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많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입니다. 제가 겪은 일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2016년 10월 소위 #문단_내_성폭력 폭로 이후 몇 차례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지옥불에 떨어져서 인간 아닌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적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5월, 저에 대한 허위 폭로를 했던 한 여성이 저를 고소했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죄명은 이랬습니다. 강간, 강제추행, 협박, 감금,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대전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성관계 이후 “나는 제주도에 가서 시를 쓰면서 지낼 거야”, 라고 이 여성은 제게 문자를 보냈었습니다. 물론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이 문자가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서 저는 2017년 10월, 대전지방검찰청 김정화 검사로부터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여성을 수원지방검찰청에 고소를 했고 결과적으로 이 여성은 무고 및 정보통신망법 상 허위 사실 유포가 인정되었습니다. 정경진 검사는, “초범이고 정신이 불안정한 점 등”을 이유로 들어 이 여성을 기소유예 처분 했습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저의 의혹에 대해 보도하던 언론사들 대부분은 이 사실에 대해 침묵했습니다. 저는 ‘기자’라는 집단들이 그렇게 견고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때야 알았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제 블로그에 한 사람이 글을 남겼습니다. 자신을 중앙일보 기자라고 소개한 이 사람은 저를 취재하고 싶다는 취지로 글을 남겼습니다. “대법원” 운운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 사람의 취재에 응했었습니다. 저는 검찰에서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에 법원 자체를 간 적이 없습니다. 이 ‘여성국’이라는 기자는 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취재를 하지 않고 저에게 연락을 했었던 것이죠. 많은 것이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또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3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메라 촬영기자까지 동행한 이 ‘여성국’이라는 기자는 집요하게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질문들이 이상했습니다. 이 기자가 궁금했던 건 바로 이런 거였습니다. “당신은 왜 무고를 당했는가”, 아마도 이 사람은 이게 가장 궁금했나 봅니다. 성폭행 피해자를 취재하면서 당신은 왜 성폭행을 당했냐고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보다 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해달라는 대로 정말 다 했습니다. 동영상이 필요하다기에 카메라 앞에서 제게 벌어졌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울기도 했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도 취재를 하고 싶다기에 두 분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참담했습니다. 누명을 벗고 싶었기에 온 가족이 정말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렇게 3시간 정도의 거의 ‘고문’에 가까운 인터뷰를 끝내고 여성국 기자와 카메라 촬영기자는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아버님을 끌어안고 또 울었습니다.
이틀 정도 기다려도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빠르면 내일” 나간다던 기사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여성국 기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답변은 이랬습니다.
“데스킹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서 기사가 보류되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습니다. 사과는 물론 없었습니다. 기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주저앉아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렸습니다. 며칠을 부모님께서 잠 못 주무시고 ‘그 기사’를 기다리고 계시기에 그렇게 하는 게 도리였습니다.
바로 그날, 저는 기자들에 대한 모든 희망을 접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모든 게 암흑이었습니다. 심리적 타격, 이런 수사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어떤 벽’을 실감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여성국 기자’는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우리가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면 그때 미안했었다고, 한 마디 정도는 해줘야 맞는 일 아닐까요.
그 기자가 했던 말이 또렷하게 생각납니다. 나중에 시집이 나오면 자신이 또 기사로 알리겠다고. 그게 시인에게는 진정한 회복 아니겠냐고. 당연히 그 기자에게선 연락이 없었고 저의 네 번째 시집이 나왔을 때, 대한민국 언론사를 통틀어서 단신으로라도 소개해주는 곳 한 군데가 없었습니다.
그 중앙일보 ‘여성국 기자’가 다녀간 이후로 저는 이곳저곳 커뮤니티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SNS에 제가 당한 일들을 열심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 억울한 제 사연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이슈가 되니까 그때부터 기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더군요.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일이 비단 저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기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과 절박을 알려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또 이렇게 당했을까. 당하고 있을까. 앞으로 또 당할까. 타인의 고통에 대해 거의 ‘무감각’인 이 기자 집단을 저는 혐오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더 이상 ‘기레기’라는 말이 자조섞인 한탄과 함께 쓰여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이라도 열심히 싸워보겠습니다. 제가 가진 한줌의 언어와 제가 겪은 더러운 일들을 동력으로 삼아, 끝까지 한번 싸워보겠습니다.
(오늘의유머 회원 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다시 살고 싶습니다. 덕분에 제 시집은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제가 앞으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정말 잠 한숨 못 잤습니다. 다만 낮은 자세로,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