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황우석, 히딩크, 박지성, 조용필…은 국민의 가슴 속에 이미 ‘신화’가 된 인물들이다. 과학자, 축구감독과 축구선수, 가수라는 점에서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의 이름을 딴 책이 출판되고, 생가가 복원되거나 도로가 생기는 등 막대한 지원을 받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작업이 한창이기도 하다.
◇ 황우석 관련 서적 출간, 연구동 및 생가복원 추진 앞다퉈
<문화방송> ‘피디수첩’이 “매매 난자 연구용으로 사용했다”는 보도를 했을 때만 해도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는 정부로부터 수백억원대의 연구비를 받고, 대통령에 준하는 경호를 받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과학자’였다. 인터넷엔 누리꾼 수만명이 ‘아이러브황우석’ 카페를 만들어 그를 지지했고, 난자 사용의 윤리성 문제가 불거지자 난자기증재단이 설립됐다. 1천여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난자 기증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고과학자 황우석은 또한 어린이 위인전의 훌륭한 모델이었다. 지난 5월 <사이언스>에 논문이 발표된 뒤에 <소몰이 소년의 꿈과 도전>과 <줄기세포에 대한 모든 것>(동아사이언스), <나의 생명이야기>(효형출판사),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매일경제신문사), <황우석 박사의 아름다운 생명의 길>(이레미디어),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2(줄기세포를 지켜라)>(학원사), <소를 사랑한 아이, 황우석>(청개구리), <소년 황우석1'(지엠디북)> 등 수십권의 책이 서점가에 나왔다. 책 대부분은 말 그대로 ‘황 교수 위인전’이다.
세계적인 과학자의 탄생에는 각 지자체들도 신격화에 앞장섰다. 황 교수의 고향인 충청남도는 생가 개발을 비롯해 최근 무균돼지 실험을 진행한 홍성군 구항면 돼지농장을 ‘황우석 기념농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충남발전연구원에 관련 연구를 맡겼으며, 84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충청북도 음성군도 지난 11월 초 음성큰바위얼굴조각공원을 열면서, 황 교수와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 안규리 이병천 박사 등의 동상을 세운 ‘황우석 동산’을 만들어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했다. 경기도는 지난 8일 황 교수의 이름을 딴 ‘황우석 바이오장기연구센터’ 기공식을 열었다. 강원도가 14억원을 들여 광우병 내성소 시험연구동은 이달 안에 완공된다. 강원도는 내년에 25억~27억원을 들여 시험 연구 축사를 늘리고 시험 소를 100마리에서 300마리로 늘릴 계획이었다. ‘황우석 신드롬’의 결과였다. 여기에 들어갔거나 들어갈 예산만 700억원에 이른다.
◇ 황우석 덕 좀 보자 했는데…관련 책 속속 회수, 각종 지원사업 물거품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황 교수팀의 연구논문에 대한 진위 논란과 함께 2005년 논문이 거짓으로 판명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위인전’의 주인공 황우석은 ‘사상최대의 과학 사기 스캔들’의 연출자가 되었다. <피디수첩> 방송 이후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 시내 주요 서점들은 황우석 관련 책들을 진열대에서 뺐다. 동아사이언스 등 몇몇 출판사들은 서점가에 판매 중지를 요청하고 자진 회수에 들어갔다. 특히 방학 특수를 앞두고 만화와 위인전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낸 일부 출판사들의 타격은 더욱 크다.
충남, 충북, 강원, 경기도 등도 황우석 관련 연구동이나 생가 개발, 연구농원 등의 사업을 잠정적으로 보류하거나 사업 축소 및 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특히 지난달 초 음성큰바위얼굴조각공원의 ‘황우석 동산’은 홍보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앞으로 홍보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강원도의 ‘광우병 내성 소 개발사업’ 또한 황 교수가 앞으로 연구를 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난감한 처치다. 다만, 경기도의 경우 ‘황우석 바이오장기센터’ 를 ‘경기도 바이오장기센터’로 바꿔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255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예정이어서 곤란한 상태이기는 마찬가지다. 서울대가 2만여명의 난치병 환자들의 신청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세계줄기세포허브 역시 타격을 받았다.
◇ 생존인물 과도한 띄우기 부작용 일쑤
이런 부작용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그중 하나는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인물을 과도하게 기념한 데서 비롯했다. 이러한 ‘살아있는 위인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정직과 노력을 가르친 게 아니라, 어른들이 거짓말로 꾸미고 절박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신의 성공을 도모하려 했다는 것을 가르치게 된다.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돈벌이와 지자체 알리기에 이용된 것이다. ‘최고’나 ‘최초’를 우선시하는 성과주의와 애국심이 만나 마케팅과 홍보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문화사회연구소장)은 “황우석 신드롬은 금 모으기나 평화의댐 건립 등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국가가 대중들을 동원했던 메카니즘의 연장에서 발생된 것”이라며 “대중들의 몸에서 체화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적 인물이나 영웅이 나왔을 때 모든 국민들이 거수기가 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황우석 신드롬’의 본질은 언론이나 정부, 지자체 등이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조작을 했고, 이 과정에서 애국심을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점”이라며 “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들어 대중의 판단을 흐리게 했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고 있는 각종 폐해의 책임 또한 이들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사이버문화연구소장)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전세계적으로 내세울 영웅을 간절히 원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고, 이 영웅을 통해 대리만족이나 우월감, 자긍심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문제는 누군가를 ‘우상화’할 때 뚜렷한 성과나 업적에 대한 평가보다는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서 비롯되는 데 있으며, 황우석 신드롬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황 교수 사태를 계기로 대중의 맹목적 추앙이나 특정인에 대한 우상화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나 국민의 정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민경배 교수는 “과학적·경제적 성과나 축구 등에서 국위선양을 한 사람에게 영웅에 대한 쏠림현상이 있는데 경계가 필요하다”며 “황우석 교수가 논문을 조작한 것에서 보듯 영웅에 대한 기대심리나 성과·결과주의가 오히려 당사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영웅이나 위인이 제 역할에 도달할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봐주고, 성원하는 느긋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누리꾼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꺼리를 찾아내는 특성이 있어 '몸짱아줌마', '강도얼짱' 등 특정한 인물에 대한 쏠림현상이 두드러진다”며 “‘아이러브황우석’ 아니면 ‘안티 황우석’이 되어야 주목을 받는 인터넷 문화의 개선도 함께 바뀔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박지성 길, 히딩크 길, 조용필 생가 복원.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살아있는 인물에 대한 과도한 ‘띄우기’는 그 사회의 조급함과 사려없음을 드러낸다. 이번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보듯, 살아 있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황 교수를 두고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독재권력자나 해당 사회의 권력자의 직간접적 지시에 의해 ‘우상화’가 이뤄지거나 ‘살아있는 송덕비’가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지자체와 자본이 경제적 효과와 홍보 효과를 노려 앞장서고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오른 뒤 지자체는 앞다퉈 박지성과 히딩크 띄우기에 몰두했다.
경기도 수원시는 월드컵 당시 조별예선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고 난 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자 ‘박지성 도로’를 건설하기로 했으며, 지난 6월 정식 개통했다. 길이 1.38km, 너비 3의 도로를 짓는데는 모두 315억원이 투입됐다. 경기도는 월드컵 이후 박지성의 모교인 수원공고를 방문한 뒤 축구팀을 위해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주기도 했다.
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도 ‘국민적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는 대우를 받았다. 광주시는 시내의 한 도로를 히딩크로로 이름지었고, 그의 이름을 딴 호텔도 생겼다. 인천에서는 맥아더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 히딩크 동상을 세웠고, 제주도 남제주군 용머리해안에도 히딩크 동상이 있다. 정부는 훈장과 함꼐 명예국민증을, 서울시는 명예시민증을 줬다.
경기도 화성시는 화성 출신인 가수 조용필의 생가를 관광자원화하기로 하고, 지난 20일 부지매입 동의안을 가결했다. 화성시는 6억7천만원을 들여 조용필씨의 생가인 송산면 쌍정리 99 일원 1200여평을 매입, 오는 2007년까지 11억여원을 투입해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실과 휴게시설, 주차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지만 비판여론도 대두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가 관광안내책자를 내면서 노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만화로 제작된 관광안내서에는 노 대통령의 생가를 소개하면서 태몽에 백마가 나타나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상했고, 6살에 천자문을 떼 노 천재로 불렸다는 내용, 그리고 역경을 딛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과정 등이 다섯 페이지에 걸쳐 묘사돼 있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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