 시간에 기른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황 교수팀은 200년 논문을 2003년 12월9일 사이언스측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 교수는 한편 2004년 6월7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2003년 (가을) 예기치 않는 실험실 정전으로 줄기세포의 전단계인 세포덩어리(콜론)이 2개만 남고 모두 죽어버렸다"고 밝혔다.
황 교수의 말에 따른다면 연구팀은 그해 가을 콜론 2개만 남은 상태에서 12월까지 줄기세포주의 수립을 마친 뒤 논문을 제출한 것이 된다. 체세포를 복제해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까지 통상 4∼5개월이 걸리는데 비하면 급속도로 세포주 수립을 끝낸 것이다.
황 교수는 2005년도 논문에서도 오염사고로 줄기세포주 2개를 제외한 모든 세포를 잃은 뒤 2개월 가량의 짧은 기간에 6개 라인을 더 만들어 논문을 냈다고 말한 바 있다. 황 교수와 공동 저자였던 노성일 이사장은 이와 관련 2005년 논문이 사이언스에 나오기 전에 논문을 구경한 적도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게다가 2004년 논문의 줄기세포 사진이 같은 해 11월 김선종 연구원 등 미즈메디 병원 연구팀이 스템셀(Stemcells) 지에 낸 논문의 사진과 동일하다는 지적도 나와 논문에 대한 의혹이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세계 최초의 체세포 복제개로 관심을 모았던 스너피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발견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도들은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관련 논문이 보고서 형태로 지나치게 단순하고 검증 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BRIC의 한 회원은 "체세포 공여 개와 스너피간의 DNA가 일치한다는 자료도 논문에는 DNA 핑거프린트가 아니라 단순한 도표(table)만 있다"며 "이 정도 자료만 제시한다면 논문의 신뢰성에 확신을 갖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가 최초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계기인 복제 젖소 `영롱이'는 아예 해당 연구결과를 따져볼 수 있는 논문 자체가 없다. 황 교수측은 논문은 준비했지만 이미 유사한 내용이 발표가 된 상황이라 게재 계획을 취소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영롱이가 99년 탄생한 이래 별다른 병치례 없이 자라 새끼까지 낳았다는 사실은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는 대목. 복제 동물은 일반 개체보다 허약해 수명이 짧고 생식 능력을 못가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황 교수의 연구 의혹을 취재하던 MBC PD수첩 측은 영롱이와 체세포 제공 소와의 DNA 일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황 교수팀으로부터 샘플을 확보했으나 자체 검사 결과가 `DNA 판독 불가'로 나와 더 이상의 검증을 하지 못했다.
황 교수의 또 다른 복제소인 한우 `진이'도 영롱이처럼 관련 논문이 발표된 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충분한 검증없이 영롱이와 스너피를 서둘러 발표했고, 언론은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했나?
- 무비판적 '애국주의'는 누가 불질렀나?
황우석 사태를 장기간 취재해온 강양구 프레시안 기자는 19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밝혀야할 문제는 '논문조작 유무가 아니라 논문조작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이라면서 "황우석 교수가 확보하고 있다는 5개의 줄기세포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DNA 지문분석 같은 검증을 통해서 실제로 그것이 환자맞춤형 줄기세포인지, 아니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미즈메디 병원에서 온 수정란 줄기세포인지에 대해서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황우석 교수의 이전 연구성과들, 즉 2004년도 사이언스에 발표한 줄기세포 연구성과라든가 아니면 스너피와 같은 복제동물과 관련된 연구성과들에 대한 조사도 조사위원회에서 철저하게 검증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 기자는 특히 2004년도 논문과 관련해 "국내가 아니라 국외에서 먼저 의혹이 제기됐다. 2004년도 논문에 있던 데이터들을 살펴본 결과, DNA 지문분석 같은 것이 어떤 인위적인 조작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이 외국 과학계의 주장이며 거기에 대해서 국내 과학계도 이상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며 "공교롭게도 2005년도 줄기세포도 불과 2~3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개의 줄기세포가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2004년도 즐기세포도 거의 비슷한 기간 동안에,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수립된 사실이 다시 확인이 됐기 때문에 2005년도 줄기세포가 문제가 있다면 2004년도 줄기세포도 문제가 있는 것"이란 의혹을 주장했다.
강 기자는 그러면서 "우리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의심을 했지만 과학인들은 의심을 받는 상황은 없었다"면서 "그런데 황우석 교수의 이번 사태로 과학자들조차도 큰 기만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 됐으며 그 원인을 우리 사회에 팽배한 애국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점은 '국민의 애국심에 불을 지르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를 속일 매카니즘을 누가 작동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확산의 매카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는 힘은 황우석 개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것만으로는 이러한 황우석 담론의 전 지구적 확산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는 황 교수가 왜 줄기세포 관련 논문 발표를 서둘렀고 영롱이와 스너피의 탄생 역시 급박하게 이뤄졌는지, 그리고 이러한 성과들이 별다른 검증절차없이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확대 재생산되면서 진실로 무조건 수용됐는지에 대한 냉정한 비판을 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를 장식했던 '스너피'로 득을 본 사람들은 누구인가?
노성일의 진실은 무엇인가?(ⓒ 폴리뉴스)
이렇게 '한방'에 쉽게 무너져버릴 검증되지 않는 연구성과들이 왜 그토록 빠른 시간안에 마치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 것처럼 대중에게 전달되었을까?
이를 위해선 먼저 줄기세포와 스너피로 이득을 본 사람들, 즉 황우석의 연구 성과물에 얽혀있는 사람들의 하나 둘씩 분석할 필요가 있다.
<폴리뉴스>는 이러한 황우석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보다 명료하게 하기 위해 황 교수의 성과물 가운데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 메카니즘을 가장 크게 장식했던 복제개 '스너피'에 촛점을 맞춰 보았다.
스너피 탄생으로 황 교수에 이어 큰 명예라는 득을 본 사람들은 3년 동안 황 교수와 함께 연구실에서 비지땀을 흘린 `개팀` 7명이며 황 교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이병천 교수(40)였다. 이 교수는 스너피 탄생의 엠바고가 풀린 8월 4일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에도 제1 저자로 등재됐다.
이 교수는 연구원들이 합심해 2년 넘게 하루 일정을 완전히 개에게 맞추었기에 복제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연구를 시작한 2002년 8월부터 발정기에 이른 개에게서 난자를 얻기 위해 새벽이건 한 밤중이건 언제나 달려나갔다며 스너피 탄생 당시를 회고했다.
난자 채취 일인자 김민규 박사(36), 소이식 대가 장구 연구원(30), 스너피 건강 상태 점검 등을 전담한 오현주 연구원(28),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 온 유다 연구원(36)과 방글라데시에서 유학온 샤밈(29)도 스너피로 명예를 얻었다.
물론 제럴드 새튼 피츠버그의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실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연구기획과 기술적 자문 그리고 논문 작성 등에 큰 몫을 했다. 섀튼 교수는 2005년 5월 사이언스 논문말고도 스너피 논문에도 기여했다. 스너피는 올해 사이언스 논문 발표 전인 4월24일에 태어났지만, 엠바고에 걸려 8월4일에야 언론에 발표했다. 태어난지 102일만에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백일잔치'를 했다. 황 교수는 4월 스너피를 탄생시켜놓고 이어 바로 5월에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했다.
황 교수 팀을 제외하면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공도 빼놓을수 없다. 미즈메디 병원의 노성일 이사장은 돈과 명예를 함께 얻었다.
그러나 이같은 '스너피 탄생'의 가장 최대 수혜자는 정작 다른 곳에 있었다. 전 세계 언론이 요란하게 스너피의 탄생을 축하하는 사이 코스닥시장에서 우리나라 BT산업의 주가의 한껏 뛰었고, 이 가운데 '스너피 탄생'을 전후해 코스닥에 등록한 제대혈(탯줄혈액) 보관 및 줄기세포 연구개발 업체인 '메디포스트'는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업체 양윤선 대표가 이 시기를 전후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성공하기위해) 실력은 기본이지만, 실력이 있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성공요소 중 인맥관리의 중요성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라면 황우석 교수를 '인맥의 달인(Networking connector)'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 양 대표는 메디포스트 주식 40여만주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회사 설립당시 액면가(500원)로 2억원어치 주식이 스너피 덕에 300억으로 불어나면서 무려 298억원을 계산상 벌어들인 셈이다. 주식 대박을 터트린 양윤선 대표가 '실력은 기본, 인맥은 그 이상'이라고 표현하며 황 교수를 거논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연구성과가 단순한 과학적 실력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가 존재함을 은연중에 밝힌 것이다.
메디포스트의 코스닥 행보 수상? 8월4일 '스너피' 발표로 5일 연속상한가
- 이후 활발한 거래의 결정적 원인
황우석 교수의 역작인 줄기세포 관련 업체로 국내 최초로 증시 상장을 추진한 메디포스트의 행보를 추적하는 것은 황우석 사태를 보는 지평을 넓힐수 있는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제대혈(탯줄혈액) 보관 및 줄기세포 연구 업체인 메디포스트가 코스닥위원회에 상장심사를 신청한 것은 3월 7일, 그때까지 코스닥에서 줄기세포 관련 '테마주'를 형성했던 업체들은 모두 줄기세포치료제 연구 기업의 지분을 일부 소유한 회사들일뿐 줄기세포 전문 연구개발 업체는 아니었다.
이어 메디포스트는 장외 시장에서 황우석 교수의 논문 발표 등 잇따른 호재로 주가를 올리면서 7월 중순부터 코스닥 등록을 위한 공모주 청약에 나서는데, 무려 2조원이 넘는 돈이 메디포스트에 몰리면서 7월 21일 메디포스트의 상장 주간사인 대우증권은 27만4천5백주를 공모하는 데 2억2천3백60만주가 청약돼 평균 경쟁률이 814대 1을 기록했고, 교보증권은 1105대 1을 기록했다. 올들어 코스닥시장에서 공모 청약금이 2조원을 넘은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7월 29일 상장 예정이던 메디포스트의 공모가는 주당 1만8천원(액면가 500원)이었는데 이때 벌써 장외시장에서는 5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상장일 시초가는 공모가의 90~200%선에서 결정되기에(메디포스트는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였다) 최대 상승폭인 3만6천원에 거래를 시작해 상장 첫날 상한가(15%·5,400원)로 거래를 마친다 해도 종가가 4만1천4백원에 불과해 장외시장 가격을 밑돌게 되기 때문에 코스닥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기 위해서는 주가가 6만원 이상에 올라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장과 함께 연속 상한가 행진이 절실한 실정이었다.
이때 이미 장외시장에서는 메디포스트의 상한가 행진에 호재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8월 4일에 공교롭게도 황우석 교수팀이 복제 개 '스너피'탄생을 공식 발표했고 이어 5일 매디포스트는 5일 연속 상한가로 최고점에 올랐다.
5인 연속 상한가보다 메디포스트에게 더 기회는 활발한 거래가 이뤄질수 있는 시장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대주주들이 주식을 내다팔아도 시장이 받아들일 여건이 조성됐다는 것은 초기 투자자에게 어떻게 보면 상한가 행진보다 더 반가운 일이다. 주식이 오른다해도 이를 소화시킬 구매자가 없으면 거래가 어렵지만 '스너피'열풍을 개미군단을 메디포스트와 BT관련 테마주식으로 대거 몰리게 하면서 주식을 내놓는 족족 소화시킬 수 있었다.
때문에 만약 스너피가 메디포스트와 관련 있다면 스너피 발표 시점을 메디포스트의 상한가 최고점과 거의 일치시킴으로써 이후 주식의 원활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한 고도의 주식 전문가의 계산이며, 우연으로 돌린다면 메디포스트가 수천개 기업가운데 우연히 '신의 축복을 받은' 단 하나의 업체란 확률적 계산이 가능하다.
이후 코스닥에서 상장 첫날 시초가가 공모가의 2배가 된 후 5일 연속 상한가 행진을 한 업체로 메디포스트에 이어 두울산업이 나타났지만 이 업체는 공모가가 1600원에 불과했고 이후 거래 시장에서 메디포스트와 같은 탄력을 받진 못했다.
이후 치밀한 치고 빠지기 전략, 보광창투- 메디포스트 하나로만 수백억원 벌어
그런데 매디포스트 주식은 등록후 한달만인 8월 29일 별다른 악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장 마감 기준으로 5일 최고가 하한가를 기록했다. 스너피 발표 직후인 8월 5일 최고가에서 무려 51.4%나 주가가 하락했다.
이날 바이오주의 전반적 하락세가 나타났지만 메디포스트는 코스닥시장에서 그 전 주말보다 14.95%(6800원)급락한 3만8700원을 기록, 하한가로 장을 마쳤다. 왜 그랬을까? 메디포스트의 약세는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의 보호예수 물량이 해제되면서 물량부담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이날 매디포스트의 기관보호예수 물량 45만여주(9.97%)가 해제됐고, 이와 함께 벤처금융(창업투자회사) 물량 22만여주(4.90%)와 직원주주 보유분 4만주(0.87%)도 이날부터 매매가 됐다. 즉 한꺼번에 발행주식의 15%의 물량이 풀린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양 대표와 함께 최대 주주인 보광창업투자가 메디포스트 주식 5만2000주(1.13%)를 17일부터 22일까지 장내에서 매도, 지분율을 5.92%에서 4.79%로 줄였다. 주식을 보유했더라면 29일부터 쏟아진 보호예수 물량 해제로 상대적 손해를 입을 상황이었다. 보광창투는 이밖에도 치고 빠지기 전략, 즉 주가가 올랐을때 팔고 내렸을 때 사는 전략으로 8월 한달동안만 18만여주를 장내 매각해 12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대표이사로 주식이 올라도 거래에 제한이 있었는 양은선 대표보다 실질적 돈 벼락은 투자자이자 대주주인 보광창투가 맞은 셈이다.
보광창투는 누구인가?... 홍석현 가문 '메디포스트' 최대주주
그렇다면 복재 개 '스너피'의 금전적 최대 수혜자인 보광창투는 누구의 소유인가?
보광창투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의 동생인 홍석규, 홍석준,홍석조, 홍라영씨가 61.81% 지분을 소유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척인 홍씨 가문의 회사'로 보광그룹의 투자회사다. 보광그룹의 최대주주는 홍석현 전 주미대사다.
보광창투는 2000년 6월 제대혈 관련회사로 메디포스트가 설립된 이후 초창기에 주당 2500원으로 40만주(8.74%)를 10억원에 인수했다. 보광그룹이 메디포스트의 최대 주주가 된 것이다.
그런데 보광이 2500원에 산 메디포스트 주식이 코스닥 상장후 한때 주당 8만2300원에 올라갔으니 가히 황우석 교수와 스너피에게 엎드려 절을 해도 시원치 않을 '대박'이었다.
물론 지금은 황우석 악재로 주가가 폭락했지만 이미 초기에 수백억원의 수익을 올린 상황이고 보면 초기 투자금 10억원을 모두 회수하고나더라도 수백원이 그냥 굴러들어온 것이며 황우석은 적어도 주식시장에서는 더 이상의 상품가치가 없는 셈이다.
때문에 메디포스트는 지난1 12월14일 발 빠르게 황우석 교수를 정면에서 비난한 미즈메디 병원 노성일 이사장과 손을 잡고 노 이사장이 가진 배아줄기세포 기술(노 이사장은 배아줄기세포 특허의 40%지분을 가지고 있음)에 성체줄기세포를 결합한 '복합 줄기세포 연구'에 1000억원을 공동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황 교수 카드를 버림으로써 황 교수로 인한 재산상 손실을 이 정도에서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
황 교수를 인맥의 달인이라고 극찬했던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는 “노 이사장과 적어도 1년 전부터 공동연구소 설립을 상의해 왔다”며 “노 이사장은 판교에 산부인과를 짓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생명공학산업도 클러스터 형식으로 한데 모여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힘으로써 황 교수와의 결별을 예고하고 있다.
때문에 일부 네티즌들은 미즈메디병원이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2002년부터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황 교수와의 결별과 관련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미즈메디병원은 NIH로부터 2007년까지 모두 133만4590달러(16억여원)의 연구비를 지급받을 계획이다.
황우석 혼자힘으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프로젝트, 배후엔 누가 있었나?
때문에 황우석 교수가 스너피와 배아복제 줄기세포로 스타가 됐지만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황 교수 혼자 진행할 수 없었던 거대한 '몸통'이 있는 것이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는 '스너피' 탄생 이후 전세계 언론이 별다른 이의 제기나 검증 없이 이를 대서특필한 점에서도 발견된다.
스너피 탄생 직후 뉴욕타임즈 인터넷 판은 '2002년 세계 최초 고양이 복제에 성공했던 마크 웨서신 미국 텍사스 A&M대학 박사가 개 복제를 몇 년동안 시도한 끝에 포기했다'며 "개는 복제 생물학계의 악몽"이라는 말로 개 복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웨서신 박사의 고양이,개 복제 연구를 지원해 온 캘리포니아 소재 생명공학회사 제네틱 세이빙스 앤드 클론의 로우 호손 회장은 개 복제를 위해 7년 동안 1천900만달러 이상을 투입했으나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반 고객의 주문을 받고 5만 달러에 고양이를 복제해 준 바 있는 제네틱 세이빙스 앤드 클론은 "우리의 획기적인 성과를 능가할 연구진이 있다면 황우석 교수팀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황 교수팀은 연구능력이 뛰어나고 한국에서는 개 대리모와 난자를 구하기가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개 복제를 의뢰받고 거절했었다는 콜로라도 주립대의 조지 사이델 박사는 한국의 성과에 대해 "정말 영웅적인 결과"라고 칭송했다.
ABC뉴스 인터넷 판은 미국복제의학협회의 로버트 쉔켄 회장이 "현재 진행되는 연구의 기초적 기술을 이용한 치료법 개발은 매우 전망이 밝다"고 밝혔으나 "이번 논문은 다른 종들처럼 재생산 목적의 개 복제는 불안정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연구 결과의 한계를 설명했다고 전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켰던 영국 에든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의 이언 윌머트 박사는 한국의 연구성과를 축하하며 한국연구진이 신선하고 질높은 난자를 실험에 이용할 수 있었던 점이 개 복제 성공에 기여했다고 평했다.
이처럼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실을 세계 언론의 찬양가가 외신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진 과정 역시 세계 언론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종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또 '삼성'인가?
'황우석-노성일-양윤선-보광창투-홍석현家-삼성 이건희家' 등 얽히고 설킨 인연을 풀면 해답 보일까?
때문에 스너피의 탄생을 검증없는 발빠르게 진행시켜야 했던 황 교수팀과 이를 통해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연구성과를 마치 전 지구적의 축제인 양 확대재생산한 커뮤니케이션 장악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 단순한 재검증 논란을 떠난 이 사건의 본질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기에, 필자는 '인맥의 달인'이란 황 교수의 사람들을 풀어봄으로써 전체적 윤곽을 잡아보고자 한다.
먼저 황 교수의 동지에서 최대의 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변신을 한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은 누구인가?
노 이사장은 연세대 의대 출신으로 1991년 미즈메디 병원을 설립했는데, 그는 삼성과 함께 삼성제일병원을 공동창업한 故 노경병 전 대한병원협회 회장의 장남이다. 노 이사장의 선친인 고 노경병 회장은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형 이동희 박사와 산부인과 전문병원 '제일병원'을 공동창업했고, 이 제일병원이 현재 삼성제일병원으로 발전했다. 노성일 이사장은 제일병원(삼성제일병원 전신)에서 산부인과 과장을 했다. 따라서 미즈메디는 삼성의 인맥으로 볼 수 있고, 그 중에서도 굳이 따지면 홍석현 전 주미대사보다는 이건희 현 회장에게 더 가깝다.
다음은 메디포스트이다. 양대 주주인 양윤선 대표와 보광창투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홍석현 전 주미대사이자 전 중앙일보 회장, 그리고 전 세계신문협회 회장의 동생들이 대주주로 삼성 인맥, 그 중에서도 삼성 외척인 홍라희 가문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성과와 스너피가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는데 홍씨 가문의 역할론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수 있는 것도 국내외 언론계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홍석현 전 세계신문협회 회장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디포스트 양윤선 대표는 1964년 서울출생으로 서울대학교대학원 의학과를 수석졸업한 미모의 소유자로 서울대병원 임상병리과 에서 전공의를 거친 후 1995년부터 2년간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병리과 전문의로 근무하다가 2000년 메디포스트를 설립하는데, 역시 삼성병원 출신이기에 넓게는 삼성인맥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메디포스트 설립 초창기에 보광창투가 액면가 500원 주식을 2500원에 40만주 매입한 것을 놓고 보면, 윤 대표는 보광창투와도 인연이 깊어 삼성의 외척인맥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또 황 교수팀의 안규리 교수가 양 대표의 서울대학교 의학과 선배인 점을 감안하면 양 대표는 황우석 교수와는 밀접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양 대표는 언론을 통해 CEO로써 자신의 이미지 부각과 함께 황우석 신화 만들기에 앞장서 왔는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황 교수에 대한 윤리문제가 제기됐을때 적극적으로 황 교수를 변호하기도 했다.
결국 '삼성'이 황우석 스캔들에서도 깊이 관련이 있다는 정황이 나온다. 황우석을 둘러싼 두 대형 병원이 모두 '삼성'이다. 삼성 이건희家의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과 홍석형 家의 보광과 삼성과 얽혀있는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가 '황우석 스캔들'과 직결되어 있다.
더구나 흥미로운 것은 메디포스트와 미즈메디의 공동연구소 설립 발표와 '줄기세포 없다'는 진위논란 대폭발, 그리고 2002년 대선자금 관련 이건희 무혐의 판정 시일이 완전 일치한다는 점이다.
미즈메디와 메디포스트가 줄기세포연구소 공동설립하기로 전격 발표한 날은 12월14일이다.
메디포스트는 성체줄기세포 연구 및 제대혈 업체로 처음에는 메디포스트의 성체줄기세포와 다른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황우석 연구팀과 미즈메디 연구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후 메디포스트가 황우석 연구팀과 동업을 선언하게 된다. 세인들은 놀랐고 그 배경에 의아해했다. 언론기사들은 '왜? 결합하냐'고 쓸 정도였다.
더 이상한 점은 노성일 이사장은 이 발표 다음날인 15일 '줄기세포 없다'는 폭탄선언으로 황 교수와 결별을 넘어선 황 교수 공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이날 메디포스트는 미즈메디 병원과 공동으로 복합 연구소를 추진한다며 황우석 파문에 영향없다며 노 이사장과 손잡는 것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황우석 연구를 반대하면서도 황우석을 극찬했고, 황우석을 극찬하면서도 황우석의 '적'이 된 노성일과 '공동합작' 사업을 당당히 펼치고 있다. 이중플레이를 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두 병원의 전격 결합한지 2틀후인 16일에는 황우석-노성일 진실게임 대폭발이 터졌고, 이 틈을 타고 바로 16일 삼성채권과 관련된 이건희, 이광재 등 삼성과 여권핵심실세가 모두 무혐의 확정판결을 받고 사건이 완전 종결되었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묘한 일치다. 이러한 이해안되는 정황때문에 황 교수는 거듭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노성일 이사장은 처음엔 메디포스트와 공동사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황우석 교수가 안규리 교수와 메디포스트와 공동사업을 시작하면서 황우석과 나와 관계가 소원했다'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3년간 황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노 이사장은 황 교수와는 벌써부터 사업적으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따라서 노 이사장이 윤리문제 파문이 터질때까지만(11월초. 11월12일 섀튼결별 선언) 해도 황우석 두둔(기자회견에서 난자보상금 실토)하다가 12월 들어서면서 진위문제로 의혹이 점차 더 커진 시점에서 황교수를 겨냥한 폭탄선언을 하고 동시에 메디포스트와 전면 동업관계를 맺는 이중플레이를 했다. 때문에 '노성일 음모설'도 만만치 않다. 노성일과 양윤선은 모두 이중플레이를 해온 정황들이 보인다.
현재 상황은 노성일-김선종 등 미즈메디파가 '황우석 교수를 사기꾼으로 모는'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데, 이 두사람의 증언의 진실을 가리는 것과 함께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위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류 모씨'가 미즈메디와 인연이 있는지도 살펴봐야 할 점이다.
이와 함께 처음에 도원결의했던 황우석-노성일-문신용의 사이도 지금은 찢어져 문신용도 反 황우석으로 돌아섰는데, 이 역시 안규리 교수가 팀에 들어오면서 문신용이 상대적 소외감을 당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스너피와 줄기세포 논문을 서둘러 발표할 수 밖에 없었던 황 교수의 절박함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 와중에 황 교수의 사람들이 당시만 해도 국민적 영웅으로 최대의 상품가치를 가진 황우석을 놓고 벌인 게임의 원칙은 무엇이었는지는 기술뿐만 아니라 '인맥의 달인' 황우석의 사람들을 추적하는 작업속에서 실체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전개될 황우석 사태 역시 단순한 줄기세포의 존재 유무나 논문의 거짓말 여부를 증명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황 교수의 사람들이 지금같이 다양하게 내놓은 '말'과 '글','행동'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그러한 상황에서 왜 그러한 말과 행동을 취했는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분석하고 그러한 개인적 상황들이 전체 매카니즘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 국민과 역사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지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 2편 ; "과학은 권력의 시녀인가? 과학은 자본의 시종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황우석과 청와대 對 황우석과 삼성-이 계속됩니다.>
오준화 기자 (폴리뉴스/(구)e윈컴정치뉴스)
기사입력시간: 2005-12-19/21:33:58
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2]
황우석과 청와대 對 황우석과 삼성
2004년 6월18일 노대통령은 황 교수에게 최고과학상인 '창조장'을 수여한다.
<< 들어가기 전에....>>
- 거부 임상옥을 구한 '청동솥(정 鼎)의 세 다리(지위, 돈, 명예)에서 과학자 황우석을 망친 권력, 자본, 학문을 생각하며 -
<< 작가 최인호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에서 상인 임상옥은 풍운아 홍경래로부터 혁명에 동참하라는 우회적 협박을 받은 후 난감해 하던 중 그의 정신적 스승인 석송스님이 이 고민을 풀 수 있는 단서로 준 '정(鼎)이란 글자의 의미를 캐내기 위해 추사 김정희에게 답을 구한다. 이에 추사는 <사기>의 초세가(楚世家)에 나오는 구정(九鼎, 고대 순나라 임금 우때 주조되었다고 전해내려오는 거대한 솥으로 천자의 덕을 상징하는 보물로 하.은나라를 거쳐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천자가 계승해오는 물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춘추시대때 초나라 장왕이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의 왕위를 노리고 주의 신하 왕손만에게 구정(九鼎)의 무게를 묻는데, 이는 곧 언제든 제위의 상징이기도 한 구정을 차지하여(즉 주를 치고) 천자의 자리에 앉아보겠다는 속셈의 표현이자 협박이었다. 이를 간파한 왕손만은 '정의 크기와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중요한 것은 정의 무게나 크기가 아니라 덕(德)의 크기와 무게에 있다"고 현답을 하였고, 이후 초 장왕은 천하제패의 꿈을 접고 성군이 되었다는 일화다'
임상옥은 이후 자신에게 찾아 온 풍운아 홍경래가 혁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자, 대답 대신 방에 놓인 다리가 세개 달린 청동솥(즉, 정(鼎)을 들어 가져가게 한다. 그러나 홍경래가 솥을 들자마자 '솥의 다리가 부러지고 만다. 임상옥이 세 다리 중 하나를 미리 부러뜨려 놓은 것이다. 임상옥은 세 다리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세가지 '욕망', 즉 지위(권력)과 '재물'과 '명예'이며 자신은 세가지 가운데 하나인 재물을 이미 가지고 있기에 다른 두 다리, 즉 지위(권력)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임상옥은 홍경래 난에 가담해 일족이 몰살하는 화를 면할 수 있었고 이후 재물과 함께 자신의 분수에 맞는 벼슬(작은 명예)도 가질 수 있었다. >>
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1] 스너피로 돈벼락 맞은 메디포스트, "과학은 시장에 진실했나?"
황우석 스캔들 뒤집어보기 시리즈 [3] MBC와 삼성, PD수첩과 황우석
2편 ; "과학은 권력의 시녀인가? 과학은 자본의 시종인가? 아니면?
-황우석과 청와대 對 황우석과 삼성-
<폴리뉴스>는 황우석 사태의 혼란과 담론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불만족스럽더라도 이번 사태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규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시리즈 1편에서 화두로 던졌다.
이제 2편에서 우리는 이러한 관계자들의 세력 관계를 규정하는 중심적이고 핵심적인 '힘'에 주목하고자 한다. 23일 황우석 스캔들에 대한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로는 '황우석 논문은 2개의 줄기세포로 11개로 조작된 '가짜''로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황우석 스캔들은 '국가적 위기'이다.
세계를 사기친 과학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한다면, 과연 황우석 스캔들이 과연 황교수 개인이 저지를 일이었겠느냐는 것이 <폴리뉴스>의 고민은 시작된다. 세계 유력 사이언스에 논문을 '조작'까지해서 실을 수 있는 힘이 시골 촌부의 아들인 황우석 개인이 가능한 일이 었을까? 세계줄기세포 허브의 창설을 황우석 힘만으로 했던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지금 대다수 언론과 정부는 황교수를 스타로 만드는데 앞장서더니 이제는 '황우석은 상종할 수 없는 사기꾼'으로 만들어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하고 있다. 대단한 '힘의 반전'이다. 그리고 심해도 너무 심한 전이현상이다. 그러나 당사자 황교수는 22일 검찰에 '줄기세포 바꿔치기' 수사를 공식 요청해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어떤 '힘'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치고있다.
<폴리뉴스>는 '한국 최고과학자 1호' 황우석이란 스타를 놓고 진행된 이번 게임의 작동원리인 '힘'을 재물의 道인 임상옥이 말했던 인간의 세 가지 원초적 욕망인 "지위(최고의 권력), 재물(최고의 자본), 명예(세계적 과학자)'로 규정하고 시리즈 2편을 풀어나가고자 한다.
'황우석 줄기세포 게임'에 참여한 선수들은 각각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움직였다는 관점, 즉 정치인은 권력의 파이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려 했고, 자본가는 돈을 더 차지하려 했고, 학자들은 명예를 더 차지하려 했다. 그리고 불행의 씨앗은 과학자가 돈과 권력까지 넘봤고, 재벌이 권력과 명예를 넘보려 했고, 정치인은 명예와 돈을 가지려 했다는 것, 즉 구정(九鼎)의 다리를 모두 가지려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폴리뉴스>의 시각이다.
<폴리뉴스>는 시리즈 2편을 통해 황우석이란 순진했던 계룡산 자락의 소 치던 견우 소년이 오로지 소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으로 평생을 '소'라는 한 분야의 연구에만 매달려 오면서 큰 학문적 업적과 명예를 일구게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돈과 권력과의 관계 혹은 유혹 속에서 어떻게 변해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과학과 권력, 자본이 어우러지는 이 복잡한 게임을 풀어나가는 또 하나의 퍼스펙티브를 제공하려 한다. 기사가 조금 장황하더라도 그리해보려고 한다. 독자들은 이해하고 보아주길 바란다.
계룡산 자락의 견우소년은 소 치며 키운 꿈으로 복제소 영롱이, 복제 한우 진이를 탄생시켰고...
요즈음 서울대의 조사결과를 황교수 만큼이나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황 교수의 고향인 충남 부여군 은산면 계룡산 자락의 주민들이다. 황 교수가 세계최초로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사시언스 논문이 실렸던 지난 5월 은산면 마을 주민들은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했다며 흥분으로 들뜬 분위기였다. 이날 이후로 인적이 뜸하던 은산면에는 주말과 휴일이면 황 교수의 생가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과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는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황우석 박사님 자랑스럽습니다’, ‘60억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며 한국을 빛내고 세계를 감동시킨 황우석 박사’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계룡산의 자랑 황 교수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 일쑤였다. 그는 이 가난한 계룡산 사람들에게 황 교수는 '살아있는 신'이었다. 그러나 6개월여가 지난 지금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영웅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황 교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지난 19일 <시사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 진위 논란의 중심에는 노성일(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씨가 있다”는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김씨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전제하고, “황 교수에 이어 2인자였던 노성일(이사장)이 황 교수를 밀어내고 줄기세포 연구성과를 독차지하기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민 것 같다”면서 “황 교수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것만 보더라도 음모설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는 특히 "윤현수 교수, 김선종 연구원 등 황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미즈메디 병원측 사람들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들 때문에 황 교수가 지금의 지경에 이르렀다”며“황 교수는 그런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김씨는 “(황 교수는) 아버지를 5살 때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착하고, 순박한 아이였다”고 술회했다.
김씨의 말대로 황우석은 1952년 이 계룡산 자락의 마을에서 편모슬하에 태어나 남의 소를 키워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얻는 '한우 소작'으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도와 드렸다. 황 교수의 어머니에게 소는 자식의 생계와 교육 밑천이었기에 자식과 같은 존재였고, 소년 황우석에겐 소는 형제와 같은 존재라 방과 후에도 친구와 놀기보다는 소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와 친해지며 소의 습성이나 성격을 배우는 것은 물론 소와의 대화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면서 소에 관한한 세계최고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늘 소와 함께 한 이 '견우소년'의 어릴적 경험은 소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이 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1999년 40대 후반에 복제소 영롱이와 복제한우 진이를 탄생시킬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됐다.
영롱이, 진이는 견우소년 '황우석' 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1999년 2월 세계 최초의 복제 소 '영롱이' 탄생
사람들은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이전에 있었던 황 교수의 모든 연구 실적을 모두 '거짓'이라고 몰며 의혹의 눈길을 던지기 시작했고 복제소 영롱이와 진이도 도마위에 올랐다.
'도 아니면 모'식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발동하고 있다. 황 교수가 대한민국을 빛낸 스타일때는 그쪽으로 쏠리더니 이제는 황 교수가 조작을 했다고 하니 모든 것이 다 '사기'로 보이는 것 같다.
혹자는 "황우석 교수가 아니었더라도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영롱이와 진이에 대한 검증도 없었다. DNA검사 등을 의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소에 관한 한 황우석을 따라 올 사람은 없다. 즉 영롱이와 진이는 황우석이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사실 황우석은 인간 배아줄기세포의 전문가는 아니다. 황 교수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뒤에서도 다루겠지만 BT산업이 IT에 이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부각되던 2001년도 문신용 서울대 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과의 지하다방에서의 '도원결의' 이후부터 이뤄졌다. 때문에 황 교수가 이들과 의기투합하기 전, 생명공학쪽에 거대 자본의 유입이 시작되면서 BT산업으로 발돋음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황 교수는 영롱이와 진이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중 이었다.
영롱이(2월)와 진이(4월)를 발표하던 시점인 1999년초만 하더라도 한창 IMF위기 극복에 목매달려 있었던 시기여서 미래형 경제구조로의 변화 출구였던 ‘벤처산업’이 간신히 기지개를 켜긴 했지만 IT산업에 국한되었었고 그때까진 거대자본과 정치권력이 BT산업으로 대거 유입되진 않았다. BT는 자본회수율도, 연구성공률도 장담할 수 없었기에 눈앞에 닥친 IMF위기 타개에 급급했던 기업들이 선뜻 거대자금을 내놓을 형편이 못되었다.
물론 황 교수가 이보다 앞선 1998년 이미 박기영 현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만나긴 하지만 이때 박 보좌관은 순천대 교수이자 경실련의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으로써 황교수와은 토론회 등을 통해 학문적 만남을 했기에 권력과 자본과 황 교수가 만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적어도 이때까지만 해도 황 교수는 순수한 과학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롱이와 진이 연구는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1999년 IMF 한가운데서 태어난 영롱이와 진이에 관한 황 교수의 이 같은 학문적 혹은 과학적 순수성과 업적이 과소평가될 수 없음은 이 때까지의 황 교수의 연구 행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황우석의 집념 - 홋카이도에서 복제연구에 발 들여놓다
대학입학 원서에 1,2,3 지망을 모두 '수의과'로 적을 만큼 소에 대한 열정이 컸던 황우석이었지만 1985년 즉 30대중반에 들어설때까지 복제연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그에게 1982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임용탈락이란 ‘위기’가 세계적 과학자로 발돋음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황우석은 당시 박사학위를 받으면 1982년 전임교수가 될 것이란 지도교수의 언질을 받았지만 지도교수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바람에 교수임용은 커녕 배정됐던 강의마저 취소됐다. 이에 황우석은 전 재산인 열여섯 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경기도 광주에 화움지를 사서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는 야인생활을 3년간 한다.
황무지에서 소와 씨름하던 황우석에게 기적과도 같은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85년, 인공임신분야의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은데다 복제동물 생산을 위한 기초적 연구를 하던 일본 훗카이도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1년간 머물면서 외국의 석학들과 함께 복제동물 생산을 위한 기초 연구를 하는 경험을 얻게 된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은 황우석은 이 곳에서 하루에 4시간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연구에만 매진하면서 동물복제를 통해 우량종을 생산해야 한다는 신념을 얻는다. 이때의 경험이 황우석 인생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황 교수는 귀국후부터 동물복제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IMF이후 국민들의 상실감에 휩싸여있던 1999년 2월 복제소 ‘영롱이’를 생산한다. 복제양 돌리(영국)이후 ,미국과 일본에 이은 세계에서 4번째 동물복제 성공이자 젖소로는 세계 처음이었다. 쾌거였다. 황 교수는 복제양 돌리와 같은 체세포 복제방식으로 암컷 젖소의 자궁세포에 있는 핵을 꺼내 젖소의 난자에 이식한 후 전압을 가해 수정란처럼 만든 후 젖소의 배아를 키웠고 이어 이 배아를 대리모 구실을 하는 암컷 젖소의 자궁에 착상시켜 자궁세포를 제공한 암컷 젖소와 유전자가 동일한 복제소 영롱이를 생산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영롱이 빛나라’는 뜻에서 ‘영롱이’라는 이름이 붙혀진 이 복제 소는 태어난지 2년 만인 2002년 4월 황소와 자연교배를 통해 암송아지를 분만했다.
황 교수는 또 영롱이 탄생 한 달만에 한우 복제소 ‘진이’를 탄생시켰다. 영롱이는 암컷 젖소의 자궁세포를 이용해 복제됐지만 진이는 암컷 한우의 귀 세포를 떼어내 복제했다. 황 교수가 한 번에 동물 복제에 쓰는 난자 수는 수 천개에서 수 만개, 그만큼 복제연구는 끊임없는 실험을 반복해야 성공할 수 있는 힘겨운 과제로 황 교수는 그 험난한 연구실의 고독과의 전쟁을 치루며 즉 오로지 한 길을 판 학문적 매진을 통해 영롱이와 진이를 생산한 것이며 이같은 학문적 업적이 황 교수에게 엄청난 명예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소 복제를 두 번이나 성공한 황교수에게 인간과 가장 유사한 '개 복제' 스너피의 성공은 '인간 배아복제의 완전한 성공'의 길을 한층 더 빨리 열어주는 것이었고, 황교수는 '더욱더 빨리빨리' 급패달을 밟았다.
'난자' 파문이 일었던 인간배아복제도 동물복제와 같이 수천, 수만개의 난자를 통한 지난하고 처절하기까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열정만 앞섰던 과학도는 아마 몰랐던 것 같다.
2001년 황.노.문의 ‘도원결의’- 그것은 자본과 권력과의 달콤한 첫 키스의 전주곡
- 황우석은 '복제기술', 줄기세포 수립 배양에는 문외한
<삼국지>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한 왕조의 재건을 명분으로 복숭아 나무아래서 ‘태어난 때는 다르지만 같은 날 죽기를 맹세’하는 도원결의를 맺고 이후 이 세 사람은 죽는 날 까지 서로 배신함이 없이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풍운아 조조를 비롯한 천하의 영웅들과 자웅을 겨룬다.
연구실에서 ‘소’와 씨름만 하던 황우석에게도 인생을 바꿀 기회가 왔다. 수의대 교수 임용 탈락이란 위기가 가져다 준 일본 유학이란 기회가 황우석의 ‘소’연구 연장선상, 즉 학문적 성공을 향한 동일한 길 위에서 행로를 순조롭게 한 것이었다면 이번의 기회는 청동솥의 세 다리 가운데 학문이란 부문에 매달렸던 황우석에게 나머지 두 다리 즉, 돈과 권력을 맛 보는 길로 뻗어 있었다.
황우석은 2001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전경련이 주최한 BT관련 강연을 마친 후 이 건물 지하 다방에서 강연에 참석했던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을 만나 인간배아의 복제를 통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논의한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시험관 아기 시술분양의 대부로 황우석이 맏형으로 모셨고, 문 교수와 친분이 있던 노 이사장은 불임분야의 대표적 병원인 미즈메디 병원장이자 줄기세포를 배양하고, 생산하는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로 인정받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줄기세포를 얻기위해 냉동배아를 해체하는 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는데, 미즈메디는 미국NIH(국립보건연구원)에 등록된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할 수 있는 6곳의 연구기관 중 하나였다. 때문에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미즈메디와 손을 잡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황 교수는 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 복제소 영롱이를 만든 '동물복제' 기술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인간의 배아줄기세포 기술에는 경험이 없었다. 여기에 줄기세포주를 보유하고 있고 또한 자본을 가진 미즈메디가 가세함으로써 황우석은 인간 배아줄기세포 분야의 첫 만남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잉여배아 줄기세포나 성체 줄기세포의 실용적 잠재성이 매우 높으나, 복제 줄기세포 역시 불가피한 연구영역이라고. 그 자리에서 상호간의 역할이 정해졌다. 이미 불임 관련 실험으로 일가의 경지를 이룬 문 교수님팀은 총괄조정과 복제배아의 배양 등 기초부분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2004년 10월11일자 세계일보에 황교수가 직접 쓴 칼럼 <인간배아 복제연구 '드림팀'>에도 이같이 밝혔다.
"2001년 전경련 2001년 어느 날 전경련회관 지하다방에서 서울대의대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과 나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호간의 역할이 정해졌다. 이미 불임 관련 실험으로 일가의 경지를 이룬 문 교수님팀은 총괄조정과 복제배아의 배양 등 기초부분을 담당하기로 하였다. 노성일 원장께서는 윤현수 박사와 같은 백전노장의 베테랑으로 줄기세포 수립과 그 이후 배양을 책임지기로 했다. 우리 팀은 10여년간 소와 돼지 등 동물복제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으며, 각 팀의 역할 치고는 꽤나 잘 짜여진 그림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연전에 이미 류영준·이유진씨의 의사, 간호사 부부가 합류하여 줄기세포 분야에서 무언가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열의가 불타고 있었다"
황교수 논문에 미즈메디에서 황교수팀으로 파견나온 김선종 연구원이 배아줄기세포 사진을 조작했다거나,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가 '미즈메디에 보관되었다가 죽었다'거나, '미즈메디측에서 바꿔치기 했다'거나 하는 황 교수의 주장은 배아줄기세포에 관한한 미즈메디가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문 교수가 총괄조정과 복제배아의 배양 등 기초부분을 담당하고 노 원장과 미즈메디 병원의 윤현수 박사가 줄기세포 수립과 그 이후 배양을, 그리고 황 교수가 동물복제에서 축적한 복제기술을 인간배아 복제에 적용하는, 즉 세계 최초로 체세포를 이용한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배양이라는 공동 프로젝트가 출범하게 되는데, 이는 연구성과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에서 큰 돈 가치는 없는 ‘영롱이’에게 시장을 움직이는 ‘스너피’로의 도약이자, 황 교수 개인적으로 명예에 이어 돈과 권력과의 달콤한 첫 키스를 하는 순간이었다.
황 교수에 대한 본격적 투자시작, 자본이 과학을 지배하기 시작했나?
2005년 8월 세계 최초의 복제 개 '스너피' 탄생. 새튼 교수와 함께.
황우석의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2004년 2월 사람의 체세포를 인식해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세계적인 과학권위지 사이언스에 첫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당시 정부는 황 교수에게 과학기술 최고 훈장인 창조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2004년 6월18일 황 교수가 창조장을 받았을때, 황교수만 받은 것이 아니다. 문신용 교수는 혁신장을, 미즈메디 노성일 이사장, 서울대 이병천 교수는 도약장을, 서울대 안규리 교수와 강성근 교수는 진보장을, 한양대 황정혜 교수는 과학기술포장장을, 미즈메디 병원 박종혁 연구원 등 4명은 대통령 표창을 각각 받았다.
'황우석 사단'이 첫 과학대상들을 휩쓸었다. 황교수는 한국 최고과학상을 받음으로써, 이보다 5년전 영롱이와 진이의 탄생이 황 교수에게 학문적 성과, 즉 명예를 가져다 준 것에 비해 배아복제, 즉 인간배아줄기세포는 대중 권력까지 더 해 줬다.
왜냐하면 줄기세포는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장기의 원료 역할을 하기에 심장질환을 비롯해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당뇨병, 척수재생 등 각종 난치병을 고칠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 강원래처럼 현대 과학으로 치유할수 없는 환자들은 희망을 가지게 됐고 이는 곧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2001년 ‘도원결의’를 기점으로 이 무한한 시장성을 가진 줄기세포 분야에 뛰어 든 황우석에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황우석은 점차 연구만 아는 과학자에서 시장을 이해하는 '기업가적 마인드'로 변하게 된다.
노성일 미드메디 병원 이사장이 황우석과의 갈등의 와중에 언론을 통해 황 교수에게 공급했다는 천2백여개의 난자만 돈으로 환산하면 개당 2백50만원으로 계산해도 어름잡아 30억여원이 넘는 막대한 투자다. 이윤을 따라 움직이는 자본의 속성을 놓고 볼 때 ‘돈이 되는’ 인간 배아복제 즉 줄기세포 연구에 자본의 본격적인 투자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받은 만큼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투입된 거대자본은 그에 걸맞은 이윤을 적당한 시기에 뽑아내야 한다는 것이 경제원리다. 황 교수가 자본을 지원받게 되면 될수록 그는 순수하게 연구에만 매달릴 수 없이 연구 실적, 즉 돈과 직결되는 작품을 내 놓아야하는 중압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 분야의 시장가치가 360조원에 이를 것이란 발표들이 나돌면서 1편에서 다뤘던 메디포스트와 같은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서 주가가 액면가의 150여배까지 폭등한 것을 놓고 볼때 과연 황 교수에게 쏟아부어진 돈이 얼마나 될지 상상이 간다. 지금까지 황 교수팀에 투입된 돈에 대해 1000억+알파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우석 뒤엔 '삼성'의 힘
황우석, 그 뒤에는 실제 '돈과 권력'을 모두 갖고 있는 삼성의 힘을 빼 놓을수 없다. <폴리뉴스>는 1편에서 ‘스너피’로 돈벼락을 맞은 메디포스트와 미즈메디 병원이 넓게는 삼성 외척 홍석현가와 삼성 이건희가 인맥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
사실 황 교수의 연구 진행 과정을 보면 삼성과 황 교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황 교수의 정치권 지원세력인 ‘황금박쥐’의 진대제 장관은 삼성의 핵심 인맥이었고, 황교수와 함께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2황’으로 언론이 평가하며 황 교수와 함께 IT와 BT토론회 단골 초대 손님인 황동규 삼성전자 사장 역시 삼성의 인맥이다.
특히 황 교수가 원숭이를 대상으로 이종장기 이식과 줄기세포 효능 검사를 하기 위해 실험에 가장 적합한 원숭이인 ‘바분 원숭이’를 찾는 과정에서 삼성이 보여준 성의(?)는 삼성과 황 교수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황 교수가 '바분 원숭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찾을 수가 없다가 2004년 윤종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윤 회장은 세계 각국의 삼성 지사에 바분 원숭이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도록 긴급 지시했고,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았다. 윤 회장은 전세기를 타고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 직접 확인한 후 현장에게 황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바분 원숭이를 찾았다”고 감격해 했다고 한다.
삼성 전자의 회장이 황 교수에 필요한 실험용 원숭이를 찾아주기 위해 직접 아프리카 최 남단까지 달려갔다는 이 사실을 놓고 볼때 삼성이 황 교수에 대한 지원이 어느 정도 였는지 상상할 수 있다.
결국 배아줄기세포와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거대 자본의 뒷받침없이는 힘들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며 이것이 결국 나중에 메디포스트의 경우와 같이 시장에서 주가란 현실로 나타나는 성과물을 위해서라는 것, 황우석이 추락하자 쉽게 등을 돌리는 정치인과 자본가의 속성을 놓고 볼때 순수하게 황우석이 좋아서, 혹은 황우석의 연구 성공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라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삼성은 '차세대만이 아니라 차차세대에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그 일환으로 BT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그것이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에서 먹고사는 길을 닦는 순수한 차원으로 투자한 것이 아니라 '당대'에서 이윤을 보려했기 때문에 '황우석 상품'이 과대포장되는 것이 아마도 유리했을 것이다. 그 사례가 미즈메디와 메디포스트다.
메디포스트는 150배로 주식이 뻥튀기 되었고, 제2 공동저자인 노성일 이사장은 '지분 40%'를 요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뿐만아니라 삼성만이 아니라 '교신저자'이면서 황교수에 대해 'my brother'이라고 했던 새튼교수마저도 지분 50%를 요구했다느니 20만불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사업가'들이 거래가 형성되는 것은 이미 줄기세포 연구는 이제 '돈벌이 홍보수단'으로 전락했고, 그것을 위한 계속되는 '조작'은 필요했으리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권력과의 만남, ‘황금박쥐’ 통해 과학은 권력으로부터 권위적 배분의 특권을 누리다
- 황금박쥐, '학문, 권력, 돈'의 3위일체
'황금박쥐' 팀원 중 한사람인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현 정권에서 황 교수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정치의 효율성 내지는 성과가 강조되면서 정치가들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D.이스턴은 ‘정치’를 ‘사회적 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사회적 제 가치 가운데 하나이자 전문분야인 과학적 성과에 있었어도 ‘표를 먹고 사는 숙명’을 가진 정치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순서대로 가치를 나누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권위’혹은 ‘힘’을 행사한다.
이러한 정치인에게 황우석이란 상품은 대단히 매력이 있었다.
최대의 후원자인 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을 만났을 때 박 보좌관은 대학 교수였고 황 교수 역시 크게 알려지지 않았기에 그 시작을 권력과의 만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 보좌관 부분은 뒤에 <황우석과 여성 후원자>들 편에서도 다루겠지만 만남이야 어떻든 황우석은 박 보좌관을 통해 정치, 혹은 권력이 과학에 권위적인 배분을 통해 줄 수있는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된다. 앞에서 다룬 정부지원금과 같은 금전적 수혜 외에 더 큰 것은 사회 전체를 움직여 황 교수를 영웅으로 만든 무형의 힘들, 그 가운데서도 일명 ‘황금박쥐’사단의 형성이었다.
2004월 2월 첫 만남을 가진 '황금박쥐'사단은 황교수(황)를 지원하는 정부와 청와대측의 주요인사들인 '노대통령의 힘'을 상징하는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금),박기영 청와대 정보과학기술 보좌관(박)과 '삼성과 정권'의 힘을 가진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쥐)의 성을 따서 지은 '황우석 지원 이너써클'이다. 이들은 황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한국을 세계줄기세포허브로 만들기위해 힘을 모으고 또한 관련 정책을 추진했고, 그리고 막대한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실세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황금박쥐는 학문(황우석)과 권력(박기영, 김병준)과 돈(진대제)가 3위일체된 조직이었다. 수천억대의 천문학적 정부지원금이 어떤 검증장치 없이 황교수팀에게 지원될 수있었던 데는 '황금박쥐'라는 '힘'이 있었다. 박기영, 김병준의 청와대의 힘과 진 장관의 삼성의 힘이 황우석을 지원했다. 진 장관은 '황우석 우표'까지 발행하기도 했다. 그밖에 '곰팡이 사건'을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는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도 정보통신부와 함께 과학기술부 정부예산 380억원을 황 교수에게 지원한 당사자다.
삼성과 노무현 정권의 허니문 관계를 상징하는 진대제 장관이 정통부장관에 연임됐을 때 모 일간지는 그의 장수비결 가운데 하나로 ‘황금박쥐’를 거론하면서 ‘황우석(서울대 교수)-김병준(대통령정책실장)-박기영(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진대제(정통부 장관)’모임이 한 달에 한 번씩 이어지면서 권력 내 네트워킹이 확고하다는 점을 꼽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황 교수의 서울대 동기(72학번)인 이해찬 총리까지 이들 황금박쥐 네트워크의 후원자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줄기세포 진위논란과 논문 조작문제가 불거지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58억원이 넘는 정부예산이 들어가는 황교수 지원 사업에 대해 사전점검과 사후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야당은 청와대의 은폐 축소의혹을 제기하고 일부에서는 '황금박쥐'사단의 경질까지 요구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국회에서는 '황우석 특검, 황우석 국정조사'까지 실시하자고 들고나오고 있어 일파만파로 번지는 줄기세포 논란 속에 황우석 신화를 만든 권력 네트워크인 '황금박쥐'도 수난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황우석에게 지원된 권력과 막대한 돈, 이 돈을 어디에 사용했나?
- 연구실 부실해서 '곰팡이로 죽었다'는데... 돈은 다 어디에...
‘황금박쥐’로 대변되는 권력 실세들과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황 교수의 지원세력들은 황 교수에게 투자되는 돈을 훨씬 풍족하게 해 준다. 그러나 천문학적 나랏 돈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어떻게 썼는지는 도통 알 수 없다.
지난 5월 정부는 “황 교수의 연구비를 원하는 만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있다. 정부가 지난 98년 이후 황우석 교수팀에게 지원한 돈은 658억여원에(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로부터 380억원, 보건복지부와 서울대병원지원금 63억원, 경기도 215억원) 달했다.
황 교수팀은 대부분 시설투자에 사용했고 거액의 각종 연구비는 대부분 내년 이후 지원될 예정이기 때문에 결국 당초 예상과는 달리 연구비 조달을 위해 각계에 지원 요청을 해야하는 형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황 교수팀은 일단 정부 지원금만해도 658억원을 썼고 지금까지 사용한 돈에 대해 정확한 집행내역을 공개한 적은 없다. 또 내년에도 205억여원의 예상이 투입될 예정이기에 황 교수팀이 사용한 돈은 정부 연구비외에 민간투자액과 각종 지원금을 합칠 경우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교육부에서 1개 지방대 NURI사업에 지급하는 돈만해도 100억이 넘는 실정을 감안할 대 658억원이라는 돈이 건축비를 제공하면 첨단장비를 비롯한 각종 연구 관련 제품을 구매하고, 60명이 넘는 고급 인력들인 연구원들의 수고비로 지급하면 남을 것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황 교수는 여기에 더해 경기도로부터 약 290억원, 포스코에서 15억원, 농협중앙회에서 10억원 등을 지원받았다. 여기에 대한항공이 향후 10년간 황 교수에게 항상 1등석 항공권을 제공하고 1천여명의 여성이 난자기증을 약속하고 황 교수의 후원회로도 성금이 쏟아지는 등 황 교수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들로부터 실로 막대한 지원을 받아왔다.
미국 피츠버그대 새튼 교수가 지난해 9월 황우석 교수에게 연구비 명목으로 20만 달러(한화 2억여원)를 요구한 것은 이 돈이 관례라는 새튼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팀이 그에게 이같은 돈을 지급할 만한 여유가 있었기에 새튼이 요구를 했을 것이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게다가 서울대 연구실이 초라해서 '정전사고로 줄기세포가 죽었다' '줄기세포가 곰팡이가 나서 다 죽을 정도'로 연구 여건이 열악했다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도통 모를 일이다. 줄기세포 보관을 할 곳이 또 미즈메디 밖에 없었다는 것은 도대체 정부지원금으로 세포보관소 하나 지을 수 없었다는 것인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또 황우석은 항상 연구비가 모자라서 인터뷰나 해외 과학자들과 교류, 그리고 사이언스 관계자들과 만나기 위해 해외로 나갈 때 주로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해외 체류중에도 호텔보다는 저렴한 모텔 등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그 1천억대 지원비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천문학적 지원에도 항상 돈 부족 외친 황우석 - 숙박비 아껴 사이언스 접대한 진짜 이유는?
- 사이언스 논문, 유독 '황우석 논문만 검증안했나'
이와 관련 한가지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이것은 황우석은 대규모 권력과 자본의 지원을 받은 후 첫 성과물인 2004년 ‘사이언스’발표 이후 미국에서 쏟아지는 인터뷰를 소화하던 당시의 일로 황우석은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도 할인항공권을 구입하고, 하루 35달러 여관에 묵었다고 밝히면서 그렇게 아낀 비용 1,500달러로 미국 국립보건원(NIH) 간부와 ‘사이언스’최고위 책임자등이 자리한 만찬비용으로 썼다고 했다. 물론 그는 이것이 세계를 움직이는 생명공학자들에게 ‘바이오 코리아’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지만, 학자가 잠자리와 이동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아낀 돈을 접대비에 사용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바분 원숭이’를 구하기 위해 황 교수의 후원자인 삼성전자의 회장이 먼 아프리카까지 달려간 점과 비교할 때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2004년 ‘사이언스’논문은 황우석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는데 투자가들이 돈에 인색할 리가 없다. 따라서 황 교수가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연구비가 부족하다고 호소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용도 외에도 상당액이 더 쓰였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황 교수가 2004년과 2005년에 잇따라 논문을 실은 <사이언스>는 과학자가 평생 한 번 논문을 싣은 것도 영광이라는 세계적 권위의 잡지로 7명의 시니어 편집자와 120여명의 전문 에디터들이 엄정한 심사를 거쳐 투고된 논문의 약 10%만을 소개한다. 또 투고된 논문에 대해 48시간 이내에 심사를 마치고 심층적인 검증을 위해 검토진을 구성하는데 투고된 논문의 75%가량은 일주일 내지 10일 이내에 이뤄지는 첫 단계 검증작업에서 탈락되고, 이러한 검증을 통과한 25%의 논문에 대해 편집자들은 2주간의 집중적인 토론을 거쳐 평가를 내리는데, 황 교수의 의혹투성이 논문은 두 차례나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실렸다는 점에서 “왜 유독 황 교수의 논문이 특별한 검증없이 실었을까?”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005년 5월에 발표한 ‘맞춤형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여부에 ‘중대 하자’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황 교수가 본인 스스로 <사이언스>에 논문 철회를 요청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때문에 막대한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황 교수가 항상 연구비 부족에 시달렸다는 의혹은 황 교수의 연구물이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유를 규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아직 확증적인 것은 아니지만 2004년, 2005년 논문이 모두 '가짜'라는 것은 과학자도 아닌 과학 문외한인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극히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리 '데이터 검증'만 하는 사이언스지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파악할 수 없었을까? 사이언스지에 실린 과정부터 누구로부터 그 논문이 실렸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두 논문 모두 '새튼'교수가 교신저자로 참여했고, 그에 의해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그리고 새튼은 지분요구와 연구비 20만불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한 요구인지는 국제과학계 기준을 몰라 판단할 수 없으나 이상한 부분이다.
권력과 자본은 황우석을 통해 ‘한국형 아폴로 프로젝트’로 정권 재창출을 기도했다?
2005년 10월19일 노대통령은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참가, 축사를 했다.
황 교수는 대개의 연구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정치매너'가 특출나다.
언론인이나 지인들의 길흉사를 누구보다 잘 챙기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우리가 보통 알고있는 아인슈타인이나 퀴리 부인 등 세계적 과학자들은 자신의 사생활 마저 잊을 정도로 연구만 몰두하고 있음을 비교할 때 황 교수의 이같은 행보는 순수한 과학자를 넘은 경영인 혹은 정치인의 행보로 볼 수도 있다.
사실 이번에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돈과 힘이 황 교수에게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핵심은 황교수가 진대제 장관과 함께 추진했던 BIT산업으로 이것은 경제적 효과 이외에 국민들의 ‘신바람, 꿈’을 건드려 정권 재창출로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황금박쥐가운데 권력과 자본을 함께 가졌던 진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같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소속 위원으로 황 교수를 만났다. 그때 김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 BT와 IT의 융합인 BIT였으며 핵심은 인천에 21세기형 의료 콤플렉스를 만드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즉 10년 뒤에는 줄기세포와 황 교수의 또 하나의 역점 사업인 돼지 장기이식(무균 돼지의 환자의 장기에 이식하는 것)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고, BIT는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기에, 특유의 식습관 때문에 장기손상이 많은 중국인 등을 겨냥해 비행거리 4시간 내에 20억명의 아시아인이 살고 있는 송도에 이들을 수용할 의료 콤플렉스를 세운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황 교수는 BIT 지원을 강조하며 이 부분에 대한 정부 특별지원을 강조했고, 진 장관은 과학발전국채 10조원을 발행해 이 국채를 BIT 연구지원에 사용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진 장관은 정부가 표준기술처럼 기업이 공유할 것을 만들어주고 초기 시장도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황 교수의 이식용 장기가 실용화돼도 처음엔 100명 정도의 환자에 대해선 정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 동안 기술이 발전하고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황우석에 대한 지원에 열을 올렸다.
황우석 역시 정부의 역할이 초기 위험 부담이라며, ‘케네디의 아폴로 프로젝트가 나왔을 때 정치적인 제스처란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는 전 세계 인류에 꿈을 준 것이다. 우리에게도 한국형 아폴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한국형 아폴로 프로젝트' 구상, 즉 황우석을 통해 전 국민의 꿈과 희망을 한 곳에 모은 후 황우석을 정계에 입문시킴으로써 여당과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노무현 정권 인수위 시절 황우석 교수는 첫 과학기술부 장관에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황우석'이란 브랜드는 노무현 정권 시작과 함께 재집권을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는 빨라야 10년 이후에나 실제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토록 노무현 정권이 정권차원에서 '키운 것'은 황우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당한 정치적 효과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형 아폴로 프로젝트'라는 재집권 플랜이었는지는 아직 좀더 확인할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현 정권이 이번 파문만 아니었다면 '황우석'이라는 확실한 브랜드에서 얻었던 정치적 반사이익은 상당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盧정권은 앞으로 10년집권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노무현 재집권 10년, 줄기세포 10년이냐"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황우석이 '재집권'과 관련되었다는 일각의 의혹이 황우석 사태가 터지자 정치권과 정부 고위 관리, 그리고 각 부처가 서둘러 황우석으로부터 발빼기를 시도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산업자원부는 19일 전경련 회관에서 바이오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바이오산업 발전 정책과제 발표회를 연 데 대해, 한달 전 `2015 바이오 전략'에 따른 후속 조치일 뿐이라며 황교수 파문에 따른 산업지원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바이오 산업은 IT를 이을 차기 성장 동력 기술 및 산업으로 어떤 식으로든 발전해야 한다는 내부 지원 방침에도 불구, 황 교수 사태와 연관짓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박쥐' 의 당사자이자 BIT산업 육성을 외쳤던 진대제 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황금박쥐 멤버들은 서로의 일정이 바빠 만난지 몇 개월이 지났다"며 거리는 뒀다. 그러면서 그는 "황우석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국가기술자문위원회에서"라며 "당시 IT가 바이오 기술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연구하면서 IT와 BT를 결합한 `바이오 인포매틱스'를 육성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면서 BIT 즉, 한국형 케네디의 아폴로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박기영 보좌관과 황교수가 알기 시작한 것도 1998년 김대중 정부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실련 과학기술위원장이었던 박기영은 국회 생명윤리법 포럼에서 '생명윤리 문제는 연구실에서는 제한적으로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에 황교수가 감명받았다는 것이 이들의 첫 인연이다. 그후 박 보좌관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4년 1월 청와대 과학보좌관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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